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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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의 주님

 

본문: 시편 26:1-12; 히브리서 2:5-18

설교: 홍정호 목사 (2018.10.7. 성령강림 후 제20, 세계성찬주일)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가 말하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의 지배 아래에 두신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이가 성경 어딘가에서 이렇게 증언하였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그를 기억하여 주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그를 돌보아 주십니까? 주님께서는 그를 잠시 동안 천사들보다 못하게 하셨으나,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그에게 씌워주셨으며,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사람에게 복종시키심으로써, 그에게 복종하지 않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보기로는, 아직도 만물이 다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께서 다만 잠시 동안 천사들보다 낮아지셔서, 죽음의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받아 쓰신 것을, 우리가 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셔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많은 자녀를 영광에 이끌어 들이실 때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으로써 완전하게 하신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은 모두 한 분이신 아버지께 속합니다. 그러하므로 예수께서는 그들을 형제자매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분은 내가 주님의 이름을 내 형제자매들에게 선포하며, 회중 가운데서 주님을 찬미하겠습니다하고 말씀하기고, 나는 그를 신뢰하겠습니다하고 말씀하시고, “보십시오, 내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이 여기에 있습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자녀들은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그도 역시 피와 살을 가지셨습니다. 그것은, 그가 죽음을 겪으시고서, 죽음의 세력을 쥐고 있는 자 곧 악마를 멸하시고, 또 일생 동안 죽음의 공포 때문에 종노릇하는 사람들을 해방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천사들을 도와주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점에서 형제자매들과 같아지셔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자비롭고 성실한 대제사장이 되심으로써, 백성의 죄를 대신 갚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는 몸소 시험을 받아서 고난을 당하셨으므로, 시험을 받는 사람들을 도우실 수 있습니다.]

 

1.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성령강림절 후반기에 이르는 이맘때면 우리는 세계성찬주일을 지킵니다. 예수님은 화해의 성사(聖事)가 되신 분입니다. 그분은 다른 동물이 아닌 당신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심으로써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무시고, 사람과 사람을 가르는 높은 담을 허무신 분입니다. 성찬은 화해의 성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기억하며, 그분의 몸과 피를 우리 가운데 모심으로써 성도인 우리의 삶에도 화해의 성사가 이루어지기를 다짐하는 시간입니다.

 

사람들을 이편저편으로 가르는 각종 차이들이 그야말로 난무’(亂舞)하는 시대입니다. 소소한 취향의 차이에서부터 한 사람의 정체성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치사회종교적 입장이라는 비교적 중대한 차이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을 이리저리 가르고 다투게 만들 여러 계기들이 자유롭게존재하는 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이비 종교집단이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고, 타인을 혐오하는 이들이 표현의 자유를 말하며, 거짓 정보로 대중을 미혹하는 미디어가 언론의 자유 운운하는 시대입니다.

 

어느 철학자는 우리 시대의 문제를, “자유의 억압이 아니라 자유의 소외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 시대는 자유를 억압하는 시대가 아니라, 자유를 소외시킴으로써 현재의 질서를 유지하는 시대라는 겁니다. 자유가 억압당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자유롭다는 느낌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그 자유란 사실 몇몇 가능성들로 축소된 선택지들 가운데 하나를 택하는, 그런 소외된 자유에 불과하다는 지적입니다. 진정한 자유란 다른 세계를 꿈꿀 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자유는 지금 여기에 주어진 몇몇 정치경제사회적 조건들 가운데 하나를 택하는 거래나 교환의 자유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믿음을 가지고 지금 너머의 세계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이에게 주어지는 은총의 선물입니다. 세계성찬주일은 화해의 성사가 되신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참 자유의 꿈을 우리의 꿈으로 되새기는 날입니다.

 

2.

 

오늘 세계성찬주일에 주어진 본문은 히브리서 25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가리켜 대제사장이라고 말합니다. 종교개혁가 칼뱅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학적 논의를 펼치면서 그분의 세 가지 직무에 대해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예언자, , 그리고 제사장의 삼중 직무를 맡은 분이라는, 유명한 그리스도의 삼중 직무론입니다. 그런데 복음서를 통해 본 예수님은 예언자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왕과 제사장, 특히 제사장과는 거리가 먼 분으로 생각됩니다. 복음서에서 대제사장들은 예수님과 적대관계로 그려집니다. 그분은 분봉왕으로 대변되는 왕권체제와, 대제사장으로 대변되는 종교권력체제와 맞서 갈등을 겪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분입니다. 그런 예수님을 대제사장이라고 말하는 히브리서 기자의 설명을 우리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말하자면 이것은 히브리서 기자의 신학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에 관한 당대성에 입각한 하나의 신학적 설명이라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의 신학이라는 이해가 없으면 복음서에서 때로 예수님과 적대적 관계에 놓이곤 했던 대제사장을 마냥 좋게만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예수님을 대제사장이라고 말하는 것은 본래 유대교에 있어 대제사장의 역할이란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죄과를 대신해 제사를 바치기 위해 존재하는 이들입니다. 제사장의 역할은 사람들을 대신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며, 복을 빌어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을 이런 제사장에 비유한 것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대제사장은 곡식이나 동물을, 즉 다른 존재를 제물로 바치는 반면, 예수님은 다른 존재가 아닌 당신을 제물로 바치신 제사장이라는 점입니다. 그분은 사람들의 죄과를 없애기 위해 자신을 몸소 희생 제물로 바치심으로써,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고, 사람들에게 축복을 전하는 참 제사장이시다, 이것이 히브리서 기자의 신학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대제사장은 대제사장이되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라 임명받은 영원한 제사장”(5:6)이라고 말합니다. 본래 제사장은 레위 가문에 속한 이들입니다. 레위 가문은 영토를 분급 받지 않고, 영토를 분급 받은 이들의 십일조에 의해 살아가면서 하나님께 제사지내는 일을 본분으로 삼는 이들입니다. 레위 지파는 여러 지파 가운데에서도 제사(예배)를 통해 이스라엘의 정신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레위 지파에 속했다는 제사장들과 갈등을 겪으시고, 박해를 받아 돌아가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바로 전하라고 세워진 레위 지파에 속한 제사장들이, 로마의 식민체제와 유대교 성전중심체제에 완전히 예속되어 제 역할을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렇기에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대제사장이라고 말하되,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라 임명받은 영원한 제사장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아는 제사장들은 타락하여 본분을 떠났다, 그러나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라 제사장이 되신 그분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담을 허무시는 참 제사장이시다, 이것이 히브리서 기자의 신학적 메시지인 것입니다.

 

흥미로운 건 이 멜기세덱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다는 겁니다. 창세기 14장에 나오는 멜기세덱은 살렘의 왕이요 제사장으로서 아브람을 축복한 인물입니다. 더 이상의 부연 설명이 없습니다. 중요한 건 멜기세덱이 복의 근원이 된 아브람을 축복한 제사장이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에게서 나온, 아브라함에게 속한 열 두 지파 가운데 하나인 레위 지파의 제사장보다 더 권위 있는 인물이 바로 멜기세덱인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이 바로 이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른 제사장이시고, 레위 지파에 속한 대제사장보다 더 크신 대제사장이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죄 없는 자들이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도 인간이고, 인간의 죄의 굴레에 얽혀있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사장들은 인간의 약함을 아는 이들로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다리가 되었습니다. 히브리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주신 자녀들이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그도 역시 피와 살을 가지셨다”(2:14)고 말합니다. 피와 살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가 겪을 수밖에 없는 아픔과 괴로움과 절망, 이 모든 것을 인간의 몸을 입으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겪으셨습니다.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이 가난한 이들, 낮고 연약한 이들을 정죄하고 그들에게 율법의 올무를 덧씌울 때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라 제사장이 되신 예수님은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곁에서 그들을 하나님 나라에 속한 존재로 불러 세우셨습니다. 가장 높으신 분께서 피와 살을 가진 사람으로 오셔서, “피와 살을 가진 사람”의 모든 번뇌를 몸소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 승천하시어 영원한 주님이 되시었다, 이것이 성육신 신학에 담긴 화해의 의미입니다.

 

3.

 

세계성찬주일은 그리스도교의 이 성육신의 교리를 신앙인의 삶의 자리에 다시금 되새기는 시간입니다. 화해의 성사로 오신 주님께서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무시고, 둘 사이를 잇는 참 제사장이 되신 것처럼, 그분을 믿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아 살아가는 우리의 삶도 화해의 성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편안하고 안락한 삶은 좋은 것입니다. 누구나 그런 삶을 바랍니다. 그러나 화해의 성사로 부름 받은 이들은 지금 좋고 편안한 삶의 조건들에 안주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막힌 담을 허무시고 서로 다른 이들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신 것처럼, 주님의 살과 피를 모신 우리는 화해와 일치를 위한 걸음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복음 안에서 거듭난 삶의 완성을 위한 순례길에 선 우리는, 사람들을 이편저편으로 가르는 차이들에 함몰되어 더 크신 하나님의 화해와 사랑의 길에서 떠나는 어리석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계성찬주일은 인간의 몸으로 오신 주님의 살과 피를 우리 안에 모심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삶의 이정표를 다시금 굳게 세우는 날입니다.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라 참 제사장이 되신 분, 자신을 바치심으로 화해의 성사를 이루신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한 주간도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 주일 설교 제목을 '성육신 신앙'에서 '화해의 주님'로 바꿔 게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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