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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나의 목자

본문: 에스겔 34:11-16; 에베소서 1:15-23
설교: 홍정호 목사 (2017.11.26. 성령강림 후 마지막 주/왕국주일)

[참으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나의 양 떼를 찾아서 돌보아 주겠다. 양 떼가 흩어졌을 때에 목자가 자기 양들을 찾는 것처럼, 나도 내 양떼를 찾겠다. 캄캄하게 구름 낀 날에, 흩어진 그 모든 곳에서, 내 양 떼를 구하여 내겠다. 내가 여러 민족 속에서 내 양 떼를 데리고 나오고, 그 여러 나라에서 그들을 모아다가, 그들의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이스라엘의 산과 여러 시냇가와 그 땅의 모든 거주지에서 그들을 먹이겠다. 기름진 초원에서 내가 그들을 먹이고, 이스라엘의 높은 산 위에 그들의 목장을 만들어 주겠다. 그들이 거기 좋은 목장에서 누우며, 이스라엘의 산 위에서 좋은 풀을 뜯어 먹을 것이다. 내가 직접 내 양 떼를 먹이고, 내가 직접 내 양 떼를 눕게 하겠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헤매는 것은 찾아오고, 길 잃은 것은 도로 데려오며, 다리가 부러지고 상한 것은 싸매어 주며, 약한 것은 튼튼하게 만들겠다. 그러나 살진 것들과 힘센 것들은, 내가 멸하겠다. 내가 이렇게 그것들을 공평하게 먹이겠다.]
 

1.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2017년 교회력의 마지막 주일, 성령강림 후 마지막 주 왕국주일입니다. 교회의 시간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면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끝은 그분의 왕 되심을 선포하는 왕국주일로 끝납니다. 구유에 오신 아기 예수께서 왕이 되셨다는 고백은, “개천에서 용 나듯” 출세했다는 의미는 물론 아닙니다. 그 반대입니다. 왕이신 그분의 통치는, 무력과 권세로 세상을 통치하는 이들의 강함과 높음을 부끄럽게 만드는 평화와 섬김의 통치입니다. 구유에 오신 아기 예수의 약함이,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분의 무력(無力)이, 세상의 무력(武力)을 이기고 승리한다는 신앙의 선포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인생의 길로 삼은 이들입니다. 그분을 자기 인생의 길과 진리와 생명으로 삼아, 그분이 가르쳐주시고 보여주신 대로 살고자 애쓰는 이들이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분에 관한 교리를 받아들인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다른 것들을 믿지 않고 예수를 믿는다.”는 뜻입니다. 구유에 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분의 약함이 세상의 강함과 높음을 이긴다는 사실을 믿고, 그분의 길을 자기의 길로 삼아 사는 이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실상은 돈을 더 믿고, 인맥을 더 믿고, 이데올로기를 더 믿고 살아간다면, 그들을 종교인이라고 부를 수는 있을지언정,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겁니다.
 

웨슬리는 일찍이 이런 이들을 두고, ‘명목상 그리스도인’(almost christian)이라고 칭한 바 있습니다. 말이 재밌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긴 부르는데, ‘거의 그리스도인’이라는 거지요. 이 ‘명목상 그리스도인’은 종교적인 언어와 행위에 익숙해서 남들이 볼 때는 ‘잘 믿는’ 신자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무관한 일에 열심을 내는 이들입니다. 방향을 잃어버린 열심과 성실로 자기 위안을 삼는 종교인들, 그들이 바로 ‘명목상 그리스도인’입니다. 반면, 웨슬리는 구원받은 삶으로부터 성화(聖化)를 향해 나가가는 이들을 ‘온전한 그리스도인’(altogether christian)이라고 불렀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안도감, 때로 자기 기만적이 되기도 하는 이 안도감에 머물지 않고, 자아의 한계를 깨치며 그리스도인의 삶의 완성을 향해 정진하는 이들이 바로 ‘온전한 그리스도인’입니다.
 

회개란 무엇인가요? 이렇듯 ‘명목상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돌아서는 것을 뜻입니다. 회개란 예수 믿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이 하는 건 ‘개종’(改宗)이지 회개가 아닙니다. 회개란, ‘명목상 그리스도인’에서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 그렇게 되는 은총을 입는 사건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회개한 사람이라야 주님의 왕 되심을 인정하고, 그분을 우리 삶의 왕으로 모셔 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 왕의 권세 아니라, 구유에 나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분의 약함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하는 강함이라는 역설을 삶의 진리로 굳게 붙잡고 사는 이들, 그들이 복음으로 돌아선 이들, ‘온전한 그리스도인’입니다.
 

2. 
 

예언자 에스겔은 유다가 멸망에 이르기 직전인 혼란기에 활동했습니다. 기원전 6세기에 이르러 유대인들은 세 차례(597, 587, 582 BCE)에 걸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바벨론으로 끌려간 유대인들은, 그곳에 간 지 12년째가 되는 해에 예루살렘 성읍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겔 33:21) 이국땅에 와서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던 이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고향을 잃어버렸습니다. 돌아갈 곳, 만날 사람도, 자신들을 기억하는 이들도 한꺼번에 사라진 파국적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에스겔은 “자기 자신들만 돌보는 이스라엘의 목자들”(겔 34:2)이 백성을 멸망의 길로 인도했다며 그들의 책임을 꾸짖었습니다. 책망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자기 자신만을 돌보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에게 화가 있을 지어다! 목자들이란 양 떼를 먹이는 사람들이 아니냐? 그런데 너희는 살진 양을 잡아 기름진 것을 먹고, 양털로 옷을 해 입기는 하면서도, 양 떼를 먹이지는 않았다. 너희는 약한 양들을 튼튼하게 키워주지 않았으며, 병든 것을 고쳐 주지 않았으며, 다리가 부러지고 상한 것을 싸매어 주지 않았으며, 흩어진 것을 모으지 않았으며, 잃어버린 것을 찾지 않았다. 오히려 너희는 양 떼를 강압과 폭력으로 다스렸다.”(겔 34:2b-4)
 

이 메시지는 지도자들을 향한 것입니다. 양떼를 돌보아야 할 책임을 안은 이들이, 돌보라고 위임받은 권력을 활용해 자기 이익만을 취하는 현실을 매섭게 비판한 것입니다. 목자라고 하니까, 사제와 목회자들을 향한 비판인 것 같아 누구보다 제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만, 목자란 실상 종교 지도자들만을 지칭하는 게 아니라, 통치를 위임받은 모든 이들을 뜻합니다.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은 정치인들, 교인의 주권을 위임받은 목회자들, 그리고 크고 작은 공동체의 주권을 위임받아 봉사하는 이들 모두, ‘목자’로 칭함 받을 수 있는 이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목자’의 역할을 해야 할 이들이, 잠시 위임받았을 뿐인 지위와 권력을 남용해서 다른 이들 위에 군림하고, 자기 배를 불릴 궁리만 하고, 그 자식에게까지 특권을 물려주려고 하는 데에서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양떼를 인도해야 할 목자들의 나태함과 부패의 피해는 양떼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한국 개신교가 사람들의 끊임없는 비판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참된 목자라고 할 만한 인물들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까? 눈을 크게 뜨고 보면, 훌륭한 목자라고 할 만한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저도 곳곳에 계신 그런 분들을 이정표 삼아 갈지자걸음을 하면서 여기까지 겨우 왔습니다. 저야, 목사이고, 목사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하니까 어떻게든 이정표가 될 만한 분들을 찾고 찾아 왔다지만, 세상 사람들이야 어디 그렇겠습니까? 보이는 대로 비판하면 그만입니다. 그렇지 않은 좋은 교회와 목회자들이 많다고 말해 봐야, 변명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들릴 뿐입니다. 그들을 나무랄 수 없습니다. 공직에 있는 누구 자녀가 어디 작은 자리에라도 채용됐다고 하면 특혜시비에 휘말리곤 하는 것이 요즘의 정서인데, 그 큰 교회를 자식에게 물려주면서 ‘이 큰 십자가’ 운운하는 교회의 목자를, 세상 누가 참된 목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목자가 없기 때문에 양 떼가 흩어져서 들짐승의 먹이가 되었다”(겔 34:5)는 에스겔의 비판은 주전 6세기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현실을 두고 한 말입니다.
 

3.
 

그러면 우리는 양떼를 인도할 목자가 없는 현실을 개탄하기만 하고 있어야 할까요? 물론 그렇지 않습니다. 에스겔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 목자들을 대적하여 그들에게 맡겼던 내 양 떼를 되찾아 오고, 다시는 그들이 내 양을 치지 못하게 하겠다. 그러면 그 목자들이 다시는 양 떼를 잡아서 자기들의 배나 채우는 일은 못할 것이다. 내가 이렇게 그들의 입에서 내 양 떼를 구출해 내면, 내 양 떼가 다시는 그들에게 잡아 먹히지 않을 것이다.”(겔 34:10) 이와 더불어 이제는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의 목자가 되어 주시겠다는 약속도 하셨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께서 하시는 일은, “헤매는 것은 찾아오고, 길 잃은 것은 도로 데려오며, 다리가 부러지고 상한 것은 싸매어 주며, 약한 것은 튼튼하게”(겔 34:16) 만드는 일입니다. 반면에, “살진 것들과 힘센 것들은, 내가 멸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그동안 양 떼에게 돌아가야 할 꼴을 자기 배를 불리기 위해 남용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목자가 되시겠다는 약속은, 우리가 현실의 어둠과 난관 속에서도 실망하지 않고 믿음의 길을 완주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는 주시겠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우리시대를 두고 어른이 없는 시대라고 탓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잘못을 꾸짖어 줄 스승이 없는 시대, 시린 밤하늘 높이 빛나는 별과 같은 존재가 사라진 시대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리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목자가 되시겠다는 약속은, 이러한 시대에도 낙심하지 않고 믿음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주님께서 친히 우리를 인도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렇기에 이제 우리는, 우리를 희망으로 인도해 줄 그 누군가에게 지나친 기대를 걸지 말아야 합니다. 그 대신 우리 스스로 누군가의 희망이 되길 힘써야 합니다.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탓하는 대신, 우리가 길이 되고, 우리가 누군가의 이정표가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선한 목자이신 그분의 인도함을 받을 때 그럴 수 있습니다. 주님의 영에 사로잡혀 그분이 인도하시는 대로 자아를 내어드리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될 때, 우리는 인간적인 한계와 약함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위대한 일을 함께 하는 참된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4.
 

2017년 한 해의 신앙 순례를 마쳤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에서 시작해서 성탄절과 주현절, 사순절과 부활절, 그리고 성령강림절을 거쳐 오늘 왕국절에 이르는 긴 여정이었습니다. 올 한 해 우리를 믿음의 순례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매해 교회력의 같은 절기가 반복됩니다만, 같은 절기를 맞이하는 우리의 삶은 날로 변화하고 성숙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제 오늘을 끝으로 한 해가 가고, 새로운 시간이 다가옵니다. 다가오는 2018년의 절기들은, 선한 목자이신 분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을 향해서는 더 깊은 신앙으로, 그리고 이웃을 향해서는 더 넓은 품으로 맞이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 주간도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가정 가운데 함께 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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