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주일설교
조회 수 11 댓글 0

복음의 일꾼

 

본문: 시편 20:1-9; 마가복음 4:26-34

설교: 홍정호 목사 (2018.6.17. 성령강림 후 제4)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하나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고, 밤낮 자고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그 씨에서 싹이 나고 자라지만, 그 사람은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를 알지 못한다.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 하는데, 처음에는 싹을 내고, 또 그 다음에는 이삭에 알찬 낟알을 낸다. 열매가 익으면, 곧 낮을 댄다. 추수 때가 왔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길까? 또는 무슨 비유로 그것을 나타낼까? 겨자씨와 같으니, 그것은 땅에 심을 때에는 세상에 있는 어떤 씨보다도 더 작다. 그러나 심고 나면 자라서, 어떤 풀보다 더 큰 가지들을 뻗어,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수 있게 된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로, 이와 같이 많은 비유로 말씀을 전하셨다.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셨으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설명해 주셨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성령강림 후 네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의 복음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스스로 자라는 씨에 비유하시고, 겨자씨에 비유하시기도 하셨습니다.

 

1.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본문 41절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비유는 이렇습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습니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더러는 길가에 떨어져 새들이 쪼아 먹고, 더러는 흙이 많지 않은 돌짝밭에 떨어져 싹이 나자마자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해 말라 버리고, 더러는 가시덤불 속에 떨어져 가시덤불의 기세에 눌려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좋은 땅에 떨어진 씨에서는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습니다.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맺었습니다. 이런 말씀을 하시고 예수님은,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라하셨습니다.

 

비유로 말씀을 하신 건 많은 무리가 예수님께 모여들었기 때문입니다. 마가는 예수님의 소문이 갈릴리 주위의 온 지역에 두루 퍼졌다고 전합니다.(1:28) 예수의 소문을 들은 이들은 그분에게 기대하는 바가 제각각이었을 겁니다. 어떤 이는 그분이 병자를 치유하셨다는 소식에 병 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예수를 찾아왔을 것이고, 어떤 이는 그가 악한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셨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을 것이고, 또 어떤 이는 그분이 고매하신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 앞에서 율법의 참뜻을 권위 있게 가르치셨다는 소식에 놀라 한 말씀 듣고자 찾아왔을지 모릅니다. 또 어떤 이들은 예수님 일행이 분봉왕 헤롯의 행태를 비판하면서 로마의 사회정치경제적 식민통치에 저항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을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이들의 바람은, 생각건대, 이렇게 모두 제각각이었을 겁니다.

 

이런 이들 앞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고, 말씀을 마치신 후에는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라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이 비유의 말씀을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제가 여기에서 다 여쭤볼 수는 없습니다만, 몇 분에게라도 질문을 드리면 그 의미가 제각각일 겁니다. 같은 비유의 말씀을 듣지만, 해석된 의미는 모두 다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비유는 포괄적이고 개방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말을 듣는 대상이 한정되었을 때는 명확하고 직설적인 언어를 사용하시지만, 대중을 상대로는 주로 포괄언어(inclusive language)를 사용하셨습니다. 발화자가 자기 말의 의미를 고정해서 청중에게 전달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청중이 듣고 저마다의 입장에서 달리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식입니다. 말하자면 해석의 권한을 청중에게 넘기는, 해석의 폭을 넓게 열어 둔 포괄적이고 개방적인 언어를 특징으로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당신께서 옳다고 생각하시는 바가 없으셨던 건 아닙니다. 그분은 복음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확고한 뜻이 서 계신 분입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포괄적이고 개방적인 비유를 자주 사용하신 것은, 예수님에게 기대하는 바가 제각각인 이들을 너그러이 배려하시고, 말씀으로 이끄시기 위함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옳은 말만 하는 사람, 자기 확신에서 한 발짝도 물러날 생각이 없는 사람, 그런 사람과 대화하고 사귀는 게 좋으신가요, 아니면, 그래도 상대를 배려할 줄 알고, 자기 생각이 있어도 적당히 거리를 두고 때로 에둘러 말할 줄도 아는 그런 사람과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게 좋으신가요. 사실 예수님에게는 두 면이 모두 있었습니다. 그분은 누구와 대면(對面)하느냐에 따라 태도를 달리 하셨습니다. 불의한 이들, 남을 정죄하는 데 앞장서면서 자신은 의롭다는 확신에 사로잡힌 이들 앞에서 그분은 날선 언어로 그들을 꾸짖으셨습니다. 그러나 연약한 이들, 낙심한 이들,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여기는 이들 곁에서는 그들을 위로하시고, 그들을 복음의 일꾼으로 불러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대중 앞에서 이렇게 비유로 말씀하신 예수님도 당신과 한뜻이 된 소수의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는 비유를 자세히 풀어서 설명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당신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할 제자들이 예수님의 뜻을 오해하는 일은 없어야하기 때문이겠습니다.

 

2.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이어 하신 말씀이 바로 오늘의 본문인 스스로 자라는 씨의 비유, 겨자씨의 비유입니다. 땅에 씨를 뿌린 농부는 그날부터 근심의 유혹을 받습니다. 뿌린 씨가 잘 자라서 제때 싹이 나고 열매를 맺을 것인지, 혹 예상치 못한 일로 농사를 망치고 마는 것은 아닐지 불안해합니다. 그런데 경험 많은 농부는 압니다. 그가 씨를 뿌리고 마음을 쓰고 애를 태운다한들 싹이 나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압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만,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하는 것입니다. 농부의 할 일은 때에 맞게 씨를 뿌리는 일입니다. 그러나 농부가 할 일도 있습니다. 좋은 씨앗을 고르는 일, 그리고 좋은 땅에 씨를 뿌리는 일입니다. 씨앗이 좋아도 길가나 돌짝밭에 뿌려진 씨앗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반대로 좋은 땅이라 하더라도 씨앗이 좋지 못하면 이내 병들어 버리고 맙니다. 해서, 농부는 씨 뿌리기 전에는 고민을 해야 합니다. 여기가 열매를 맺을 만한 땅인가, 이 씨앗은 좋은 씨앗인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다라는 답을 얻었다면, 농부는 염려를 거두고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러면 그 다음의 일은 땅이 알아서 합니다. 잡초를 뽑아주고, 해충이 꼬이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곡물의 생장은 땅에 맡기는 것, 그것이 씨 뿌리는 사람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한다는, 스스로 자라는 씨의 비유를 드신 후에 겨자씨의 비유가 곧이어 등장합니다. 겨자씨는, 스스로 자라는 식물의 대표 격에 속하는 식물입니다. 이 비유를 이해하려면 이스라엘의 겨자씨가 어떤 식물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겨자는 야생식물로, 씨는 좁쌀알만 하지만, 자라면 1미터 이상 되는 큰 풀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겨자씨는 특별히 심지 않아도 아무 데서나 번식하고, 한번 자리를 잡으면 일대 겨자숲을 이룬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겨자숲에 새들이 모여들어 둥지를 틀게 된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작은 씨에서 자란 겨자숲에 모여든 새들이 농부들의 골칫거리라는 데 있습니다. 우리도 들판에 허수아비를 볼 수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의 농부들에게도 새들을 골칫거리였습니다. 좁쌀알만한 크기에 지나지 않는 겨자씨가 자라 거기에 모여든 새들이 땀 흘려 일구어놓은 농사를 망치는 것입니다.

 

마가는 이 말씀 역시 예수님께서 그들의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로비유로 말씀하셨다고 전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농부들의 골칫거리인 겨자씨를 하나님 나라의 비유로 사용하셨을까요? 이 말씀은 처음에는 작던 것이 결국에는 커진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일까요? 현대 성서학자들은 여기에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고 봅니다. 이 비유는 듣기에 따라 매우 불편한 얘기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체제의 전환을 암시하는 전복의 서사이기 때문입니다.

 

로마 황제와 분봉왕 헤롯이 합작하여 심은 씨앗은, 이스라엘의 농토 위에서 잘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 씨앗이란 로마의 제국주의, 헤롯의 식민통치라는 씨앗이었습니다. 아무 문제없이 잘 자라고 있었는데, 이게 웬일인가요, 예루살렘도 아닌 저 나사렛 촌구석 모퉁이 어디에서 겨자씨와 같은 예수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의 좁쌀알만한 존재감에 식민당국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분 주변으로 점차 많은 이들이 모여들어 잘 되고 있던 로마 황제와 헤롯의 농사를 서서히 위협하기 시작합니다. 위기감을 느낀 이들은 예수를 처형해 버렸지만, 제거하면 할수록 변화의 물결은 더욱 거세게 일어납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렇게 서서히, 그러나 돌이킬 수 없이 다가온다는 것이 이 비유에 담긴 메시지의 핵심입니다. 성서학자 크로산은 그래서 이렇게 결론을 맺습니다. “정성껏 경작한 농원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골칫거리이다.(한인철, 예수, 선생으로 만나다, 청송, 2016, 106-109; 크로산, 예수는 누구인가?, 한국기독교연구소, 98-99.) 여기서 골칫거리라고 번역이 되었지만, 크로산은 페스트(pest)라고 낱말을 썼습니다. 페스트는 해충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어떤 이들에게는 해충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물론 북미의 현대 성서학자들의 해석입니다. 특별히 복음서의 메시지를 사회정치경제적 맥락 속에서 읽어내려는 역사적 예수 연구의 최근의 흐름을 반영한 해석입니다. 마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설명해 주셨다고 했습니다만, 이런 뜻으로 말씀하셨는지, 전혀 다른 뜻이 담겨 있는지, 복음서가 명확하게 전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저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작은 자들 가운데에서 시작된 큰 역사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죄인을 들어 의인을 부끄럽게 하시는 역사이고, 약한 이들을 들어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역사라는 사실입니다. 복음을 대할 때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일꾼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동시에 씨 뿌리는 이의 근심도 더불어 안게 되었습니다. 이 일이 뜻대로 잘 될까, 내 수고가 헛된 일이 되어버리지는 않을까, 하나님 나라의 꿈이 정말 실현되기는 하는 것일까, 염려와 불안이 엄습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나라는, 일단 씨를 뿌려 놓으면 자고 일어나는 사이 싹이 나고 자란답니다. 그것은 씨 뿌리는 사람의 걱정할 일이 아니랍니다. 비록 자라는 속도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좋은 씨앗을 골라 옥토에 뿌렸다면, 서서히, 그러나 돌이킬 수 없이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안에서 자라나 열매 맺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시작된 하나님 나라는 세상을 이기는 복음의 권능이 됩니다.

 

복음의 일꾼으로 부름 받은 이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우리의 욕망을 정당화하고 부풀리기 위해, 혹은 욕망에 면죄부를 주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믿음은, 욕망을 거슬러 하나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이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으로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복음의 일꾼으로 살아가는 이에게 요청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작은 씨앗이 자라나 수풀을 이루고,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 이 믿음을 가질 때 우리는 울면서도 씨를 뿌릴 수 있고, 인내할 수 있으며, 결과에 아랑곳하지 않고 복음의 한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한 주간도 복음의 씨 뿌리는 사람으로, 주님의 사랑과 자비를 세상에 전하는 신실한 일꾼으로 살아가길 다짐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95 그리스도 안에서 (2018.7.15.) 홍목사 2018.07.15 5
794 반석 위에 지은 집 (2018.7.8.) 이원로 2018.07.09 12
793 경계를 넘어 (2018.7.1.) 홍목사 2018.07.01 30
792 풍랑이 일 때 (2018.6.24.) 홍목사 2018.06.24 24
» 복음의 일꾼 (2018.6.17.) 홍목사 2018.06.17 11
790 성령의 능력 (2018.6.10.) 홍목사 2018.06.10 19
789 살리는 믿음 (2018.6.3.) 홍목사 2018.06.04 32
788 성령으로 난 사람 (2018.5.27. 웨슬리회심기념주일) 홍목사 2018.05.27 39
787 진리의 영이 오시면 (2018.5.20. 성령강림절) 홍목사 2018.05.20 38
786 시냇가에 심은 나무 (2018.5.13.) 홍목사 2018.05.13 41
785 친구 되신 예수님 (2018.5.6. 어린이주일) 홍목사 2018.05.06 32
784 머물러 있어야 할 곳 (2018.4.29. 야외예배) 홍목사 2018.05.01 36
783 주님께 맡긴 삶 (2018.4.22. 교회창립기념주일) 홍목사 2018.04.22 57
782 우리의 주님 (2018.4.15.) 홍목사 2018.04.15 53
781 부활의 증인 (2018.4.8.) 홍목사 2018.04.08 47
780 부활의 자리 (2018.4.1. 부활절) 홍목사 2018.04.01 72
779 종말의 시간 (2018.3.30. 성금요일) 홍목사 2018.04.01 51
778 나귀를 타고 오시는 분 (2018.3.25. 종려주일) 홍목사 2018.03.25 64
777 밀알 신앙 (2018.3.18.) 홍목사 2018.03.18 86
776 예수를 통하여 (2018.3.11.) 홍목사 2018.03.12 9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40 Next
/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