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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가 이르기 전에 (2017.12.3.)

2017.12.03 15:41

홍목사 조회 수:20

때가 이르기 전에

 

본문: 이사야 64:1-9; 마태복음 24:36-44

설교: 홍정호 목사 (2017.12.3. 대림절 제1)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각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이 인자가 올 때에도 그러할 것이다. 홍수 이전 시대에, 노아의 방주가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며 지냈다. 홍수가 나서 그들을 모두 휩쓸어 가기까지, 그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였다. 인자가 올 때에도 그러할 것이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을 터이나,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두 여자가 맷돌을 갈고 있을 터이나,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라. 너희는 너희 주님께서 어느 날에 오실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명심하여라. 집주인이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알고 있으면, 그는 깨어 있어서, 도둑이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는 시각에 인자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2018년 교회력의 새로운 시작인 대림절 첫 주일입니다. 해가 많이 짧아졌습니다. 가로수의 나뭇잎도 대부분 떨어져 가지만 앙상하게 남았습니다. 이렇게 어둠이 깊어가고, 한여름 무성했던 나뭇잎이 떨어진 이때에 교회의 새날이 시작된다는 사실에 매년 작은 감동을 느낍니다. 오늘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 초 하나를 밝혔습니다. 우리가 밝힌 저 촛불 하나가 저와 여러분의 일상을 비추는 은총의 빛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오늘 본문은 주님께서 어느 날에 오실지 모르니 깨어 있고, 준비하고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뒤에 나오는 신실한 종과 신실하지 못한 종의 이야기, 열 처녀의 비유, 그리고 달란트의 비유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본문입니다. 얼마 전 달란트의 비유 설교를 하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달란트를 맡은 종의 본분은 주인이 떠나고 없는 상황에서도 그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고 맡은바 소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달란트를 맡은 종은 그의 재산증식 능력이나 성공 여부로 주인에게 인정받지 않습니다. 주인이 돌아와서 보는 것은, 그가 여러 역경 가운데에서도 얼마나 착하고 신실하게자기에게 주어진 직분을 감당했는지, 오직 그것뿐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주님은 그 날과 그 시각은 아무도 모른다”(24:36)고 말씀하십니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 있답니다. 바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입니다. 끝이 보이면 끝날 때까지 힘을 분배하고 조절해서 그 일을 어떻게든 해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끝이 안 보이면 아무리 쉬운 일이라도 그 일은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이 됩니다. 입대해서 신병 훈련을 마치고 자대배치를 받았을 때 일입니다. 제대를 며칠 안 남긴 병장이 이등병인 제게 와서 묻는 말이, ‘너 언제 제대 하냐?’ 그러는 겁니다. 대답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제 말은 듣지도 않고 대뜸 눈을 감아보랍니다. 눈을 감았더니, “앞이 캄캄하지? 그게 니 군 생활이야이러면서 약을 올리고 가버렸습니다. 그래도 군대는 제대일이 정해져 있으니 힘들어도 버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 끝이 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일들 앞에서 사람들은, 부딪혀 나가기도 전에 지레 겁을 먹거나 문제의 크기에 짓눌려 주저앉곤 합니다.

 

2.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에 대해 성서가 가르쳐 주는 지혜가 있습니다. 바로 끝을 생각하지 않는 겁니다. 허무하신가요? 끝을 생각하지 않고, 오늘, 지금 맡겨진 일에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성서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종 된 사람의 태도입니다. 일견 쉬운 듯 보이지만, 앞날을 생각하지 않고, 일의 결과에 대한 염려에 사로잡히지 않고 지금 맡겨진 일에만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어떤 믿음이겠습니까? 일을 맡겨주신 분에 대한 믿음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지만, 우리에게 일을 맡겨 주신 분은 하나님이라고 믿고 그 일을 지속하지 않으면, 일을 하는 중간에 불안해지고, 결실에 이르기도 전에 탈진해 버리기 일쑤인 것입니다.

 

우리시대를 일컬어 실천적 무신론자들의 시대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기독교인구의 양적 감소가 문제라고 말합니다.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실천적 무신론자들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믿고있지만, 삶의 태도와 지향에 있어서는 무신론자에 다름없는 사람들이 신자들 가운데 늘어나고 있다는 것, 어찌 보면 이것이 기독교인의 감소보다 더 큰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실천적 무신론자들은, 성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의 경험과 지혜를 더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믿고있지만, 실상은 자기가 가진 돈과 권력, 그리고 사회적 인맥을 더 신뢰하는 이들이 실천적 무신론자들인 것입니다.

 

성서는, 여러분들이 모두 아시다시피, 믿음의 승리를 증언하는 책입니다. 무엇에 대한 믿음의 승리입니까? 세상의 지혜에 대한 믿음의 승리입니다. 우리 역사를 돌아보십시오. 일제 강점기 지식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친일로 돌아선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 그들이 애국자가 아니기 때문에 친일로 돌아섰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친일하는 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애국의 길이었기에, 그들이 친일을 택한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가 친일파라고 말하는 지식인들의 다수가, 자기의 이해관계만을 쫓아 친일을 했다기보다는,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보아하니, 해방이 될 리 만무하기 때문에 친일을 현실로 받아들인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와 민족의 앞날을 염려하던 애국적 지식인들이 친일로 돌아선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성서 인물 가운데에도 이런 인물이 있습니다. 가룟 유다입니다. 제가 종종 말씀드립니다만, 유다만이 예수님의 일행 가운데 현실을 제대로파악한 인물입니다. 안 되는 일에 매진하고 있는 예수 일행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본 나머지,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이 일을 멈추고야 말겠다고 결단하고 이를 실행에 옮긴 인물이 바로 유다입니다. 유다야말로 현실주의자요, 유다야말로 방향을 잃어버린 지식인의 전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서는 유다가 아닌 베드로의 승리를 증언합니다. 유다의 뛰어난 현실파악력이 아니라, 무지에 가까운 베드로의 믿음, 베드로의 헌신, 베드로의 순교 위에 세워진 교회의 승리를 선언합니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구원자이시라는 부활신앙은, 이렇듯 세상 지혜에 대한 믿음의 승리를 선포한 것입니다. 안 되는 일인 줄 알면서도, 그 일이 옳기 때문에 그 일에 자기를 내던진 이들의 믿음이 결국에는 승리한다는 것, 성서는 우리에게 이 메시지를 일관되게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다의 명민함이 일견 지혜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베드로의 어리석음이 유다의 명민함보다 더 지혜롭다는 뜻입니다.

 

생태사학자 강판권 선생의 글을 읽다가 등나무에 관한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했습니다. 등나무나 칡은 어디에 기대지 않고서는 뻗어갈 수 없는 나무인데, 등과 칡의 감아 올라가는 방향이 서로 반대랍니다. 그래서 등과 칡이 서로 얽혀 감아 올라가는 모습에서 비롯된 낱말이 바로 갈등(葛藤)이라는 겁니다. 등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칡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는 데서 생긴 낱말이랍니다. 그러면서 강판권 선생은 재미있는 말을 합니다. “등신(藤身)처럼 살아야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다.” 혼자 뻗어가지 못하는 등나무이지만, 그래서 무력한 듯 보이는 존재이지만, 등나무의 몸체처럼 살아야 누군가 와서 쉴 수 있는 장소가 되고, 꽃을 피워 주변을 향기롭게 하는 존재가 된다는 성찰입니다. 가룟 유다는 등신으로 살지 못했습니다. 그의 명민함이, 누군가가 그에게 기댈 언덕이 되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제자들은 등나무의 몸체가 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가난한 지역 출신으로 남들보다 능력도 없고, 혼자 살아가기에는 벅찬 존재들이었지만, 그들은 한마음이 되어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새 역사의 주체로 우뚝 섰습니다.

 

3.

 

그 날과 그 시각은 아무도 모른다는 주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종말에 대한 위협을 주는 말씀이 아닙니다. 전쟁이 곧 닥칠지 모르니 무력(武力)으로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수고를 지속하는 이들을 친히 위로하는 말씀으로 읽어야 합니다. 주님 뜻대로 살아간다는 것도, 군 복무처럼, 기간을 정해 놓으면 어려워도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겁니다. 끝이 보이니까요. 그러나 주님 뜻대로 산다는 것은, 일생에 걸친 일이고, 언제 끝날지, 그날이 오늘일지 내일일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 보니, 우리는 실천적 무신론자의 유혹에 종종 빠지곤 합니다. 주님이 오늘도 안 오셨으니 내일도 안 오실 것 같고, 영영 안 오실 것 같아, 이제는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내 뜻대로만 살아가는 데 길들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듯 실천적 무신론의 유혹에 빠지지 말고, 묵묵히 맡겨주신 일을 수행하라는 격려의 말씀입니다. 끝을 생각하지 말고, 결과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맡겨주신 일을 다 하다보면 주님의 때가 이른다는 믿음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날이 언제일지는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답니다. 그러니 근심에 사로잡히는 대신 오늘 힘써야 할 일에 힘쓰면 그뿐이 아니겠습니까.

 

맡겨주신 일을 잘 감당하다 보면, 때가 이르러 열매가 무르익고 보람의 결실을 나누는 때도 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급함 때문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때가 이르기 전에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답답하죠. 그러나 때가 언제인지는, 하나님이 알려주시고, 모든 상황을 그렇게 되게끔 만들어 주십니다. 노력한다고 되지도 않고, 안 한다고 안 되지도 않습니다. 하고 싶다고 할 수도 없고, 하기 싫다고 안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때를 알고, 때에 알맞게 산다는 것은, 그래서 하느님의 손길에 자기를 내어주는 삶을 산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인도하시는 손길이 어디에 미치는지를 늘 민감하게 살피고, 그분이 이끌어 가실 때에 그분의 손길에 우리를 맡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어느 날 갑자기 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일상을 통해 그분의 손에 이끌리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때를 분별하는 연습, 그리고 때를 분별했을 때에 주님의 손에 이끌리어 가는 연습이 신앙의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때를 분별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때를 알아도 몸을 움직일 수 없기에 그렇습니다.

 

4.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희망의 절기, 대림절 첫 주일입니다. 작은 촛불 하나를 밝히며 주님을 기다립니다. 저 작은 촛불 하나가 주위를 밝히는 것처럼, 빛 되신 주님을 모신 우리 모두가 구원의 등불로 서기를 바랍니다. 막막하고 길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사명을 더욱 굳게 붙드십시오. 그래서 주님과 만나는 날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와서, 함께 기쁨을 누려라하는 위로와 기쁨을 얻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한 주간도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과 가정 가운데 늘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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