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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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빵

 

본문: 시편 51:1-12; 요한복음 6:24-35

설교: 홍정호 목사 (2018.8.5. 성령강림 후 제11)

 

[무리는 거기에 예수도 안 계시고 제자들도 없는 것을 알고서, 배를 나누어 타고, 예수를 찾아 가버나움으로 갔다. 그들은 바다 건너편에서 예수를 만나서 말하였다. “선생님, 언제 여기에 오셨습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지 말고, 영생에 이르도록 남아 있을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여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줄 것이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자를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그들이 예수께 물었다.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됩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다.” 그들은 다시 물었다. “우리에게 무슨 표징을 행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보고 당신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당신이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는 하늘에서 빵을 내려서, 그들에게 먹게 하셨다한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다주신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참 빵을 너희에게 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하나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그 빵을 언제나 우리에게 주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내게로 오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1.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성령강림 후 열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의 복음은 예수님께서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고픈 군중을 먹이신 오병이어 사건에 이어 등장하는 말씀입니다. ‘오병이어 사건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 중 네 복음서에 모두 보도되는 유일한 이적입니다. 여기에는 예수님 사역의 핵심이 담겨 있고, 우리에게 주는 의미 또한 큽니다.

 

오병이어 사건은 성찬을 통해 재현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그 빵을 떼어 나누어 주셨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첫째, 빵을 드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취하신 빵은 황제의 수라상에 나오는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높이 드신 빵은 광야에서 굶주린 이들의 허기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거친 보리빵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빵을 취하셨습니다. 둘째, 감사를 드리셨습니다. 보잘 것 없는 작은 보리빵 조각에 불과한 것이었지만, 예수님은 이 빵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아셨고, 빵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셋째, 빵을 쪼개셨습니다. 앞서 감사를 드리신 것처럼 이 빵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니, 내 것으로 삼지 않고, 필요한 이들과 나누기 위해 쪼개신 것입니다. 넷째, 빵을 나누어주셨습니다. 쪼갠 빵을 배고픈 이들에게 나누어주심으로써 그들로 하나님나라 잔치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나라는 소유나 축적이 아니라, 나눔과 섬김에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이 오병이어 사건에 담긴 의미입니다. 예수님을 모신 삶은,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들어(take) 감사하고(blessing), 쪼개어(break) 나누는(give) 삶의 실천에 있습니다.

 

2.

 

오늘 본문은 이 오병이어 사건이후의 일입니다. ‘오병이어 사건을 경험한 이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6:15). 그러자 예수님은 사람들을 피해 홀로 산으로 물러가셨습니다. 날이 저물었을 때 예수님 일행은 배를 타고 다시 가버나움으로 돌아왔습니다. 가버나움까지 쫓아온 무리는 마침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이 무리와 나누신 이야기가 오늘의 본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들의 첫 마디는, “선생님, 언제 여기에 오셨습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찾아 먼 길을 온 이들의 목소리에 짜증이 섞여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해 봅니다. 그들은 은혜를 사모하여 온 이들이 아니라, 이적을 기대하고 온 이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늘 사람들 가운데, 사람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사람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 자리에 계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드러내시기도 하고, 기대를 어긋내시기도 하면서 당신의 일을 하셨습니다.

 

언제 여기에 오셨습니까하는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차갑습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먹고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오병이어 사건을 통해 보아야 할 표징, 즉 생명의 양식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요, 우리의 일은 감사와 나눔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못한 채 또 다른 이적을 바라며 당신을 찾아온 이들을 나무라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지 말고, 영생에 이르도록 남아 있을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여라.”

 

예수님은 이와 비슷한 말씀을 복음서 곳곳에서 하셨습니다. 대표적으로 마태복음 633절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하셨습니다. 내 이름으로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이지, 다른 엉뚱한 것들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교훈으로 풀어보자면, 인생의 중요한 가치들을 추구하면서 살아야지, 눈앞에 이익에 급급한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는 말씀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중심 가치를 꼭 붙들고 놓지 않는 삶을 산다면, 그 나머지 것들은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주실 것이니, 걱정 말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당신을 찾아 바다를 건너 온 이들에게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지 말고, 영생에 이르도록 남아 있을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양식, 영생에 이르도록 남아 있을 양식을 당신께서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됩니까?” 예수님을 찾아 먼 길을 마다않고 온 이들답게, 그들은 행동력이 있습니다. 그 방법을 알려만 주시면 당장에 그렇게 하겠다는 다짐이 그들의 질문 속에 비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주신 말씀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다하는 대답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는 것인지 구체적인 행동의 지침을 요구했는데, 예수님은 그들에게 당신을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시시한 대답입니다.

 

지금 예수님을 찾아 가버나움까지 온 이들은 열심히 넘치는 이들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믿음이 충만한 사람으로 비춰 질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들에게 돌아온 예수님의 대답은, 그들의 이 열정적인 믿음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지금 당신을 믿으니까 우리가 여기까지 찾아 온 거 아니요? 산으로 가질 않나 바다건너 피신하질 않나, 열심히 도망 다니는 당신 만나러 우리가 얼마가 고생했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요? 이런 큰 믿음본 적 있소? 믿어서 여기까지 찾아온 우리에게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무리 중에 이렇게 생각한 사람이 없었을까요?

 

예수님과 군중 사이에 오해가 지속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재차 묻습니다. “우리에게 무슨 표징을 행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보고 당신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당신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솔직한 질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적을 보여 주시면 그 다음에 믿을지 말지를 자기들이 결정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들은 모세가 광야에 만나가 내리도록 한 일을 예수님에게 상기시키면서 그와 같은 이적을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다시 자세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다 주신 이는 모세가 아니라, 내 아버지시다.” 광야에서 굶주린 이들을 먹이신 기적은 모세를 통하여 하신 일이나, 모세가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광야에 만나를 내리신 일이나, 오병이어의 기적 모두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지, 어떤 이의 신통한 능력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만나가 아니라, 만나를 주시는 하나님을 찾으라, 그분께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3.

 

예수님을 찾아 먼 길을 온 그들의 열정은 아직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는 열망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썩어 없어질 양식을 충족시켜 주는 이들에게 열광하고, 그들을 추종하면서, 자기 욕망의 크기를 키우는 법만 배웠습니다. 몇몇 종교 지도자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참 믿음이라며 그들의 헛된 열심을 부추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 변했습니다. 참 믿음은 썩어 없어질 양식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들에게 믿음이 필요하다는 사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 참되고 올바른 생명의 길임을 인정하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길을 인정하는 데 왜 믿음이 필요할까요? 그 길은 때로 세상을 거스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길은 세상이 모두 옳다고 칭찬하는 일을 거슬러 행하기도 하고, 세상이 그르다고 손가락질 하는 일을 몸소 행하기도 하는, 그런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이른바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셨던 분은 아닙니다. 그분에게는 분명한 기준이 있었습니다. 지난 주 시편 설교를 통해 말씀드린 기준입니다. 약자의 시선, 가련한 자의 자리에서 세상을 보고, 그 관점에서 하나님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올곧게 추구하신 기준입니다. 세상의 법과 질서는 이 기준에 부합하기도 하고 이를 억압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때로는 율법의 수호자로, 또 때로는 율법의 완성자로 행하시며 율법을 넘나들며 사랑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길을 인정하려면 그분이 행하시는 일이 바르고 마땅한 길이라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믿음이란, 사실 단순한 것입니다. 한 사람을 믿는 것입니다. 한 사람을 진심으로 믿으면 그 사람이 하는 말이나 그 사람의 행동 모두를 믿게 됩니다. 여러분도 일상생활하다 그런 경우들이 있으실 줄 압니다. 어느 분이 상식에 어긋나는 말을 합니다. 그래도 그분을 제가 믿으면, 그 말을 그냥 받아들입니다. 왜냐하면 저분은 헛말을 할 분이 아니다, 그런 믿음을 그분이 저에게 심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합리적이고 비판적이고 다 좋은 말인데, 믿을 수 없는 말도 있습니다. 말 하는 이를 믿지 못하면, 말의 내용에 상관없이 그 말이 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다.” 요한은, 참 믿음이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을 믿는 게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것,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참되고 올바른 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분을 통째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쉽지만 어려운 일입니다. 누구나 좋은 점이 있으면 안 좋은 점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좋기만 한 사람도 없고, 안 좋은 면만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참 믿음이란 무엇인가, 그가 좋든 싫든, 구미에 맞든 안 맞든 그를 지지하고 인정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다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이 믿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 인생에 행하시는 일, 그 일이 좋은 일이든 안 좋은 일이든, 반길 만한 일이든 피하고 싶은 일이든 상관없이, 그분이 행하시는 일이라는 사실을 앎과 동시에 이 길이 참되고 올바른 길로 향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으로 여기는 삶입니다.

 

4.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내게로 오는 사람은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사람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우리 안에 모신 이들, 그분의 생명이 나의 생명이 된 이들은, 배고픔 가운데서도 주리지 않고, 목마른 가운데서도 목마르지 않을 삶의 근원을 간직한 이들입니다. 그런데, 말씀드립니다. 예수님을 모셔서 배는 고프고 목은 마릅니다. 우리를 배고프고 목마르게 하는 생활의 필요와 문제들은 일평생 우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이들, 생명의 빵이신 그분을 모신 이들은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주님으로 인해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 차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것이지만, 이런 감사와 만족의 믿음이 쌓여 우리의 삶의 길이 됩니다. 이것이 참 믿음의 힘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일상에 모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 문제들 앞에서도, 문제의 크기에 짓눌리지 않는 지혜와 용기를 얻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그것은 그분이 행하신 어떤 일이 아니라, 그분을 통째로 우리 삶의 주인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거창한 일을 하는 데 있는 것 아닙니다. 예수님의 길이 참 진리와 생명의 길이라는 사실을 우리 삶의 매순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한 주간도 생명의 빵이신 주님으로 인해 만족하고, 감사하며, 더불어 나누는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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