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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나라 입장료 (2017.11.12.)

2017.11.13 09:39

이원로 조회 수:43

하느님 나라 입장료

             

본문: 마태 5:10; 마태 13:44-50 

설교: 이계준 목사 (2017.11.12.)

 

1.


마태복음 13:44-50에는 예수께서 하느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신 비유 세 가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하느님 나라는 밭에 숨겨진 보물과 같은데 어떤 사람이 그것을 보고는 제자리에 숨겨 두고 집으로 돌아가 소유를 모두 팔아서 그 밭을 산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느님 나라는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과 같은데 그가 값진 진주를 발견하면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그것을 산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하느님 나라는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와 같은데 그물이 차면 해변으로 가서 좋은 것들만 그릇에 담는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들은 내용상 같은 것으로서 하느님 나라는 귀한 물건을 소유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입장료는 엄청 비싸기 때문에 그것을 구하려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그것을 쟁취하려면 열정적으로 추구하고 이차적인 것은 버리고 마음을 다해 헌신하며 일상적 안전과 우선순위를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의 통치를 뜻하는 것으로써 사랑과 정의, 자유와 평화가 인간과 세계 그리고 자연에 온전히 실현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크리스천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 가지 피조물들이 인간의 욕망에 따라 지배되는 것을 원상회복하기 위해 부름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처럼 하느님 나라 선포와 실현을 위해 생명을 바쳐 헌신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편의상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 셋은 모두 연결된 것으로 모든 곳에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그 나라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아울러 드리는 말씀은 저의 한평생 성서적 이해와 신학적 지식 및 신앙적 확신을 집약한 것으로 부족하나마 여러분의 신앙생활의 원리를 세우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2.


첫째로 하느님 나라는 개인적이고 영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임재를 깨닫고 그의 뜻을 실천함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백성이 됩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하느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물을 때 그 나라는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지 않고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말할 수도 없다. 하느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17:21)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자기 모습대로 창조하신 하느님은 우리 안에,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의 존재와 삶을 통치하시므로 그의 나라로 만드시기 원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중심의 생각과 욕망을 버리고 우리 안에 임재하시는 성령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겸손과 자기부정, 헌신과 희생이란 값비싼 입장료를 지불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에 참여하는 것은 하느님 나라가 개인에게만이 아니라 신앙공동체가운데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교회는 올바른 영적 생활과 교우들 간의 영적 체험과 나눔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주고받음으로 하느님 나라를 이루며 그 나라를 확장하는 능력을 단련합니다


미국의 종교사회학자 다이애나 B. 배스는 <교회의 종말>이란 책에서 영적 고갈로 미국의 제도적 교회는 물론 복음주의적이고 감성적인 교회마저 신도가 감소하고 본래의 사명에서 멀어진다고 하였습니다.’ 한국교회는 영적 생활에 대한 몰이해와 왜곡으로 인해 기복신앙의 종교집단이나 종교를 빙자한 기업체로 전락하는 것이 그 특징이 아닌가 합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교회는 굴곡이 없지 않았으나 그 나라 건설을 위한 사명에 충실하려고 힘써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위나 현상유지가 아니라 실상을 냉정히 성찰하면서 개인의 영적 각성과 공동체의 영적 교감을 위해 더 높은 차원으로 비상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할 것입니다. 값비싼 입장료를 치르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 입장이 불가능합니다.


둘째로 하느님 나라는 공동체적인 것입니다. 하느님의 통치는 개인이나 교회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가정과 사회, 국가와 세계 전체를 포함합니다. 그 중에서 지금 한국 크리스천의 당면과제는 이 나라에 하느님 나라를 계속 확장하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향유하는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은 하느님 나라의 일환으로 아직 불완전하지만 이 정도에 이르기까지는 말할 수 없는 헌신과 희생이 따랐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줄여서 말한다면 그것은 일제하 애국선열들의 나라사랑과 희생, 해방 후 민주국가 건설을 위한 갈등과 쟁취, 6.25 전쟁 중 국내외 젊은이들과 민간인들의 희생, 4.19혁명, 경제발전을 위한 기업인들의 노력과 노동자들의 피나는 희생 등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난과 희생과 죽음으로 쌓아올린 위령탑에 다름 아닙니다

  

이렇듯 고귀한 희생으로 세워진 나라가 해방 후 가장 큰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현 정부는 지금 이 생명과 희생의 답을 송두리 채 허물고 세계무대에서 퇴락한 사회주의 독재의 우상 앞에 나라와 국민을 상납하려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지옥의 나라로 바꾸겠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원수가 집밖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처럼 집안에 있습니다.’


한신대 윤평중 교수는 지난 주 일간지에서 현 정부의 이상주의적 균형외교를 비판하면서 이렇게 끝맺었습니다. “국제정치적 패권국 중국은 역사-문화적 중화제국주의의 유전자까지 과시한다. 지금 우리가 결연히 대처하지 않으면 한반도의 대()중국 2000년 종속의 역사가 재현될 수 있다. 게다가 공산당 일당 독재의 중국은 시민적 자유와 인권, 민주적 다원주의와 법치주의가 부재한 나라다. ...특히 중국의 패권적 공세를 억제하는 국가 대전략 위에서만 한반도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지속된다. 현실주의적 국가 대전략 없이는 대한민국의 생존과 자유도 불가능하다.“


이렇듯 위급한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나라의 주체가 국민이지 정부가 아니라는 자각입니다. 우리는 여야 정치인들이 역사의식과 국가관이 전무하고 당리당략과 사리사욕의 노예가 된 것에 식상했습니다. 그들은 나라와 국민을 책임질 관심도 능력도 없으므로 우리의 살 길은 국가멸망을 자초하는 불의와 싸워 이기는 길밖에 없음이 확실합니다.


우리 크리스천은 3.1운동 당시 교회와 크리스천이 주동이 되었고 6.25 전후로 공산주의와의 대결에 앞장 선 나라사랑이란 값진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땅 위에 하느님 나라를 계속 유지, 발전시키라는 사명에 응답해야 할 결단의 순간에 서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느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10) 우리가 하느님의 의를 위해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주어진 사명에 충실하느냐에 따라 이 나라와 우리의 운명은 결정될 것입니다. 헌충원의 상징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느님 나라 곧 생존과 자유를 얻으려면 생명이란 입장료를 반드시 치러야 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1962년 여름 저는 L.A. 할리우드에 있는 안창호 선생의 장남 필립 안 댁을 방문하고 형제들이 운영하는 중국식당에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 때 저는 그 자녀들이 대학을 다니지 못한 것을 알았습니다. 도산(島山)은 자녀교육을 희생하면서 모든 수입을 독립운동에 바친 것입니다. 그와 그 가정의 희생의 대가로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셋째로 하느님 나라는 자연에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자연은 하느님의 피조물인 동시에 하느님이 계시는 집이고 인간의 모태와 삶의 원천입니다. 이런 자연이 위기에 처하였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존속할 수 없는 임계점에 이른다고 합니다. 특히 18세기이후 발전한 기술과학과 기업주의 및 소비주의가 자연을 착취하고 파괴하므로 자원고갈은 물론 그것이 복원될 수 없으므로 인간과 자연이 공멸할 때가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에 미국 유니온 신학대학원 원로교수인 라스무센의 저서 지구를 존경하는 신앙이란 책을 읽고 많은 감동과 배움을 얻었습니다. 지금 수많은 학자들이 소위 생물사회학(biosociology)이라는 새로운 학제간 학문을 연구하면서 심오한 자연의 이치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것은 곧 모든 만물은 서로 친족 간이고 소속관계 속에서 태어나며 모든 것들이 관계를 맺으며 살고 죽는다는 것입니다. 인간과 다른 생물들이 서로 관계 속에서 살아가므로 다른 생물들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성서의 계약관계를 뜻하는 것으로써 하느님과 땅,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다른 생명들 사이의 유대로 인해 삼라만상이 이루어지고 질서를 유지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이 이러한 원초적 유대관계를 깨닫지 못하고 자기의 의식주를 위해 자연을 무차별적으로 착취하고 파괴함으로써 자연 파괴가 심각할 지경에 이르렀고 우리의 생명인 공기와 물은 이미 오염상태가 심각해져서 청정기를 사용하고 물을 사 마시게 되었습니다.


현재 세계인구 70억이 50년 후에는 100억에 이르게 되는데 그 때는 생태계 파괴가 더욱 심각해 질 뿐만 아니라 훼손당한 생태계가 다시 회복되는 기간마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자본주의 경제체제나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막론하고 모두 산업주의와 소비주의를 지향하기 때문에 그 종말은 다를 바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흙, 토양에 관한 것이라고 합니다. 도시건설로 흙이 살아지고 인공비료로 흙이 산화 또는 오염되므로 유해한 곡물이 생산될 뿐만 아니라 흙 속에 생존하는 생물의 종들이 이미 무수히 살아졌고 앞으로 계속 살아진다는 것입니다. 영어로 흙을 soil이라 하고 영혼을 soul이라고 하는데 soilsoul의 어원은 같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영이 흙 안에 계시고 인간의 영이 흙에서 왔다는 뜻입니다.


이제 우리는 인간과 자연의 공존과 미래 후손들의 먹거리를 위해 삶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인간의 권리를 우선시했지만 앞으로는 자연의 권리를 인정하고 보존하는데 힘써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우선 과소비를 줄이고 검소한 삶을 익혀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물질주의와 소비문화에 길들어졌기 때문에 청빈을 위한 삶의 변화는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변화의 불편과 고통은 자연이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반드시 지불해야 할 값비싼 대가입니다.


베트남의 저명한 스님 탁낫한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내게 하느님 나라나 불교의 정토가 그저 막연한 아이디어가 아니다. 그것은 실재다. 내게는 산 위에 있는 아름답고 푸른 소나무가 하느님 나라, 불교의 정토에 소속된 것이다. 산뜻한 웃음을 머금은 당신의 아름다운 어린 자식도 하느님 나라에 속한 것이고 그리고 당신도 하느님 나라에 소속된 것이다.’ 그러면서 스님은 모든 자연과 생명체 곧 강물과 하늘, 나무와 새, 산과 동물, 햇빛과 눈 등 헤아릴 수 없는 경이로움을 하느님 나라에 속한 기적으로 여길 수 있으면 우리는 그것들을 보전하고 파괴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해야 할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나치에 항거한 본회퍼 목사는 옥중서신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기독교인의 삶은 지상의 과제와 고난에서 벗어나 영원 속으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처럼 지상에서의 삶의 잔을 마지막까지 마시는 것이다.’ 우리 인생은 이 세상에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나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느님 나라를 이룩할 엄숙한 사명을 받고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우리 자신과 이 나라와 자연을 하느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로 회복하기 위해 끝까지 헌신하고 쟁취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부르시고 축복하신 거룩한 백성들의 존재이유이고 사명이며 인생의 완성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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