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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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 위에 지은 집                   

             

본문: 시편 95:1-7, 마태7:24-29

설교: 이계준 목사 (2018.7.8.)

 

저는 이 시간 반석 위에 세운 집이란 제목으로 서론에서 김용운 교수의 역사 이야기, 본론에서 예수님의 집터 이야기, 마지막에 우석훈 씨의 인생 이야기를 말씀드리면서 성찰과 은혜의 시간을 나누려고 합니다.

 

 

1.

 

지난 봄 한양대학의 수학과 명예교수인 김용운 박사가 <역사의 역습>이란 대작을 펴냈습니다. 그는 박학다식한 학자로써 인문학, 과학, 종교학 등 종합적 시각에서 인류 역사의 문제를 보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습니다. 창세기 첫 머리에 하느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시기 전 혼돈이 있었다는 기록처럼 김 교수는 모든 민족의 역사는 혼돈의 신화에서 시작하여 질서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러나 역사는 혼돈과 질서의 기계적 반복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전개되고 발전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역사의 혼돈과 질서란 맥락에서 우리가 기억하는 역사와 살아가는 역사를 생각해 보면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근세 서구역사를 보면 18세기 이후 과학기술과 자본주의 발전 및 인성의 진화는 세계를 지상천국으로 만들 것이란 장미 빛 역사관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과학기술과 자본주의의 발전은 잉여 생산품을 소비할 식민지가 필요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열강들은 두 차례의 전쟁을 치렀습니다. 그 결과 무수한 인간생명의 희생과 문화유산의 파괴는 역사관을 낙관주의에서 비관주의로 바꿔버렸습니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세계는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으로 대결하면서 한국은 대리전쟁의 희생양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전 구도에서는 적군과 아군이 분명했고 지난 세기말 공산진영의 몰락은 세계 평화와 인류의 행복을 보장하는 질서를 돼 찾은 듯했습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새로운 혼돈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민주진영의 대변자인 영국과 미국이 국가이익을 위해 동맹을 파기하고 무역전쟁을 촉발하는가 하면 IS나 북한과 같은 약소국가들의 주체의식이 살아나면서 강대국들과의 갈등과 대립으로 인해 온 세계는 무질서의 늪에 빠지고 예측불허의 혼돈이란 불랙홀로 빨려 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렇듯 세계적 혼돈과 무질서 가운데 국내적으로는 부패하고 무능한 낡은 질서는 퇴각하고 역사의 실험대에서 실패한 이념의 망령이 되살아나 지난 70년간 눈부시게 발전한 자유와 번영의 질서를 위협하고 좌우의 양극화는 사회적 혼란을 가속시키고 있습니다. 더욱이 북핵의 미해결 상태에서 이념의 촛불을 위해 오랜 우방을 버리고 스스로 무장해제하면서까지 나라와 국민을 희생 제물로 바치려하지만 열강들의 무관심과 냉대로 우리의 운명은 미운 오리새끼 신세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런 혼돈과 위기 가운데서도 국민 대다수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당장에 신천지가 전개되리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혼돈의 발원지는 부실한 가치추구와 세상은 망해도 자기만 살아남기 위해 각자도생하려는데 있습니다. 삶의 행복과 공동체의 평화는 혼돈에 대한 철저한 성찰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이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없으니 혼돈만 가속화되고 최후심판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습니다.

 

지난주 한국 팀이 16강에서 세계 1위인 독일 팀을 20으로 이긴 기적과 세계 언론의 칭찬으로 온 나라가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본 팀은 16강에서 벨기에에게 3:2로 아쉽게 패하고도 관중들은 물론 선수들이 라커룸을 말끔히 청소하고 스바시바” “감사합니다는 글을 남기고 떠났다고 합니다. 우리가 일본을 증오하고 비난하지만 문화의식과 질서의식의 차이는 현해탄만큼이나 넓다는 사실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어디입니까?

 

 

2.

 

예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설 자리에 대해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집을 지을 때 모래 위에 짓지 말고 반석 위에 지으라고 말입니다. 성경에서 바위란 하느님이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시편은 하느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반석’(95:1)이라고 했고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는 바위’(고전 10:4)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구약 지혜문학인 잠언의 전통을 따라 슬기로운 사람은 인생이란 집을 하느님의 뜻 곧 반석 위에 집을 짓고 어리석은 사람은 세속의 가치 곧 모래 위에 집을 짓는다는 이미지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반석의 사전적 의미는 아주 안전하고 경고하다.”는 뜻인데 사람이 반석 위에 집을 지으면 어떤 천재지변에도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고 생명을 부지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하느님을 인생의 기초 곧 존재의 근거인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의 맥락에서 양심과 성실, 겸손과 관용을 일상에서 몸소 실천하는 슬기로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데 태풍이나 지진이 일어나면 물론이지고 그렇지 않아도 스스로 무너지게 마련입니다. 세속적 가치를 절대시하고 거짓과 위선, 증오와 분열을 일삼는 것은 자기 욕망의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자기 자신을 우상화하는 것으로써 종당에는 자기란 우상의 손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로 아파트에서 살기 때문에 집터보다는 아파트의 환경이나 평수 또는 인테리어 등 시각적인 것에만 신경을 씁니다. 이것은 대학에서 인문학이 냉대 받는 경우처럼 인생의 기초를 무시하거나 무 관심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개인과 사회의 정신적, 도덕적 기반이 허약해지면 혼돈과 파멸의 불씨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친구 집에서 먹는 조밥이 먹고 싶어 어머니에게 졸랐더니 너는 못 먹을 거다.”하시면서 쌀밥 한 그릇을 주셔서 조밥과 바꿔 먹은 적이 있습니다. 노랗고 먹음직한 조밥을 한술 입에 넣었더니 알알이 흩어지고 삼키는데 목구멍이 따가워서 첫 술에 판정패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념의 좌우나 지식의 유무나 계층의 상하, 종교의 유무를 떠나 가치의 혼돈 속에 빠져 있습니다. 그것은 삶의 기초가 쌀밥 같이 풀기 있고 영양가 높은 가치가 아니라 황금 빛나는 조밥 같은 세속적 가치와 각자도생하는 허망의 모래 위에 세워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주님께서 우리에게 반석 위에 집을 지으라는 말씀이 들리십니까?

 

 

3.

 

저는 최근에 경제학자이자 작가인 우석훈 씨의 <매운 인생, 달달하게 달달하게>란 글을 통해 느낀바가 많습니다. 희미하나마 기억에 남은 것을 말씀드리면 그는 386세대로써 지금 나이 50이라고 합니다. 20대에는 반정부투쟁에 치열했고 친구와 함께 공산당을 창건할 꿈도 꾸었으며 30대에는 생존경쟁에 목숨을 바쳐 성공가두를 달렸고 40대에는 더 높아지려고 어깨싸움하면서 자기 정체감을 만끽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늦장가에 얻은 둘째 아들이 폐렴을 앓게 되자 불철주야 아이를 돌보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아내는 생계를 위해 직장에 나가고 자기는 잘 나가던 직장을 사퇴한 다음 둘째 병간호와 큰 애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집안일에 전력투구하면서 간간히 글을 썼다고 합니다.

 

그는 이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체험을 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추구하던 것을 모두 포기하였는데 불만과 불행 대신에 만족과 행복이 찾아 왔다고 합니다. 인생의 행복이 야욕의 성취 곧 재물과 권력과 명예를 쟁취하는데서가 아니라 모든 것을 버리고 생명과 사랑을 위해 헌신할 때 지금까지 악전고투하였으나 얻지 못한 보화를 찾은 것입니다. 생명과 사랑이란 원초적이고 절대적 가치가 행복의 산실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민주당 당원이었으나 그것마저 포기하려니까 주변의 간곡한 만류로 회비 당원으로 남았다면서 독자들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혼란은 삶을 투쟁과 경쟁과 갑질로 대하는 데서 오는 것인데 거기에는 행복이 없으니 마음을 비우므로 행복을 얻으라고 말입니다. 그는 비록 무신론자이지만 책 말미에 한국 엘리트들을 향해 이렇게 하소연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어린이들을 사랑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았으며 여성들의 후원자가 되었는데 당신들은 예수의 삶을 그대로 따르지는 못할망정 이에 역행하는 삶을 제발 중단하라고 말입니다. 확실히 연세대 출신 무신론자가 남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는 50대 친구 정치인들과 정치지망생들에게 간청하기를 욕망을 포기하고 30-40대에게 기회를 줘야 나라의 희망이 있다고 외칩니다.

 

우석훈 씨는 본회퍼의 말처럼 하느님 없이 하느님 앞에곧 형식적 종교 신앙 없이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우뚝 세운 것 같습니다. 그는 생명과 사랑이란 절대가치가 황폐화된 인생의 들판에서 지금까지 쟁취하려고 이전투구 하던 가치들을 초개처럼 버리고 삶의 정점인 순수한 행복에 도달했습니다. 가치의 혼돈 속에서 모래 위에 집을 짓는 현대인들이 시력이 남아 있다면 눈여겨보아야 할 빼어난 인생작품이 아닌가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저는 이 시간 모두에 김영운 교수의 혼돈과 질서의 변형적 전개가 곧 역사라는 지론에 따라 오늘의 국내외적 혼돈의 현상을 살펴보면서 그 근원지는 우리 자신의 부실한 가치관에 있음을 밝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혼돈을 극복하는 길은 예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반석 곧 우리 존재의 근거이신 하느님 신앙 위에 집을 세우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우석훈 씨의 인생역전을 통해 가시밭과 같은 세속이란 황야에서 진귀한 보물을 발견하고 인생을 전적으로 투자하는 모습을 소개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깊은 성찰과 결단, 실천과 행복을 지향하는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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