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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창세기 19:26; 데살로니가전서 1:6-7

설교: 림학춘 목사 (미국 라구나힐스UMC 담임목사, 2017.10.22.)


눈 덮힌 들판을 가더라도

모름지기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남긴 내 발자국이

뒷사람에겐 곧 길이다 -옛 시


어제 내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걸으신 길이 오늘의 나의 길 되고 오늘 내가 걷는 길이 나의 자녀와 손주들에게 내일의 길이 됩니다.  성서에는 두 가지 본보기를 대조하여 면밀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야 할 본보기가 있는가 하면 따르지 말아야 할 본보기가 있습니다. 롯의 아내는 뒤돌아보아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성서의 첫 책인 창세기에 기록된 롯의 아내에 관한 구절은  짧다고 가볍게 지나칠 수 없고 지나쳐서는 안 될 경고입니다. 자녀를 키우면서 처음에 많이 쓰는 말을 곰곰이 돌아보며 “안돼” “no”입니다. 그대로 두면 위험하니 짧게 외치듯 말합니다. 박목월 시인의 시를 나를 몇 번이고 새깁니다.

하루에도 나는

몇 번이나 소금 기둥이 된다.

롯의 아내여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고

다짐하면서

믿음이 약한 자여

세상의 유혹에 이끌려서

나는 

뒤를 돌아본다.

뒤를 돌아보았자

유황硫黃과 불의 비가 퍼붓는

타오르는 소돔과 고모라

나의 어리석은 미련이여.

나는 하루에도

하루에도 몇 차례나

뒤를 돌아보고 소금기둥이 된다.

신문지로 만든 관冠에

마음이 유혹되고

잿더미로 화하는

재물에 미련을 가지게 되고

오늘의 불 앞에

마음이 흔들리고

뱀의 혀의

꾀임에 빠져

뒤를 돌아본다.

거듭

믿음이 약한 자여

오로지 주를 향한 생명의 길을

앞만 보고 걸어가자.

걸어갈 수 있는

믿음을 가지자.-박목월.

 

세상의 소금이 되어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소금기둥이 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짠 맛을 되찾게 하겠느냐? 짠 맛을 잃은 소금은 아무데도 쓸 데가 없으므로, 바깥에 내버려서 사람들이 짓밟을 뿐이다.“ 세상은 소금을 구하는데 소금은 없고 소금 기둥만 서있습니다.

오늘 교회는 많으나 그리스도인은 적다.

처음 교회는 작았지만 그리스도인은 많았다.

오늘날 교회는 크지만 예수는 작다.

처음 교회는 작았지만 예수는 컸다.

오늘 교회종탑은 높으나 믿음은 찾기 어렵다.

처음 교회는 낮으나 놀라운 믿음이 있었다.

오늘 교회 가기는 쉬우나 길이 보이지 않는다.

처음 교회는 눈에 띠지 않았지만 길이 보였다.

오늘 교회는 찬송가가 두꺼워졌지만 영혼의 울림을 찾기 어렵다

처음 교회는 한개의 찬송가로도 울림이 컸다.

오늘 교회는 간판을 크게 세우나 주목하지 않는다.

처음 교회는 간판이 없어도 신뢰할 수 있었다.

오늘 교회는 손에 성서가 들려도 읽지 않는다.

처음 교회는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했다.

오늘 교회는 나 사느라 바빠서 주님은 뒷전

처음 교회는 주님 보며 기다리며 살았다

오늘 교회는 나의 기쁨과 충족을 바라지만

처음 교회는 주님 기뻐하실 일만 찾았다.

처음 교회는 부름받은 많은 사람보다 뽑힌 적은 사람 때문에 살아날 수 있었다.

오늘 교회는 의인 열 사람없어 망한 소돔과 고모라를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뽑힌 사람 열 사람이 있으면 살 것이다.

하나님이 뽑은 사람 3백명이면 세상을 이기고 남는다

내가 그 열의 하나이기를

내가 그 삼백의 하나이기를. -림학춘

 

데살로니가전서는 바울의 첫사랑의 편지입니다. 데살로니가는 마케도니아의 주도였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3주간의 회당에서 전도하다 세상을 소란케 하는 놈들이라는 유대인들이 동원한 폭력배들의 소동을 피해 도망치듯 떠난 곳입니다. 빌립보처럼 특별한 기적이 일어난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본받아 마케도니아를 넘어 아카이야에 본보기가 되는 교회로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이 첫 편지에 바울이 소중히 여기는 본보기의 세가지 원칙이 담겨 있습니다.

 

  1. 바울은 여기서 사랑을 아가페로 표현합니다. 주님이 보여주신 그 사랑입니다. 그 진정한 사랑에는 수고가 따릅니다. 수고가 없는 사랑이 아닙니다. 수고는 산고와 같습니다. 주님의 수고를 바울은 기억하고 자신 또한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울의 편지의 곳곳에는 이 수고가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여러분이 아는 대로, 여러분의 수고가 주님 안에서 헛되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5;58

    매 맞음과 옥에 갇힘과 난동과 수고와 잠을 자지 못함과 굶주림을 겪습니다. -고린도후서 6 : 5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입니까? 내가 정신 나간 사람같이 말합니다마는, 나는 더욱 그렇습니다.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고, 감옥살이도 더 많이 하고, 매도 더 많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습니다. - 고린도후서 11:23

    수고와 고역에 시달리고, 여러 번 밤을 지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습니다. - 고린도후서 11:27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의 수고와 고생을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분 가운데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여러분에게 전파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 : 9

    그러므로 내가 참다 못하여, 여러분의 믿음을 알아 보려고, 그를 보냈습니다. 그것은, 유혹하는 자가 여러분을 유혹하여 우리의 수고를 헛되게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 데살로니가전서 3 : 5

    우리는 아무에게서도 양식을 거저 얻어먹은 일이 없고, 도리어 여러분 가운데서 어느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으려고, 수고하고 고생하면서 밤낮으로 일하였습니다. -  데살로니가후서 3:8

    이제부터는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나는 내 몸에 예수의 상처 자국을 지고 다닙니다. - 갈라디아서 6:17

     

  2.  믿음은 행위와 행동으로 표현됩니다. 믿음은 고백이 행동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성서는 복잡한 교리를 우리에게 말하지 않습니다. 단순하다고 단조롭다 하지말라. 기도는 기도함으로 배우고, 말씀은 읽으므로 그 맛을 알아가고, 찬송은 노래하므로 그 깊이를 알 수 있습니다. 선교는 가서 선교를 하므로 주님의 명령을 수행합니다.

    교회에는 말꾼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일꾼이 필요한 것입니다. 행동하는 교회라야 삽니다. 바울은 믿음의 행위, 선한 일을 완성하고 굳세게 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나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그의 부르심에 합당한 사람이 되게 해 주시며 또 그의 능력으로 모든 선한 뜻과 믿음의 행위를 완성해 주시기를 비는 것입니다. - 데살로니가후서 1:11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로 영원한 위로와 선한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여러분의 마음을 격려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세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 데살로니가후서 2:16-17

     

  3. 소망은 겨울을 견디어 내고 봄을 기다리는 인내입니다. 바울의 성서인 히브리성서는 인내와 소망과 기다림과 기대가 한 말에 담겨있습니다. 히브리성서의 이사야는 심판과 회복의 메시지입니다. 본받지 말아야 할 것을 따른 결과는 참담한 심판이었습니다. 이제 다시금 돌아와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그들에게 주시는 회복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4.  

    비록 젊은이들이 피곤하여 지치고, 장정들이 맥없이 비틀거려도,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 이사야서 40:30-31

하나님의 길에 들어선 이들, 이제는 그 가는 길이 곧 본보기가 되어야 길에 들어섰다면 뒤돌아서지 말라. 청년 때에 불렀던 찬송이 있습니다.

I have decided to follow Jesus; No turning back, no turning back.

주님을 따르기로 나는 결심했습니다; 뒤돌아서지 말라

The world behind me, the cross before me; No turning back, no turning back.

세상은 나의 뒤에 그 십자가는 내 앞에; 뒤돌아서지 말라

Though none go with me, still I will follow; No turning back, no turning back.

아무도 나와 함께 가지 않아도 여전히 나는 따를 것입니다. 뒤돌아서지 말라

My cross I’ll carry, till I see Jesus; No turning back, no turning back.

나의 십자가 나는 질 것입니다 여전히 나는 주님을 봅니다. 뒤돌아서지 말라

Will you decide now to follow Jesus? No turning back, no turning back.

지금 주님을 따르기로 작정할 것입니까? 뒤돌아서지 말라

 

신반포감리교회의 일세대의 길이 제게 길이 된 것을 저는 감사합니다. 저는 본이 된 길을 보았기에 그 길을 따라왔습니다. 제 아들이 제 길을 보고 따를 것이고, 누군가 제 길을 보고 그 길을 따를 것이라 생각하니 남은 길이 바울이 전한 그 길과 같기를 기도하며 살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을 마치면서 신반포교회를 위한 기도시를 드립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닮아가며 아침 아침마다 신실한 사랑으로 깨우게 하소서.

반석이신 하나님께 흔들리지 않는 고백을 두어 반석같은 믿음으로 견고히 서게 하소서.

포도나무이신 주님안에 소망을 두어 풍성한 열매가 해마다 맺게 하소서.

감사의 샘물이 흐르고 흘러 이제는 은혜와 기쁨의 강물이 되게 하시오니,

리더로 이 땅에 심으신 묘목들이 하늘 큰나무들로서 주님의 임재를 공고히 드러내며,

교회 가운데 본이 되는 교회로 오직 주님의 이름을 높이게 하소서.

회복으로 가야할 이 민족을 위해 많은 눈물과 기도를 드리며 가겠나이다.

2017 10 22일 주일 설교, 림학춘 목사(라구나힐스연합감리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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