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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그네 (2018.1.21.)

2018.01.21 20:36

이원로 조회 수:28

우리는 나그네

                

본문: 벧전  2:11-12; 2:13-15 

신반포교회 이계준 목사 (2018.1.21.)

 

우리는 인생을 나그네라고 합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 잠시 왔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나그네가 아닌 것처럼 살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또한 인간의 성향임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백년도 못사는 인간이 천년만년 살 것처럼 욕심을 부리고 경거망동하는 것입니다

 

나그네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유한한 시간 속에서 상대적인 것만 추구하다가 떠나는 가련한 인생이고 다른 하나는 유한 속에 살면서도 영원을 살아내는 고결한 인생입니다. 역사상 등장했던 영웅호걸들은 대부분 전자에 속하는 반면에 아브라함을 비롯한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예수와 바울 같은 분들은 후자에 속한다고 하겠습니다

 

이 시간 새해를 맞이하여 이 위대한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나그네답게 살 것인지 베드로 전서의 본문을 함께 생각하고자 합니다.

 

1.


사도 베드로는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나그네거류민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나그네란 주변 문화에 정착하지 못하는 사람이고 거류민이란 궁극적으로 하느님과 함께 다른 나라에 속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방 사람이란 비유대인이 아니라 비 그리스도인을 칭하는 은유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오늘의 상황에 비추어본다면 이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 살지만 종국적으로 하느님 나라에 속한 사람이므로 오늘의 세속문화에 물들거나 뿌리를 내리지 아니하고 나그네처럼 이질적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그네의 특징은 육신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현실에 집착이나 정착하지 않고 날마다 있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그네는 내일의 성공적 여정을 위해 항상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새로운 생각, 새로운 계획 그리고 새로운 결단과 행동을 위해 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의 삶 전체가 창조적이고 생동적이며 보람찬 것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KAIST의 뇌과학 교수 김대식 박사는 지난 주 일간지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간이 일상을 반복하기 때문에 놀랍고 경이로움을 느끼지 못하는 한 뇌는 겨울잠을 자듯 활동을 멈춘다. 따라서 일상에서 탈출하여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과 대화하고 혼자만의 생각에 빠질 때 창조적 기회가 주어진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미래보다 과거에 집착하는 겨울잠에 빠졌는지 모르겠다.’


일본의 오구라 기조 교수는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란 책에서 김 대식 교수와 맥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은 이조시대 이후 이론을 중시하는 주자학의 영향을 받았고 이론이 우세한 집단이 권력과 재력을 독점하는 동시에 도덕적으로도 깨끗하다고 역설한다고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 현실을 보면 비합리적이고 자성할 줄 모르며 과거에 집착하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베드로는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아와 함께 대화하시는 신비한 장면을 보고 흥분하여 말하기를 주님, 여기가 좋사오니 원하시면 장막 셋을 짓고 세분을 모시겠습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이끌고 산 아래로 내려가셨습니다.(17:1-8) 나그네의 표본이신 예수님은 제자들의 삶이 아름답고 화려한 곳에 안착하고 안락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위해 중단 없이 남다른 여정을 계속해야 함을 몸소 보여주신 것입니다

 

지난주에 선배인 이희정 교수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분은 이화여대 교수로 있다가 도미하여 정신치료사로 활동하였는데 암으로 장기간 투명하던 남편이 작년에 작고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89세인 그분이 이달 말 아프리카 우간다 정신병요양소에 자원봉사를 위해 떠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미국에는 정신치료사 자격증과 학위를 가진 젊은이들과 은퇴한 이들이 많으나 자원봉사자들이 없어서 자신의 마지막 열정을 불태우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속에 정착을 거부하고 하느님 나라를 지향하는 나그네의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2.


사도 베드로는 영혼과 대항하여 싸우는 육적인 욕망을 멀리하시오.”라고 권면합니다. 우리가 성경의 내용을 자세히 보면 그 많은 이야기와 사건이 결국 인간의 영혼과 욕망의 갈등 및 대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공생활을 하시기 전에 부딪친 유혹을 보더라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나그네가 영적으로 단단히 무장했다 하여도 끊임없이 밀려오는 세속적 유혹을 물리치기가 매우 어렸습니다. 그러기에 나그네의 여정을 결단한 그리스도인은 오늘의 세속적 풍조를 따르지 않기 위해 날마다 자신과의 힘겨운 투쟁을 해야 합니다. 이것을 대항문화 counter-culture라고 하는데 이것은 1960년대 미국에서 생긴 말로써 주류문화에 저항한다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주류문화는 곧 물질주의와 사회주의 이념과 권력입니다. 나그네가 이것에 대항-문화적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이 나그네의 복음적 여정을 가로막고 하느님 나라를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항 문화적 자세를 취한다는 것은 그리 간단하거나 수월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막대한 물질적 손실과 정치적 위협의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20세기의 미국 신학자 라인홀드 니버는 공산주의자는 이론적 물질주의자이고 자본주의자는 실질적 물질주의자이다.”고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지금 세계는 미국과 중국이 보여주듯이 공산주의자도 자본주의자도 모두 물질주의자로 한통속이 되었습니다. 특히 우리사회에서는 우파나 좌파나 기독교인이나 불교도나 모두 물질주의자가 되어버렸고 특히 강남좌파라는 말은 사회주의자가 실질적 자본주의자가 되었다는 냉소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나그네가 도전하고 떨쳐버려야 할 또 하나의 적은 자유민주주의를 전복시키려는 사회주의 이념과 권력입니다. 그것은 유물주의를 바탕으로 만인평등주의를 실현하고자 하였으나 이미 동구권과 중국 및 북한에서 70년간 억압과 착취 등 비인간적 행각 끝에 역사의 폐기물로 처분되었습니다. 특히 그것은 일종의 반 기독교적 유사종교로써 교회와 기독교인을 적대시하고 박멸하려고 기를 토하였으며 사회주의의 마지막 악령인 중국과 북한에서는 지금도 그런 행태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 나라를 위해 로마의 정치형인 십자가에 죽은 예수를 따르는 나그네는 정치인은 아니지만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기 위해 정치적 결단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사회주의는 그 뿌리가 깊습니다. 19286.10.만세사건, 남로당, 빨지산 등의 후예와 6.25전쟁의 상처, 민주화를 가장한 사회주의 조직, 3대에 걸친 좌파정권의 잔영(殘影) 및 북한의 야욕 등은 이 나라가 사회주의 독재국가가 되는데 충분조건이 되고도 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민주주의가 하느님 나라에 가깝기에 나그네는 저항문화에 앞장서야 합니다.


저의 80평생은 물질주의와 독재주의와의 갈등과 대결이었던 것 같습니다. 일제시대에 태어나서 공산독재 치하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가난과 독재를 극복하며 살았고 월남하여 가난한 학창생활과 유학에서 돌아와서는 군사독재와 대결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은퇴하고 평안한 말년을 보내는가 싶더니 사회주의 권력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나그네의 운명은 대항-문화적인 것 같습니다.


저도 물질주의 유혹을 많이 받았으나 물질주의자가 되지 않은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목사가 그런 생각을 해봐야 위선자가 되는 것 밖에 무슨 대수가 있겠습니까! 1.4후퇴 당시 고향을 떠날 때 입은 옷과 담요 한 장, 쌀 한 되가 재산 전부였습니다. 이 밑천으로 국내외를 돌아다니고 해직도 되었으나 밥을 굶거나 노숙한 적은 없었습니다. 저는 지금 모든 것을 잃는다고 해도 나그네의 여정에는 지장이 없다고 믿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실 것이다.”(7:33) 실로 놀라운 진리의 말씀임을 실감하며 한평생 살아왔습니다.


3.


사도 베드로는 나그네가 욕망을 버리고 살 때 이방인들이 그 아름다운 행실을 보고 하느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하였습니다. 나그네의 역할은 비록 외롭고 불편할지라도 날마다 머무는 곳이 깨끗하고 새롭게 만나는 사람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말과 행동으로 전하는 나그네의 모습이고 이것이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여러분 안에 계시면서 그분을 기쁘시게 하기 원하십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무슨 일에서나 불평과 시비를 떠나 흠이 없고 순결하므로 왜곡된 세태에서 하느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십시오. 그러면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것입니다.’(2:13-15)


제가 새해에 특별히 하고 싶은 일 가운데 하나는 주변에 은퇴한 친구 교수들과 목회자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들은 대개 친구들과 교제나 사회활동을 중단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들을 만나 음식과 대화를 나누며 다소나마 삶의 기쁨과 보람을 느끼도록 도우려는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활동은 그들의 기쁨인 동시에 제 기쁨이고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일환으로 지난 주 친구 목사 내외와 함께 점심을 나누고 커피숍에서 장장 4시간 대화의 꽃을 피우는 가운데 그 친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기가 예배당 부지를 구입할 때 평당 600만원하는 땅을 700만원에 샀다고 합니다. 교회를 지우면서 비 기독교인에게 나쁜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100만원을 더 받은 땅 주인이 교회와 목회자를 얼마나 칭찬했겠습니까? 아름다운 족적을 남기는 것이 나그네의 일입니다.


지난해 12월 말일 심치선 선생께서 89세로 소천하셨는데 고인의 유언을 따라 제가 고별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분은 연세대 교수, 이화여고 및 계원예고 교장을 지내셨고 박대선 감독님과 막역한 사이였으며 저와도 50년간 교분을 나누었습니다. 저는 이 만남을 통해 고인이 하느님 사랑의 실천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본직 외에도 여러 사회적 직책에서 활동하므로 명성과 재물을 축적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심 선생님은 자기의 재능과 소유를 모두 가족, 친지, 제자들을 위해 바쳐서 남긴 재산도 없고 마지막에는 자기의 육신마저 의학교육을 위해 바치므로 만인의 존경받는 세상의 별이 되셨습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하느님은 교역자를 선택하시어 여러분을 섬기게 하시고 여러분을 선택하셔서 세상을 섬기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나그네인 여러분은 일상에 머물지 말고 항상 영원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십시오. 나그네를 유혹하고 위협하는 물질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항하며 부르심에 겸손하게 응답하십시오. 그리고 하느님 사랑의 실천으로 세상의 아름다운 별이 되어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이것이 나그네의 궁극적 목표이고 존재의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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