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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꿈, 우리의 꿈 (2017.12.17.)

2017.12.18 08:25

이원로 조회 수:37

요셉의 꿈, 우리의 꿈 

          

본문: 마태 1:18-25, 누가 2:1-7 

설교: 이계준 목사 (2017.12.17.)

 

1.


저는 지난 60년 동안 대림절에 관한 설교를 수도 없이 하였지만 요셉에 관해 설교한 기억은 없습니다. 지난 몇 주 동안 설교주제를 찾으면서 요셉의 꿈이 예수의 탄생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결론은 그가 예수 탄생에 없어서는 아니 될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존재와 역할이 간과됐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실상 요셉의 이름은 성경에 몇 번 등장하지만 주목의 대상은 아닙니다. 그가 다윗 왕가의 후손이고 헤롯왕을 피해 이집트로 피난 간 것, 직업이 목수였다는 것, 예수가 12살 때 요셉이 예루살렘에 함께 올라갔다는 것 등이 그에 관한 정보입니다. 그러나 요셉이 예수 탄생에서 한 역할은 대림절을 맞이하는 우리에게 큰 영감과 교훈을 준다고 믿습니다. 마태복음 본문에 의하면 요셉은 약혼녀 마리아가 결혼 전에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때 요셉이 얼마나 당황하고 배신감을 느꼈을까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 미혼녀의 임신은 율법적으로나 사회인습으로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구약의 법전인 신명기에 는 한 남자와 약혼한 처녀가 다른 남자와 정을 통하는 경우, 두 사람을 성문 밖으로 끌어다 놓고 돌로 쳐서 죽여야 한다.’(22:23-24)고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복음서 기자의 말대로 율법을 잘 지키는 의로운 사람일 뿐만 아니라 또한 자비로운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약혼녀의 불륜한 임신을 알고도 율법대로 처리하지 아니하고 그녀에게 수치마저 주지 않으려고 조용히 파혼하려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이렇게 마음을 정하였을 때 하느님의 천사가 꿈에 나타납니다. 천사는 마리아의 임신이 초월적인 하느님의 섭리이고 태어날 아기의 이름은 예수로써 그는 인류를 구원하실 분임을 요셉에게 알려줍니다. 이때 요셉은 이 불가해한 전갈을 부정하지 않고 율법의 의와 사회적 통념과 자기의 자존심마저 모두 버리고 그 꿈을 진실로 받아드립니다. 이 결단이 예수 탄생의 역사적 관문을 여는 놀라운 사건이 된 것입니다.


요셉이 꿈을 하느님의 섭리로 깨닫는 순간 그에게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때까지 그는 율법을 잘 지키는 의인이었지만 이제부터는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는 새로운 의인으로 탈바꿈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율법의 종교에서 복음의 종교로 개종된 것입니다

 

이 변화가 요셉에게 어떤 사명과 역할을 가져온 것입니까? 그는 이제 오실 메시아의 대부로서 그가 등장하실 무대를 준비하는 연출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시고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처럼 요셉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할 새 역사의 주인공의 무대를 마련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요셉이 예수의 대부로써 어떤 교육철학과 방법으로 자녀를 양육하고 가르쳤는지 아무런 기록이 없습니다. 성경은 그가 당시 중류에 속하는 목수라고 말할 뿐 예수가 장성하기 전에 사망하였을 개연성 때문에 예수의 인격형성에 크게 작용하지 못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의 제자활동에 이어서 30세에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독자적인 선교활동을 시작한 것을 보면 요셉의 어떤 영향력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요셉은 꿈을 잊지 않고 마리아와 함께 예수의 탄생과 성장과정을 통해 하느님의 인류구원을 실현하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을 하였을 것입니다. 결국 요셉은 요한보다 먼저 메시아가 오심을 준비한 최초의 사람이라고 해서 좋겠습니다.


2.


우리가 요셉의 꿈과 그 실현과정을 추정할 때 하느님께서는 요셉뿐만 아니라 자기 백성들을 선택하시고 요셉처럼 그들을 새 역사창조에 길잡이로 삼으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불초한 우리에게도 천사를 보내시어 그분의 꿈이 우리의 꿈이 되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립절은 아기 예수의 오시는 낭만적인 계절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요셉처럼 천사의 전갈을 받고 그것을 나의 꿈으로 용납하고 실현하려는 결단과 헌신을 요청하는 거룩하고 심오한 계절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메시아가 오실 꿈을 꾸고 우리의 삶의 장()이 그의 오시는 무대가 되도록 준비하는 것이 대림절의 과제라고 봅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꿈이 요셉의 꿈과 괘를 같이 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꿈이 요셉이나 어느 누구의 꿈과도 같을 수도 없고 같아서도 아니 될 것입니다. 따라서 꿈이 이상이나 소망이던, 미래에 대한 예지나 일장춘몽이던 혹은 프로이드의 무의식적 성적 본능 리비도의 표출이나 C. 융의 절대자와의 영적 교감이던 상관없습니다. 꿈의 다양성은 삶과 문화의 아름다운 파노라마를 펼치는 근원이고 모든 사람은 각기 자기의 꿈을 꾸고 실현할 자유와 특권이 있습니다. 저도 소년 시절에 여러 가지 꿈을 꾼적이 있습니다. 때로는 문학가, 때로는 축구선구, 때로는 영어교사 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크리스천의 꿈은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는데 그것은 내 꿈이 내 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 자신의, 나 자신을 위한 꿈이 아니라 요셉의 꿈처럼 하느님의 꿈이 나의 꿈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꿈은 하느님의 꿈의 복사판이라는 말입니다

 

미국의 어떤 유명한 목사가 비행기에서 한 크리스천 청년을 만났습니다. 그 목사는 청년에게 묻기를 앞으로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그 청년은 자기의 꿈을 털어놓았습니다. 먼저 큰 사업가가 되어 돈을 많이 벌어서 고급 승용차를 사고 맨션을 짓고 미인과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바람직하게 키우고 별장을 사서 휴가를 즐기고 일찍 은퇴하여 세계여행을 떠나는 것이 꿈의 전부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목사는 젊은이, 자네의 꿈에는 영원한 것이 없네요.”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유한하고 자기중심적 꿈에 사로잡히는 반면에 인간역사의 새 지평은 영원한 꿈을 꾸고 실천한 사람들에 의해 개진된 사실을 우리의 근세사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19세기 말 서구교회 선교사들이 복음의 꿈을 안고 아무런 보장도 없는 이 땅에 와서 봉사하고 헌신한 결과 오늘처럼 동양 최대의 기독교 사회와 근대화의 초석을 놓게 되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는 일제치하에서 애국선열들의 민족 자주와 독립의 꿈을 실현하려는 고난과 희생 그리고 해방 후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위해 피땀 흘린 지도자들과 수많은 국민의 꿈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근자에 문 대통령이 중국 국빈방문에서 기대와는 반대로 냉대와 멸시를 당하고 수행 기자들이 중국 공안원들에게 폭행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원인은 정부의 주역들의 꿈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여러분 아시다시피 우리교회는 꿈의 산물입니다. 진부한 제도적 교회에 식상한 분들이 새로운 교회에 대한 꿈을 꾸면서 기도하고 성경공부에 밤을 새우며 대화하고 친교 하는 가운데 이루어진 결정체입니다. 우리교회는 초창기에 새 꿈을 담은 교회헌장을 만들고 그 목적에 도달하려고 예배와 친교, 평신도 교육과 선교에 안간힘을 다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교회가 관심 없는 유능한 목회자 양성에 심혈을 기우리므로 한국교회가 보다 성숙해지는데 도우려는 꿈을 꾸고 실천하여 왔습니다.


특히 20세기 후반부터 한국교회가 부흥하고 대형화되었지만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의 부정부패로 인해 길가에 버러진 소금처럼 사람들에게 밟히는 반면에 우리교회는 비록 유명하거나 큰 교회는 되지 못하였으나 감사하게도 타락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꿈의 있음과 없음의 차이가 아닌가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우리가 어떤 꿈을 꾸느냐가 개인뿐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 교회와 국가의 운명에 절대적 요소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셉이 평범한 사람으로 하늘의 꿈을 지니고 그것을 실행할 때 새 시대, 새 역사를 도래할 길을 닦은 것처럼 우리 자신은 미약한 존재이지만 영원한 꿈을 꿀 때 새 시대가 오는 길을 준비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하느님은 이스라엘민족이 로마의 억압과 착취 속에서 구원자 메시아를 고대하던 시기에 요셉을 선택하여 자신의 꿈을 보이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나라가 근세역사상 가장 암울한 시대에 처한 상황에서 대림절을 맞이하는데 혹시 어떤 꿈, 하늘의 환상을 보신 분은 없으신지요?


하느님께서 요셉이 의인이기 때문에 선택하셨는데 혹시 우리 가운데는 자기의 꿈은 증발되고 하느님의 꿈이 들어온 의인은 없으신지요? 이 질문은 우리에게 매우 심각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요셉이 예수의 대부로써 메시아 시대의 연출자가 된 것처럼 우리도 후손들의 대부로써 새 나라와 새 역사의 무대를 준비해야 하는 위급한 상황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자기의 꿈은 접어두고 요셉처럼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해 새로운 구원의 시대를 여시려는 뜻을 간파하고 헌신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가정과 직장, 교회와 사회를 메시아가 태어날 말구유로 보고 하느님 나라를 건설할 하느님의 자녀들이 탄생하고 양육될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곧 21세기 요셉인 우리의 역할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가 지난세기 말에 막연하게나마 21세기에 걸 맞는 교회를 꿈 꾼 것처럼 앞으로 우리 교회가 제4차 산업사회란 인공지능 시대에 적절한 모델로 탈바꿈하는 꿈을 꾸면 어떻겠습니까? 4차 산업사회의 성공 여부는 학생들의 창의성을 유발하는 창조적 교육에 달렸고 합니다. 우리 교회도 제4차 산업사회에 걸 맞는 선교공동체가 되기 위해 실천적 신앙생활에 역점을 두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일상생활 전역에서 요셉의 헌신을 재현하므로 메시아 시대의 길을 열어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삶의 현장에서 사랑과 기쁨, 이해과 관용, 친절과 겸손, 봉사와 희생, 정의와 평화의 실천을 통해 새 시대의 주인공들이 태어나고 자라도록 힘쓰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 나라, 이 민족이 강대국들의 노리개가 아니라 세계의 갈등과 대결을 해소하는 평화의 길잡이가 반드시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 오늘 우리교회와 크리스천의 존재의미와 꿈이 있다고 믿습니다.

종교사회학자 다이애나 배스는 오늘의 정체된 교회와 크리스천들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의 수행방법을 뒤집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교회생활의 순서가 신앙체험을 한 다음 실천하며 소속감을 가졌다면 앞으로는 먼저 소속감을 갖고 실천적 삶을 통해 하느님 체험과 확신을 얻으므로 성숙한 신앙인으로 발돋움하자는 것입니다.


M. L. 킹 목사의 과정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목사의 아들로서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려고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보스턴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알라바마 주 몽고메리 교회를 담임했을 때도 만해도 대학 교수와 총장 될 꿈만 꾸었습니다. 그러나 흑인여성이 버스 승차를 거부당한 사건에 대한 토론장에 참여하여 자기 생각과 주장을 토로할 때 비로써 그는 인권운동의 꿈을 꾸게 되었고 생명을 바쳐 인권법을 쟁취한 것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신앙을 실천할 때만이 하늘의 비전을 보고 그것을 실현하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둡고 혼탁한 시대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방을 둘러보아도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심지어 종교적으로 미래와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불법이 법이 되고 불의가 정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고 악을 선이라 하고 분열을 화합이라고 합니다. 사랑과 신뢰, 이해와 관용, 도의와 책임이 전무한 비인간지대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대림절을 맞이하여 요셉의 꿈을 묵상하는 가운데 우리의 꿈을 꾸고 새 시대, 새 역사의 길을 여는 선구자들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