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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21세기 선교: 제12강 요약 및 결론

2002.10.22 00:26

이계준 조회 수:1049 추천:4

1. 서론
"21세기 션교"라는 주제로 특히 새로운 문명의 매체인 PC를 통해 나의 일생 처음으로 강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데 대하여 감사드린다. 이 매체는 편리하고 신속한 면도 있으나 또한 한계와 약점도 없지 않다. 특히 충분한 설명과 토론이 어렵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이 강의를 통해 제시된 현대 선교신학의 요점과 미래선교의 방향이 여려분의 이해와 관심에 작은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으로 생각한다. 이제 강의를 마침에 있어서 지금까지 논한 주제들 가운데 중요한 것을 간단히 요약하고 21선교 강좌를 마치고자 한다.

2. 요약
가. 선교의 주체와 도구
선교의 주체는 하느님이시고 교회는 그의 도구이다. 하느님은 그의 선교 곧 인류와 우주를 구원하기위하여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그리스도는 성령을 보내시며 성령은 교회 곧 하느님의 백성을 보내신다. 이것을 하느님의 선교(MissioDei)라고 정의한다. 교회는 건물, 제도, 조직 이전에 하느님의 백성-평신도이다. 따라서 평신도가 선교적 사명을 자각하고 삶의 현장에서 하느님 나라의 평화를 말과 생활로 실현할 때 하느님 나라는 확장되고 교회의 존재이유와 목적이 완성된다.

나. 전도와 선교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곧 전도와 선교이다. 전도란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로 전하고 믿게 하는 것으로 초대교회 이후 그 뜻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선교는 18세기 서구교회가 해외에 선교사의 파송과 지원을 뜻하였으나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그 말이 사회개혁, 인권운동, 빈곤, 핵, 환경 등 삶의 영역 전체에 대한 관심을 나타나게 되었다. 전도와 선교란 말이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또는 급진주의 사이에서 우선순위 문제로 갈등을 빚기도 하였으나 그것들은 복음 선포의 방법들이므로 대립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이 둘은 상황과 요구에 따라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하고 항상 조화를 지향하는 통전적 입장이 바람직하다.

다. 다양한 선교신학
선교신학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해석하고 적용하는 학문이다. 고로 상황의 다름과 이해의 차이에 따라 다양한 이론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독일 신학자 마굴은 선교신학의 입장을 하느님 나라의 증거, 기독교 없는 곳에 교회설립, 타종교인 또는 유사 기독교인을 기독교 싱앙으로 변형, 하느님의 평화 선포 등 4가지로 구분하였다. 나의 선교신학 유형(typology)은 복음화, 토착화, 상황화, 다원화이다. 모든 유형은 특정한 상황의 요청에 따라 생긴 것이므로 독특성과 함께 한계가 있다. 상호이해와 보완을 통해 보다 긍정적이고 포괄적이 선교신학이 계속적으로 창조되어야 한다.

라. 성서와 선교
구약에는 선교적 사상이 뜨렸하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주장이다. 그러나 신약성서에 미친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즉 따윗 왕가를 통한 나라의 출현, 고난의 종을 통해 나타나는 나라, 다니엘의 묵시적 인자의 나라 등이 그것이다.
신양성서에서는 예수의 선교는 하느님 나라가 주제이다. 하느님의 나라란 곧 하느님의 통치-그의 사랑과 정의 위에 건설된 나라를 말한다. 예수가 선포한 하느님 나라는 총체적(holistic, authentic) 성격을 지닌다. 그것은 물질적-정신적, 개인적-사회적, 현재적-미래적인 것을 모두 내포한다는 것이다.

마. 서구교회의 선교
예수의 선교적 명령은 초대교회의 선교적 사명의 근거가 되었고 기독교 확장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로마제국의 간헐적인 박해는 선교에 저해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콘스탄틴 대제가 312년 밀라노의 칙령을 선포하고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영입한 것은 로마제국을 기독교화하는 효기가 되었다. 중세기 교황들은 선교적 열정을 쏟아 교회 없는 곳에 교회를 설립하여 로마 영토에 교회 없는 곳이 없게 되었다.
16세기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빈은 선교적 관심이 없었다. 개신교의 선교는 18세기독일의 경건파인 모라비안에 의하여 시작되었고 그 영향을 받은 죤 웨슬리가 영국과 미국에 선교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19세기에 이르러 서구식민지 확장과 서구교회의 선교운동이 협력하여 제3세계 선교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바. 초기 한국교회의 선교
이수정, 서상윤,이성하 등 매서인들이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설립하였다. 1884년 일본의 갑리교 선교사 매클레이 박사가 김옥균을 통해 고종황제로 부터 유허를 받고 1885년 부활절 아침에 아펜젤라와 언더우드가 제물포에 상육한다. 그들은 학교와 병원을 설립하고 간접적이 방법으로 전도하고 교회를 설립하였다. 1907년 하디 선교사의 요한 1서 강해는 부흥운동을 일으켰고 교회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전국에 설립된 교회는 3.1운동 당시 연락망이 되고 민족운동의 지도자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이 초기는 비록 짧은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교회성장, 사화참여, 문화운동 등 통전적 선교 모델을 창조하였다.

사. 한국교회의 성장과 선교
해방 후의 교회는 신사참배 문제로 사분오열되었다. 6.25동란은 교회가 사회봉사에 심혈을 기우리게 하였고 반공의 정신적 보루가 되었다. 1950년대는 장로교가 신학적 논쟁으로 분리되고 감리교는 감독선거로 분리하게 되었다. 1960년에 일어난 4.19혁명은 교회가 자유당 정권에 유착된 사실은 비판하였다.
한국교회는 1960년이후 신앙의 열정, 경제성장, 도시화, 사회불안, 선교 100주년 기념사업 등으로 양적으로 크게 성장하였다. 그러나 군사정권의 비합법성과 인권유린에 대한 예언자적 비판을 망각하였다.
교회의 성장과 교단의 확장은 해외선교에 관심을 갖게 하였다. 엄청난 인적, 물적 자원을 제3세계와 구 공산권에 투입하였다. 그러나 현지의 사회, 문화, 종교에 대한 몰이해 및 비합법적 선교활동은 선교의 역효과를 초래하였다.

아. 21세기 선교
21세기란 시대는 그 나름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즉 지구촌화, 정보화, 전문화, 다원화, 차별화, 서비스화 등.
여기서 선교의 초점은 개인구원과 함께 인류구원; 복음의 선포는 말과 행동으로; 복음의 힘은 개인변화와 함께 역사변화를; 타종교인들과는 만남, 대화, 협력으로 평화를 창조; 인간의 삶은 자연과 相生하는 것이어야 한다.

자. 다원사회와 다원선교
21세기는 20세기 보다 더욱 분업화와 전문화를 지향하는 시대이다. 따라서 새롭고 다양한 선교방법을 개발하고 실천하여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평화가 선포되고 실현되도록 힘써야 한다.
20세기의 다원선교는 학원, 병원, 군대, 산업, 형무소, 라디오, TV 등이었다. 이에 더하여 21세기 선교는 인터넷, 여가, 가출청소년, 노인을 비롯하여 인간복제, 종교간의 대화, 세계평화구축을 위한 노력 등 지구촌과 우주의 생존과 보존의 문제가 모두 포함되어야 한다.

차. 선교정책과 전략
선교는 교회가 하느님의 구원의 사역에 복종적으로 동참하는 것을 뜻한다. 선교는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계시의 특수성 곧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가 모든 인류와 자연의 구원을 위한 것이라는 보편성 안에서 선포되고 구현되어야 한다. 하느님은 인종, 성, 문화, 종교를 초월하여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교회는 그 자체가 선교센타가 되어야 한다. 교회는 선교를 위해 존재하고 그것을 위해 부름받은 공동체이다. 교회는 선교 상설위원회를 두고 항시 필요한 선교전략을 수립 및 실천해야 한다. 교회는 모든 선교활동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려고 하지 말고 전문적으로 선교하는 전방부대(다원선교)를 지원하는 후방부대의 역할도 해야 한다. 교회는 선교의 전문이력 및 평신도의 선교훈련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투자해야 한다. 교회 예산의 30%를 선교비로 할당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3. 결론
12회에 걸친 21세기 선교에 관한 강의는 선교의 이론, 역사, 현재 및 미래 등으로 구분하여 진행되었다. 일반 학문과 마찬가지로 신학도 학자의 생각과 상황에 따라 그 이론과 방법이 다를 수 밖에 없다. 나는 이 강의에서 예수의 선교 주제인 "하느님 나라"에 초점을 마추어 전도와 선교, 개인구원과 역사구원, 현재의 구원과 미래의 구원, 인류의 구원과 우주의 구원 등을 조화와 통합의 관점에서 말하고자 하였다.
선교의 주체는 하느님이시고 교회는 도구이기 때문에 그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극히 당연한 우리의 사명이다. 선교는 교역자나 직업적 선교사들의 독점물이 아니라 모든 하느님의 백성이 참여하고 헌신해야 하는 절대적 과제이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자기의 삶의 현장 곧 가정, 사회, 직장 속에서 자기의 인격, 언행, 전문적 지식과 기술을 통해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그것을 실현하므로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 나라 잔치 곧 평화로운 삶을 향유할 수 있도록 헌신해야 하는 것이다.
이 강의를 찾아 주시고 토론에 참여하신 여러 싸이버 교우들에게 감사드리고 이 것을 계기로 하느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되시기를 바라 마지 않는다. Shal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