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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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는 믿음

 

본문: 시편 81:1-10; 마가복음 2:23-3:6

설교: 홍정호 목사 (2018.6.3. 성령강림 후 제2)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시게 되었다. 제자들이 길을 내면서, 밀 이삭을 자르기 시작하였다. 바리새파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어찌하여 이 사람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릴 때에,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를 너희는 읽지 못하였느냐?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사장들 밖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제단 빵을 먹고, 그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인자는 또한 안식일에도 주인이다.”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런데 거기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예수를 고발하려고, 예수가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를 보려고, 예수를 지켜보고 있었다. 예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가운데로 나오너라.”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그들은 잠잠하였다. 예수께서 노하셔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들의 마음이 굳어진 것을 탄식하시면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손을 내밀어라.” 그 사람이 손을 내미니, 그의 손이 회복되었다. 그러자 바리새파 사람들은 바깥으로 나가서, 곧바로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를 없앨 모의를 하였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성령강림 후 두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의 복음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이 하신 일에 관한 본문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것은 십계명의 제4계명입니다. 안식일은 거룩하게 지켜야 하는 날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명령에는, 안식일에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쉼의 중요성을 되새겨야 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만, 거룩한 일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되게 해야 한다는 적극적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그럼에도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명령에 담긴 적극적 의미는 율법중심의 유대교 전통에서 간과되어 왔습니다.

 

1.

 

오늘 마가가 전하는 복음은, 안식일에 담긴 적극적 의미가 무엇인지, 안식일 율법을 준수함으로써 회복되어야 할 참나(眞我)의 모습은 어떠한 것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메시지의 핵심은 예수님의 유명한 말씀,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라는 말씀에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안식일에, 그러니까 운동을 최소화하고 노동을 금하는 날에, 예수님 일행은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제자들이 길을 내면서, 밀 이식을 자르는강도 높은(?) 노동을 합니다. 그 장면을 직접 보았는지 나중에 전해 들었는지, 바리새파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따지듯 말합니다. “보십시오, 어찌하여 이 사람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복음서의 부정적 묘사와 달리, 바리새파 사람들은 율법의 수호자요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서 당대에 존경받던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준수할 뿐만 아니라, 시대적 맥락에 따라 재해석함으로써 율법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들은 무엇보다 뚜렷한 경계를 지닌 이들이었습니다. 옳고 그름,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추구해야 할 가치와 버려야 할 가치의 분명한 기준이, 그들이 해석하고 준수하는 율법을 기준으로 확고히 서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이들이 보기에 용납할 수 없는 일을 예수님과 제자들은 그들의 목전에서 행했던 것입니다. 바리새파 사람이 와서 예수님께 따지듯 말한 것을 일면 이해할 수 있는 이유이겠습니다.

 

2.

 

화가 난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그들도 잘 아는 지난 얘기를 상기시키며 말씀하셨습니다.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릴 때에 제사장들밖에 먹지 못하는 빵을 먹은 이야기입니다. 본격적인 말씀에 앞서, 마가가 이 이야기를 전하면서 착각하고 잘못 기록한 내용이 있어, 잠시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다윗 일행이 제사장의 빵을 얻어먹은 이야기는, 마가가 전하는 것처럼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비아달의 아버지인 아히멜렉 대제사장 때 일어난 일입니다. 한정된 자료와 기억에 의존해서 기록을 하다 보니 이런 실수가 생긴 것 같습니다. 마가를 참고한 마태와 누가복음에도 같은 내용이 나오는데, 거기에는 잘못 기록된 내용이 수정되었습니다. 마가가 디테일에서 이런 실수를 했다는 게 오히려 인간적으로 느껴져 좋습니다. 더욱이 이런 오류를 몰랐을 리 없는 교회와 성서학자들이 지금까지 마가가 잘못 기록한 내용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서 말씀에 대한 신뢰가 한층 더 깊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마가가 디테일에서 어긋난 이 본문은 구약성서 사무엘상 21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닐 때의 일화입니다. 다윗 일행은 사울왕을 피해 이라는 지역까지 도망쳐 왔습니다. 거기에서 다윗은 제사장 아히멜렉을 찾아가 굶주린 그들이 먹을 것이 좀 없는지 물었습니다. 아히멜렉은 지금 보통 빵은 내게 없고, 있는 것은 거룩한 빵뿐입니다.”(21:4a)하고 답합니다. 아히멜렉은 다윗 일행이 정결규례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는지 물은 후 다윗의 대답을 믿고, 그러니까 별다른 확인 절차 없이 다윗의 말을 그냥 믿어주고, 제사장들에게만 허락된 제단의 빵을 다윗에게 내주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상을 보면 다윗은 아히멜렉 제사장에게 빵 말고 다른 것을 하나 더 요구했습니다. 바로 무기입니다. 다윗은 아히멜렉에게 지금 가지고 있는 창이나 칼이 없는지 물었고, 아히멜렉은 보관하고 있던 칼을 내주었습니다. 그 칼은 소년 시절 다윗이 엘라 골짜기에서 죽인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이었습니다.

 

위기를 넘긴 다윗 일행은 점점 더 큰 세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상을 보면, 압제를 받는 사람들과 빚에 시달리는 사람들, 원통하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모두 다윗 주변으로 몰려들었고, 이렇게 해서 다윗은 사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삼상22:2)고 전합니다. 그들 하피루들, 도망자요 떠돌이 부랑자 생활을 하던 이들이 훗날 다윗 왕국의 핵심 세력이 되었습니다. 한편, 도망자 다윗에게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는 빵을 주고, 무기까지 준 아히멜렉은 놉까지 찾아 온 사울왕에게 처참한 죽임을 당합니다. 이미 제정신을 잃어버린 사울왕은 놉의 다른 제사장들뿐만 아니라, 성읍에 사는 주민들을, 남자와 여자, 어린이와 젖먹이, 소 떼나 나귀 떼나 양 떼를 가리지 않고 모두 몰살시켰습니다.(삼상 22:19) 이때 대학살을 피해 도망쳐 나온 아히멜렉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마가가 아히멜렉과 혼동한 아비아달입니다. 이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은 훗날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아히멜렉은 율법의 최고 준수자인 대제사장이었지만, 율법에 메이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도망자 다윗에게 음식과 무기를 제공한 아히멜렉은, 비록 대제사장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야훼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율법을 거슬러 행동할 용기를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부합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용기 있는 행동의 결과로 그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습니다만,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 제사장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와 함께하는 그 가문의 영광은 후대로 계승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어떠셨습니까. 안식일 율법에 메이시는 대신 살리는 믿음을 택하신 결과, 그분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다시 살리셔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율법을 넘어 선 사랑과 자비를 우리와 세계에 보여주셨습니다. 지금 당장 이기는 선택을 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최후승리를 바라는 삶을 살 것인가, 그것은 결국 개인의 믿음에 따른 선택이겠습니다만, 성서와 교회의 전통을 통해 계승되는 신앙의 모범은 최후승리를 믿는 삶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3.

 

또 하나의 이야기는 안식일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치신 이야기입니다. 안식일에 이런 의례를 치루는 것에 대해 바리새파 사람들은 영 못마땅했습니다. 좋은 일이긴 한데, 그 일을 평일 중 다른 날에 하면 되지, 굳이 하지 말라는 안식일에 해야겠냐는, 그런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들을 꾸짖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마가는 이 말씀을 하시면서 예수님께서 노하셔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들의 마음이 굳어진 것을 탄식하셨다고 전합니다. 생명을 살리라고 주신 율법을, 생명을 억압하는 일을 정당화 하는 데 들이대고 있으면서도 자기의 일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 규정이 존중되고 지켜져야 하는 것이지만, 선한 일을 위해서라면, 안식일 규례를 어길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는 도전을 하고 계시는 겁니다.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삶의 조건에 놓여 있으면서, 그 율법의 무게를 바위 덩이처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이들의 고단함을 예수님은 보셨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살아도 죄인’, 저렇게 살아도 죄인이 되는 율법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런 이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율법을 주신 사랑의 하나님은, 병자의 회복을 원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안식일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사랑의 해방이 미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비록 율법이 금하고 있는 일이라고 해도, 더 크신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의 법에 비추어,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용기와 믿음, 즉 살리는 믿음이, 믿는 자들에게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당신을 비난하는 이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손이 오그라든 이의 손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님은 율법의 주인은 그 해석자들이 아니라 율법을 주신 하나님이시고, 그분의 뜻을 수행하는 예수님 당신이심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는 종교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종교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종교, 사람의 지평을 넓이고 사람됨의 깊이를 더하는 종교라야, 곧 사람을 더 사람답게 하는 종교라야 믿고 따를 가치가 있는 종교입니다. 그런 가르침을 전하는 종교가 아니라면, 저나 여러분이나 그런 데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의 인간됨의 지경을 넓히는 종교라야, 믿음이 깊어질수록 사람의 품이 더 넓어지고, 더 사람다워지는 종교라야 가치 있는 종교입니다. 그리고 저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참 믿음이란 그러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분은 사람을 살리는 믿음의 길이 곧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임을 우리에게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4.

 

사람과 사람을 가르는 높은 담들, 나와 너를 가르는 수많은 경계들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일상을 살아갑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의 제자 된 삶을 산다는 것, 그분에 대한 믿음의 깊이를 더해간다는 것은, 결국 이런 높은 담들이 무너지고, 뚜렷한 경계선들이 지워지는 체험을 이어가는 삶입니다. 화해할 수 없는 없었던 이들과 화해하고, 용서할 수 없었던 이들을 용서하게 되고, 나와 다르다고 치부해버리고 말았던 이들 속에서 한 분 하나님의 형상을 발견하게 되는 기적, 그것이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며,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이루신 일입니다. 한 주간도 살리는 믿음의 이정표를 따라, 사랑의 완성이신 주님의 뜻을 우리 삶 가운데 이루어가는 우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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