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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21세기 선교: 제8강 한국교회의 성장과 선교

2002.09.24 11:26

이계준 조회 수:948 추천:7

제7강에서는 초기 한국교회의 발생에서 8.15해방까지 교회 및 선교의 발전에 관하여 말하였다. 반 세기란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더욱이 사회의 페쇄성과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괄목할만 한 선교의 역사를 전개한 것은 실로 하느님의 은총과 선각자들의 자기 희생의 결실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특히 복음의 씨가 자라 교회성장 뿐만 아니라 역사참여와 문화창달에까지 크게 영향을 미치므로 소위 통전적 선교모델을 창출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 하겠다. 우리는 이 초기 교회의 공적을 기억하면서 해방이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와 선교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1. 8.15해방 후의 교회
해방 후 약 15년간의 교회 상황은 극심한 혼란 그 자체이었다. 일제의 신사참배에 가담한 교역자들과 이를 거부한 교역자들 사이에 갈등과 분열이 발생하여 대부분의 교단이 갈라지게 되었다. 더욱이 신사참배에 가담하지 않은 지도자들을 중심하여 재건파교회, 고려파교회 등 새로운 교단이 등장하였고 정통과 이단의 논쟁과 규탄이 그칠줄 몰랐다. 이 이단시비는 교역자들 사이에는 물론이고 교인들과 가족들 사이에서도 일어났다.

또한 일제의 강제추방으로 돌아갔던 서양 선교사들이 돌아와서 선교활동을 재개하고 교회도 회복단계를 맞이하였다. 반면에 서구에서 새로운 교파들이 들어오므로 다양한 교파시대의 문이 열리기도 하였다.

6.25동족상잔은 민족적으로 불행한 사건이지만 교회변화와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동란 중에 교회는 삶의 터전과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위로와 희망을 주는 곳이었고 전쟁고아, 과부, 가난한 사람들을 지원하는 유일한 단체이기도 하였다. 해방직후에 교세가 강한 북한에서 월남한 약 500만명 중 상당수가 기독교인으로써 영락교회, 경동교회, 성도교회 등을 설립하는 밑거름이 되었지만 6.25당시 또한 월남한 약 500만명 중 많은 기독교인들이 교회를 창립하므로 한국의 교세는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되었다.

우리가 여기서 집고 넘어갈 일이 하나 있다. 그것은 교회와 이념문제이다. 6.25동란 중에 기독교는 자유당 정권의 반공이념을 전적으로 지지하였다. 특히 북한에서 공산정권의 탄압에서 생존하여 월남한 기독교인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반공의 보루역할을 감당한 것이다. 오늘 냉전시대 이후에 있어서 당시의 반공문제에 관하여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에서는 공산정권의 가혹한 억압을 겪은 생존자들에게는 당연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1950년대의 교회는 새로운 갈등을 낳았다. 교권투쟁이 그것이다. 예수교장로회가 신학논쟁으로 포장된 교권투쟁으로 예수교장로회 통합측과 기독교 장로회로 분
리되었고(그 당시의 죠크: 한국교회에서는 예수와 그리스도가 싸우고 있다.) 감리교회는 감독선거를 위한 개헌문제로 갈라졌다. 감리교는 추후에 합동되었으나 개헌반대파는 주로 남한 출신 인사로 친일계이고 개헌지지파는 주로 북한 출신으로 친미계통의 인사들이었다. 교회가 교권투쟁에 휘말리고 사회가 전쟁으로 혼탁할 때 신앙촌과 통일교 등 수 많은 사이비 종교가 나타나 사회적 혼란을 더욱 가증시켰다. 기성 종교가 자기의 역사적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지 못할 때 생기는 정신적-도덕적 아노미현상이다.

교회의 혼란기는 4.19혁명과 함께 그 막을 내린다. 반공의 보루이었던 교회는 극도로 부패한 자유당 정권과 깊게 유착하여 예언자적 사명 곧 역사비판적 의식을 망각하므로 민족의 희망과 역사의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교회는 4.19혁명의 주체세력인 젊은 지성들의 비판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빛과 소금의 직분을 다하지 못하는 교회는 역사로 부터 저버림을 받게 된 것이다.

2. 산업사회와 교회성장
지금 한국교회는 5만 교회, 1000만 신도의 교세를 자랑한다. 그리고 세계 50대(大) 교회 중에 24대 교회가 한국에 있다. 이토록 놀라운 성정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특정한 시기에 다양한 요인들이 혼합되어 교회의 폭발적 성장을 이륵한 것이다.

가. 열정적 신앙과 헌신
한국인은 남다른 신앙의 열정과 교회생활에 헌신하는 자세를 지니고 있다. 그들은 예배와 수 많은 집회에 열심히 참여하고 십일조를 바치며 전도의 열이 강하다. 또한 교역자들의 헌신적 목회와 함께 현대 행정 및 조직이론의 적용이 교회성장을 가져왔다.

나. 경제성장과 교회
1960년대 이후 군사정권의 산업화정책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초래하였다. 경재성장은 개인이나 가정뿐만 아니라 교회의 재정적 확충에도 기여하였다. 교회의 풍부한 재원은 교회건물은 물론 교육관, 수양관을 건립하게 하여 교육과 부흥회에 힘쓰고 버스를 운영하므로 원근에서 교인들의 참석을 독려하였다. 이로 인해 교회는 점점 대형화되고 조직화되었다.

다. 도시화와 교회
정부의 산업화정책은 농어촌 인구의 70-80%가 도시로, 산업지대로 이동하게 하였다. 여기서 농어촌은 주로 노인중심의 인구 공동화 현상을 초래하였고 도시와 산업지역은 인구 조밀현상을 가져왔다. 도시와 산업지대에 이동한 사람들으 낯서른 곳에서 소외와 불안을 느끼게 되며 교회가 이들의 안식처가 되는 것이다.

라. 사회불안과 교회
어느 사회에서나 사회불안과 교회성장에는 함수관계가 있다고 한다. 급격한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군사독재권력의 남용으로 인한 부자유와 억압, 남북의 긴장관계, 산업사회가 주는 엄청난 스트레스는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선택하게 만드는 것이다.

마. 선교 100주년 사업과 교회성장
1980년대부터 각 교단마다 선교100주년기념 사업을 시작하면서 개척교회설립 및 교인증가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로 인해 교회와 교인수는 크게 팽창하였다.

위에서 1960년대 이후 한국교회의 성장 원인을 몇 가지로 살펴 보았다. 교회와 교인이 성장한 것에 비하여 신앙과 생활의 성숙성은 크게 미흡한 것이 문제이다. 교회에 모이고 바치는 열정에 비하여 가정과 사회에서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를 위해 실천하는 면이 약한 것이다. 그것은 한국교회의 신앙형태란 주로 개인주의적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교회는 사회의 누룩의 역할을 못하고 사회에서 소외되고 백안시되는 결과를 자초하였다. 기독교신앙은 전인격적인 것으로 신앙과 생활, 개인과 사회의 일치와 균형을 이르는 것인데 한국인의 신앙은 감정적이고 기복적이며 교회중신적이다. 열광적이고 축복을 바라며 교회에만 헌신한다는 말이다. 보다 성숙하고 조화로운 신앙으로 발전해야 교회도 제구실도하고 선교도 제 궤도에 이르게 될 것이다. 참고로 O. 코스타스라는 선교신학자의 건전한 교회성장의 4가지 원리를 소개한다. 즉 교회의 수적 성장, 친교의 성장, 신학의 성장, 역사참여의 성장 등이다. 앞으로 한국교회는 맹목적이고 물량적인 성장을 선교의 목적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코스타스가 제시한 보다 종합적이고 성술한 성장을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다.

3. 해외선교
한국교회의 성장은 해외선교의 열정과 실천으로 연장되었다. 1970년도부터 시작된 해외선교는 두기지로 나눌 수 있다. 즉 해외교포를 위한 선교(교회개척)와 원주민을 위한 선교이다. 그리고 해외선교의 범주를 이민교회, 교포 2,3세 및 북한선교 그리고 외국인선교로 구분할 수 있다.

현재 순수한 외국인을 위한 해외선교에 참여하고 있는 선교사의 수는 확실한 통계가 없어서 분명히 알 수는 없으나 대략 4000명으로 추산한다. 여기에 자비로 선교하는 사람과 기업체에서 일하며 선교하는 사람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근 배로 증가할지 모르겠다. 뿐만 아니라 해외선교를 위해 한국교회는 엄청난 재정을 지출하고 있다. 해외선교라면 그 나라의 종교적, 문화적 상황과 사회적 요구에 대한 고려 없이 무조건 선교사의 파송과 재정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따라서 인적, 물적 자원에 비해 선교사업이 얼마나 타당하고 효과적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우리 교회는 이제 선교하려고만 하지 말고 선교란 무엇이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깊이 알고 실현하는 성숙한 모습을 가추어야 할 것이다.

가) 해외선교란 외국에 선교사 파송과 재정지원을 통해 교회나 기독교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과거 서구의 선교사들이 식민지 정책과 함께 했던 것처럼 한국교회가 신(新)식민주의 곧 돈이 많다고 해서 고유한 종교와 문화를 가지고 있는 국가와 민족에게 들어가 불법적으로, 은밀하게 선교하는 일을 지양해야 한다. 이것은 서구 기독교 우월주의의 잔해에 불과하다. 지구촌 속에서의 선교는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 자유와 평화가 확산되도록 하는데 힘쓰는 것이다.

나) 선교의 구체적인 방법은 해당 지역의 요구에 따라야 하는 것이다. 우리 교회의 계획(agenda)에 준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직접적인 전도나 종교행위를 금하는 지역에서는 농업, 교육, 기술 등을 통해 사회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 선교학적으로 전도를 우선순위에 두고 봉사를 전도의 수단으로 여기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전도나 봉사는 모두 하느님 나라 선포를 위한 선교의 두 가지 방법으로써 불가분리적이고 조화를 이르어야 하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강조점을 둘 수 있으나 분리되어서는 아니된다. 따라서 선교사는 목사에 극한시키지 말고 필요한 전문가를 파견해야 한다.

다) 무수한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은 현지 지도자를 양성하느데 중점을 두는 것이다. 우리 교회에서 보낸 선교사들은 토착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극복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될 때 복음은 한국에서 처럼 토착화되지 못하고 그 문화에서 격리되는 현상을 초래한다. 따라서 과거의 서구 선교사들 처럼 토착교회의 교권을 오래 장악하려들지 말고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현지 교역자를 양성하여 지도력을 넘겨주는 것이 교회의 자립을 위해서 가장 좋은 길이다.

라) 현지 교회 지도자 개발은 또한 한국교회의 재정 부담을 절감하는 면에서 매우 유익하다. 예를 들면 러시아에 선교사 1명 파견하는 비용이면 러시아 교역자 10명을 지원할 수 있다. 이것은 필자가 직접 보고 확인한 것으로 같은 재정적 투자로 10배 이상의 효과를 나타낸다고 말할 수도 있다. 물론 선교의 효과를 수리적으로 축정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말이다.

필자는 위에서 해방 이후 한국교회는 신사참배문제로 분열되었으나 6.25동란 때 영적 생활과 봉사사업에 적극적이었음을 언급하였다. 그러나 교단들의 갈등과 분열은 교회 안밖에 큰 충격을 주었고 사이비종교 발생에 직접적 원인이 되었으며 정치권력과의 유착은 예언자적 기능의 상실과 함께 사회 지탄의 대상이 되게 하였다.

1960년 이후 군사정권의 산업화과정에서 교회는 크게 성장하였으나 물량주의, 교권주의, 심지어 세습주의로 흘러 극도로 타락한 모습을 보였다. 또한 교회는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말살하는 군사정권에 저항하지 못하였고 열광적이고 교회중심적인 신앙에 비하여 양심과 윤리가 허약한 불균형적 인격을 양산하였다. 앞으로 한국 교회가 해야 할 과제와 운명은 믿음과 생활, 복음과 역사의 일치에 달려있지 않나 생각된다.

한국교회의 해외선교는 짦은 연조에 비하여 양적으로는 크게 팽창하였다. 그러나 피선교지의 종교, 문화, 사회, 역사 등의 연구 부족과 함께 서구 교회로 부터 100년 전에 물려받은 선교신학과 방법을 그대로 전달하려는 시대착오적인 의식에 사로 잡혀있다. 이로 인해 선교의 오도와 함께 막대한 인적, 물적 자원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역사는 겨우 100년을 넘겼으므로 서구교회에 비하여 어리다고 하겠다. 따라서 부족하고 나약한 측면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회는 더욱 견고한 신앙 위에 서서 성서연구와 신학훈련을 통해 얻은 지혜를 이 땅 위에 하느님 나라가 확장되는 일을 위해 과감하게 활용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