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겟세마네의 기도 (2017.4.9.)

2017.04.10 08:12

홍목사 조회 수:82

겟세마네의 기도

 

본문: 시편 31:9-16; 마태복음 26:36-46

설교: 홍정호 목사 (2017.4.9. 사순절 제6, 종려주일/고난주일)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고 하는 곳에 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하는 동안에, 너희는 여기에 앉아 있어라.” 그리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서, 근심하며 괴로워하기 시작하셨다. 그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머무르며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예수께서는 조금 더 나아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서 기도하셨다. “나의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주십시오.” 그리고 제자들에게 와서 보시니, 그들은 자고 있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너희는 한 시간도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수 없느냐?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하여라.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구나!” 예수께서 다시 두 번째로 가서, 기도하셨다. “나의 아버지, 내가 마시지 않고서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는 것이면, 아버지의 뜻대로 해주십시오.” 예수께서 다시 와서 보시니, 그들은 자고 있었다. 그들은 너무 졸려서 눈을 뜰 수 없었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그대로 두고 다시 가서, 또 다시 같은 말씀으로 세 번째로 기도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남은 시간은 자고 쉬어라. 보아라, 때가 이르렀다. 인자가 죄인들의 손에 넘어간다. 일어나서 가자. 보아라, 나를 넘겨줄 자가 가까이 왔다.”]

 

1.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종려주일 아침입니다. 사순절 영적 순례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지난 주 교우들과 함께 아시아 선교의 출발지라고 할 수 있는 나가사키 순교성지 순례를 다녀왔습니다. 16세기 예수회의 신부 프란시스코 하비에르(Francisco Javier, 1506-1552)를 통해 복음이 전해진 이래로, 수많은 박해와 순교가 이루어진 땅입니다. 신앙을 목숨과 바꾼 이들의 흔적을 함께 더듬어 돌아다니면서, 그리고 박해를 피해 250년 동안 숨어서 7대에 걸쳐 신앙을 지켜온 가쿠레 기리시탄”(숨은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의 안일한 신앙생활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 시대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요구하는 시대는 아닙니다. 어쩌면 그래서 믿음으로 살기 더 힘든 시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목숨을 버릴 것을 강요받지는 않지만, 하나님 아닌 무언가를 목숨처럼 여기며 살아가도록 길들여진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시대는 신앙생활을 여가의 일종으로 여기는 시대, 바쁜 일상에서 잠시 쉼을 얻고 돌아가는 것으로 만족하며 신앙을 소비하는 데 길들여진 시대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나의 가장 귀한 것을 드려야겠다는 헌신의 마음보다는, 나를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귀한 것을 얻어내야겠다는 이기심이 지배하는 시대를 우리는 신앙인으로 살아갑니다.

 

초대 교부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155-240)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교회는 순교자의 피를 먹고 자랍니다. 로마의 박해를 받던 시절, 그리스도인들은 자기의 목숨과 신앙을 맞바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고,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이 안정과 풍요에 길들자 그들은 순교자가 아닌 박해자가 되었습니다. 관용을 요청하던 그리스도교가 관용을 베푸는 자리에 오르면서 돌아오기 힘든 타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입니다. 이제 제국의 보호 아래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대신, 남을 박해하고, 남의 목숨을 빼앗는 것으로 신앙을 지켜낼 수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예수님의 정신을 배반하는 시대,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시대에 접어들게 된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시대에 순교는 죽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는 것입니다. 일평생에 걸쳐 이 시대가 목숨처럼 여기는 가치들과 씨름하는 삶이 곧 순교입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제몫의 믿음을 감당해 나가는 삶, 그것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의 순교라고 믿습니다.

 

2.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 이후 제자들과 겟세마네에 이르셨습니다. 거기에서 주님은 베드로와 세배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기도하러 올라가셨습니다. 주님은 당신의 깊은 속마음을 제자 셋에게 털어놓으셨습니다.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머무르며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주님은 외로우셨을 겁니다. 예수님 주변에는 사람들이 늘 있었지만, 그들이 주님의 깊은 외로움을 헤아릴 수는 없었을 겁니다. 그 긴 시간의 막바지에 이르러, 주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깨어 있을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너희는 여기에 머무르며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눈 감은 시대를 살아가는 동안 예수님은 당신과 함께 한 이들만이라도 눈 뜬 자들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다른 본문인 누가복음 2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늘 하시던 대로 올리브 산으로가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은 근심과 괴로움에 사로잡히실 때면 산에 올라 기도하셨습니다. 괴로움을 해결하는 여러 방법들이 있습니다. 놀기도 하고, 자기도 하고, 일에 몰두하기도 하면서 괴로움을 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잠시 시름을 잊을 수는 있어도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는 않습니다. 문제를 대하는 태도, 문제를 바라보는 시간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기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주님께서 늘 하시던 대로산에 올라 기도하셨던 것처럼, 근심과 괴로움에 사로잡힐 때면 우리의 몸이 자연스럽게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도록 평소에 훈련을 잘 해 두어야 합니다.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산에 오르셨지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실 때에는 홀로 가셨습니다. 누가복음은 제자들과 예수님 사이의 거리를 돌을 던져서 닿을 만한 거리라고 기록합니다. 제자들과 그만큼의 거리를 두시고, 주님은 하나님 앞에 홀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3.

 

주님은 먼저 당신의 마음을 토해 내셨습니다. 일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우리가 음식물을 토한다고 할 때 이것저것 골라서 토할 수는 없습니다. 속에 있는 것을 거르지 않고, 그대로 쏟아내는 게 토하는 것입니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62:8)하는 시인의 고백은 하나님 앞에서 듣기 좋은 말만 내뱉으려는 우리의 교만에 경종을 울립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토하듯이 기도해야 합니다. 시편을 보십시오. 가장 원색적인 욕망이 그대로 표출됩니다. 사람 앞에서라면 차마 하기 힘든 말들이 거기에 담겨 있습니다.

 

인품이 좋은 사람이라도, 상대방이 토하듯이 뱉어내는 온갖 더러운 말들을 앉아서 계속 듣는 건 힘든 일입니다. 말에는 힘이 있기 때문에, 불평과 불만과 비난의 말은 듣는 이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칩니다. 토하듯이 뱉어내는 말은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합니다. 그분 앞에서는 사람 앞에서 할 수 없는 온갖 말로, 우리의 감정을 토하듯이 내뱉을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은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셔서 당신의 마음을 토하셨습니다. “나의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주십시오.”(39a)

 

우리는 교리적으로 채색된 예수님에 대한 이해에 익숙하기 때문에 주님의 이 고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부터 인류의 죄를 위하여 돌아가실 운명으로 태어나셨다는 교회의 교리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지, 예수님의 인성을 무시하기 위한 가르침이 아닙니다. 주님은 겟세마네에서 외로우셨고, 아무 의지할 데 없이 홀로 하느님 앞으로 나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느님 앞에서 마음을 토하시는 데에서 기도를 그치지 않으셨습니다. 속에 있는 것을 하느님 앞에 다 비워내시고서는 성령으로 당신을 온전히 채우셨습니다. 그렇게 성령에 붙들린바 되신 주님의 기도가 바로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주십시오.”하는 기도입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요. 그렇게 기도하고 돌아와 보시니, 제자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고 당부하셨음에도 제자들은 주님의 괴로움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잠에 빠져 있습니다. “이렇게 너희는 한 시간도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수 없으냐?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하여라.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구나!”(40b-41) 이렇게 꾸짖으시고는 다시 홀로 기도하시러 올라가셨습니다. “나의 아버지, 내가 마시지 않고서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는 것이면, 아버지의 뜻대로 해주십시오.”(42) 그리고 내려와서 보시니, 제자들은 또 자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주님이 그들을 깨우지 않으시고 마지막으로 올라 같은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내려와서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서 가자, 보아라, 나를 넘겨줄 자가 가까이 왔다.”(46)

 

4.

 

겟세마네의 기도는 주님을 따라 기도하는 신앙인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세 가지로 말씀을 드려볼까 합니다. 첫째로, 기도하는 습관이 몸에 들어야 합니다. 특별히 어려운 일이 당할 때에 인간적인 해결에 나서기에 앞서 기도해야 합니다. ‘꼭 기도해야 하나,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 주실 텐데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주님도 기도하셨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습관이 몸에 들지 않으면, 어려운 일 앞에서도 기도할 수 없습니다. 우왕좌왕하면서 문제의 크기에 압도당한 채 근심과 염려로 기도를 대신하기 일쑤입니다. 주님께서 늘 하시던 대로올리브 산에 오르신 것처럼 우리도 기도하는 습관을 몸에 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로, 하느님 앞에 솔직한 심정을 토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앞서 기도를 토하는 것이 비유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우리 안에 있는 더러운 것들을 하느님 앞에 토하지 않고서 우리 안에 성령을 모실 수 없습니다. 자기 욕심으로 가득 찬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 마음의 귀가 닫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음성을 듣고, 뜻대로 행하려면, 먼저 우리 안에 있는 것들을 하느님 앞에 토해내고 비워내는 기도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느님의 뜻을 우리 안에 모시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고, 마음을 토하여 비워냈으면, 이제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 가운데 모시는 기도로 마무리해야 합니다. 기도드릴 때 우리가 바라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은 토하는 기도를 드릴 때 바치십시오. 기도를 끝낼 때는 하느님의 뜻을 우리 가운데 모시는 기도로 반드시 마무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도를 빌미로 하느님을 이용하고, 자기 욕심을 위해 성서를 왜곡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느님의 뜻을 모시는 기도야말로 최고의 기도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일일이 고하는 못하는 기도까지도, 인간적인 계산으로 다 헤아릴 수 없는 저 너머의 일들까지도 하느님은 당신의 계획 가운데 두시고, 우리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예비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을 가질 때 우리는 예수님처럼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해주십시오.”하는 기도를 바칠 수 있는 것입니다.

 

5.

 

이제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일상의 작은 섬김과 사랑의 실천에 나서는 한 주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하신 주님의 음성을 기억하며, 세상의 아픔에 귀 기울이는 한 주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가운데, 주님도 괴로우셨습니다. 주님도 낙심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낙심하는 데에 머물지 않고,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셨습니다. 그리하여 받아들일 것을 받아들일 용기를 얻으시고, 겪어내야 할 십자가를 겪어낼 수 있는 믿음을 얻으셨습니다. 낙심하지 마십시오. 주님이 낙심을 이기셨습니다. “돌을 던져서 닿을 만한 거리에서 주님이 앞서 기도하고 계심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너희는 여기에 머무르며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하신 주님의 명령을 기억하면서, 한 주간도 주님과 함께 깨어 기도하며 십자가 고난의 길에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43 공생(共生)의 길 (2017.7.23.) 홍목사 2017.07.23 84
742 순례자의 길 (2017.7.16.) 이원로 2017.07.17 76
741 문화종교를 넘어서 (2017.7.9.) 홍목사 2017.07.09 181
740 주님을 모시는 사람 (2017.7.2.) 홍목사 2017.07.02 86
739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2017.6.25. 청년헌신예배) 이원로 2017.06.26 100
738 희망의 사람 (2017.6.18.) 홍목사 2017.06.18 102
737 주님의 대사 (2017.6.11. 삼위일체주일) 홍목사 2017.06.12 76
736 성령으로 충만하게 (2017.6.4. 성령강림절) 홍목사 2017.06.04 85
735 그들도 하나 되게 (2017.5.28. 승천주일) 홍목사 2017.05.28 83
734 사탄을 이기는 사랑 (2017.5.21.) 이원로 2017.05.22 96
733 누구의 자녀인가 (2017.5.14. 어버이주일) 홍목사 2017.05.15 83
732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2017.5.7.어린이주일) 홍목사 2017.05.08 79
731 두려움에서 사랑으로 (2017.4.30.야외예배) 홍목사 2017.05.01 94
730 예수 그리스도, 우리 교회의 중심 (2017.4.23. 창립 35주년 기념주일) 이원로 2017.04.23 92
729 갈릴리로 가자 (2017.4.16. 부활절) 홍목사 2017.04.17 81
728 망하는 은혜 (2017.4.14. 성금요일) 홍목사 2017.04.17 72
» 겟세마네의 기도 (2017.4.9.) 홍목사 2017.04.10 82
726 참사람의 길 (2017.4.2.) 홍목사 2017.04.02 85
725 참으로 눈 뜬 사람이고자 (2017.3.26.) 홍목사 2017.03.26 107
724 빌라도의 판결 (2017.3.19.) 이원로 2017.03.21 4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