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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역사(120)

2010.06.17 09:56

김유동 조회 수:1973

 

그 뒤의 일들




<유대인의 역사> 연재를 오랜만에 끝내자, 손 목사님은 그와 관련된 강의를 한 번 하라고 하셨지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문장은 어찌어찌 남의 흉내를 내며 쓰고 있지만, 구변이 좋지 않은지라 이를 고사한 것을 매우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 대신…




<유대인의 역사>의 저자는 1991년 소련이 무너져 냉전이 종식되기 전까지의 이야기를 다루었으므로, 그 뒤의 약 20 년 동안 유대인의 나라 이스라엘과 유대인들이 어찌되었는지에 대해서 여기저기서 주워 모은 이야기들을 간추려 본다.




   우선, 94년에는 유대교와 로마 가톨릭 사이의 역사적 화해가 있었다. 이스라엘-로마 교황청 사이에 국교 수립을 하게 되었고, 이스라엘과 요르단이 화평 조약에 조인을 하게 된다. 이 일로 당시의 이스라엘 수상 이츠하크 라빈과 외상 시몬 페레스, PLO 의장 야세르 아라파트가 중동에 평화 프로세스를 구축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는다. 그러나 라빈 수상은 이듬해 유대교 원리주의자에게 텔아비브에서 암살을 당하고 만다. 라빈은 92년 총선에서 ‘이스라엘의 (중동전에서의) 점령지와 평화를 맞교환하자’고 제의하면서 노동당에 승리를 안겨 준 인물이었지만, 점령지 반환이라니 하고 화가 난 원리주의자들에게는 배반자로 비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96년에는 이스라엘에서 사상 처음으로 수상을 선거를 통해 뽑게 되었다. 당시 팔레스타인의 과격파들이 자폭 테러를 잇달아 저지르는 바람에 치안 유지가 가장 급하고도 큰 이슈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비누야민 네타냐후가 노동당의 페레스에게 근소한 차로 승리를 해서 강경한 리쿠드 정권이 수립되어 화평 프로세스가 정체되고 만다.


<유대인의 역사>에는 유럽의 유대인 계파를 주로 아슈케나지 계통과 스파라디 계통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지만, 이 말고도 미즈라히(Mizrachi, Mizrahi)라는 갈래가 하나 더 있었다. 미즈라히는 히브리어로 ‘동쪽’을 뜻하지만, 그들의 분포는 매우 넓게 흩어져 있어서, 동쪽이기는커녕 서쪽으로는 모로코, 남으로는 예멘, 동으로는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중동, 그리고 북아프리카로 확산되어 있던 유대인들이다. 11세기 이전에는 세계 유대인의 반을 차지했으나, 근세 이후로는 쇠퇴해서 수적, 문화적으로 열세가 되었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별로 다루지를 않았던 모양이다.


이스라엘 건국 후 이들은 이슬람 나라에서만도 87만 명이 쫓겨나 약 60만 명이 이스라엘로 향했다. 처음에는 소수파였던 미즈라히지만, 원낙 출산율이 높았던지 오늘날에는 미즈라히가 이스라엘 인구의 약 6 할강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들은 민주주의를 지향하기보다는 그 동안에 당해 온 아랍의 뼈아픈 핍박 때문에 반아랍 정서가 매우 강한데, 이들이 강경파인 리쿠드당의 기반이 되어 있다. 아슈케나지 계통을 기반으로 하는 노동당이 오래도록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지만, 1977년 노동당(일반적으로 비엘리트인 미즈라히를 열등시했다)에 염증을 느낀 미즈라히들이 만년 우파 야당이던 리쿠드를 밀어 주게 되었던 것이다.


99년에는 다시 노동당의 예후드 바라크가 수상이 되어 화평 프로세스를 다시 기대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지금도 노동당과 리쿠드당이 서로 시소 게임을 하고 있다.


2000년에는 요한 바오로 2세가 요르단, 이스라엘, 팔레스티나의 기독교 성지를 방문했고, 예루살렘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에서 기독교도의 반유대주의를 비난하는 일도 있었다. 미 대통령 클린턴의 중재로, 대통령 산장 캠프 데이비드에서 이스라엘 수상 바라크와 PLO 의장 아라파트의 3자 회담을 열어 정체하고 있는 중동 화평 문제 해결을 꾀했지만, 예루살렘의 귀속 문제 때문에 결렬되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 이스라엘의 여러 도시에서는 아랍 사람들의 자폭 테러가 빈발하는 바람에 이스라엘군이 가자 지구, 서안 자치구 등에 대해 보복 공격을 퍼부어서 분쟁이 격화되었고, 알카이다가 미국에서 9.11 사건을 일으키자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 파병하는 등 세상이 어수선해졌다. 05년에는 팔레스티나 자치 정부의 야세르 아라파트가 죽고, 이스라엘에서는 가자 지구와 일부 지역의 입식지에서 물러나면서 일방적으로 결정한 국경선을 따라 테러리스트의 침입을 막기 위한 분리벽을 건설하는 등 부산하게 살고 있다.


1948년 독립한 이스라엘의 국세를 대략 살펴보면, 세계의 유대인 총수 1330만 명 중 550만 명이 살고 있다(미국이 570만 명으로 최고다). 평균 수명은 79.5세로 매우 높고, 유아 사망률은 100명 당 6.9 명으로 세계 최저다. 1인당 국민 소득 2000 달러로 세계 15~16위. 대통령은 실권이 없이 의전을 담당하며, 120 석인 의회(크네세트)의 제1당 당수가 수상으로 취임해서 정치의 실권을 행사한다.


여러 아랍 나라들과 대치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그들과 싸워 승리를 거두어 왔다. 아랍 나라들은 전쟁에서 한 번쯤 져도 큰 탈이 없지만, 이스라엘의 경우 한 번의 패전은 곧바로 나라의 존립을 송두리째 위협하므로 국방을 제일로 삼는다. 그래서 남녀 전국민에게 18세부터 병역이 과해지는데, 남자는 3 년, 여자는 2 년이다. 여자는 대개 후방 근무지만, 본인이 지망하면 실전에도 참여한다.


소집병 11만, 직업군인 6만을 합해 17만 명이 정규군이고, 45 세까지 연간 4~6주간 출동하는 예비군이 40만 명이어서, ‘이스라엘 국민이란, 11 개월의 휴가를 지내는 군인이다’라는 조크도 있다. 이 나라의 핵 전략을 ‘삼손 선택’이라고 하는데, 핵 보유에 대해서 스스로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다. 핵 확산 방지를 위해 파키스탄을 맹비난한 미국이지만, 그 동안 고농축 우라늄을 이스라엘에 극비리에 제공했다는 설이 강하게 나돌고 있다. 오늘날 200 발 가량의 핵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군수 산업에서는 국가 총노동력의 20% 가량을 고용하고 있다. 중동전 때문에 새로운 병기를 실전에서 시험해 가며 개량을 거듭한 끝에 탑승원의 생존율이 세계 최고인 탱크, 세계적인 고성능 전투기 등도 가지지 되었다. 이공계 분야의 재능이 있는 젊은이를 모아 들여 영재 교육을 해서 활용하고, 제대 후에는 민간 하이테크 산업을 지탱하게 한다.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유대계 120 개 사는 거의가 하이테크 산업이다.


프로그래머 길 슈에드는 고교 시절부터 그 재주가 매우 뛰어났으므로, 군은 그를 비밀 정보 부대에 배속했다. 그는 여기서 컴퓨터 네트워크에 대한 외부 침범을 방지하는 기술 개발에 4 년간 종사했는데, 이 천재는 이 시점에서 이 기술이 대단한 비즈니스가 될 것이라는 점을 예견했다. 제대 후 93년에 차린 체크포인트사는 이 분야에서 세계 40%를 자랑하는 글로벌 기업이 되었다.


하이파, 텔아비브, 예루살렘을 잇는 ‘중동의 실리콘 밸리’의 하이테크는 고도한 군사 기술을 민수용 기술로 전환시키는 곳이다. 예를 들어, 미사일 유도 카메라는 알약 정도 크기의 캡슐 내시경으로 발전했다. 이것을 먹으면 몸 안을 통과하면서 몸 안의 영상을 상세히 보여 준 다음 항문으로 나온다. 이것을 발명한 사람은 가브리엘 이단인데, 이스라엘의 군수 산업인 라파엘사에서 미사일 유도 카메라를 개발하던 기술자다.


이스라엘의 비밀 첩보기관 모사드(Mossad. 히브리어 Mosadh=institution, foundation)는  1951년 정규 인원 200 명으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미, 영 등과 어깨를 겨룰 정도가 되었다. 세계 각지에서 귀환한 유대 이민으로 형성된 만큼 각국의 언어와 나라 안 사정에 정통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겠다.


예를 들면, 모사드 최고의 스파이 엘리 코엔은 시리아 출신이었으므로, 시리아의 군부, 정계 요인의 신뢰를 받아 골란 고원도 자유로이 들락거렸다. ‘유칼리나무는 그늘도 만들어 줄 뿐 아니라 적의 눈을 속이기도 좋다’는 코엔의 말을 그럴싸하게 받아들인 시리아군은 골란 고원의 각 진지에 나무를 심었는데, 3차전 때 이스라엘 공군이 이런 유칼리 나무를 집중적으로 폭격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우리는 한 마디로 유대교라고 하지만 오늘날에는 여기에도 여러 갈래가 있어서, 개혁파, 보수파, 정통파, 초정통파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정통파 유대교(Orthodox Judaism)부터…. 오로지 율법만을 준수하는 전통적인 유대교를 가리킨다. 초정통파까지 합쳐 60만 명 가량 된다. 미국에서는 유대 인구의 약 1 할을 차지하고, 이스라엘에서는 초정통파까지 쳐서 2할 가량이 있다. 정통파의 라비는 절대적인 권위를 누려, 어떤 사람을 놓고 이 사람이 유대인이냐 아니냐를 인정하는 권한, 결혼과 이혼에 관한 인정권을 완전히 독차지한다. 개혁파 라비가 베푼 결혼, 유대교 개종자 인정을 정통파에서는 일절 인정하지 않는다.


이디시어로 코셔(kosher)라는 것이 있다. 유대교 법에 합당한 청정한 음식이라는 뜻이다. 레위기 11장, 신명기 14장에 이것이 나온다. ‘미슈나 히브리어’에서 왔는데, 뜻은 kaser (fit, proper)란다. 여기에 맞지 않는 ‘부정한’은 tref다. 미국에는 정통파 유대인을 위해 율법에 맞게 음식을 조리하는 kosher shop이란 것이 있고, ‘kosher 인증서’가 붙은 음식물도 있다.


발굽이 둘로 갈라진 동물, 둘 이상의 위가 있는 소, 양, 염소는 먹어도 좋지만, 돼지와 말은 먹으면 안 된다.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물고기는 좋지만, 문어, 오징어, 갑각류, 조개   류는 안 된다. 뱀장어 같은 장어류, 샤크스핀도 안 된다(비늘이 없으니까). 야채, 과일, 닭, 오리 같은 조류는 괜찮다.


고기와 젖을 함께 조리하면 안 되고, 같은 식탁에 늘어놓아도 안 된다. 그러니, 이들을 조리할 도구도 따로따로 있어야 하므로, 제대로 된 유대인 가정이라면 조리 도구와 식기류도 육류용과 유제품용의 두 세트를 장만해 놓아야 한다.


그러므로, 비프 스테이크를 먹을 때는 문제가 많다. 빵에 버터(유제품이다)를 바르면 안 된다. 식후의 커피에도 우유를 타면 안 된다. 디저트로 우유가 든 아이스크림도 먹어서는 안 된다. 이런 것을 먹는 일도 죄다(약 2 : 10 참조). 죄에 대한 벌은 선민으로부터의 제외다.


안식일을 샤바트(Sabbat[h], Shabbat, Shabbath, 복수는 Shabbatim)라고 한다. 금요일 해가 떨어지면 시작, 토요일 해 떨어질 때까지다. 이 날은 노동은 물론이고, 놀이, 여행이 금지되고 불과 전기도 켜서는 안 된다. 차에 타는 것도 안 된다. 돈을 다루어도 안 되고, 엘리베이터 조작도 안 된다. 그래서 정통파 유대인 집에는 자동적으로 각층에 서서 문이 여닫히는 엘리베이터, 여닫아도 불이 켜지지 않는 냉장고, 저녁 7시에 자동으로 불이 켜지고 밤 12시에 꺼지는 조명 기구 등을 장만해 놓고 산다. 이 날은 집안 잡일을 해 주는 기독교도(샤바트 고이)를 고용하기도 한다.


초정통파는 어떤가. 독일에서 개혁파가 탄생하기 직전, 18세기에 독일에서 탄생했다. 근대 사회와 세속 사회 교류를 차단, 유대교의 재활성화를 추진하는 운동이 이것이다. 교리 연구와 종교적 정열도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수단이므로 법열 넘치는 예배를 드린다. 어디를 가나 옛 동구 복장을 해서, 한여름에도 시커먼 코트, 바지, 소프트 모자를 착용하고, 살쩍(귀 밑 털)을 꼬불꼬불하게 늘어뜨리고, 턱수염을 길게 기른다. 여성은 발목까지 늘어지는 긴 팔의 고풍 원피스에 검은 스타킹을 착용해서 피부의 노출을 막는다. 7할의 성인 남자가 신학 연구에 전념하는 것을 자랑으로 알지만, ‘정부의 시혜로 병역도 피하며 빈둥거린다’는 평을 듣는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 이외의 유대인은 ‘사이비 유대인’ 정도로 치부하고 상종하지 않으려는 고립주의자이며, TV나 영화 따위는 ‘악의 충동을 일으키는 추악한 것’이라며 보지 못하게 한다. 에그, 무슨 재미에 사는지….


보수주의 유대교(Conservative Judaism)는 다음에 소개할 개혁파 유대인에 대해 불안감을 느낀 동유럽계 유대인의 필요 때문에 태어났다.. 미국에 사는 유대인 중에서 정통파와 개혁파의 중간 입장을 취하며, 약간의 변화는 허용하면서도 전통적 유대교의 교리와 관습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실제 생활에서도 음식물의 계율에 관해서는 각 가정에서는 지키지만, 외식을 할 때에는 이를 어기는 일도 묵인하는 바람에, 이교도와 상거래를 하는 실업가들이 반색을 했다. 정통파에서는 안식일에 자동차 운행도 하지 못하게 하지만, 보수파에서는 이것을 인정했다. 실생활에서 차 없이는 살 수 없는 그 넓은 땅 미국에서는 환영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개혁파와 마찬가지로 재미 유대인의 30%를 차지한다.


개혁파 유대교(Reform Judaism)는 19세기 초, 나폴레옹의 게토 해방으로 중세 이래의 게토 벽이 무너지면서 생긴 것이다. 독일 시민 사회의 자유로운 분위기를 처음으로 접한 젊은 엘리트 사이에서 경직된 유대교는 시대에 뒤떨어진 종교라며 기독교로의 개종 등이 빈번하게 일어났고, 이들을 어떻게든 붙들기 위해 일부 라비들이 생각해 낸 것이 이것이다.


이성과 과학을 중시하면서, 탈무드에 대한 절대적 맹종을 배격하고 의식의 간소화를 장려했다. 그래서 돼지고기도 먹고, 예배는 영어로 드리기로 하고, 안식일은 일요일로 정하기도 했다. 미국 유대교인의 약 30%가 이것인데 Liberal Judaism이라고도 한다. 미국의 라비 Kaufmann Kohler가 기초한 피츠버그 강령은, ‘근대 문명의 사고와 습관에 어울리지 않는’ 토라의 법을 모두 부인했고, 이것이 1937년까지 개혁파 유대교의 표준적 교의가 되었다. 식사, 청정, 의복에 관한 낡은 규정을 거부하고, 유대인은 ‘민족이 아니라, 종교 공동체’라고 단언했으며. 부활, 천국, 지옥을 부정하고, 시온으로의 귀환도 포기, 메시아니즘은 근대 사회를 향한 진실과 정의, 공정을 추구하는 노력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이를 향해 다른 종교뿐 아니라 선량한 사람들과도 협력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섬유 메이커 몰덴 밀즈사가 1995년 말 화재로 불타 버리고 말았다. 사주인 아론 페어스타인은, 엄동을 맞아 아무 대책도 없는 3000명의 히스패닉계 이민 노동자들에게 3 개월 후의 조업 재개를 약속하면서, 그 때까지 건강 보험, 급여, 보너스의 부분 지급을 하겠노라고 보장해주었는데, 이 이야기를 들은 미국 전국의 미디어가 ‘90년대의 성자’라고 대대적으로 칭송했고, 당시 클린턴 대통령이 그를 백악관에 초대해서 축복의 말을 건넸다. 그는 정통파 유대교도였는데, 아버지에게서 배운, 2000년 전의 현자 힐렐(바울의 선생님인 가말리엘의 할아버지다)의 ‘도덕적 혼돈이 닥쳤을 때, 사람으로서 어찌 처신해야 할 것인지 최선을 다하라’는 가르침을 떠올렸다고 한다.


얼핏, 정통파와 초정통파의 생활이 우리 눈에 우스꽝스럽게 비치지만, 이런 진짜배기 유대교인에게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들의 생활 태도로 각 파를 구별해 보면 다음과 같이 된다.




           카파 사용    탈리트 착용   남녀석 따로  식사 계율    남자의 턱수염   외국인과 결혼 금지


초정통파     •             •                •               •                 •               •


정통파        •             •                 •               •                -              △ 


보수파        •            ◎                -                              -               -


개혁파        -             -                -               -                -               -


●표는 준수, ◎표 : 정통파의 탈리트는 폭이 넓고 긴 울 제품이지만, 보수파는 폭이 좁은 실크지다. ‘남녀석       따로’는 시나고그에서 예배 드리는 경우다. □표 : 가정에서는 지키지만 외식 때는 예외. △표 : 금하고 있지       만 차차 늘어나고 있다.



카파는 머리에 쓰는 조그마한 모자이고, 탈리트는 회당에서 아침 예배 때, 유대인 남자가 두르는 어깨 숄이다. 

    여기서 외국인과의 결혼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에 대해 개혁파는 관용의 태도를 취하지만, 매우 강한 반대 입장을 표하는 것이 정통파이고, 보수파는 그 중간이다. 중세에는 기독교도 쪽에서 화형으로 처벌한 일도 있었지만, 1990년의 조사 결과 재미 기혼 유대인 배우자의 52%가 비유대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니 지금은 더 늘었을 것이다. 일이 이쯤 되자, 순수한 유대인 공동체의 존속이 위기에 처했다며 ‘제2의 홀로코스트’라는 말까지 나왔다.


미국 LA에 있는 유대계 인권 단체 가운데. SWC (Simon Wiesenthal Center)라는 기관이 있다. 사이몬 비젠탈(1908~?)은 폴란드 태생의 오스트리아인으로 나치 전쟁 범죄자를 쫓는 인물. 1995년 일본 文藝春秋사의 월간지 <마르코폴로>에 실린 ‘나치 가스실은 없었다’라는 기사에 항의, 이 잡지를 폐간으로 몰아넣는 등 세계의 잘못된 기사들도 감시하는 무서운 단체다. SWC가 작용해서 폴크스바겐, 마이크로소프트, 필립 모리스 같은 큰 광고주들이 광고 싣기를 거부했으니 출판사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이 이야기는 이런 굵직한 기업들은 직접 간접으로 유대인이 관여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뿐인가. 미 상원 외교위원장이던 찰즈 퍼시는 지난날 미제 고성능 군용기를 사우디아라비아에 파는 일을 추진한 일이 있다. 이는 미 군수산업에 이익을 가져다주고 고용을 촉진시키자는 정책이었으므로 미국의 국익에 들어맞는 안건이었지만,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결과가 되었으므로, 유대인 로비스트들이 84년의 선거 때 ‘자객 후보’를 그의 선거구에 내보내고, TV 광고에 거금을 투입해서 네거티브 캠페인을 냅다 벌인 끝에 결국 퍼시를 낙선으로 몰고 간 일도 있다.


유대인의 우수성을 이야기할 때, 그들의 로비력을 빠뜨릴 수는 없다. 그런데, 그 로비라는 것을 맨입으로 할 수 있는 것일까.


미국 민주당의 정치 자금 전체의 약 60%, 유대감이 적은 공화당에 대해서도 35%가 넘는 액수가 유대인의 헌금이다. 헌금은 주로 대통령 선거와 연방 의원 선거전에 집중된다. 예전부터 내려오는 이스라엘의 모금 네트워크와 역사 깊은 종교상의 자선금 모집 네트워크를 이용한다. 미국에서 ‘최강의 유대 로비’ 단체가 AIPAC(미-이 공공문제 위원회)인데, ‘연방 의원의 70~80%는 AIPAC의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들어 준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AIPAC 직원 대다수는 각 전문 분야의 대단한 엘리트인지라, 로비 대상 단체를 위해 고도한 정보도 제공하고, 연설문 원고 작성, 법안 작성과 의회 전술의 조언까지 해 주고 있다.


이스라엘은 세율이 세계 최고(일반 봉급 생활자만 해도 50% 가깝다)이므로, 이를 피해 민간인과 기업들이 미국으로 많이 나가 있다(이스라엘 국적을 가진 사람이 50만 명). 이들이 미국의 여론을 친이스라엘로 유도하는 일을 위해 굵직한 헌금 등 적극적 역할도 하고 있다.


유대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 유대교에서 태어난 모든 기독교, 천주교와 이슬람교에서는 인간이 죽은 후의 이야기까지 하고 있지만, 유대교에서는 사람이 태어나면서 하느님에게 영혼을 잠시 빌려 받아서 살다가 죽으면 흙으로 다시 돌아갈 뿐 다음 세상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세상의 종교인들 가운데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가 54%를 차지하지만, 유대교도는 0.2 %뿐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승의 삶을 매우 중요시한다. 613 개의 율법 가운데, 365 개의 금지 율법과 248 개의 의무 율법이 있다고 하는데, 그 가운데서 120 개 이상이 사람이 양식을 얻는 방법, 돈을 아끼고 저축하고 이를 사용하는 방법에 관한 규정이라고 한다. 즉, 인간의 영리 욕구는 하느님이 창조하신 좋은 것으로 생각된다. 석가모니는 구도를 위해 보기에 매우 초라한 생활을 했고, 기독교에서도 청빈을 귀하게 여겼지만, 유대교의 아브라함은 수많은 양, 염소 무리와 금은보화를 소유했던 것만 보아도 알 만하다.


유대인 사회에는 어느 공동체에나 예전부터 쿠파(Kuppah)라는 것이 있었다. 이는 공동체마다 3 명이 관리하는 헌금함이다. 우리가 소유한 것은 무엇이 되었든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엄밀하게 말하자면 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시혜는 의무였고, 헌금하지 않으면 소유물을 압수할 수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의류, 학교 교육, 결혼 지참금, 유월절 음식물과 포도주, 고아, 노인, 병자, 매장, 수감자와 난민을 도왔다. 한 공동체에서 1 개월을 지냈으면 쿠파에 헌금해야 한다. 3 개월 후라면 무료 급식소 기금, 6 개월 후라면 의류 기금, 9 개월이 지나고 나면 장례 기금도 헌금해야 한다.. 헌금은 지난날 신전에 희생물을 바치던 일에 대신하는 일로서, 하느님께 감사를 표하는 한 수단이기도 하다.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샤일록 이야기를 흥미 있게 읽어본 우리에게는 ‘유대인=자린고비’라는 인식이 단단히 박혀 버리고 말았지만, 나는 <유대인의 역사>를 번역하면서, 그 반대로 유대인들은 헌금을 매우 잘 하는 민족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 세상을 살아가고, 운영하는 데는 돈의 힘이 엄청나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도 공부를 마치면 취직을 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 아닌가. 유대인들은 열심히 벌고, 열심히 헌금한 결과, 미국의 경우, 총인구의 2 %가 좀 안 되는 유대인이건만, 미국 100대 부자의 32%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경제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공동체를 위해 능력에 맞게 헌금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그들 특유의 네트워크(<유대인의 역사>에도 여러 번 언급됨)를 통해 신속하게 뉴스와 헌금이 함께 유통되었다. 큰 전쟁이 벌어졌다 하면 각 나라에서 그 엄청난 군비를 유대인의 네트워크를 통해 조달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능력을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을 위한 로비력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제는 아예 미국 상원 100 석 가운데 13석(09년 1월, 민주 10, 공화 2, 무소속 1)을 그들이 차지하면서(하원은 435 명의 6.9 %인 30 명) 정치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현 오바마 정권에서 대통령 수석 보좌관을 비롯, 국가 경제 회의(NEC) 위원장, 외교 정책 담당 국무 차관, 예산 담당 국무 차관, 부통령 수석 보좌관, 대통령 상급 고문, 경제 재생 자문회의 의장, 증권 거래 위원회 위원장, 아프간-파키스탄 특사 등 굵직한 자리에 유대인이 앉아 있다.     중동 문제라는 좀처럼 풀릴 것 같지 않은 큰 가시가 그들 유대인에게 있기는 하지만, 그 동안의 근면함과 학습열, 생존을 건 로비력이 이제 활짝 꽃피고 있는 현장을 우리는 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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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유대인의 역사(113) 김유동 2010.04.11 1529
118 유대인의 역사(112) 김유동 2010.04.04 1714
117 유대인의 역사(111) 김유동 2010.03.28 1801
116 유대인의 역사(110) 김유동 2010.03.21 1552
115 유대인의 역사(109) 김유동 2010.03.14 1644
114 유대인의 역사(108) 김유동 2010.03.08 1608
113 유대인의 역사(107) 김유동 2010.02.28 1723
112 유대인의 역사(106) 김유동 2010.02.15 2579
111 유대인의 역사(105) 김유동 2010.02.07 1792
110 [re] 유대인의 역사(105) 주암동 2010.02.14 1853
109 유대인의 역사(104) 김유동 2010.01.31 24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