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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놀이 

             

본문: 창세기 1:31-2:1-4, 에베소 2:1-10 

설교: 이계준 목사 (2017. 8. 13. 광복기념주일)


우리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특징은 여러 가지 있겠지만 자기가 누구인지 묻는 존재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인간에 대한 여러 정의가 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것들이 이를테면 도구를 만드는 인간”(homo faber), “지식을 탐구하는 인간”(homo sapience), “놀이하는 인간”(homo ludence) 등이라고 하겠습니다.


인간이 지구상에 나타나서 장기를 만들어 수렵하고 농사를 지으며 기술과학을 발전시켰습니다. 인지능력이 발달하면서 자기 존재와 함께 우주만물에 대한 의미를 추구하므로 오늘의 지식세계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20세기에 이르러 인간의 능력과 지식보다 놀이의 의미를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삶에서 놀이의 중요성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놀이하는 존재로 정의한 것은 네덜란드의 요한 하위징아라는 학자라고 합니다. 그는 놀이의 특징은 자유스러운 것, 바로 자유인 동시에 그것은 일상적이거나 실제생활이 아니다. 그것은 일상을 벗어나서 아주 자연스런 일시적인 활동에 속하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지금 북한의 ICBM 개발로 미국과 북한 사이의 일촉즉발 위기상황에서 청와대는 강 건너 불 보 듯 전쟁은 없다하고 국민은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이런 때 팔자 좋게 우리 한 번 신나게 놀아보는 법을 터득하면 어떨까, 그래서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고 삶을 더욱 보람 있고 창조적인 차원으로 업그레이드시키면 좋지 않을까 하여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1.


놀이는 우리를 즐겁게 하고 또한 즐겁기 위해 놀이를 합니다. 놀이를 하며 슬퍼하거나 눈물 흘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놀이가 즐거운 것은 놀이 그 자체가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재미없는 놀이는 우리를 지루하게 하고 짜증스럽게 만들기 때문에 고역에 다름 아닙니다.


저는 어릴 때 놀기를 참 좋아했습니다. 친구들과 공을 차거나 물가에 가서 수영을 하며 장난치거나 혹한 속에서도 스케이팅하는 것이 참 즐거웠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뛰쳐나가 신나게 놀다가 어두워야 집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유감없이 논 것을 후회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놀이 없는 청소년들이 매우 측은해 보입니다. 학교생활과 과외로 잠과 놀이를 빼앗겨 즐거움보다 피곤에 지친 상태에서 전자 게임에만 매달리니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을 해칠 뿐입니다. 인간은 자연이나 넓은 공간에서 신들리도록 즐겨야 창조적 잠재력이 개발되는데 놀이 없는 인간은 고독과 폐쇄적 존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놀이는 어른들에게도 필요한데 직업으로 삼지 않는 스포츠와 여행, 음악과 독서, 영화 관람과 회식 등이 놀이에 속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을 떠나 놀이를 할 때 무의미와 불안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기쁨과 성스러움까지 감지할 수 있습니다. 신들린 놀이가 심화될 때 거기에 용솟음치는 에너지가 문화와 예술의 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전쟁으로 인한 폐허 속에서 압축 성장을 통해 민주화와 경제발전이란 기적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그 여정에서 놀이를 빼앗긴 삶은 천박하고 야비한 격투장이 되었습니다. 직장의 생산 목표를 달성하려고 인생을 봉급과 맞바꾸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놀이와 즐거움을 잃으면서 문화민족과 문화국가 건설에 실패하였습니다.


창세기 기자는 하느님께서 엿새 동안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다음 손수 만드신 것을 보시고 참 좋아하셨다.‘(1:31)고 썼습니다. 하느님은 의식주 해결을 위해 우주창조란 중노동을 하신 것이 아니라 거대한 작품을 구상하고 조형하는 행위예술을 즐기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손수 지우신 만물을 보시고 참 좋다고 감탄을 토로하신 것입니다.


저는 은퇴 후 할 일 없이 동분서주하는 실업가이지만 남은 시간, 언제 끝날지 모를 인생을 놀이로 만들고 즐거움을 만끽하려고 날마다 궁리하고 있습니다. 나의 의식주는 물론 교회생활과 독서, 이웃과의 만남과 소통을 흥겨움으로 가득 채우는 인생 파티를 즐기려는 것입니다

 

어떤 시인의 고백입니다. 그는 젊을 때 출판사를 경영하면서 성공하여 남부럽지 않게 살다가 불경기로 인해 사업을 접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부인과 이혼하고 아이들과 이별하는 비극을 당했다고 합니다. 시인은 그 원인이 자본주의에 말려든 탓으로 알고 즉시 도시를 떠나 시골로 가서 간소하고 검소한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날마다 산책과 한가로움을 즐기면서 보람과 활력을 되찾으니 삶이 즐거운 놀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장자의 아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 친구 혜자가 문상을 갔습니다. 그런데 장자는 곡을 해도 모자랄 판에 북을 치며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혜자는 장자의 황당한 모습을 보고 이유를 물었습니다. 장자는 아내가 죽었을 때 처음에는 슬피 울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무에서 왔다가 다시 무에로, 생명의 근원에서 왔다가 다시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갔으니 슬픈 일이 아니고 기쁜 일이 아닌가?“라고 답하였다는 것입니다

  

잠언 기자는 고난 받는 사람에게는 모든 날이 불행한 날이지만 마음이 즐거운 사람에게는 모든 날이 잔칫날이다.’(15:15)고 읊었습니다. 크리스천이란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의 은총가운데 기쁘게 살아가는 존재이므로 우리가 일상을 즐거운 놀이처럼 날마다 축제를 일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건전한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2.


놀이는 우리에게 안식을 줍니다. 우리는 놀이를 할 때 예수님의 말씀처럼 해봐야 소용없는 일상의 근심과 걱정을 모두 잊어버리고 마음과 육신이 완전한 휴식을 취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놀이를 할 때 경쟁하거나 긴장과 불안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경각심을 높여야 합니다.


인류가 농경사회에서는 대자연 속에서 노동을 즐겼고 산업사회에서는 일과 후나 주말에는 휴식이나 놀이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컴퓨터 시대가 오면서 일하는 시간과 공간이 사라지고 주말을 빼앗겼습니다. 디지털 시대가 여가와 놀이의 증가가 아니라 축소하고 말소한 것입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위해 피곤한 정신과 육신을 놀이와 안식으로 재충전해야 내일이 즐겁고 생산적입니다. 그러나 놀이가 없거나 놀 줄 모르기 때문에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여 일 할 능력도 즐거움도 없는 동시에 피로와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최근의 보고에 의하면 의자에 앉아있는 시간이 오랠수록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브리짓 슐트는 놀이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기를 놀이는 복잡하고 정교하고 유연하고 반응이 빠르고 사교성이 좋은 사람들과 사회를 만들어준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놀이연구소의 설립자인 스튜어트 브라운은 놀이는 모든 예술과 게임, 책과 스포츠, 영화와 패션, 재미와 경탄의 근원이다. 즉 놀이는 우리가 문명이라고 하는 모든 것의 근원이다.’라고 했습니다. 놀이는 무위도식이 아니라 인격과 사회와 문화 발전에 중요한 요소이므로 여가를 즐기며 안식을 취해야 할 것입니다

 

창세기 기자는 하느님께서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식물과 동물을 창조하신 다음 이렛날에는 일손을 놓으시고 쉬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신 것입니다.’(2:3) 하느님은 안식이 좋으셨기에 그날을 축복하시고 거룩하다고 차별화하신 것입니다

 

보다 중요한 사건은 하느님께서 안식을 취하신 다음에 일어났습니다.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코에 생명을 불어넣으시니 그분의 형상과 같은 생명체가 나타난 것입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다음 휴식을 취하신 하느님께서 능력과 지혜를 재충전하시고 피조물가운데 가장 독보적 작품인 인간을 창작하신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일손을 멈추고 쉰다는 것은 게으름이나 무려함이 아니라 빈 공간에 창조의 에너지를 가득 채우는 주유작업과 같은 것입니다. 이스라엘민족이 안식일을 정하고 주인이나 노예나 동물까지 쉬도록 십계명에 밝힌 것은 안식일의 뜻을 깊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 기록하기를 우리는 하느님의 예술작품으로서 우리에게 선한 일을 맡기시려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다.’(2:10)고 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하느님 나라를 이룩하기 위한 도구로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걸 작품이 되고 창조적 능력을 발휘하려면 신들리게 놀며 쉴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3.


놀이는 우리를 자유하게 합니다. 우리는 신명나게 놀 때 그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않고 자유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놀이할 때 자유를 느끼지 못하면 그것은 놀이가 아니라 노동입니다. 그래서 놀이에 갑을관계나 베팅이 개입하면 자유는 사라지고 불안의 철창에 갇히게 됩니다.


근대 이후 놀이를 빼앗긴 인간은 자유마저 박탈당했습니다. 산업 사회는 일, 생산성, 성과, 속도를 강조하면서 노는 인간을 평가절하하고 무용지물로 낙인찍으며 사회에서 쫓아버린 것입니다. 노는 것은 공동체에 뿐만 아니라 문명 건설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놀이를 잃어버리고 노동에만 골몰하거나 일자리를 찾으려고 놀이를 잊어버릴 때 영혼 없는 기계처럼 비인간화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현대인의 불행은 자기의 삶과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자유가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데 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실정은 어떻습니까? 자유하십니까 아니면 구속되어 있습니까? 자유를 원하시면 유유자적하면서 기쁨과 활기를 불어넣는 삶의 놀이에 몰두하면서 제멋대로 놀고 웃고 사랑해 보십시오. 어떤 이는 24시간 뛰어도 입에 풀칠하기도 어렵고 불안한데 그럴 여유가 어디 있느냐고 항변할 것입니다. 그럴수록 더욱 자유를 추구해야 하고 그래야 삶의 궁극 목표인 온전한 자유를 쟁취할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떻게 하면 자유로운 놀이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마음이 가난해지고’ ‘자기를 비우고’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일을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고전 10:31) 바칠 때 가능해집니다. 우리의 욕망과 의지가 온전히 사라지고 빈 마음속에 하느님께서 임재하실 때 은총의 세계 속에서 하늘의 새와 바다의 고기처럼 자유자재로 춤출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의 삶은 하느님 나라를 위한 거룩한 놀이로 변하게 됩니다. 이때 우리는 성령과 함께 춤추는 예술가로 격상됩니다. 이때 교회는 우리가 하느님과 교우와 더불어 놀고 쉬며 자유의 유희를 만끽하는 공연장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느님과 놀이하는 예술가의 자유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비천하게 살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줄도 알며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어떤 경우에도 적응하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나에게 능력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4:11-14) 이것은 그리스도 믿음 안에서 사는 경건한 자에게 주어지는 무한한 자유의 삶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을 순수한 놀이로 대할 때 즐거움과 안식과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이러한 삶은 하느님의 작품의 표현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위한 도구가 되고 우리는 성령과 함께 춤추는 놀이꾼이 되는 것입니다. 무의미와 공허가 엄습하고 불안과 공포가 가시지 않는 현실에서 일상을 놀이로 전환시키므로 축제의 나날을 영원히 향유하시기 바랍니다.


참고서: 장석주,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 달출판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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