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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광주리 가득히 (2017.8.6.)

2017.08.06 13:19

홍목사 조회 수:76

열두 광주리 가득히

 

본문: 시편 17:1-7; 마태복음 14:31-21

설교: 홍정호 목사 (2017.8.6. 성령강림 후 제9)

 

[예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거기에서 배를 타고, 따로 외딴 곳으로 물러가셨다. 이 소문이 퍼지니, 무리가 여러 동네에서 몰려 나와서, 걸어서 예수를 따라왔다. 예수께서 배에서 내려서,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 가운데서 앓는 사람들을 고쳐 주셨다. 저녁때가 되니, 제자들이 예수께 다가와서 말하였다. “여기는 빈 들이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그러니 무리를 헤쳐 보내어, 제각기 먹을 것을 사먹게, 마을로 보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물러갈 필요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것들을 이리로 가져 오너라.” 그리고 예수께서는 무리를 풀밭에 앉게 하시고 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축복 기도를 드리신 다음에,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이를 무리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남은 부스러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 가득 찼다. 먹은 사람은 여자들과 어린아이들 외에, 어른 남자만도 오천 명쯤 되었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무더운 여름을 어떻게 보내고 계십니까. 말복이 지나면 좀 나아지려나요. 한여름 무더위에 몸과 마음의 건강 모두 잘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1.

 

오늘의 복음은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오병이어의 기적이야기입니다.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거기에서 배를 타고, 따로 외딴 곳으로 물러가셨다.” 예수님께서 들으신 그 말이 어떤 말인가요? 바로 앞 본문에 나온, 세례자 요한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주님은 분봉 왕 헤롯이 세례자 요한을 죽여, 그 머리를 쟁반에 담아 가져왔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거기에서 배를 타고, 따로 외딴 곳으로 물러가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심정이 어떠셨을지 상상해 보셨습니까. 저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 첫 구절이 내내 마음에 걸려서, 그 다음 본문을 묵상하는 데 이르기까지 시간이 한참 걸렸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누구인가요? 예수님에게 세례를 준 사람입니다. 주님은 요한을 두고 말씀하시길, “예언자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라고 하시고, “여자가 낳은 사람 가운데서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었다고도 하시고, “요한, 바로 그 사람이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이다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11:7-15). 세례자 요한이 한 일은 그야말로 주의 길을 예비하고, 그 길을 곧게 하는”(40:3) 것이었습니다.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일정 기간 동안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가르침과 영향을 받았음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런 요한이, 저 여우 헤롯에게 죽임을 당해 요한의 제자들이 그 시체를 거두었다는 소식을 주님이 듣게 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거기에서 배를 타고, 따로 외딴 곳으로 물러가셨다.” 이 짧은 한 줄의 기록에서, 저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예수님의 슬픔과 고뇌가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시고(4:17), 산 위에 올라 누가 진정 복 있는 사람인지를 가르치시고(5:1-12),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만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것이다.”(5:44-45)라고 가르치신 주님이었지만,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바리새파 사람들의 거짓과 위선을 거침없이 비판하시고, 가난하고 어디 기댈 곳 없는 이들을 찾아가 그들의 병을 고쳐주시고 위로하시면서 복음을 전하신 주님이었지만, 세례자 요한이 저 헤롯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는 따로 외딴 곳으로물러가셨습니다.

 

주님이 왜 물러가셨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여기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심정이 어떠셨을 것이라고는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도 이럴 때가 있지 않습니까? 삶에 보람과 의미를 가져다주는 어떤 일에 열심을 내며 매진하다가도, 뜻밖의 일들로 인해 낙심하고 좌절할 때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곤 합니다. ‘내가 지금 이 일을 잘 하고 있는 걸까?’, ‘왜 내가 여기서 이 일을 하고 있지?’ ‘이 길이 정말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인가?’ 하는 등의 질문을 하며 근본을 되돌아볼 때가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처형 소식을 들으신 주님께서 이런 질문들과 씨름하시지 않으셨을까 생각해 본다면 불경한 일이 될까요. 마태는 단 한 문장으로 예수께서 외딴 곳으로 물러 가셨다는 사실을 전하지만, 그 안에 담긴 주님의 슬픔, 주님의 낙심, 주님의 말 못할 고뇌를 읽을 수 있을 때 우리는 그분의 곁이 되어드리는 길에 나설 수 있습니다.

 

2.

 

그런데, 주님이 외딴 곳으로 가셨다는 소문이 퍼지자, 무리가 여러 동네에서 몰려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 그냥 좀 조용히 기도하시도록 놓아드리지, 굳이 그 외딴 곳까지 주님을 찾아오는 건 또 뭐랍니까. ‘우는 자식 떡 하나 더 준다는 옛말이 생각납니다만, 지금 잠시 낙심하셔서 쉼이 필요한 주님을 그 먼 데까지 찾아와 꼭 이렇게 귀찮게 해야 하는 걸까요.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평소의 저라면 이때에는 주님을 찾아가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오죽 낙심이 되셨으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우셨으면 그러셨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주님 계신 곳을 찾아가 사정을 아뢰고 도움을 요청하는 걸 주저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속이 깊은 건가요? 꼭 그렇게 볼 일만은 아닙니다.

 

제 스스로를 돌아볼 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주님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교만함 때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주님 앞에서 우는 자식이 안 된다면 그럼 제가 무엇이 될 수 있겠습니까. 주님 앞에서까지 다 큰 자식노릇을 하느라 이것저것 따지고, 갈 데 안갈 데 가리고, 할 말 안할 말 가리면서 처신한다면, 그러면 우리는 도대체 누구에게 위로를 받고, 누구에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단 말입니까. 주님 앞에서만큼은 점잖은 다 큰 자식노릇을 하는 것보다, 그분의 사정일랑 아랑곳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외딴 곳까지 찾아가는, 이런 철없는 우는 자식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을 의지한다는 건 언제나 어디서나 더 크신 분께 우리를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적인 관계는 그야말로 인간적인 관계에서만 고려하면 되는 것이고, 그분 앞에서만큼은 우는 자식이 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아야합니다.

 

외딴 곳으로 주님을 찾아 온 이들을 대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니 우는 자식 떡 하나 더 준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주님은 배에서 내리셔서, 큰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 가운데서 앓는 사람들을 고쳐 주셨다고 마태는 전합니다. 그리고 이 철부지 우는 자식들이 모여든 바로 그곳 빈들에서, 오늘 우리가 아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어느덧 빈들에 저녁이 왔습니다. 제자들은 무리를 마을로 돌려보내 각자 먹을 것을 사먹게 하시는 것이 좋겠다고 주님께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이 물러갈 필요 없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주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모였는지 눈으로 보고 계셨음에도, 그리고 제자들에게 그들을 다 먹일 양식이 없다는 걸 알고 계셨을 텐데도 주님은 제자들에게 무리한요청을 하셨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전부입니다.” 제자들이 말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것들을 이리로 가져 오너라하고 제자들에게 명하셨습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성인 두서넛이 먹기에도 부족한 양입니다. 한두 사람이 먹으면 그나마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양의 음식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걸 가져오라고 명하셨습니다.

 

3.

 

여기서 열왕기상 17장에 나오는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를 잠시 드리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사르밧 과부 이야기와 오병이어 기적 이야기의 구조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아합 왕 때에 이스라엘에 큰 가뭄이 들었습니다. 엘리야는 도망자가 되어 요단 강 동쪽에 있는 그릿 시냇가에 숨어 지내면서, 아침저녁으로 까마귀들이 물어다주는 빵과 고기를 먹으면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시돈에 있는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에서 지내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사르밧 성문 안으로 들어설 때에, 땔감을 줍고 있던 한 과부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그 여인을 불러 청했습니다. “마실 물 한 그릇만 좀 떠다 주십시오.” 여인이 물을 가지러 가려는데, 엘리야가 다시 그 여인을 불러 말했습니다. “먹을 것도 조금 가져다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러자 그 여인이 말했습니다. “제게는 빵이 한 조각도 없습니다. 다만, 뒤주에 밀가루가 한 줌 정도 있고, 병에 기름이 몇 방울 남아 있을 뿐입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지금 땔감을 줍고 있습니다. 이 땔감을 가지고 가서, 저와 제 아들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것을 모두 먹으려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 엘리야는 그 여인에게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방금 말한 대로 하십시오. 그러나 음식을 만들어서, 우선 나에게 먼저 가지고 오십시오. 그 뒤에 그대와, 아들이 먹을 음식을 만들도록 하십시오.” 엘리야의 이런 요청은, 제자 한둘이 먹기에도 부족한 오병이어를 이리로 가져오너라하고 명령하신 주님의 말씀과 서로 겹칩니다. 여인과 자식이 마지막으로 먹고 죽으려고 했던 밀가루와 기름으로 자기에게 음식을 만들어 오라고 말했던 엘리야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말씀을 전합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비를 내려 주실 때까지, 그 뒤주의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병의 기름이 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여인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배불리 먹고 죽으려고 아끼고 아껴두었던 밀과 기름을 가지고, 생전 처음 만난 예언자를 환대한 것입니다. 이에 성경은 여러 날 동안 먹었지만, 뒤주의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의 기름도 마르지 않았다고 전합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내 놓은 보잘 것 없는 음식을 받으시고, 그 음식을 들어 축복기도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이를 무리에게 나누어 주니 그들이 모두 배불리 먹었다고, 마태는 전합니다.

 

4.

 

이 이야기는 바로 앞에 나와 있는 분봉 왕 헤롯의 생일잔치 이야기와 짝을 이루는 이야기입니다. 헤롯은 자신의 생일을 맞아 헤로디아의 딸의 소원을 들어주겠다며 요한을 참수했습니다. 로마 식민통치의 하수인으로서, 갈릴리 사람들의 아픔과 고통을 외면한 채 자기들끼리 즐거운 잔치를 벌였던 헤롯의 생일잔치는, 예언자를 죽여 그 목을 쟁반에 담아 가져오는 끔찍한 장면으로 끝납니다. 그 잔칫상 위 음식은 풍성했을지 모르나, 그리고 거기에 모인 이들은 로마의 지배 아래에서 저마다 한 목소리씩 내는 이른바 정치종교 지도자였을지 모르나, 그들의 잔치는 생명을 죽이는 죽임의 잔치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곧이어 나오는 예수님의 잔치, 빈들에서 빵 다섯 조각과 물고기 두 마리로 벌이는 가난하고 소박한 이들의 잔치는, 더불어 풍성한 생명을 낳는 기쁨의 축제가 되었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재물과 권력을 잃을까 두려워한 나머지 예언자를 참수하는 결정에 이른 헤롯의 잔치가, 자기도 죽이고 다른 이들도 죽음으로 내모는 죽음의 축제였던 반면, 주님이 계신 그 외딴 곳까지 찾아 온 마음이 가난한 이들의 잔치, 철부지 우는 자식들과 더불어 벌인 빈들의 잔치는,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차고도 넘치는 풍성한 생명의 잔치가 된 것입니다. 더불어,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세례자 요한을 그렇게 떠나보낸 예수님의 슬픔과 좌절 역시 빈들의 잔치와 더불어 회복되시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이 그 낙심하신 마음으로 외딴 곳에 혼자 머물러 계셨다면, 그러셨다 하더라도 주님은 당신의 길에 다시금 굳건히 서셨겠지만, 앞서 제가 철부지 우는 아이라고 말씀드린 그 사람들을 사랑으로 맞이하시는 가운데, 주님은 당신이 누구이시고, 당신이 무엇을 위해 부름 받았는지를 되새기시게 되었을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과 더불어 하나님나라를 일구어가는 일이 때로 낙심이 되고 힘든 일임에도 불구하고, 위로와 치유 또한 그들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주님은 알고 계셨고, 그렇기에 마음 가난한 이들의 곁을 떠나지 않으시면서 끝까지 당신의 사명을 모두 이루셨습니다.

 

5.

 

사랑하는 여러분, 열두 광주리 가득히 차고 넘치는 은혜를 사모하십니까? “그것들을 이리로 가져 오너라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이것 없으면 나는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것, 그것이 돈이든 명예든 권력이든 건강이든, 아니면 다른 사람들의 인정이든 그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을 이리로 가져 오너라하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그리고 사르밧 과부가 체험한 기적은 자기의 생명과도 같은 마지막 남은 것을 하나님 앞에 드렸을 때 이루어진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삶은 선택이라고 믿습니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면 좋겠습니다. 여기서도 좋은 사람이고 저기서도 좋은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이르러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인간의 오랜 숙명임을 저는 압니다. 신앙도 끊임없는 선택의 과정입니다. 나를 믿고 살 것이냐,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 것이냐. 이 단순한 물음에 어떻게 응답하느냐가, 우리의 오늘과 내일의 삶을 전혀 다른 길로 인도해 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을 택하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주님께 드리는 것을 주저하지 마십시오. 그럴 때에 우리는 비로소 우리 인생의 뒤주와 기름이 마르지 않는 기적, 열두 광주리 가득히 차고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를 매일매일 체험하며 살게 될 줄 믿습니다. 한 주간도 우리 주님의 크신 은총과 평화가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과 가정 가운데 함께 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