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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21세기 선교: 제3강 여러가지 선교신학

2002.08.21 12:29

이계준 조회 수:807 추천:6

신학아란 성경의 근본 뜻을 오늘의 개인적, 사회적, 및 역사적 상황에 맞도록 해석하는 학문이다. 성경은 원래 고대의 다양한 문화적-종교적 배경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핵심인 진리를 현대의 옷으로 가라 입히므로써 지금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신학은 하나일 수 없고 시대, 상황, 신학자에 따라 여러가지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지난 2000동안 교회들은 어떤 교리나 신학만을 유일하고 절대적 진리라고 주장하고 믿도록 강요하며 다른 교리나 신학을 이단시 또는 악마시하여 배척하거나 희생시킨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것은 모든 신학은 그 시대를 위해 사람이 성경을 해석한 상대적 산물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거나 자기의 이론을 절대시한 교만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고로 신학은 항상 변해야 하고 변하는 신학만이 생동적인 의미를 줄 수 있는 것이다.
신학에는 크게 4가지 분야가 있다. 즉 역사신학, 성서신학, 조직신학, 실천신학 등. 모든 신학은 수 백년에서 2쳔년의 긴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선교신학은 지난 19세기에 나타나 100년 정도의 짧은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교회가 하는 선교는 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8세기 서구의 식민지 확장과 함께 시작된 서구교회의 선교가 비서구 민족, 문화, 종교와 만나고 갈등하면서 선교를 연구하게 된 것이다.
선교신학이 어느 분야에 속하느냐 하는 문제는 학자에 따라 견해를 달리한다. 왜냐하면 위의 4가지 분야에 모두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20세기에 일어난 특이한 사실은 모든 신학들이 선교지향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신학이란 궁극적으로 선교를 위해 있다는 증거라고 볼 수 있다.
선교신학의 학설이 다양하고 유형론(typology)도 역시 각양각색이다. 여기서는 다만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종합적인 유형론 두 가지만 소개하려고 한다.

1. H. J. 마굴의 유형
독일의 신학자인 마굴은 다양한 선교신학을 4가지로 구분하였다.
1) 선교란 하느님 나라를 증거하는 일로 보는 입장이다. 선교는 2000년전 그리스도의 탄생과 앞으로 올 재림 사이의 기간 동안 교회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그 자체에 목적을 두지 말고 모든 민족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종말의 심판을 면하도록 복음을 선포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제2강에서 말한 전도를 강조하는 보수주의의 입장으로 한국교회의 대부분이 이 유형에 속한다.

2) 선교는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설립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즉 교회가 없는 집단이나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워주는 것이다. 이 선교를 통해 모든 인류가 하느님 안에서 하나되고 교회되신 그리스도의 몸에 함께 모이며 성령의 거륵한 집을 이르는 것이다. 이것은 1961년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교회의 보편주의적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3)선교란 변형(transformation)이라는 입장이다. 20세기의 탁월한 신학자 P. 틸리히는 유대교나 휴머니즘에도 밖에서는 보이지 않으나 교회와 흡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보고 그것을 선명하게 밝혀서 교회로 변화시키는 것이 선교라고 한다. 또한 저명한 가톨릭 신학자인 K. 라너는 모든 인간에게는 익명적 크리스쳔(anonymous christian) 곧 감추어진 기독교적 요소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들을 기독교인으로 변화시키는 일을 선교라고 한다. 이 두 학자의 주장은 타종교인이나 무신론자에게도 구원 받을 소지가 있다는 점에는 보수주의와 다르나 기독교로 개종해야 구원받는다는 보수주의의 입장과는 별 차이가 없다고 하겠다.

4) 선교는 "하느님의 선교"(Missio Dei)에 참여하여 온 인류의 평화(shalom)를 위해 일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선교의 주체는 하느님이시고 교회는 선교의 도구이다. 하느님은 민족, 성, 문화, 종교를 초월하여 온 인류가 진리와 자유, 사랑과 정의 안에서 잃었던 인간성을 회복하고 서로 협력하는 세계공동체를 건설하기 원하신다. 따라서 교회는 하느님의 도구로써 인류평화의 증진을 위해 헌신해야 하는 것이다. 이 입장은 1954년 독일 빌링겐(Willingen)에서 열린 세계선교대회에서 처음 나타난 것으로 종래 선교의 주체를 교회로 보던 입장을 뒤집어 놓은 것이다. 이것은 1960년대 이후 공산주의, 군사독재, 미국의 매판자본, 다국적기업 등의 정치적 탄압과 부자유, 경제적 착취와 빈곤으로 고통하는 사람들의 각성, 저항, 해방과 자유를 위해 기여한 바 크다.

2. 포괄적 유형
위에서 말한 마굴의 유형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유형들이 1960-80년 어간에 특히 서구신학의 영향하에 만들어졌고 또한 새로 등장한 다원사회의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자연히 새 시대를 위한 선교신학의 유형으로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나름의 유형을 만들어 보았다. 마굴의 유형과 유사한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1) 복음화(Evangelization)
이 유형은 복음 전도를 통해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고 교회 성장을 이륵하며 온 세계를 복음화하는 것에 그 목적을 둔다. 여기에 대표적인 신학자는 미국 플러신학대학원의 교수이었던 D. 맥가브란이다. 그는 주장하기를 하느님은 교회 성장을 바라시기 때문에 무조건 교회는 수적으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질적 성숙은 2차적인 문제라고 한다. 따라서 선교의 최고 목적은 성장일 수 밖에 없다. 한국교회 특히 신흥 대형교회들은 대개 맥가브란의 성장론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어떠 신학자는 비판하기를 이것은 미국 자본주의 기업의 생리처럼 영리추구를 제1차적 목적으로 한다고 한다. 그러나 복음주의자 가운데도 영국의 J. 스토트와 같이 개인구원 및교회성장과 함께 사회구원을 역설하는 신학자도 있다.

2) 토착화(Indigenization)
이것은 기독교의 복음을 민족 마다 자기의 문화적, 정신적 전통이나 형식으로 이해하고 표현해야 복음을 바로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성경은 그 당시의 문화적-종교적 형식을 빌어 기록되었다. 그리고 기독교 2000년의 역사 속에서 성경은 시대 마다 여러 사상의 형식으로 이해되고 표현되었다. 서양 선교사들이 우리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은 자기들의 문화적 형식으로 이해하고 해석한 복음을 우리에게 전해 주었다. 그 신학이 근분주의와 보수주의이다. 따라서 문화와 역사를 달리하는 우리는 우리의 정신적 틀을 근거로 해서 복음을 이해하고 우리의 신앙 체험을 우리 말과 우리 가락에 맞게 찬송가를 지어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에게는 무교, 불교, 유교 등 오랜 역사를 지닌 종교들이 있다. 그 종교의 형식들을 빌어 우리 민족이 추구하고 만들어 낸 어떤 정신적 요소가 있을 것이다. 유동식 박사는 이것을 "한, 멋, 삶"이라는 최치원의 사상에서 발견하고 성경의 복음을 "한, 멋, 삶"이란 개념에서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신학 작업을 평생 하여 왔다. 복음의 토착화는 매우 어려운 일이고 서구 신학에 익숙한 교회의 반발도 크지만 한국인으로써의 신앙과 교회의 주체성 및 선교를 위해 반드시 이르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3) 상황화(Contextualization)
선교는 인간의 다양한 삶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선교사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신 것처럼 교회는 복음 곧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하여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선교란 세상에서 실패하거나 소외된 죄인들을 구원의 방주인 교회로 불러드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사회적, 역사적 현장인 정치, 경재, 사회, 문화 등의 모든 분야 속에 직접 들어가서 인간을 비인간화하고 역사를 파괴하는 불위와 싸워 승리하는 것을 뜻한다. 이를 통해 인간과 역사를 구원하는 하느님의 구원 사역에 동참하게 된다. 이와 같은 선교신학은 1960대 이후 남미의 해방신학, 북미의 흑인신학, 한국의 민중신학 등으로 나타나서 불의에 저항하고 인권회복과 민주화에 크게 기여하였다.

4) 다원화(Pluralization)
세계 제2차 대전 전후로 세계의 문화-종교적 판도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는 서구문화와 기독교가 세계를 지배하였으나 전쟁이 끝나자 서구 식민지하에 있던 민족과 나라들이 독립하고 자기들의 문화와 종교를 부활시키고 존중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더하여 두가지 이념에 사로 잡혔전 냉전시대의 종식과 함께 인간의 이념과 가치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받아드리는 풍조가 확산되었다. 여기서 기독교의 신앙과 가치도 그 다양성 속의 하나이고 따라서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문화-종교적 절대주의는 역사적으로 수 많은 전쟁과 인간 살상을 초래하였다. 그리고 지금도 대부분의 전쟁은 민족과 함께 종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다원시대에 있어서 기독교가 하느님의 평화의 사도가 되기 위하여 다른 이념이나 종교와 대화, 이해, 협력을 통해 인류공동체 형성에 기여하는 것이다. 다원주의 신학의 한 예로 각 종교의 교주 곧 붓다, 마호멧, 공자, 모세, 예수를 그 종교의 중심으로 삼지 말고 유일하신 하느님의 우산 아래 모두 모일 가능성을 찾아 온 인류가 하느님의 자녀로 함께 공존하자는 것이다. 이것을 종교신학 또는 다원주의 신학이라고 부르는데 국내외적으로 매우 활발한 역구와 활동이 전개되고 있고 종교 간의 상호 교류를 통하여 열매를 맺기 시작하고 있다.

위에서 포괄적 유형이란 제목 아래 복음화, 토착화, 상황화, 다원화 등 4가지를 소개하였다. 신학자에 따라 어느 한 유형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학문의 논리적 체계를 수립하는데는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의 현실은 한 가지 유형으로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지가 않다. 인간의 삶과 요구가 각양각색일 뿐더러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하나의 방법으로 모든 요구에 만족을 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선교신학 유형들을 현장에 적용할 때 부분적이고 또한 전체적인 삶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통전적인 이해와 실천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즉 위의 4가지 유형을 시대와 요구와 상황에 따라 신축적으로, 그러면서도 타당하게 적용할 때 책임있는 하느님의 선교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통전적 선교신학"(Integral Theology of Mission)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