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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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서

 

본문: 시편 24:1-10; 에베소서 1:3-14

설교: 홍정호 목사 (2018.7.15. 성령강림 후 제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온갖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창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사랑해 주셔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예정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미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아들 안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 그의 피로 구속 곧 죄 용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주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하나님의 신비한 뜻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상속자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자기의 원하시는 뜻대로 행하시는 분의 계획에 따라 미리 정해진 일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 맨 먼저 소망을 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의 말씀 곧 여러분을 구원하는 복음을 듣고서 그리스도를 믿었으므로, 약속하신 성령의 날인을 받았습 니다. 이 성령은, 하나님의 소유인 우리가 완전히 구원받을 때까지 우리의 상속의 담보이시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십니다.]

 

1.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성령강림 후 여덟 번째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인 에베소서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삶에 대해 말합니다. 그것은 특별히 화해와 일치를 이루는 삶에 관한 교훈입니다. 에베소서는 유대교 출신 그리스도인인 우리와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인 여러분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고, “그리스도 안에서화해와 일치를 이루어야 할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합니다.

 

설교의 제목으로 정하기도 했습니다만,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표현은 바울서신에서 160회 이상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만 벌써 여덟 번이 나오는데, 에베소서에는 서른다섯 번 이 표현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하나님께서 행하신 일,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우리가 새롭게 입게 되는 정체성에 관한 가르침은, 에베소서뿐만 아니라 바울서신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핵심 주제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율법이 아닌 예수를 믿는이들을 의롭다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나와 너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무셨습니다. 갈라디아서에 326절 이하에서 바울은 이를 잘 요약해서 말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를 옷으로 입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면, 여러분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요, 약속을 따라 정해진 상속자들입니다.”(3:26-29)

 

에베소서가 우리로 지칭되는 유대계 그리스도인들과 여러분으로 지칭되는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 사이의 일치를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역으로 추측하면, 에베소 교회의 상황이 일치를 요구받는 상황, 즉 일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갈등과 대립의 상황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이것은 비단 에베소 교회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유대교의 인종적, 문화적, 지리적 경계를 넘어 타자와 만나면서 보편종교로 발돋움 해 왔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자기의 테두리를 끊임없이 무너뜨리고 변경하면서, 그 경계를 이스라엘에서 지중해로, 지중해에서 유럽으로, 유럽에서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와 아시아로 계속해서 확장해 왔습니다.

 

2.

 

그리스도교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리스도교가 현재 지니고 있는 정체성을 고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언제나 더 큰 정체성을 향하여, 그리스도 안에서이루어질 더 큰 나와 우리를 상상하는 힘을 잃어버리지 않고 간직해 왔기 때문입니다. 유대와 로마는 다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그들은 하나입니다. 로마와 유럽은 다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그들은 하나입니다. 유럽과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는 다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그들은 하나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다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그들은 하나입니다. 좌와 우는 서로 다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그들은 하나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윤리에 기초한 사도 바울의 보편정신에 힘입어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지향하며 끊임없이 자기의 변화를 추구해 왔습니다.

 

일전에 우리나라의 한 유명 기업인이 신()경영 선언을 하면서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꿔라라고 말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지켜야 할 것은 몸에 익은 관습이나 껍데기만 남은 체계가 아니라, 기업의 혁신정신이라는 점을 강조한 말로 들립니다. 혁신정신을 잃어버린 채 자만에 빠진 기업은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됩니다. 요새 아이들 최고의 졸업입학 선물은 뭔가요? 제가 어렸을 때 최고의 졸업입학선물은 워크맨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소니 워크맨은 단연 최고의 인기였습니다. 소니의 워크맨은 시장의 판도를 뒤집어 놓았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혁신적인 상품이었는데, 오늘날 소니는 예전의 명성을 되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명성, 성공한 기억에 사로잡힌 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사례로 자주 거론되는 기업이 노키아입니다. 노키아는 미국의 모토로라를 제치고 1990년대 전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50퍼센트 이상을 점유했습니다. 그런데 노키아 역시 2007년 애플의 아이폰이 등장하면서 완전히 시장에서 밀려나버렸습니다. 싸고 잘 터지는 핸드폰의 하드웨어에 집중한 노키아의 전략은, 앱스토어를 기반으로 한 애플의 소프트웨어 혁신에 자리를 내주고 만 것입니다. 소니와 노키아가 시대의 흐름을 읽고 혁신을 지속했다면,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일은 면하지 않았을까요? 그리스도교는 최소 2,000년 동안 혁신에 혁신을 거듭해 왔습니다. 세우고 부수고, 만들고 허물고, 쥐고 펴고를 반복하면서, 그리스도교는 변화하는 시대에도 꼭 붙들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반면에 변화하는 시대에 과감하게 버려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를 그야말로 체득(體得)해 왔습니다. 저는 이러한 변화를 가능하게 만든 힘의 근원이 그리스도 안에서더 큰 정체성을 지향해 온 데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 만족감을 주는 우리라는 안락한 테두리를 넘어 거칠거칠한 이웃들을 받아들이고, 그들과 한 몸을 이루어나가는 길에 끊임없이 나선 것이 유대교의 인종적, 지역적 테두리를 넘어 오늘날 세계의 보편종교로 그리스도교가 발돋움해 온 과정이었습니다.

 

3.

 

그런데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바처럼, 자기에게 익숙해진 틀과 테두리를 넘어선다는 것, 그것도 우리에게 만족감을 주는 안락한 틀과 테두리를 넘어 이웃의 타자성을 향해 발돋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인종, 혈연, 지역, 역사, 언어, 문화 등을 공유하는 이들이 주는 안락함, 그들 사이에서 우리가 느끼는 편안함과 안정감이 있습니다. 이런 감정들을 잘 느끼는 것은 중요하고 필요한 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를 인정해 주고 지지해 주는 공동체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러 있는 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선교의 사명을 다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아시는 것처럼 저는 학기 중에 대학에 한 두 과목 강의를 나갑니다. 제가 가르치는 과목은 신학의 분과 중에서도 선교학이라는 과목입니다. 그런데 이 선교학은 대학의 지성인들 사이에서도 그 가치를 잘 인정받지 못하는 분야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 이유는 선교가 가진 부정적 이미지 때문입니다. 지하철 거리 전도에 대한 거부감에서부터 성찰적 반감까지 부정적 반응의 양상이 다양합니다. 특히 유럽중심적 역사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선교와 선교학은 서양의 문화이데올로기를 종교의 이름을 덧입혀 전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나름대로 계발해서 쓰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선교의 정의를 새롭게 내리는 것입니다. 선교는 미션의 번역어인데, 한문으로는 베풀 ’() 자에 가르칠 ’()를 씁니다. 그러니까 말 하는 자의 우월한 지위를 전제로 가르침을 베푼다는 뜻이 선교에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미션을 번역하는 데 있어 가르침을 베푸는 행위가 아니라, 먼저 ’() 자에 사귈 ’()를 쓰자고 제안합니다. 선교란, 전하는 자의 우월적 지위에서 타인에게 가르침을 한 수 베푸는 계몽적 행위가 아니라, 이웃과 앞서 만나 사귀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이웃과 앞서 만난다는 것, 그것은 결코 낭만적인 일이 아닙니다. 복음서 본문을 설교하면서 여러 번 반복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만, 예수님께서 만난 이웃들, 그분이 몸소 찾아가셔서 먼저 만나 사귀시고, 위로하신 이들은 그 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어버린 이들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친분을 과시할 수 없는 이들이었습니다. 그와 가깝다는 것이 곧 그 사람을 정죄할 명분이 되는 만남, 그것이 예수님께서 앞서 만나신, 선교하신 이웃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게 위험한 이웃들, 멸시받는 이웃들, 설 자리를 잃어버린 이웃들과 앞서 사귀신 결과 그분은 당대에 훌륭하고 거룩하다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과 갈등을 빚고, 때로는 쫓겨 다니시기도 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당신의 사명을 감당하셔야 했습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그리스도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새로운 삶으로 거듭나라는 요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 안에서 새로운 삶으로 거듭나라는 요청입니다. 그분이 나와 다른 이웃을 어떻게 대하셨는지, 멸시 당하는 이들 곁에서 어떻게 행동하셨는지, 반면 의 정통성과 테두리를 배타적으로 고집하는 이들과는 어떻게 싸우셨는지, 그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그리스도 안에서새로운 삶으로 거듭나라고, 바울은 서신 곳곳에서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에베소서 본문에 따르면 하나님은 창세 전에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택하셨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이방인인 우리는 그분의 자녀가 될 권리가 없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약속하신 것이지, 이방인에게 하신 약속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삼으셨다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양자로 입양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로마의 세속 법률 용어입니다. 로마의 법에 따르면 양자로 입양된 이는, 본 아들과 같은 권리와 의무를 지닙니다. 바울은 이 법률 용어를 빌려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이방인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혈통으로는 아브라함의 자녀가 아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들, 즉 양자가 된 이들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라 함은 유대교 출신 그리스도인과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을 포괄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인종도 혈연도, 같은 언어도, 역사도, 문화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하신 일을 믿는 것, 그것이 나와 다른 너를 우리로 하나 되게 하는 힘입니다.

 

복음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리지 않습니다. 성령은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내렸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서막힌 담을 허물고 이웃과 하나 되는 길에 나서야 합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이런 저런 장벽을 허물고, 임의로 그어 놓은 경계선을 지우고, 사람과 사람이 하나 되는 길에 나서는 행동이 선교’(先交)입니다. 교회는 이 뜻을 잃어버릴 때 갈등과 대립이 싹트고 분열로 치닫는 장소가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이루신 복음이 아닌 그 밖의 기준들이 교회의 중심이 될 때 신앙공동체는 본래의 뜻에서 멀어지는 길에 들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그리스도 안에서모이고, “그리스도 안에서사랑의 친교를 나눌 때 교회는 교회로 우뚝 섭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그리스도 안에서하나 되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이것을 굳게 붙잡는 삶이 될 때 우리는 주님께서 이루신 화해와 사랑의 놀라운 역사를 우리 삶에서 이루게 될 줄 믿습니다. 한 주간도 그리스도 안에서평화의 일꾼으로, 화해의 사도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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