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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집 (2017.7.30.)

2017.07.30 14:19

홍목사 조회 수:64

하나님의 집

 

본문: 창세기 28:10-22; 로마서 8:26-39

설교: 홍정호 목사 (2017.7.30. 성령강림 후 제8)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서, 하란으로 가다가, 어떤 곳에 이르렀을 때에, 해가 저물었으므로, 거기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는 돌 하나를 주워서 베개로 삼고, 거기에 누워서 자다가, 꿈을 꾸었다. 그가 보니, 땅에 층계가 있고,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아 있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 층계를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다. 주님께서 그 층계 위에 서서 말씀하셨다. “나는 주, 너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보살펴 준 하나님이요, 너의 아버지 이삭을 보살펴 준 하나님이다. 네가 지금 누워 있는 이 땅을, 내가 너와 너의 자손에게 주겠다. 너의 자손이 땅의 티끌처럼 많아질 것이며, 동서 남북 사방으로 퍼질 것이다. 이 땅 위의 모든 백성이 너와 너의 자손 덕에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며, 내가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 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 야곱은 잠에서 깨어서, 혼자 생각하였다. ‘주님께서 분명히 이 곳에 계시는데도, 내가 미처 그것을 몰랐구나.’ 그는 두려워하면서 중얼거렸다.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 곳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다.” 야곱은 다음날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베개 삼아 벤 그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베델이라고 하였다. 그 성의 본래 이름은 루스였다. 야곱은 이렇게 서원하였다.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고, 제가 가는 이 길에서 저를 지켜 주시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고, 제가 안전하게 저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시면, 주님이 저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 제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모든 것에서 열의 하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1.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에 관한 말씀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야곱이 누구인지 아시지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과 리브가 사이에서 난 에서의 쌍둥이 동생입니다. 야곱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머니의 태에서부터 형과 싸웠다고 하죠. 태어날 때는 형이 먼저 나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는 듯 형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나왔다고 합니다. ‘발뒤꿈치를 잡다’, ‘속이다라는 뜻의 야곱이라는 이름은 그렇게 얻게 된 것입니다.

 

장성한 야곱은 아버지를 속여 형 에서에게 돌아가야 할 장자의 축복을 가로챕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형 에서는 격분했습니다. 야곱을 죽여 한을 풀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 리브가가 야곱에게 네 형의 분노가 풀릴 때까지, 하란에 있는 외삼촌 라반의 집에 머물러있으라고 말합니다. 야곱은 어머니의 권고에 따라 하란에 있는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가 있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야곱의 외삼촌 라반이 있는 하란으로 도망가는 중에 야곱이 겪은 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야곱은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축복의 내용이 무엇이었는지는 창세기 2728절 이하에 나옵니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이슬을 내려 주시고, 땅을 기름지게 하시고, 곡식과 새 포도주가 너에게 넉넉하게 하실 것이다. 여러 민족이 너를 섬기고, 백성들이 너에게 무릎을 꿇을 것이다. 너는 너의 친척들을 다스리고, 너의 어머니의 자손들이 너에게 무릎을 꿇을 것이다. 너를 저주하는 사람마다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사람마다 복을 받을 것이다.” 야곱은 이런 풍요한 축복을 이삭으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러나 축복을 받은 다음부터 야곱에게는 고난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기름진 땅에서 곡식과 새 포도주가 넉넉한 삶을 향유하기는커녕 도망 길에서 돌 하나를 주워, 그것을 베개 삼아 노숙을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나중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만, 라반의 집에 도착해서도 고생은 계속되었습니다. 형 에서의 분노를 피해 잠시만 머물러 있으려 했던 라반의 집에서 야곱은 20년을 머물면서 머슴살이로 그의 청춘을 다 보냅니다. 그 축복의 말 한마디가 뭐라고 이 고생을 해야 하는 걸까요.

 

2.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말 자체는 음성과 낱말의 조합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만, 말은 사건을 일으키기 때문에 힘이 있습니다. 사건은 실체와 대비되는 개념입니다. 실체는 눈에 드러나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건은 눈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파장을 일으키고 흔적을 남깁니다. 여러분, 야구 좋아하세요? 저는 올해부터 야구를 좀 좋아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아직 뜻대로 되지는 않습니다. 엊그제 LG 박용택 선수가 9회 말 투아웃에 2점 홈런을 쳐서 역전승 하는 걸 봤는데, 이런 재미에 야구에 빠지는구나 싶더군요. 어떤 철학자는 야구경기로 사건의 개념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야구 경기장에 가는 건 눈에 딱 들어오는 개별적인 실체들, 예를 들면 박용택 선수라든지, 정성훈, 봉중근 선수라든지 하는 인물 개인을 보러가는 게 아닙니다. 그러려면 선수들이 연습하는 곳에 찾아가 그 선수만 보면 되겠죠. 또 공이라든지, 방망이라든지, 글러브라든지 하는 개별적 실체들을 따로따로 확인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이 경기장을 찾고, TV 중계를 보는 것은 야구를 구성하는 이런 개별적 실체들이 상호작용하면서 일으키는 사건을 경험하고, 거기에 동참하기 위해서입니다. 공과 글러브라는 개별적 실체들이 그 자체로 중요한 게 아니라, 공과 글러브 사이에 어떤 사건이 일어나느냐가 야구 경기의 관건인 것입니다. 투수의 손을 빠져나간 공이 포수의 글러브로 들어가는 그 짧은 시간에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그 공이 이 되느냐, ‘스트라이크가 되느냐, ‘안타가 되느냐, ‘파울이 되느냐, 아니면 홈런이 되느냐가 관전 포인트지, 공과 글러브라는 실체를 따로 따로 관찰하기 위해 야구경기를 보는 게 아닙니다. 

 

말과 사건의 관계도 이와 같습니다. 제 말이 여기에서 저기로 전달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제 말이 여러분에게 다가가는 짧은 순간에 어떤 사건이 일어나느냐가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말씀은 삶에 변화를 일으키는 사건이 되어야 합니다. 히브리서의 저자는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어서, 어떤 양날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도를 밝혀냅니다.”(4:12) 이것이 사건을 일으키는 말씀의 힘입니다.

 

이삭이, 에서에게 돌아가야 할 축복의 말을 야곱이 가로챈 줄 알고서도 그 말을 철회할 수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말은 취소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말이 일으킨 사건은 철회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축복의 말은 이미 야곱의 삶에 가닿아 축복의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이 일으킨 사건을 돌이킬 수 없는 것입니다. ‘한 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속담은 말의 이런 사건성을 적절히 표현한 것입니다. 이삭이 '말'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너에게 복을 주셔서,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시고, 마침내 네가 여러 민족을 낳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너와 네 자손에게도 주셔서, 네가 지금 나그네살이 하고 있는 이 땅,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이 땅을, 네가 유산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바란다.”(28:3-4) 

 

그러나 축복을 받은 야곱은 여전히 나그네살이를 하는 척박한 현실에 놓여 있었습니다. 나그네살이라고 하니까 낭만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습니다만, 난민의 처지에 다름 아니라는 뜻입니다. 히브리민족의 히브리라는 낱말이 떠돌이, 어중이떠중이를 뜻하는 하비루에 그 어원을 두고 있다는 말씀을 몇 차례 드린바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히브리민족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 저리 떼를 지어 다니는 별 볼일 없는 떠돌이에 불과한 이들이었습니다. 연관성이 있는 낱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우리말에도 하비루와 발음이 비슷한 낱말이 있습니다. ‘하바리입니다. “품위나 지위가 낮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입니다. 떠돌이 하비루는 어느 곳에서나 하바리취급을 당했을 겁니다. 그런데 이삭은 하나님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셔서, 네가 지금 나그네살이 하고 있는 이 땅을 유산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축복했습니다. 한국에 들어 온 난민들이 이런 기도를 드린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난민들이 여기에서 편히 지낼 수 있겠습니까? 히브리민족이 거듭해서 고난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3.

 

야곱은 광야에서 돌을 베개 삼아 자다가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야곱은 하느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며, 내가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 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내가 너를 떠나지 않겠다.”(15) 꿈에서 깨어난 야곱은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변한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광야의 마른 풀은 그대로였고, 도망 길에 오른 자신이 처지가 하루아침에 변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한 가지 귀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이 곳에 계시는데도, 내가 미처 그것을 몰랐구나.”(16b) 하는 깨달음입니다. ‘주님께서 분명히 이 곳에 계시는데도, 내가 미처 그것을 몰랐구나!’ 야곱은 자기가 딛고 선 그 자리가 주님께서 계신 곳, 하나님의 집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여기가 바로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이후로, 라반의 집에 도착해서 보낸 20년의 세월은 야곱의 이 깨달음 때문에 가능했던 시간이었을 겁니다. 자신이 아버지와 형을 속인 것처럼, 외삼촌에게 속고 또 속았지만, 야곱은 그 긴 세월을 이곳이 바로 하나님의 집이다하는 고백으로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견뎌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상황 가운데에서도 감사하고 자족하는 법을 배워, 연단의 시간이 끝난 후에는 큰 일가를 이뤄 형 에서와 감격적으로 재회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야곱이 받은 축복이 무엇인가요? 많은 재물과 유산을 얻게 될 것이라는 번영의 복을 받은 것이기도 하겠습니다만, 저는 야곱의 이 깨달음야말로, 자기가 딛고 선 자리가 어디이든지 간에 이곳이 하나님의 집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을 얻게 된 것이야말로 축복 중에 축복이라고 믿습니다.

 

야곱은 꿈을 꾼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베개 삼아 밴 그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곳을 베델’,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성서는 그 땅의 원래 이름이 루스였다고 말합니다. ‘루스베델이 된 것입니다황량한 광야 한 가운데에서 돌베개를 베고 잠든 자리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거기에 함께 계시면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고백입니다.  

 

야곱이 척박한 루스 땅을 베델이라고 명명한 것처럼, 우리는 우리 삶의 모든 장소를 하나님의 집으로 호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기는 계시고 저기는 안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꽃길에만 계시고 가시밭길에는 안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당신을 의지하며 축복의 언약을 이어가는 이들의 삶 한 가운데, 그들이 거하는 곳이 어디일지라도 거기에 함께 계시는 분입니다. 루스가 베델이 되는 체험을 한 후에 야곱은 이렇게 서원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고, 제가 가는 이 길에서 저를 지켜 주시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고, 제가 안전하게 저의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시면, 주님이 저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 제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모든 것에서 열의 하나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20-22)

 

야곱의 이 기도는 얼핏 하나님께 조건을 달고 거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이것은 하나님과 야곱이 맺은 신실한 계약을 뜻하는 것입니다. 사람과 맺은 계약은 어그러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맺은 계약은 변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축복의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고, 사도들과 교회를 통해 오늘 그 약속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에게까지 계승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 완성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이 계약에 믿음으로 참여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 한 번 맺으신 언약을 파기하지 않으시고, 영원토록 그 약속을 이루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4.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지금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을 향해 가는 것과 같은 막막함 가운데 있는 분이 계십니까? 축복 받은 삶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앞날을 알 수 없는 불안과 초초함 가운데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야곱의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곳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다.”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을 있게 하신 그 자리, 비록 그곳이 거칠고 황량한 광야와 같은 장소라 할지라도, 그곳이야말로 하나님의 집이요, 하늘로 들어가는 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야곱이 그랬던 것처럼, 여러분이 딛고 선 고난의 자리를 언약의 장소로 새롭게 호명하시기 바랍니다. 루스가 베델이 되는 기적을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야곱은 광야 고난의 상징이었던 돌베개를 성전의 기둥으로 세워, 언약의 표지로 삼았습니다. 돌베개를 베고 잠들어야 했던 광야의 시련과 고난 앞에서도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기억하고, 언약을 다시 새겼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그가 지금 딛고 선 땅을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거룩한 땅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그리고 야곱이 스스로 고백한 것처럼, 야곱은 험악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모진 세월을 살아가는 동안, 그가 만난 모든 이들과 경험했던 모든 일들 가운데에서도 야곱은 여기가 하나님의 집이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비록 인간적으로 결함이 많은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과 이삭의 축복의 언약을 잇는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루스가 베델이 되는 축복이 임하길 기원합니다. 여러분이 지금 딛고 선 그 자리가 하나님의 집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한 주간도 주님의 크신 은총과 평화가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과 가정 가운데 함께 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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