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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21세기 선교: 제5강 교회와 선교

2002.09.04 10:48

이계준 조회 수:748 추천:6

교회란 무엇이며 선교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이 질문은 19세기 말 선교신학이 등장하기까지 제기되지 않았다. 그리고 교회가 선교의 주체이며 선교는 교회가 그 자체의 발전을 위한 모든 것을 하고 여력이 있을 때 하는 일로 간주되었다. 세계제2차 대전의 종식과 함께 서구 식민주의자들과 어울리던 선교사들이 모두 추방당하고 1954년 돌일 빌링겐에서 모인 세계선교대회에서 소위 "하느님의 선교"(Missio Dei) 신학이 떠오르면서 종래의 교회와 선교의 관계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여기에는 여려가지 사회적, 역사적 상황 변화의 자극도 있었다. 제3세계의 독립에 따른 민족, 문화 및 종교의 부활, 지구촌화, 냉전시대 이후 세력의 재편, 정보사회의 출현, 다원주의의 탄생 등이 그것들이다. 교회는 세계 안에, 세계와 더불어, 세계를 위해 존재하므로 자연히 선교는 상황 변동에 따라 변해야 하고 변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1. 교회란 무엇인가?
우리는 흔히 교회를 말할 때 일반적으로 건물, 직제, 제도 등을 연상한다. 그러나 교회라는 희랍어 ekleisia는 "부름 받은 자"를 뜻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의 부름 받은 백성이 교회이다. 따라서 교회란 근본적으로 부름 받은 의식을 지닌 사람들이다.
교회는 기본적으로 몇 가지 하는 일이 있다. 1) 예배: 부름 받은 백성들이 함께 모여 예배드린다. 예배란 영어 worship은 worthship 곧 가치있는 것이란 말을 줄인 것이고 예전(또는 예식)이란 라틴어 leitorgia는 함께 하는 일이란 뜻이다. 즉 예배란 주님의 백성들이 의미있는 일에 함께 동참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들은 하느님의 값 없이 주시는 사랑과 은총에 대하어 감사, 찬송, 영광을 돌리고 죄의 고백과 요청을 아뢰며 그의 말씀을 듣고 사명을 받은 다음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2) 교육: 하느님의 신앙은 교육을 통해 발전한다. 우리는 그 근원을 예수의 가르침에서 찾는다. 그는 항상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가르치셨다. 한국교회는 신앙부흥은 강조하나 교육발전은 등한시한다. 여기에 교회(평신도)가 성숙하지 못하는 원인이 있다. 철저한 성서연구와 신학 훈련은 신도의 신앙과 생활을 발전시키고 선교적 사명을 실천케 한다. 3) 친교: 부름 받은 백성들이 비록 지식, 소유, 성격이 각양각색이지만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만나고 대화하고 나누는 가운데 하느님 안에서 하나되는 경험을 한다. 이것은 인간적인 사귐 뿐만 아니라 기쁨과 함께 슬픔도 나누므로 위로와 용기를 얻고 건전한 신앙인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4) 선교: 부름 받은 백성의 최고의 목적은 선교이다. 그것이 부활하신 주님의 명령이다. 현대적 선교란 선교사 파송하는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요구에 다차원적으로 응하기 위하여 하느님의 백성 전체가 참여해야 하는 총체적 활동이다.

2. 교회의 존재 이유: 선교
교회란 그것이 제도이건, 건물이건, 사람이건 간에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선교를 위해 있고 선교만이 교회를 교회되게 한다. 선교 없이도 명목상 교회는 존재할 수 있다. 응장한 건물과 수천, 수만의 성도가 모여 날마다 축제를 버린다. 그러나 이웃의 물직적, 정신적 요구에 관심 없이 교회의 세력 확장에만 주력한다. 그것은 교회가 아니라 일종의 사교 클럽이나 게토에 불과하다.
교회란 선교 공동체이다. 선교를 위해 모이고 선교를 위해 흐터진다. 모여서 예배, 교육, 친교를 통해 얻은 영적 에너지를 가지고 세상에 나아가 이웃의 필요한 것을 공급한다. 특히 이 일을 위해 평신도는 세상의 문제, 전문가의 시각으로 본 세상의 해결되어야 할 복잡한 문제들을 제시하고 목회자는 그것들은 성서적, 신학적 지식으로 조명해 봄으로써 어떤 선교 정책과 전략을 도출해 낼 수 있는 것이다.
교회가 선교에 관심 없을 때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목적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교인간에, 목사와 교인 간에 갈등과 분렬을 초래하는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가 외형적으로는 선교에 활발한 듯 하나 내용적으로는 물질주의, 권위주의, 세습주의에 멍들고 있다는 현실은 선교 지향적이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하다.

3. 교회와 사도 의식
선교 공동체인 하느니의 백성은 사도로써의 의식을 철저히 지녀야 한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선교적 명령을 주신 것과 꼭 같이 우리를 부르신 주님은 그의 사도로써 선교적 사명을 수행하도록 요청하신다. 사도 바울은 항상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 또는 사도라고 불렀다. 사도직이란 자의 대로 하는 일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종이다. 종은 주인의 뜻을 따라 일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도적 의식 없는 평신도, 사도적 의식 없는 선교는 맹목적인 것이고 하느님의 선교에 참여한다고 말할 수 없다.
선교 공동체가 하는 일은 교회 자체를 제도적으로 신학적으로 갱신하고 교회의 물량적 성장 보다는 오히려 질적 성숙에 이바지하며 궁극적으로는 하느님 나라 확장에 심혈을 기우리는 것이다. 21세기란 시대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혁명적 변화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는 인류와 역사에 도움이 되는 변화도 있으나 오히려 하는님의 섭리에 역행하는 위기와 파멸을 몰고 오는 것들도 무수하다. 따라서 교회는 변화무상한 상황에 대하여 적절한 복음의 해석과 함께 개인적, 사회적 요구에 타당하게,겸소하게 섬기는 자세를 확립해야 하는 것이다.
사도적 교회는 열려있어야 한다. 인종, 계층, 종교의 벽을 넘어서 누구에게나 관심을 가질 수 있고 누구나 들어올 수 있으며 누구나 껴안을 수 있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온 인류는 하느님이 창조하신 한 가족이다. 교회는 다양성 속에 일치를 인정하고 또한 성취해야 한다.

4. 선교의 궁극적 목적
선교의 제일차적 목적은 하느님 나라를 이 땅 위에 건설하는 것이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의 뜻과 통치가 이르어지는 것을 말한다. 곧 사랑과 정의, 자유와 평화가 모든 인간의 삶 속에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것을 의미한다.
18세기 이후 개신교 선교가 서구문화를 제3세계에 전달하는 일에는 어느 정도 성공하였으나 선교 본연의 사명에 실패한 원인은 인류 중심이 아니라 제도적 교회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말로는 선교라고 하면서 교회 확장, 교파 확장, 기독교 확장이 그 목적이었다. 따라서 비 서구권의 민족, 문화, 종교를 무시 또는 말살하고 기도교 왕국을 건설하려고 한 것이다. 선교의 목적인 하느님의 사랑과 평화를 전파하는데 실패하고 그 대신 비인간화, 전쟁, 살인의 대행자 구실을 하였다.
선교의 주체는 하느님이시고 교회는 그 선교의 도구에 불과하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각기 선교의 도구인 것이다. 하느님의 백성은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나 하느님의 선교를 성취하기 위하여 불철주야 십자가를 지고 가는 주의 종이다. 그러므로 한국교인들은 하루 속히 이기주의적 기복신앙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성숙한 종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지금 21세기 지구촌은 인종과 종교의 갈등과 전쟁, 빈곤과 환경 파괴, 인간복제 및 경제와 권력의 독점 등의 문제로 크게 위협 받고 있다. 바로 이 지구가 그리스도께서 육신 입고 오신 곳이고 하느님 나라 선포하시다가 죄 없이 고난의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곳이다. 우리는 이 지구촌에 태어나고 부르심을 받고 하느님과 함께 그 나라를 창건하고 확장하도록 거륵한 사명을 받은 백성인 것이다.

위에서 교회의 존재 이유와 선교와의 불가분의 관계를 논하였다. 그리고 교회는 본질적으로 하느님의 부름 받은 공동체이고 사도적 의식의 소유자만이 선교에 참여할 의미를 갖는다고 하였다. 교회는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선교를 위해 있는 집단이고 급변하는 21세기 역사 속에서 가장 적절하고 타당한 선교의 종으로 그 사명을 다 해야 한다고 하였다. 우리 모두 주님의 성실한 교회와 선교자가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