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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21세기 선교: 제9강 새 세기 선교의 새 패러다임

2002.10.01 12:38

이계준 조회 수:794 추천:6

선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곧 하느님 나라의 선포를 통해 모든 인류와 자연이 정의와 사랑 안에서 어울려 사는 공동체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영원 불변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선포되는 상황 즉 개인적, 사회적, 역사적 환경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상황의 차이에 따라 복음에 대한 해석과 선교의 방법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성서는 근 1000년이란 시간과 다양한 상황과 무수한 저자와 편집자에 의하여 형성되었기 때문에 같은 복음을 전하면서도 각기 시대와 역사적 상황에 따라 그 해석과 선교방법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21세기는 지난 세기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사회와 문화를 창출할 것이라고 미래학자들은 선언하였다. 물론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그 확실한 현상을 아무도 예측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21세기의 문턱에 들어섰고 급격한 새 변화들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므로 21세기를 살아가고 책임지는 한 인간으로써, 그리고 충성된 그리스도의 사도로써 우리가 맡은 바 선교적 사명에 성실하기 위해 앞으로 전개될 미래를 살펴보고 우리의 선교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사려된다.

1. 21세기의 특징
미래학자들이 말하는 21세기의 특징들을 다음 몇 가지로 종합 및 요약해 본다.

가. 지구촌화
교통 통신의 발달로 인하여 세계가 하나의 마을처럼 된다. 국경의 개념이 희박해지고 인적, 물적 및 정보의 교류가 급속히 이르어진다. 또한 지구의 모든 문제 곧 식량, 빈곤, 자원, 핵, 인구, 복제 등이 큰 관심과 함께 위협을 불러이르킨다.

나. 정보화
녿경사회의 최고 가치는 토지였고 산업사회에서는 자본이었다면 정보사회에서는 새로운 지식 곧 정보이다. 인터넷, 디지탈, 생명곧학, 인간복제 등에 대한 연구와 지식을 많이 가진 사회가 세계의 강자로 군림할 것이고 미래 문제 해결의 열쇠를 소유하게 될 것이다.

다. 전문화
앞으로는 상식적 지식인이 아니라 전문적 지식인이 필요하다. 이미 우리 사회는 대학 졸업자들의 실업 사태를 직면하고 있다. 그 이유는 고용의 감소에도 있으나 실상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전문성의 소유자가 빈곤한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따라서 많은 대학과 기업에서는 개방된 세계에서 경쟁력을 가추기 위하여 외국의 전문가들을 채용하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

라. 다원화
20세기가 획일성과 흑백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이었다면 21세기는 다원성과 보편성이 강조되는 시대라고 하겠다. 즉 가치, 이념, 인종, 문화, 종교 등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만남, 대화, 이해, 협력을 통하여 대결, 갈등, 전쟁을 지양하고 지구촌의 모든 인간들이 어울려 살 수 있는 평화의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

마. 차별화
20세기는 서구 계몽주의 이후 발전한 과학적 합리주의와 획일주의의 영향하에 상품의 규격화, 이념 및 가치의 고정화, 권력 및 종교의 권위화가 지배적이었다. 따라서 이념, 문화, 종교의 차별성을 무시 내지는 도외시하였다. 그러나 21세기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개방과 자유와 차별-특성-을 창조하고 향유하는 시대이다. 산업사회는 소품종을 다량 생산하였다면 21세기 문화사회는 다품종을 소량 생산하는 것이다.

바. 써비스화
20세기가 서구식민주의와 자본주의의 지배 및 착취의 시대이었다면 21세기는 섬김과 도움을 주축으로 하는 시대이다. 써비스가 없거나 좋지 못한 정부, 기업, 학교, 병원, 심지어 교회는 살아 남을 수 없다. 따라서 모든 개인과 기업 그리고 사회기구들은 시대착오적 자기중심주의에서 써비스 지향성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2. 21세기 선교의 새 패러다임
위에서 21세기의 특징을 생각해 보았다. 이와 같은 새로운 맥락-상황을 전제로 하여 선교의 새 패러다임을 그려보기로 한다.

가. 개인 구원에서 인류구원으로
종래의 선교는 개인구원, 교회성장 및 기독교확장 위주이었다. 그러나 지구가 한 마을처럼 축소된 현실에서 선교는 인류 전체의 구원과 세계 평화에 초점을 마추어야 한다. 지구촌의 도래는 우주와 인류가 하느님의 창조인 동시에 그의 한 가족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는 우주와 인류 모두의 자유를 위한 것임을 입증한다. 따라서 기독교 선교는 인종, 문화, 성, 계층, 종교를 초월하여 하느님을 중심으로 하는 우주 공동체 형성에 헌신해야 하는 것이다. 지구촌 한 구석의 위기는 곧 세계 전체 위기의 불씨가 된다. 우리 크리스쳔은 모든 피조물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수고하는 선교자가 되어야 한다.

나. 복음의 윤리적 실천
정보사회는 예측할 수 없는 막강한 창의력과 함께 파괴력을 수반하는 지식을 창조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핵 폭탄에서 그 전조를 보았고 인간복제 문제는 새로운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미국의 미래학자 P. F.드러커는 미래를 위한 교육은 창의성과 함께 윤리성을 강조해야 한다고 예언한 바 있다.

우리의 미래 선교는 자연과 인류를 사랑하고 보존해야 하는 중대한 윤리적 과제를 떠맡게 된다. 따라서 교회는 복음과 윤리적 실천을 가르치는 교육장이 되어야 하고 모든 평신도는 삶의 현장에서 실천적 선교자가 되어야 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참여하는 평신도는 자기의 전문성을 통해 창조적 활동을 전개할 때 그것이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에 입각한 우주와 인류의 구원에 궁극적 목적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항상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임을 명심하면서 자기에게 메워진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이다.

다. 만남과 대화
종래의 선교 방법은 인격적 만남이나 진정한 대화 보다는 일방 통행적인 것이었
다. 상대방의 생각, 이념, 문화, 종교를 무시 또는 이단시하고 기독교 신앙만을 절대시하고 강요하여 개종시키려고 안간힘을 써 왔다. 이것은 서구 식민주의 시대에 지배하던 비문화적, 독선적 선교 방식이다. 고로 이것은 그리스도적인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오늘의 타종교인들이나 무신론자들이 인정하거나 용납하지도 않는 부류에 속한다.

그리스도적 선교는 본질적으로 십자군(crusade)처럼 적과 싸워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cross)처럼 이웃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쳔은 자기 겸손과 사랑으로 이웃의 인격을 존중하고 진지한 대화를 통해 피차의 이해를 증진하며 선한 일을 위해 함께 협력할 때 모든 인위적이고 종교적인 장벽을 넘어서 하느님의 현존을 감지하게 되고 공동체 창조에 이바지하게 되는 것이다.

라. 포용성
20세기 선교는 배타성이 강했다. 교회가 설정한 원칙에 맞는 사람만이 교인이 될 수 있고 구원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중산층에 속한 사람들은 선교의 대상이 될 수 있었으나 소외계층 곧 가난한 자, 고아, 무의탁 노인, 창녀같은 하층구조에 속한 사람들은 구제의 대상은 되었으나 구원의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21세기는 개성을 중요시하는 시대이다. 새로운 지식계급 특히 출퇴근 시간의 구애가 없는 직업인, 개성 위주 스타일의 청소년, 주 5일제 근무로 인해 주말에 도시를 떠나는 근로자, 기성교회의 신앙 패러다임이 맞지 않아 떠나는 지식인 등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이제 선교는 래디오, TV, CYBER등의 매체 이용에 극한하지 말고 새로운 종류의 문화인들이 접근하고 받아드릴 수 있는 신앙의 새롭고 폭 넓은 패러다임을 창출하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마. 섬기는 일
미래의 선교에 있어서 섬기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20세기의 교회는 마치 그것이 구원의 방주처럼 착각하고 대형화를 통한 물량주의와 교역자의 권위주의를 초래하므로 교회 본연의 역할도 하지 못하고 사회의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21세기는 그런 종류의 종교 집단에 대하여 매력도 없고 필요치도 않는다. 그것은 세상을 섬기러 오셨다는 그리스도의 정신에도 위배되는 것이다.

써비스를 요청하는 시대에 교회는 써비스 센타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의 기초 위에 서서 개인적으로 또한 집단적으로 지역사회와 함께 지구
촌 전체를 물질적으로 또한 영적으로 섬기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교회가 참다운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되려면 "나는 약해져야 하고 너는 강해져야 한다"는 자기부정의 신앙과 생활을 구현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21세기에 전개될 사회의 면모를 살펴본 다음 그 상황에 적절한 선교적 패러다임은 어떤 것일까 하는 문제를 생각하였다. 비록 새로운 시도라고 할지라
도 완벽한 것도 아니고 모든 상황에 타당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교역자나 평신도 모두는 선교에 관해 진지하게 사유할 때 그는 선교 신학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선교 신학과 방법을 창조하여 요청에 부합한 선교에 임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바랍직한 선교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복음의 영원불변함과 함께 시대와 상황에 따라 선교를 위해 그 해석과 실천 방법이 달라야 함은 말하였다. 물론 지난 시대의 선교신학과 실천방법이나 새로운 것이나 모두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다. 요는 예수님의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 는 말씀처럼 영원히 새로운 복음을 항상 변하는 새로운 상황에 맞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 다음 모든 일을 하느님의 뜻에 맡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