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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신앙 (2017.9.10.)

2017.09.11 08:18

이원로 조회 수:35

가을의 신앙


본문: 시편 123:1-2, 고전 3:16-17 

설교: 이계준 목사 (2017.9.10.) 

 

우리는 바로크 음악의 거장인 비발디가 1년 사계절을 아름답게 표현한 명곡 사계”(4)을 사랑합니다. 또한 정신분석학자 P. 또니에르는 <인생의 4계절>이란 명저에서 인생을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 및 노년기로 나누어 그 문제와 해답을 찾았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신앙생활을 계절에 따라 삶의 깊고 오묘한 신비를 음미하는 것이 좋지 않겠나 생각됩니다. 예를 들면 봄은 사랑, 여름은 열정, 가을은 천고마비(天高馬肥), 겨울은 고통이나 죽음 등과 연계하여 신앙생활을 성찰함으로써 크리스천의 삶을 보다 고귀하고 풍요롭게 조형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1년간 정치-경제적 기상악화로 인해 각 계절이 풍기는 향기에 도취하지 못하고 온 국민이 둘로 갈려 증오와 대결, 실패와 승리, 위기와 절망이란 탁류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불행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더욱이 북한의 6차 핵실험과 중국의 경제보복 및 미국의 한국정부 무시는 이제 우리 개인과 국가의 존망이란 운명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비록 이렇듯 절체절명의 위기일지라도 우리의 심신을 달래주고 삶을 반추하는 가을이란 계절이 다가왔으니 존재의 의미와 삶의 가치를 다시 정리해 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그래서 얼마 살든지 언제 죽든지 하느님의 자녀답게 고매하고 품위 있는 삶을 누리다가 후손들에게 본이 될 미미한 족적이라도 남겼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1.


가을은 먼저 높고 맑은 하늘을 우리에게 선사합니다. 우리나라의 가을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높고 푸르다고 말해 좋을 것입니다. 그래서 애국가에도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라는 구절이 들어 있지 않습니까! 비록 미세먼지로 기분 잡칠 때도 있으나 우리 하늘이 그렇게 높고 청명하기에 우리의 이상을 상징하기에 충분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민족시인 윤동주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르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하고 하늘을 향해 청아한 양심의 소리를 외쳤습니다.


성서기자들은 하늘을 바라볼 때 느끼는 정서는 남다른 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편기자는 하느님을 하늘 보좌에서 다스리시는 주님이라고 하며 하늘을 우러러 본다.’(123:1)고 읊었고 마태 기자는 예수께서 가르치신 기도문에 하느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6:9)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신화시대의 우주관인 하늘, , 지옥이란 삼계(3)의 관점에서 표현한 것으로써 하느님을 가장 높은 공간인 하늘에 계신 실재로 이해한 것입니다.


아마도 하느님과 하늘을 연계한 말씀가운데 가장 으뜸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완전하라.”(5:48)는 주님의 말씀이 아닐까 합니다. 이 말씀은 하늘 높이 계시고 완벽하신 하느님과 낮고 천한 세상에 사는 불완전한 인간을 연계하므로 인간도 하느님처럼 완전한 모습을 이루게 하려는 깊은 뜻을 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과는 달리 제 각기 다른 목적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하늘을 바라보며 날마다 진리를 묵상하며 일상에 실현하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종교인이 있는가 하면, 이와 반대로 땅만 바라보며 세상의 물질과 권력과 이념에 사로잡혀 이를 쟁취하는 데만 몰두하는 세속주의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득한 수평선을 바라보며 자기 이상을 그리면서 낭만에 도취하는 몽상가도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자기 욕구충족을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인생을 완성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신앙인은 영적 생활에 몰두하다가 하느님의 완전에 도달하지 못하여 패배자나 위선자가 될 수 있고 땅만 쳐다보는 사람은 일시적 만족은 있으나 영원한 허무에 빠지고 말 것이며 수평선만 바라보는 사람은 낭만은 만끽하나 무위도식으로 삶을 마칠 것입니다

 

19세기 미국의 저명한 자연주의자인 헨리 D. 소로는 그의 명저 <월든>에 이렇게 썼습니다. ‘오늘날 철학교수는 있어도 철학자는 없다. 철학을 가르치는 것도 존경할 일이지만 거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철학자란 난해한 사상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를 사랑하고 그 가르침에 따라 소박하고 독립적인 삶, 관용과 신뢰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인생의 문제를 이론적으로 또한 실천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소로는 철학자의 경우를 말했지만 인간은 생각과 삶, 말과 실천의 괴리를 메꾸고 인생을 온전하고 고고하게 살기가 극히 어렵다는 것입니다. 여하간 철학자를 비롯하여 모든 인간은 나름대로 존재의 의미와 삶의 가치를 추구하지만 범죄행위가 아닌 한 탓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 신앙이란 실증할 수 없는 규범에 따라 살아가면서 비록 완전에는 도달할 수 없을지 몰라도 잠재력을 극대화하므로 하느님의 은총을 힘입어 완전한 삶의 절정에 근접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곧 십자가의 길을 암시하지만 이 길만이 한 점 부끄럼 없는영원한 행복과 감사와 평화가 차고 넘치는 축복의 삶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2.


가을은 우리에게 신선하고 선선한 바람을 불어줍니다. 장마와 무더위, 삶의 근심과 걱정으로 지친 우리는 이 값진 선물로 피로와 짜증을 모두 씻어 비리고 새 생명으로 되살아나고 삶이 약동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가을이 없고 자연재해와 불안과 위기만 이어진다면 지옥이 따로 없을 것입니다. 실로 가을은 생명의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을의 선선함을 깊이 음미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선선이란 말은 기후에만 쓰이지 않고 인품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사전은 선선하다성질이나 태도가 쾌활하고 시원스럽다.”고 합니다. 사람이 쩨쩨하거나 까탈지지 않고 바다처럼 확 트였다는 말입니다.


자기 밖에 모르는 따분한 젊은 부자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느냐?‘고 물으면서 자기는 율법을 다 지켰다고 장담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는 네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10:17-22)고 직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선선한 응답은 사리사욕을 넘어 오직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자기초월적 구도자가 원시시대에는 모르나 오늘처럼 개인주의와 치열한 경쟁과 무지몽매가 난무한 때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 같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대하는 선선함이란 고작 정치인들이나 사기꾼들의 행태로써 그것은 아침 이술처럼 사라질 거짓과 위선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때가 악할수록 역류하는 연어처럼 시대의 풍조를 역공하는 것이 신앙인의 참 모습이어야 합니다. 지난여름 적조현상으로 양식장의 활어들이 떼죽음하였는데 지금 우리는 정치적 적조현상으로 인해 떼죽음당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안보 불감증 환자들과 얼빠진 사람들은 욕망과 향락에 도취하는 때 우리는 불만불평만을 토로하거나 무력하게 떼죽음당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신앙 양심을 극대화하여 살인적 적조를 물리치고 신선한 상류로 역행하는 선선한 활어가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난 주 연세대에서 은퇴한 마광수 교수가 자살했습니다. 그는 <즐거운 사라>라는 성애(性愛)를 다른 소설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옥살이까지 했습니다. 저는 기독학생회 지도교수이었던 관계로 안양교도소에 수감된 그를 면회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출감했을 때 연세대 총장은 저에게 마 교수의 복직에 관해 의견을 물었습니다. 저는 서슴없이 다양성이 없으면 그게 대학입니까? 마 교수는 복직되어야 합니다.”고 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그가 사회적 통념에 역행했을지 모르나 문학가로서 순수하고 선선한 철학을 구현하는데 일생을 바쳤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비범한 인재를 수용하지 못하는 사회가 노벨상을 바라고 있으니 몽상도 지나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선선하고 신선한 삶을 누리기 위해 예수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자신의 노예상태에서 벗어나 자신과 세상을 바로보고 하느님의 우주를 종횡무진 떠다니면서 인생을 만끽하라고 끊이없이 권고하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주님의 길을 따를 때 우리의 삶은 선선하고 바람직한 멋진 인생으로 바뀔 것입니다

  

3.


가을은 추수의 계절로써 들녘에는 오곡백과가 무르익고 우리는 삶의 풍요를 구가하게 됩니다. 이제 곧 추석이 다가오고 우리교회는 감사절을 지키게 되는데 이런 축제는 생명을 주시고 삶의 풍요를 허락하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무르익은 오곡백과를 우리의 신앙과 견주어보면서 인간적으로나 영적으로 하느님과 사람이 보기에 얼마나 아름답고 탐스러운 열매인지 냉철하게 평가하는 것은 영적 성숙에 지름길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말한 성령의 열매 곧 사랑과 기쁨, 희망과 인내, 친절과 선함, 신실과 온유와 절제에 걸 맞는 열매를 많이 맺어 가난한 이웃들의 먹거리가 되고 나라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성숙한 영적 열매를 맺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현존의식에서 비롯됩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우들에게 여러분은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계신다.’(고전 3:16)고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현존의식은 기독교 신앙의 모태이고 영적 성숙의 근거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우리를 지배할 때 우리는 날마다 보다 거룩한 차원으로 진화하면서 품위 있고 제 맛을 갖춘 고귀한 열매로 자라게 됩니다


지금 우리는 국제적으로 위협과 모멸을 당하고 불안과 공포로 인해 사면초가에 이르렀습니다. 그 근본원인은 성숙한 사람 곧 지성과 덕성과 감성에 더하여 영성을 고루 갖추고 정확한 현실 파악과 미래의 비전 그리고 과감한 용단이 있는 지도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통치자들의 대부분이 기독교인이나 불교도이었는데도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과 함께 국민의 성숙도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 크리스천의 사명은 매우 무겁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들이 신앙 양심이 되살아나고 시대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성숙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고 믿습니다. 지난 짧은 기간에 우리는 온갖 위기와 역경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이룩하며 지금까지 존속하고 발전하였습니다. 이것은 나라를 사랑하는 창조적 소수자들과 함께 우리 크리스천의 공헌이었다고 해서 과찬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금 6.25전쟁 이후 가장 위중한 때를 직면하여 그 당시 크리스천들이 나라의 정신적 중추역할을 한 것처럼 우리도 중차대한 시대적 사명을 각성하고 헌신할 수 있으면 합니다. 그것은 전쟁도 불사하자는 말이 아니고 우리가 먼저 정신적-영적 무장으로 기반을 공고히 닦는 동시에 사회 지도층의 각성과 책임을 강력히 계속 촉구하는 것입니다

 

정신혁명이나 종교개혁은 그 파장이 미미해 보이지만 그 결과는 창대함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500년 전 M. 루터와 J. 칼빈이 주도한 종교개혁은 그 이전에 문예부흥운동과 함께 영국의 위클리프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교회 지도자들이 가톨릭교회의 불의와 부정에 반기를 든 사건들이 축적되어 마침내 성공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실한 열매를 맺어 이것들이 쌓이고 그 향기와 영양분이 온 누리에 파급되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 땅위에 실현될 것입니다. 비록 우리의 신앙은 나약해 보이나 누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기때문에 불가능이란 없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는 이 시간 하늘 높고 푸른 가을을 맞이하여 우리의 신앙을 반추해보았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불안과 위기로 가득하지만 가을의 신앙은 완전의 신념과 선선한 생명과 무르익은 열매를 우리에게 가져다줍니다. 이것은 먼저 하느님의 능력이고 이에 대한 우리의 응답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써 우리 자신은 물론 모든 이웃들과 조국을 죽음에서 구원하여 영원한 삶과 평화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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