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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을 이기는 사랑 (2017.5.21.)

2017.05.22 10:51

이원로 조회 수:45

사탄을 이기는 사랑 


본문: 마태 4:1-11;로마 13:8-10

설교: 신반포교회 이계준 목사 (2017. 5. 21.)

 

1.


지난 반세기 동안에 우리는 여러 가지 급격한 사회변화를 경험하였습니다. 농촌 초가집에 살던 인구의 7-80%가 도시의 아파트에 살게 되고 시골의 이웃사촌의 인간관계가 전자매체인 인터넷, SNS, 카톡, 아이폰의 소통관계로 변하였습니다. OECD 국가가운데 학력이 가장 높고 문맹 0%란 세계 최고의 기록에 이르렀으며 컴퓨터 보급률도 세계 1위를 기록하므로 문맹국에서 준 문명국으로 바뀌었습니다. 또한 다원사회 속에서 개인 간에, 세대 간에 가치관의 차이도 크고 다양해졌습니다.


이러한 외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랜 세월동안 우리 조상들을 통해 전해 내려온 언행일치라는 덕목입니다. 이 말은 위급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지켜야 할 도덕 율로 남아있습니다. 물론 정치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지식인들이나 종교인들까지 거짓말을 밥 먹 듯 하는 세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인격을 평가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잣대로 계속 활용되고 있습니다

     

며칠 전 새 정부가 어떤 법학대학원 교수를 청와대 중요 직책에 임명한 것이 시비 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평소에 폴리펫서곧 대학교수가 정치에 관심을 갖고 교수직에 소홀히 하는 자들을 비판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자신이 언행일치를 저버리는 폴리펫서가 됨으로써 자기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부도덕의 덧에 걸린 것입니다.


이런 행태는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보는 것이고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중인격의 문제는 다른 동물에는 없기 때문에 동물은 자기 존재감을 지니고 살아가는 반면에 유독 인간만이 본래의 모습을 벗어나므로 스스로 자기 존재를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인격적이고 무책임한 일이 일어나는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것은 사회심리학자 E. 프롬의 고전적 표현을 따르면 존재보다 소유에 관심을 집중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존재 곧 사람됨에 충실하지 아니하고 소유 곧 재물, 권력, 명예 등에 매몰되므로 일어나는 인격의 분리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성경에서는 인간의 인격을 분리시키는 존재를 사탄, 마귀 혹은 악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마귀에 사로잡힌 환자들을 많이 고치셨지만 그분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직접 사탄과 직면하셨습니다. 오늘의 본문인 마태복음에는 예수를 유혹한 사탄의 특성 곧 인격과 관계를 분열시키는 흉게가 밝히 나타나 있습니다

  

먼저 사탄은 예수에게 돌을 떡으로 만들라고 요구하면서 예수의 인격을 유물주의자로 변질시키려고 유혹합니다. 이에 대해 예수께서는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산다면서 사람은 물질과 정신이 융합된 인격체임을 선언하므로 유혹을 극복합니다.


그다음으로 사탄은 예수를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서 뛰어내려보라. 하느님이 천사들을 보내 네 발이 상하지 않게 보호할 것이다.’고 합니다. 하느님과 예수 사이의 신뢰관계를 이간질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면서 하느님과의 신뢰관계를 명확히 공표함으로써 유혹을 물리칩니다.


끝으로 사탄은 예수를 높은 산 위로 다리고 올라가서 세상의 나라와 영화를 보여준 다음 자기에게 절하면 모든 것을 다 주겠다고 합니다. 예수에게 권력과 명예란 세속적 욕망을 부추기므로 탄압과 착취와 갑질로 사회적 분열을 일삼도록 꾀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로지 하느님에 대한 절대 신앙을 강조함으로써 사탄의 유혹을 완전히 물리칩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사탄은 예수를 물질주의자, 신뢰의 파괴자, 욕망 숭배자로 만들어서 인격과 사회를 분열시키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께서만 받으신 유혹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계속 일어나고 있는 유혹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항상 이런 유혹을 당할 때 때로는 갈등도 하고 물리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에 굴복하면서도 습관화되고 체질화되어 아무런 고민 없이 지나쳐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은 실상 인간의 인격만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역사의 분열에도 크게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신학자 P. 틸리히는 사탄이 사람을 사로잡으면 소위 노이로제 곧 정신분열증을 일으켜서 인격을 파괴하고 사탄이 사회적으로 작용하면 계층 간의 분열과 갈등을 야기하고 사탄이 히틀러 같은 권력자를 사로잡으면 국수주의가 나타나 모든 나라와 대립하고 전쟁을 일으킨다고 했습니다

 

P. 틸리히는 자기가 직접 경험한 사실에 대해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치가 권력을 잡은 후에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이전에도 마태복음이 사탄이라고 한 것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즉 처음부터 거짓말하고 살인을 일삼고 거짓으로 독일을 장악하고 거짓이 통하지 않을 때는 살인을 일삼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런 일을 악마적 분열의 결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런 시각에서 우리 자신과 주변을 보면 세상은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악마가 지배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날 노이로제 증후군은 말과 행동이 다르고 자기 인격이 분열된 군상과 함께 우리 사회에 편만한 남녀노소, 지방과 지방, 계층과 계층, 정규직과 비정규직, 이념과 이념 등의 갈등과 분열의 제일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근원적으로 싸워야 할 주적은 핵으로 위협하는 김정은이나 독점 기업가나 귀족노조나 혹은 어떤 이념이나 사상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모두 사탄의 도구에 불과합니다. 문제는 우리와 함께 있으면서 우리를 유혹하는 사탄 그 자체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과 공존하는 이 사탄을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진다고 할지라도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3.


이런 사탄의 마수는 정신의학적으로는 치료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 인격, 사회, 역사의 분열과 파괴하는 사탄의 역사를 극복하려면 우리의 삶과 모든 것을 일치와 조화로 인도하는 고차적인 참 길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로마서 본문은 사탄의 분열을 치료하는 특효약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다 이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계명은 간음과 살인, 도둑질과 탐욕 등 이웃을 해치는 것을 금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에 함축되어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악행을 금하는 계명이 삶의 안내서는 되지만 악의 원인인 사탄을 제거하기에는 역부족이고 이웃을 사랑하면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으로 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웃사랑이전에 한 가지 전제조건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곧 자기사랑인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자기 사랑이란 이기주의적 자애(自愛)가 아니라 자기의 본래 모습을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요한1서는 하느님은 사랑이시다.”(4:16)고 했습니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 그분의 모습대로 인간을 창조하셨으므로 우리의 본래 모습은 곧 사랑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사랑이란 실체를 온전히 보존하고 극대화시키는 것이 곧 우리가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는 한 처음 태어날 때 하느님의 모습인 사랑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뱀의 가죽을 쓴 사탄의 유혹을 따르므로 정신분열증 환자가 된 것입니다. 그들은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하느님처럼 된다는 꼬임에 빠져서 자신의 본래 모습인 사랑에 금이 갔습니다. 이것은 하느님과의 신뢰관계, 이웃 간의 인관관계 그리고 인간과 자연간의 보존관계를 파괴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탄의 파괴력이 후손인 가인과 아벨에 가서는 인간관계의 전적 파탄인 친족살인에까지 미친 것입니다.

아담과 해와 이야기는 사탄의 세력이 얼마나 크고 악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원초적 모습 곧 하느님의 사랑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데 심혈을 기우려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명과 육신, 인격과 삶 전체를 통합하고 조화롭게 하며 아름답게 만드는 창조적 예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랑의 힘으로 예수처럼 원숙한 자화상을 조형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이러한 자기 사랑은 유아독존적 자기사랑이 아니라 이웃사랑으로 이어집니다. 인간의 원형이시고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연히 이웃도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 가족과 함께 모든 이웃은 하느님의 같은 모습으로 창조되었으므로 온 인류가 형제자매이기 때문입니다. 서로 사랑하고 하나 됨은 극히 지당한 것이고 이를 통해 자신은 물론 이웃과의 분열을 극복하는 동시에 한 가족, 한 공동체를 이루게 됩니다. 교회는 이를 위한 훈련소입니다.


사랑은 구체적으로 경청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위로하시고 권고하시며 인도하시고 소망을 주십니다. 상담의 제일 원리는 피상담자를 경청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과 얼굴을 맞대고 서로 말과 생각에 귀기우릴 때 우리는 정서적으로, 인격적으로 하나 되므로 우리의 사랑은 완성에 이르게 됩니다. 사랑에는 인격 및 이웃과의 관계를 분열시키는 시기와 교만, 자기 이익과 불의는 사라지고 진실과 인내, 온유와 용납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전 13:4-7)

사랑은 구체적으로 자기 존재와 소유를 나누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자기 모습과 피조물들을 값없이 주셨으므로 사랑에는 우리의 삶과 먹거리 등 우리 존재와 소유를 나누려는 생명력과 희생의 DNA가 들어있습니다. 한 가지 놀라운 기적은 우리가 줌으로써 생긴 빈 공간은 더욱 풍성해지고 희생의 대가는 기쁨과 행복으로 넘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구체적으로 돌보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주를 섭리하시는 분주한 일정 가운데서도 우리에게 날마다 새 아침과 그날의 먹거리와 단잠으로 우리를 한 결 같이 돌보아주십니다. 우리는 일상의 메카니즘에 사로잡혀 자신을 돌보는데 방심하기 쉽습니다. 예수께서는 일과 후 종종 한적한 곳에서 자신을 깊이 성찰하신 것처럼 우리도 늘 깨어서 자기의 본래 모습이 사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성찰해야 하겠습니다.


이렇듯 자기 자신을 돌보는 사람만이 이웃을 돌볼 자격과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우리는 자기 사랑으로 충만할 때 돌보아야 할 이웃이 눈에 보이게 됩니다. 이웃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자기 분열증 때문에 이웃과의 갈등과 대립만을 일삼게 됩니다. 그러므로 진정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사람은 모든 율법을 완성한 사랑의 화신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세계적으로 심지어 생태적으로 사탄의 위력과 폭거로 인해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특히 세계정세는 강대국들의 국수주의의 극대화로 인해 국가 간의 분열이 극에 달하고 자칫 히틀러 같은 광인이 돌출해서 핵전쟁을 일으킬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이런 인간의 생명과 인류의 삶 전체를 위협하는 사탄의 세력을 물리칠 수 있는 것은 우리 신앙의 힘 곧 우리 각자가 자기 존재는 물론 사회와 세계 및 자연까지 하나 되고 융합시키는 사랑의 힘을 발동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사랑만이 만병통치이고 사랑만이 핵을 제압할 수 있는 힘이고 인류와 자연을 되살리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자기 모습대로 창조한 것은 사랑으로 사탄의 권세를 물리치고 인류에게 영원한 삶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지속적이고 새로운 창조에 참여하므로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하느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는 그의 신실한 백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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