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주일설교
조회 수 766 댓글 0

환대하는 삶  


본문: 시편 86:1-10, 마태복음 10:40-42


신반포감리교회 홍정호 목사 (2014.6.22.)  




1.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들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포함되어 있는 마태복음 10장은 예수님의 제자의 길에 대해 가르치고 있는 장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열 두 제자를 부르셔서 권능을 주시고,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온갖 질병과 허약함으로 고통당하는 이들을 고치게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제자들은 대가를 바라면서 주님의 일을 지속할 수 없습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10:8)”는 것이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주님은 전대에 금화도 은화도 동전도 넣어 가지고 다니지 말(10:9)”, “여행용 자루도, 속옷 두 벌도, 신도, 지팡이도, 지니지 말(10:10)”라고 말씀하십니다. 대가를 바라지 말뿐만 아니라, 미래의 안정을 보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준비도 허락하지 않으신 겁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돈을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보냄을 받은 이들은 돈으로 보상을 받고, 돈이 주는 안정감에 의지해 살아갈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제자로 보냄받은 이들은 주님의 이 목소리를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명을 맡기시면서 그냥 맡기시지 않으시고, 감당할 수 있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여기서 권능으로 번역된 낱말의 헬라어 원어는 엑수시아입니다. 엑수시아로서의 권능은 돈에 의한 권력을 의미하는 낱말이 아니라, 도덕적 권위를 지칭하는 낱말입니다. 영어로는 오소리티(authority)로 번역이 되곤 하는데, 오소리티는 권위나 권한, 혹은 위신 따위를 지칭하는 낱말이죠. 말하자면, 주님은 제자들에게 돈이 주는 힘을 의지해서 당신의 일을 하지 말고, 도덕적인 권위에 의지해서 사람들의 호의와 환대를 이끌어 내고, 이것에 의지해서 살아갈 것을 요청하고 계시는 겁니다  


제자들은 자신의 특출한 능력에만 의지해서 미래를 열어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다른 이들과 더불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갈 것을 명 받은 사람입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엑수시아, 곧 도덕적 권위를 입게 하신 이유입니다. 제자들은 능력이 있는 사람이거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거나, 자신의 능력에만 의지해서 살아갈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 곧 이웃의 호의와 환대와 더불어 삶을 살아갈 것을 요청받는 사람입니다  


이른바 똑똑한 제자들, 뛰어난 제자들은 더욱 더 많은 기도와 성찰, 그리고 헌신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똑똑하다는 사실,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겸손히 내려놓지 않으면, 그는 엑수시아에 의지하기보다는 여전히 자기 자신의 힘과 능력에 의지해서 주님의 일을 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제자는 뛰어난 제자가 아니라, 겸손한 제자, 순종하는 제자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2.   


오늘 본문말씀은 말씀은 제자로 보냄을 받은 이들, 그리고 보냄을 받은 제자를 맞아들이는 이들이 받을 상에 대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제자들을 격려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요,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제자들을 환대하는 사람은 곧 하나님을 맞이하는 사람입니다. 제자로 보냄을 받은 이들뿐만 아니라, 그들을 환대하여 극진히 맞아들이는 사람들도 보냄을 받은 제자들과 동일한 상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예언자를 예언자로 맞아드리는 사람은, 예언자가 받을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을 의인이라고 해서 맞아들이는 사람은, 의인이 받을 상을 받을 것이다.” 예언자와 의인을 맞이하는 자들은 그들이 받을 상을 동일하게 받게 될 것이라는 주님의 약속입니다. 예언자와 의인이란 동시대 핍박받는 자리에 있기 마련입니다. 사회적인 존경을 받던 이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예언자와 의인의 자리에 서는 순간 친지와 동료, 그가 속한 공동체로부터 따돌림을 당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입니다  




3.  


인종차별 철폐운동의 선구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마틴 루터 킹 목사(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가 있습니다. 미국에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데이가 국경일로 지정되어 있을 만큼 미국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인물입니다. 킹 목사는 조지아 주 애틀랜타에서 존경받는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동시대 어떤 흑인들보다도 평탄하게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18세에 목사 안수를 받고, 26세에 보스턴대학에서 신학박사학위를 받았으니 그의 목사와 학자로서의 경력도 매우 빠른 편에 속합니다  


그런 그의 삶은 그가 1954년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에 있는 한 침례교회에 목사로 부임하게 되면서 급격한 변화에 이르게 됩니다. 1년 뒤 킹 목사의 동네에서 백인에게 버스 좌석을 양보하지 않은 로자 파크스(Rosa Parks, 1913-2005)란 여성이 흑백 분리 원칙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체포되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후 벌어진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의 역사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일로 킹 목사는 인종차별 철폐운동의 전국적인 지도자로 부상하게 되고, 뛰어난 연설로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됩니다. 이후로 수차례 투옥과 테러위협이 이어지다가 결국 1968년 맴피스에서 암살을 당함으로 생을 마감합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킹 목사의 이야기는 주로 인종차별 철폐운동에 관한 것입니다. 이 잘 알려진 이야기만으로도 킹 목사는 시대의 예언자이자 의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왔다고 말해 손색이 없을 겁니다  


그런데 킹 목사의 삶의 최대의 위기는 엉뚱하게도 다른 일에서 비롯됩니다. 그것은 그가 미국의 베트남전쟁을 반대하고 나서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베트남전쟁을 본격적으로 주도한 존슨 대통령은 흑인들의 시민권 보장에 매우 적극적인 사람이었습니다. 1964년의 시민권법도 그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통과될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의 베트남 전쟁에 대한 비판은 흑인 공동체들이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생각할 때 링컨을 제외하고는 역사상 그 어떤 대통령보다도 존슨만큼 흑인의 인권을 위해 헌신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킹 목사의 불운은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킹 목사는 아득히 먼 베트남에서 미국의 청년들이 죽어가는 것, 그리고 베트남의 생명들을 처참히 짓밟는 것을 더 이상 묵과해서는 안 된다고 여겨 전쟁을 반대했습니다. 그의 오랜 동료들은 시민권 운동의 상징인 킹 목사가 난데없이 전쟁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걱정했고, 등을 돌리기도 했습니다. 당시 신문들을 칼럼이나 사설을 통해 킹 목사의 전쟁 반대 행보를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시민권 운동이나 잘 하면 그만이지, 왜 국제분쟁 전문가도 아닌 주제에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느냐는 것이 비판의 요지였습니다. 그는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19674월 뉴욕의 리버사이드 교회에서 베트남전쟁을 격렬하게 비난하고 젊은이들에게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에 나설 것을 촉구하게 됩니다. 이 설교 이후 많은 사람들이 킹 목사에게 등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전쟁이 한창이던 때에, 미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베트남의 정글에서 죽어가고 있을 때에 미국이 수행하는 전쟁의 부도덕성을 고발하고, 살인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것은 매국적인 행위로 비춰졌습니다. 반역자, 배신자라는 비난이 일어났고, 이 상황에서 킹 목사는 절대적인 고독감을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혼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옳은 것을 위해 오해와 비난을 감수할 때 주님은 소수를 다수로 바꾸시는 분이라고 믿고, 꿋꿋하게 반전을 외쳤습니다. 이 일로 인해 미국의 시민권운동의 상징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였던 킹 목사는 존경받는 최고의 자리에서 일순간에 반역자의 자리로 곤두박질쳤습니다. 제가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존경해마지 않는 이유입니다  




4.  


예언자를 예언자로 맞아드리는 사람은, 예언자가 받을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을 의인이라고 해서 맞아들이는 사람은, 의인이 받을 상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주님의 약속입니다. 그가 속한 시대의 다수가 비난하는 행위라 할지라도, 그것이 생명을 살리고 평화를 위한 길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 길을 걷는 이들을 맞아들이는 사람은 그들이 받게 될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덧입혀진 각종 이념들, 국가주의, 군사주의, 사대주의, 발전지상주의, 남성중심주의 따위의 이념들이 주님의 말씀에 앞서 우리의 생각에 전제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생명과 평화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는 잘 듣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때에도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려는 노력을 그쳐서는 안 됩니다. 시민권 운동의 상징이었던 킹 목사는 존경받는 자리로부터 이 작은 사람들이라는 칭호가 어울릴 예언자와 의인의 자리로 내려와 그들이 받는 핍박을 감당했습니다. 생명과 평화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친구들, 그를 좋아하고 존경하던 이들이 대부분 등을 돌릴 것을 알았지만, 그것이 주님의 뜻이기에 그것 이외에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던 것이죠. 신앙 양심에 따른 겁니다. 예수님의 시선이 머무는 자리는 바로 여기입니다.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 제자라고 해서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사람은, 절대로 자기가 받을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   




5.  


제자란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 주변인이 될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오로지 주님의 권능에 의지하여 살아가면서 예언자와 의인을 환대하는 사람들의 호의에 의지해서 주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이들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제자로 세상에 보내셨을 뿐만 아니라 보냄을 받은 다른 제자들을 환대함으로 그들이 받을 상을 받도록 약속하셨습니다  


제자의 본문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되, 여의치 않을 때에는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을 환대함으로 그들에게 약속된 상에 참여하십시오. 그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시원한 냉수 한 그릇의 환대를 실천함으로써 그들이 앞서 열어가는 하나님 나라에 동참하십시오. “너희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요,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한 주간도 은총과 평화의 도구로 살아가기를 다짐하는 교우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