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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21세기 선교: 제11강 21세기 선교정책과 전략

2002.10.16 16:47

이계준 조회 수:837 추천:5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선교적 사명을 위임받았다. 세상에 나아가 모든 백성에게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책임을 맡은 것이다. 지난 2000년 간 역사적 교회는 여러가지 한계와 문제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그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므로 그리스도의 교회를 유지 및 발전 시켰고 뿐만 아니라 기독교를 세계화하고 하느님 나라의 평화(Shalom)을 확장하는데 기여하여 왔다.

역사적 교회가 선교의 업적을 남기게 된 것은 선교의 현장에서 시간적 및 공간적 요청의 차이를 인식하고 복음을 적절하게 해석하고 타당하게 실천하였기 때문이다. 제2강 "전도와 선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말로 하는 전도와 상황의 요구에 따라 응하는 선교 등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이를 성실하게 구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선교정책과 함께 선교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정책과 전략은 각기 다른 시대 곧 농경사회, 선업사회, 정보사회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1. 선교정책
가. 선교는 하느님의 구원의 사역이다. 그는 이 일을 위해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고 그리스도는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시며 성령은 교회 곧 하느님의 백성을 세상에 보내신다. (이것을 "하느님의 선교"-Missio Dei-라고 정의한다.) 이 말은 선교의 주체는 하느님이시고 교회는 보냄을 받는 종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교회는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교를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교회중심주의, 교권주의 등의 세속주의를 철저히 배격하고 하느님의 선교적 도구임을 깊이 자각해야 한다.

나. 지구촌 시대의 선교정책은 기독교의 특수성보다는 보편성을 강조해야 한다. 20세기까지 선교정책은 주로 개인구원, 교인증가, 교회성장, 기독교확장 등에 중점을 둠으로써 배타주의적 성격이 강하였다. 그러나 온 지구와 우주가 하느님의 창조이고 구원의 대상이라는 인식이 확장되고 있는 현실에서 기독교는 타종교인이나 무종교인도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임을 시인하고 그들도 구원의 은총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보편성이 바로 복음의 특수성이라고 보아야 하자 않을까 생각된다. 예: 세계 제2차대전 직후 미국의 케이커교도들이 폴란드의 복구사업에 참여하였다. 마침 그 중 한 명이 지푸테리아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폴란드는 가톨릭 국가이기 때문에 공동묘지에 타종교인은 매장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케이커 교도는 공동묘지 울타리 밖에 묻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동리의 가톨릭 신도들이 자기들을 위해 수고하다 희생된 이교인의 무덤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의논 끝에 교회 책임자의 허락 없이 공동묘지 철조망을 넓혀 케이커 교도의 무덤이 공동묘지 구역 안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이것은 배타주의적 종교가 보인 보편주의적 관용의 한 좋은 예라고 하겠다.

다. 선교는 하느님의 구원을 실현하는 도구이다. 종래의 구원의 개념은, 특히 한국교회에 있어서 지나치게 개인 영혼과 내세에 치우쳤다. 그러나 성서적 구원은 부분적인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것이다. 즉 인간의 구원이란 육체적-정신적, 개인적-사회적, 현재적-미래적 자유와 평화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따라서 만일 사회구조가 인간의 온전한 구원을 방해하고 파괴할 때 교회는 그 사회의 구조악에 도전하고 개혁해야 한다. 우리는 그 예를 독일의 히틀러 정권에 대항하다 순교한 D. 본회퍼 목사와 미국의 흑인 지도자 M. L. 킹 목사에게서 볼 수 있다. 그들이 그 사회와 세계에 미친 사회구원의 충격은 가히 측량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기술과학은 인간생활에 많은 편이를 가져왔으나 하느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훼손하므로 오히려 자연과 함께 인간 존재에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이제 교회는 자연의 보전과 회복을 통한 자연과 인간의 相生관계를 되찾아야 하는 것이다. 세계교회협의회(WCC)는 20세기 후반부터 "정의, 평화, 자연의 보전"(Justice, Peace, Integrity of Creation)을 선교의 주제로 삼아왔다.

2. 선교전략
가. 교회는 하느님의 선교를 위하여 선교센터가 되어야 한다. 예배, 교육, 친교는 선교 지향적(mission oriented)이어야 한다. 지금까지 교회의 모든 프로그램은 개인구원과 교회성장에 초점을 마추었다. 그러나 교회는 선교를 위해 존재하므로 궁극적으로 선교 지향적이지 않으면 안된다. 결국 교회는 선교를 위해 연구하고 훈련시키고 실천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나. 교회는 공동체의 크기에 따라 다양한 선교위원회를 조직하고 운영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아직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복지사회에 진입하지 못한 관계로 소외계층에 대한 문제가 심각한 상태이다. 즉 가정파괴, 탁아, 노인, 실직, 외국인 노동자 그리고 이에 더하여 조선족 및 탈북자 등에 그리스도적 관심을 쏟아야 할 형편에 놓여 있다. 그리고 지금 부실상태에 빠진 TV선교를 비롯해서 사이버선교, 새로운 방향의 해외선교 등 시대변화에 따른 새로운 요구에 선택적으로 응해야 할 것이다.

다. 교회는 보다 효과적이고 창의적인 선교를 위하여 그 입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즉 일반적으로 교회는 국 내외 선교에 직접 개입하여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자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함정과 위험부담이 많다. 특히 해외선교나 다원선교에는 더욱 그렇다. 그 이유는 상황에 대한 인식부족과 함께 전문성의 부족 때문이다. 따라서 다원사회에 있어서 교회의 선교는 "밥집"같은 단순한 사업은 모르되 전문성이 필요한 사업은 전문기관에 위임하고 후방부대로써 지원하는 간접 선교가 바람직할 수 있다. 요는 교회가 직접적이던, 간접적이던 하느님의 선교가 실현되면 만족한 것이다.

라. 교회는 선교요원 훈련에 적극적이어야 한다. 모든 신앙인은 복음을 선포하는 선교요원이다. 이것은 전도지 배포나 축호전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신앙인은 기독교의 본질을 현대인들에게 합리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는 성서적, 신학적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평신도는 사회에서, 자기의 전문직에서 동료들에게 말과 행동으로 그리스도의 제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무장되지 않으면 안된다. 자기의 신앙이 무엇인지 설명할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선교자가 될 수 있겠는
가!

마. 교회는 상설기구로서 선교위원회를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항시 선교정책과 전략을 연구, 검토하고 상황의 변화나 새로운 요청에 따라 선교활동을 수정 또는 개혁하는 신축적 운영과 함께 긴급사태에 대하여 조속히 응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 규모가 큰 경우에는 상설 선교위원회가 있어야 시기 적절하게 선교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형교회는 긴급사태 지원에 한, 두 달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바. 교회 예산배정은 선교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선교비는 모든 비용을 지출한 다음 고려의 대상이 되어서는 아니된다. 선교 제일주의로 나아가돼 가급적 교회예산을 교회유지비(교역자 생활비 포함) 40%, 교육비(전도사 생활비 포함) 30%, 선교비 30%로 책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회의 예산규모에 따라 위의 비율을 초과 또는 미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항상 구조조정이 필요한 것이다.

한국교회는 선교적 열정에 비하여 그 정책과 전략을 수립하고 실천하는데는 매우 미약하다. 연구와 계획이 없는 선교는 인적, 물적 낭비와 함께 오히려 선교현장에 역기능을 초래할 따름이다. 그런 현상은 국내외적으로 무수히 발생하고 있어 선교에 관심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 따라서 교회는 선교를 위한 전문가 양성과 활용을 통해 보다 창조적이고 장기적인 계획과 실천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