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주일설교

주님께 맡긴 삶

 

본문: 시편 23:1-6; 요한복음 10:11-18

설교: 홍정호 목사 (2018.4.22. 부활절 제4, 교회창립 제36주년 기념주일)

 

[나는 선한 목자이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들도 자기의 것이 아니므로,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가 양들을 물어가고, 양떼를 흩어 버린다. 그는 삯꾼이어서, 양들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선한 목자이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 그것은 마치,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린다. 나에게는 이 우리에 속하지 않은 다른 양들이 있다. 나는 그 양들도 이끌고 와야 한다. 그들도 내 목소리를 들을 것이며, 한 목자 아래에서 한 무리 양떼가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그것은 내가 목숨을 다시 얻으려고 내 목숨을 기꺼이 버리기 때문이다. 아무도 내게서 내 목숨을 빼앗아 가지 못한다. 나는 스스로 원해서 내 목숨을 버린다. 나는 목숨을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다. 이것은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명령이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부활절 네 번째 주일이며, 교회 창립 서른여섯 해를 기념하며 감사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매주일 한 걸음씩 내딛으며 온 길이 서른여섯 해의 이력(履歷)이 되었습니다. 첫 걸음을 함께 내딛으신 분들은 이제 80대의 노인이 되셨고, 청년대학생이던 분들은 이제 장로님과 권사님이 되어 교회를 섬기는 기둥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때 아장걸음을 걷던 아이들은, 이제 청장년이 되어 우리교회를 이끌어가는 다음세대의 주역으로 성장해 가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같은 공간과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이들이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축복입니다. 개인이 뿌리내릴 곳 없이 표류하는 시대에, 그야말로 요람에서 무덤까지생을 함께 할 교우들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여러분은 참 많은 복을 받은 분들입니다.

 

1.

 

주님께 맡긴 삶, 오늘 말씀의 제목입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십니다. 선한 목자란, 자기 목숨을 걸고 양들을 지킬 각오로 선 목자입니다. 언제 이리떼가 나타나 양들을 물어가고 흩어버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기 한 몸 지키는 데 급급하지 않고, 이리떼로부터 양떼를 돌보고 지키는 일을 자신의 보람과 기쁨으로 삼는 이, 그가 선한 목자입니다. 선한 목자의 반대말은 삯꾼입니다. 삯꾼의 사전적 정의는, “삯을 받고 임시로 일하는 일꾼입니다. 성서에서 삯꾼은 선한 목자와 대비되는 부정적 은유로 사용됩니다만, 현대사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노동과 시간을 물질로 교환하는, 사실상 삯꾼으로 살아갑니다.

 

개인적인 말씀을 드려 죄송합니다만, 제가 작년부터 프로야구를 관심을 갖고 보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입문한 격이라 낯선 풍경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 중 하나는, 작년까지 우리 팀 유니폼을 입고 뛰던 선수가, 더 좋은 계약조건에 따라 다른 구단 유니폼을 입고 다른 팀에서 뛰는 일이 프로의 세계에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진다는 겁니다. 심지어 자유계약선수(FA. free agent)라는 제도도 있어서, 그야말로 가장 높은 연봉을 제시하는 팀으로 언제든 자유롭게이적할 수 있는 선수를 다들 부러워합니다. 지난 시즌까지 우리 팀 에이스였던 선수가 경쟁 팀 에이스로 뛰는데도, ‘유니폼이 좀 낯설군하는 생각 외에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는 사실이 좀 놀라웠습니다. 선수만이 아닙니다. 아예 팀의 감독이 이렇게 움직일 수 있다는 건 더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게 프로의 세계라는 건가, 묘한 감정도 느끼고, 또 한편으로는 개별 팀이 아니라, 야구라는 종목을 즐기는 이들이 공유하는 정서인가보다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말하자면, 오늘날 프로의 세계에서 활동하는 모든 이들은 삯꾼이 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더 좋은 조건으로 언제든 이동할 수 있는 자유계약선수가 되는 것을 이상으로 삼으며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프로의 세계에 살기 때문에 성서의 언어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본문에서 이리떼로부터 목숨을 걸고 양떼를 지켜내는 선한 목자를 자유계약 선수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이 목장에서 저 목장으로, 이 시장에서 저 시장 옮겨 다니면서, 목자로서의 자기 전문성을 더 인정해 주고, 양떼를 생각하는 자기의 진정성을 더 알아주는 그런 좋은목장으로, 한 마디로 자기 몸값을 더 인정해주고 더 쳐주는 그런 목장으로 언제든 옮겨갈 수 있는 그런 자유로운목자를 과연 선한 목자라고 할 수 있느냐 하는 질문입니다. 아닙니다. 성서는 그런 목자를 삯꾼이라고 부릅니다. 비록 오늘날 프로의 세계에 사는 우리 모두가 얼마간 삯꾼의 지위를 벗어나기 어려운 생활을 한다 하더라도, 성서는 돈보다, 그리고 타인의 인정과 자기의 안락함보다 우선적으로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힘주어 말합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소명입니다.

 

2.

 

선한 목자는 양떼가 자기를 알아주고, ‘자기에게 고마워하고, ‘자기에게 보답하기 때문에 거기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선한 목자는 주인이 나에게 양떼를 맡기셨다는 그 믿음 때문에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지키는 사람입니다. 양떼가 나를 부른 게 아니라, 양떼의 주인이 나를 불러 양떼를 지키는 자리에 있게 하셨다는 믿음 때문에, 초원에 선 이의 외로움과 시련 가운데에서도 그 자리를 충실히 지켜내는 사람이 바로 선한 목자입니다. 한 마디로, 선한 목자를 움직이는 힘은 주인에게 받은 소명이지, 양떼의 필요나 이리떼의 위협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선한 목자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주인이, 이제 역할을 다 했으니 떠나도 좋다, 말씀하시기 전까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미우나 고우나, 달거나 쓰거나, 양떼를 위해 자기의 할 일을 다 하는 이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명령”(10:18)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삯꾼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주인이 아니라, 자기가 기준인 사람입니다. 주인의 뜻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의 필요에 따라 머물고 떠날지를 결정하고, 자기의 뜻에 주인의 뜻을 끼워 맞춰서 어떻게든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일을 몰아가려는 이가 바로 삯꾼입니다. 교회는 그런 삯꾼들이 많을 때 병들고 흩어지며, 선한 목자와 같은 이들이 소명을 따가 자기의 자리를 지킬 때 날로 든든히 세워져 갑니다.

 

주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분이 목자로 든든히 서실 수 있었던 까닭은 그분이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명령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주님을 통하여 아버지로부터 명령을 받은 자들이 되었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부활하시어 시몬 베드로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어린 양 떼를 먹여라.”(21:15) ‘내 양을 먹이라이것이 부활하신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명령이요, 교회의 사목활동, 목회활동의 본질입니다.

 

목회활동에 관한 우리 개신교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만인이 소명을 받은 사제라는 것 아닙니까? 신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과정을 거쳐 안수 받은 이만 성직자가 아니라, 모든 이가 자기 삶의 자리에서 맡겨진 일을 수행하는 데 있어 부름 받은 사제와 다름없다는 것이, 프로테스탄트가 말하는 만인제사장론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양떼인 동시에, 우리 삶의 자리에서 부름 받은 목자입니다. 우리가 돌보아야 할 양떼,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양떼를 돌보고 그들을 위해 수고하는 데 있어 목회자와 평신도의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만 내 양을 먹이라, 하신 것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의 일에 동참하길 원하는 진실한 제자인 모든 이에게 내 양을 먹이라, 말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주님께서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선한 목자로 서 계실 수 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분이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당신을 온전히 맡긴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다”(10:17), 주님은 이 믿음을 끝까지 간직하셨고, 이 믿음으로 십자가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누군가의 사랑과 인정을 받는다는 것, 그것도 그 사랑과 인정의 끝이 어디인지 모르는 사랑, 다시 말해 가없는사랑과 인정을 받고 있다는 믿음은, 그로 하여금 타인을 향해서도 담대한 사랑과 인정의 주체가 되도록 만듭니다. 사랑 많이 받고 자란 아이가 커서도 사랑할 힘이 있고, 인정을 받고 성장한 아이가 타인에 대한 인정에 있어서도 인색하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에 이런 경험을 하고 자라지 못했다 하더라도, 자기를 인정하고 지지해주는 존재와 공동체를 만남으로써, 성인이 된 이후에도 이런 경험을 계속 해 나갈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존재와 교회의 지지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주님은 아버지께 사랑받는다는 확신이 있으셨기에 담대히 당신의 일을 하실 수 있었습니다. 선한 목자이신 주님은 그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당신을 온전히 맡기고 사셨습니다. 그래서 이후로 그분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이제 하나님의 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로 여겨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성찬을 나눌 때마다 함께 부르는 찬송이 있습니다. “아버지 당신 손에 제 영혼 맡기나이다. 아버지 당신 손에 제 영혼 맡기나이다.” 하는 떼제 찬송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남기신 마지막 말씀이기도 하지만, 그분의 생애 전체를 관통하는 고백이요, 그분의 삶을 한 마디로 응축한 고백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아버지 손에 내 영혼을 맡긴다는 것, 그것은 이제 앞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내가 취사선택하지 않겠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할 수 없어서 안 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주체가 되어 선택하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주인이 되시어 하시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 더 큰 복락을 누리는 길이요, 진리와 생명의 길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아무도 내게서 내 목숨을 빼앗아 가지 못한다.” 하셨습니다. “나는 스스로 원해서 내 목숨을 버린다.” 하셨습니다. “나는 목숨을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다.”고 하셨습니다.(10:18) 주님은 홀로 서신 분이었지만, 홀로 서 있음을 자랑하지 않으시고, 홀로 서신 그대로 하느님 아버지께 당신의 영혼을 바치는 삶을 사셨습니다. “아버지 당신 손에 내 영혼을 맡기나이다저는, 주님께서 이렇듯 아버지께 온전히 당신을 맡긴 삶을 사셨기에, 양떼와 이리떼 모두에게 흔들림 없이 중심을 잡고 당신의 일을 해 나가실 수 있었다는 사실에 큰 도전과 감동을 받습니다. 그분을 움직인 힘은 양떼의 환영이나 이리떼의 위협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께 의탁한 삶, “아버지로부터 받은 명령이 그분을 움직이는 힘이었습니다.

 

4.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우리는 교회창립 제36주년을 축하하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외람된 말씀이겠습니다만, 제가 한 십여 년 여러분을 가까이서 뵈었는데, 여러분 모두 다른 교회로 이적을 가셔도 대체로 환영받을 만한 분들입니다. 이 무한히 개방적인 개신교라는 종교시장에서 이 교회 저 교회 옮겨 다니는 프로신자로, 아니 아예 ‘FA선수급신자로 어디 나서도 충분히 환영받고 인정받을 만한 분들입니다. 그런데 제가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이 작은 교회에 왜 몇 년 혹은 몇 십 년 한 자리를 지키고 계십니까? 무엇이 여러분을 이 자리에 계속 머물게 하는 힘입니까?

 

관점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가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있게 하시니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신자로서, 하나님께 우리 인생을 맡겼다고 고백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믿고 맡겼으면, 맡으신 분이 뜻대로 하시는 겁니다. 우리 인생을 맡으신 분, 우리 인생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게 하시고, 여기에 있게 하셔서, 오늘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겁니다. ‘가 선택해서, ‘의지를 가지고 오늘까지 이 자리를 지켰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실상은 하나님의 은혜가 를 있게 하고, ‘를 있게 하고, 그리고 우리로 만나게 하셔서, 오늘 교회로 한 몸을 이루게 하셨다는 믿음의 고백이 필요합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는 주님께 인생을 맡긴 자들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은혜를 허락하셨습니다. 주님께 더 많이 맡기십시오. 더 많이 의지하고, 더 큰 믿음으로 응답하며 사십시오. ‘아버지 당신 손에 내 영혼 맡기나이다하신 주님의 믿음을 본받아,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길을 열어주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두려움 없이 가십시오. 선한 목자이신 그분께서 우리의 길을 사랑으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서른여섯 해의 걸음을 걸어왔습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그리고 세대를 거듭하면서 믿음 가운데 날로 든든히 세워져가는 저와 여러분, 그리고 사랑하는 우리 신반포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좋으신 우리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한 주간도 여러분과 늘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95 그리스도 안에서 (2018.7.15.) 홍목사 2018.07.15 2
794 반석 위에 지은 집 (2018.7.8.) 이원로 2018.07.09 9
793 경계를 넘어 (2018.7.1.) 홍목사 2018.07.01 29
792 풍랑이 일 때 (2018.6.24.) 홍목사 2018.06.24 22
791 복음의 일꾼 (2018.6.17.) 홍목사 2018.06.17 11
790 성령의 능력 (2018.6.10.) 홍목사 2018.06.10 18
789 살리는 믿음 (2018.6.3.) 홍목사 2018.06.04 31
788 성령으로 난 사람 (2018.5.27. 웨슬리회심기념주일) 홍목사 2018.05.27 39
787 진리의 영이 오시면 (2018.5.20. 성령강림절) 홍목사 2018.05.20 38
786 시냇가에 심은 나무 (2018.5.13.) 홍목사 2018.05.13 41
785 친구 되신 예수님 (2018.5.6. 어린이주일) 홍목사 2018.05.06 32
784 머물러 있어야 할 곳 (2018.4.29. 야외예배) 홍목사 2018.05.01 36
» 주님께 맡긴 삶 (2018.4.22. 교회창립기념주일) 홍목사 2018.04.22 57
782 우리의 주님 (2018.4.15.) 홍목사 2018.04.15 52
781 부활의 증인 (2018.4.8.) 홍목사 2018.04.08 47
780 부활의 자리 (2018.4.1. 부활절) 홍목사 2018.04.01 72
779 종말의 시간 (2018.3.30. 성금요일) 홍목사 2018.04.01 51
778 나귀를 타고 오시는 분 (2018.3.25. 종려주일) 홍목사 2018.03.25 64
777 밀알 신앙 (2018.3.18.) 홍목사 2018.03.18 85
776 예수를 통하여 (2018.3.11.) 홍목사 2018.03.12 95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40 Next
/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