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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우리 교회의 중심


본문: 시편 100:1-5, 에베소서 4:7-16 

설교: 이계준 목사 (2017. 4. 23. 교회 창립 35주년 기념주일)

 

오늘 우리교회가 창립 35주년을 맞이하게 되니 실로 감개가 무량합니다. 35년이란 세월은 영원한 시간에 비하면 한 점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우리의 짧은 인생에 비하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긴 시간이라고 하겠습니다. 처음 개척할 때 참여했던 교우들 가운데는 이미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가신 분들도 계시고 멀리 떠난 분도 계시며 남아있는 분들은 모두 연로하여 2선으로 물러났습니다.


지난 세월동안 하느님의 은혜와 교우 여러분들의 헌신으로 큰 어려움 없이 교회가 발전하였고 교회의 책무가 2세대로 순조롭게 옮겨진 것은 실로 감사한 일입니다. 특히 우리사회의 급격한 노령화에도 불구하고 우리교회는 교회학교를 제외하고는 연령층의 분포도가 균형을 이룬 것도 또한 감사할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앞으로 우리 젊은이들의 새 가정을 통해 새 생명들이 많이 탄생하면 교회학교도 활성화되리라고 믿습니다.


35세란 나이는 사람이 태어나 성장과정을 거쳐 사회의 일원으로 독자적 역할을 감당하는 혈기왕성한 시기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제 우리교회는 새로운 희망과 새로운 계획에 따라 새 시대가 요청하는 주님의 교회가 되기 위해 혼신을 다해야 할 때를 맞이했습니다. 이 시간 우리교회에게 주어진 과제가 무엇인지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전한 말씀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 곧 교회의 직분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각 사람에게 직분을 나누어주시므로 사도와 예언자, 복음 전도자와 목사와 교사를 두셨다고 합니다. 직분의 역할은 성도들을 훈련시켜서 봉사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일과 그리스도 신앙과 지식에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와 같은 온전한 존재가 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4:11-13)


사도 바울은 여기서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값없이 주신 직분이 교우들을 신앙적으로 성장하도록 훈련시키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합니다. 다양한 인종과 종교와 문화를 배경으로 한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과 지식의 조화를 이루고 드디어 성숙한 크리스천이 되도록 인도하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창립 당시 개척의 명분을 밝히기 위해 신반포교회 헌장을 제정하였는데 거기에는 바울의 사상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21세기란 새 시대를 전망하면서 세속적이고 다종교적 상황에서 교회의 의미와 기능과 목표를 설정한 것입니다. 그것은 다원사회에서 예배, 친교, 교육을 통해 성숙한 크리스천으로 발전하여 하느님의 선교에 자율적이고 창조적으로 이바지하는데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밖에 없는 생명과 인격을 주시는 동시에 우리교회에서 신앙생활과 주어진 역할을 통해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도록 축복하셨습니다. 이것은 기술문명의 꽃은 만개하였으나 정신적 고갈에 허덕이는 21세기란 기이한 시대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도로 세우려는 것입니다. 실로 놀라운 은총의 기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창의적이고 솔선적인 성숙한 신앙인으로 또한 그리스도의 사도로 발돋움하려면 이런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우리는 먼저 그리스도 중심 생활을 통해 자신의 크리스천 정체성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과 부활 생명이란 삶의 맛을 음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참 사랑의 교제로 유무상통하므로 계층을 초월하여 하나 되고 하느님 나라 잔치를 즐기게 됩니다. 마침내 봉사와 선교를 통해 자기집착에 벗어나므로 인생의 절정인 성숙한 인간상에 이르게 됩니다. 성숙한 인간상이란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한계와 제약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위해 자기 삶을 올인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하므로 영혼구원과 사회구원을 함께 이루게 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신앙전통이고 감리교 교조인 존 웨슬리의 신앙전통입니다.


제 이야기를 말씀드려 죄송합니다만, 저는 신학생 시절 주일마다 아침부터 밤까지 교회에서 필요한 일은 무엇이나 가리지 않고 했습니다. 교회학교 교사, 어린이 성가대, 고등부 교사, 성가대 반주, 청년회 회장, 연통청소부까지. 교회가 가난하여 장학금도 교통비도 없었으나 그 대가는 제 인생의 밑천인 크리스천 정체성이란 값진 선물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각자의 사명과 역할에 감사하고 창조적으로 극대화하는데 헌신할 수 있기 바랍니다. 우리가 교회와 이웃을 위한 깊은 관심과 남모르는 수고, 끊임없는 기도와 지극한 헌신은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고 교회와 사회를 사랑과 생명이 넘치는 하느님나라로 만들 것입니다

       

둘째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우들에게 경고장을 보냅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린아이 같은 신앙의 유치한 단계를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면서 인간의 속임수나 간교한 술수에 빠지거나 온갖 세속적인 풍설에 놀아나지 말아야 한다고 권합니다.(4:14)

여기서 바울이 말한 속임수와 간교한 술수에 관해 딤전 4:1-5에 밝힌 바에 따르면 거짓 교사들의 말을 뜻하고 있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믿음에서 떠나 속이는 영과 악마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인데 이들은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은 먹지 말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은 모두 좋은 것이고 믿는 사람들과 진리를 아는 사람들이 감사한 마음으로 먹게 하시려고 만드셨다고 바울은 말합니다.


초대교회처럼 원시시대가 아닌 21세기 문화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유치한 단계 곧 신앙생활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1950년대 6.25 직후에는 통일교와 신앙촌을 비롯해서 수많은 사이비종교가 나타났고 사람들은 이 왜곡된 종교에 휩쓸려 다녔습니다. 사회가 혼란할 때는 사이비종교가 득세하기 마련인데 제 어머니도 한때 박태선 장로에게 미혹된 적이 있었지만 제 권면을 들으시고 발을 끊으셨습니다.


아마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치한 단계란 곧 일차원적인 물질, 명예, 권력 등 인간적인 욕망에 사로잡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이 하느님 신앙을 배반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그 우상을 맹종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교회나 종교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측면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아마도 근자에 나타난 새로운 현상은 촛불박사모같은 이념이나 인간을 절대시하는 사이비 종교가 아닌가 합니다. 신학자 P. 틸리히는 상대적인 것을 절대시하는 것을 사이비종교(pseudo-religion)라고 정의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하느님 대신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 승배한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대인은 자본주의, 물질주의, 공산주의, 과학주의, 민족주의 등 인간중심적 가치나 이념을 만들어 절대시하고 우상시하므로 사이비종교의 신자가 되고 파멸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크리스천이나 비 크리스천을 막론하고 세속주의적인 것을 추종하다가 파국에 처한 국가와 인간의 비극을 무수하게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크리스천은 유사 종교에 대해 언제나 경계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상대적인 것을 절대화 혹 우상화하면 바로 그것이 우리의 삶과 역사를 파멸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치한 단계 곧 세속주의적 온갖 유혹을 항상 경계할 뿐만 아니라 우리 안팎에 있는 모든 우상들을 하느님의 사랑의 용광로에 몽땅 넣었다가 하느님 나라를 위한 도구로 새롭게 창조할 수 있는 수련공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하느님과 세상,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을 따로 국밥처럼 이원론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두 가지를 비빔밥으로 섞어 만들 수 있는 세련된 신앙적 솜씨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직면한 실존적, 사회적 위기에서 취해야 할 성숙한 크리스천의 자세라고 믿습니다

 

셋째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우들에게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진리를 말하고 모든 면에서 성장하여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처럼 성숙해야 한다고 합니다. 몸에 속한 지체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조화를 이룬 유기체이며 각기 주어진 기량을 극대화함으로서 사랑가운데 교회는 이루어진다고 합니다.(4:15-16)


바울은 여기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실천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전파하신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부름 받았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말이나 교리나 이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진리를 전하는 것으로서 그 방법은 하느님의 사랑이란 도구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사랑으로 전한다는 것은 우리의 존재와 소유 전체가 하느님의 사랑의 용광로에 들어갔다가 온전히 새로운 존재로 태어났음을 뜻합니다. 하느님 사랑으로 다시 태어난 새로운 존재만이 하느님 나라를 위해 쓸 만한 도구가 됩니다. 그 때 비로써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처럼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성숙함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의 자화상에 관해 이렇게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이름 없는 사람 같으나 유명하고 죽은 사람 같으나... 살아 있습니다.... 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사람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고후 6:8b-10) 결국 바울은 외적 빈곤 속에서 내적 풍요를 구가하며 살아간 역설적 인간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좋아하고 항상 기억하며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지만 그대로 살아내지 못해 아쉬움이 남습니다. 빈곤 속에 풍요한 삶을 향유하고 마음의 가난 속에서 만족을 즐긴다는 것, 그 이상의 기쁨과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실로 하느님은 아름답고 놀라운 은총의 환경을 우리를 위해 마련해 주셨습니다. 고로 우리는 풍요 속에서 영적 궁핍에 허덕이지 않도록 주님께 간구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세상에 가지고 오지 않았으므로 아무것도 가지고 떠나갈 수 없습니다.”(딤전 6:7) 세상의 모든 존재와 소유는 하느님께서 지우신 것이고 우리가 이 땅에 있을 때 하느님 나라를 위해 쓰라고 주신 것들입니다. 우리는 주어진 선물을 영원한 행복을 위하고 이웃에게 큰 기쁨이 되고 하느님나라 건설을 위해 전적으로 활용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 진리를 실천할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지상 목표는 선교입니다. 한 때 우리교회는 예산의 30%를 선교비로 활용하였으나 헌금의 감소로 지금은 10%정도에 그치므로 언젠가는 선교의 중단이 불가피할 것 같아 심히 염려됩니다. 감사하게도 2년 전에 계간지 <성서와 문화>를 우리교회가 속간하게 되므로 문서선교의 지평으로 세계적으로 확산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선교란 문서선교에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의 선교가운데는 중단해서는 아니 될 것이 여럿 있습니다. 교회의 존재이유가 선교인데 우리의 선교적 관심과 열정이 식는다면 그것은 곧 우리 크리스천의 정체성과 교회의 존재이유의 상실이므로 일대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교회의 또 하나의 선교적 과제는 바람직한 존속을 위해 2-30대의 육성이라고 하겠습니다. 이 작업은 1세대가 2세대에게 쏟았던 관심 이상의 것을 요구할지 모릅니다. 지금 젊은 세대는 탈기독교 및 탈종교적 사회분위기에서 성장하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남다른 관심과 헌신을 투자하지 않는 한 오늘날 한국교회의 교회학교의 실상처럼 우리교회의 미래는 불확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개인주의와 해체주의, 과학주의와 물질주의가 인간과 역사를 위협하는 시대에 하느님 나라 건설의 일꾼으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제 우리 자신과 우리교회가 이 부르심에 믿음과 소망과 사랑가운데 응답하고 하나 되어 1100할 수 있는 성숙한 주님의 제자로써 주어진 사명에 헌신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 사명에 최선을 다 하였으니 이제 나와 함께 기쁨을 누리자.”는 주님의 축복을 받게 되기를 빌어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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