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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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잘신앙

 

본문: 시편 23:1-6; 마가복음 10:17-22

설교: 홍정호 목사 (2018.10.14. 성령강림 후 제22, 가을철 야외예배)

 

[예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한 사람이 달려와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그에게 물었다. “선하신 선생님, 내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는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느님 한 분 밖에는 선한 분이 없다. 너는 계명을 알고 있을 것이다. ‘살인하지 말아라, 간음하지 말아라, 도둑질하지 말아라, 거짓으로 증언하지 말아라, 속여서 빼앗지 말아라, 네 부모를 공경하여라하지 않았으냐?” 그가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나는 이 모든 것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눈여겨보시고, 사랑스럽게 여기셨다.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에게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라. 그리하면, 네가 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을 짓고, 근심하면서 떠나갔다. 그에게는 재산이 많았기 때문이다.]

 

1.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길 빕니다. 작년에 이어 지산원에서 가을철 야외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예배당을 떠나 가을 소풍을 나온 만큼 계절의 정취를 만끽하는 기쁜 주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을 삼잘신앙이라고 했습니다. 제목을 보고 눈치 채셨지요? 제정진 교우님의 한의원 이름에서 따 왔습니다. 지난 달 평신도아카데미를 들은 분들은 삼잘의 뜻을 알고 계실 겁니다. 세 가지, “잘 먹고, 잘 자고, 잘 빼는이 세 가지를 잘 하는 것이 삼잘이고, 건강의 비결이라는 말씀이죠. 쉽고 기억하기 좋습니다. 그런데 제 박사님 강의를 듣고 보니, 이 세 가지를 잘 하는 삼잘이 몸의 건강뿐만 아니라, 마음과 영혼의 건강, 특히 건강한 신앙생활의 원리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아예 대놓고, 제 박사님이 오랜 연구와 고심 끝에 지은 이름을 가져와서 삼잘신앙이라고 설교의 제목을 정해 보았습니다. 제 박사님, 삼잘한의원 광고가 좀 되었나요?

 

2.

 

개신교의 성장기는 한국사회의 고도 성장기와 맞물려 있습니다. 식민지배와 분단과 전쟁이라는 비극을 반세기 남짓한 시간동안 겪고, 또 그 비참한 시간들로부터 이만큼의 번영을 이루는 동안 개신교는 한국의 근현대사의 명암과 발걸음을 같이 해 왔습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님의 이른바 삼박자 축복론으로 대변되는 번영신학은 개신교의 급성장이 이루어지던 시기 다수의 교회가 공유해 온 시대정신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겁니다.

 

삼박자 축복의 내용을 아시지요?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하는 요한삼서 12절의 말씀에서 이끌어 낸 축복받는 삶의 원리입니다. 영혼이 잘 되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해 진다, 예수 잘 믿으면 물질 축복받고 사업도 자녀도 다 번창하고 아픈 몸도 건강해진다는 메시지입니다. 제가 대형교회에서 신앙교육을 받고 신앙체험을 하고 신학교에 가서 그런지, 이만큼 이런저런 교육을 받고 했는데도 저 삼박자 축복 얘기에 마음이 갈 때가 있습니다. 머리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데, 간혹 마음이 움직일 때가 있다는 게 이상합니다. 영혼이 잘 되고,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해 지는 게 나쁜 건가, 생각해보면, 저런 간절한 기도는 대체로 약자들의 기도입니다. 영혼이 잘 되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 지장 없고, 이미 범사에 잘 되고 있고, 아플 일도 별로 없는 이들에게 저런 축복은 간구의 대상이 아니죠. 삼박자 축복이라는 게 약자들을 위한 복음이라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봅니다. 신학적으로 옳다는 말은 아니고, 종교적으로 그런 순기능도 있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 시대는 삼박자 축복의 시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사실 오늘 한국 개신교의 문제는 남들에 비해 더 많은 축복을 받았다는 이들에 의해 일어나는 문제입니다. 교회와 목사, 교인 할 것 없이 오늘 한국 개신교의 위상을 바닥으로 추락시키는 이들은 하나같이 삼박자 축복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남들에 비해 큰 축복을 받았다는 이들이라는 게 안타까운 일입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봤습니다. 삼박자 축복은 삼잘신앙가운데 잘 먹는데만 집중한 원리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건강하려면 잘 먹고, 잘 자고, 잘 빼야하는데, 잘 먹는 것만 주야장천 강조했으니 탈이 나지 않을 리 없습니다. 축복을 받아먹고, 또 받아먹고, 남들보다 더 많이 받아먹는 것만 말해서는 안 됩니다. 먹고, 쉬고, 빼는 세 가지가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3.

 

신앙생활에 있어서의 삼잘이라면 이렇습니다. 첫째로, 말씀을 잘 먹어야합니다. 생명의 양식인 말씀을 가까이에 두고 잘 듣고, 잘 보면서 먹어야합니다. 좋은 말씀을 잘 먹는 것이 건강한 신앙생활의 출발입니다. 지금은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문제가 된다는 시대입니다만, 사실 너무 많이 먹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아무 것도 먹지 않는 것, 먹지 못하는 것입니다. 밥 잘 먹어야 힘이 나지, 살 뺀다고 안 먹으면, 자꾸 다른 것 찾게 되고 결과적으로는 별 도움이 안 됩니다. 다이어트 실패하는 제 경험입니다. 말씀을 밥으로 알고 잘 먹어야 건강해지고, 힘도 납니다.

 

둘째는, 잘 자야 합니다. 설교 들으시면서 주무시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잘 쉬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쉼이 일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무언가에 쫓기듯 바쁘게 사는 우리는 잘 쉬지 못합니다. 쉬면서도 내일 할 일을 머릿속에 그립니다. 쉼도 쉼 그 자체로 즐기지 못하고, 일을 더 잘 하기 위한 힐링으로 소비할 뿐입니다. 그런데 잘 때 잘 자야 건강해지는 것처럼 쉴 때 잘 쉬어야 영적으로도 건강해집니다. 세상 근심걱정 이것저것 다 붙들고 있지 말고, 쉴 때는 쉬어야 합니다. 제가 쉬라고 말씀드렸다고 해서 교회 안 나올 분은 안 계시지요? 여행가서 주무시는 것보다 집에서 주무시는 게 편하지 않으세요? 교회 밖에서 쉴 수도 있습니다만, 정말 잘 쉬려면 영혼의 요람이신 하나님 안에서 쉬어야 합니다.

 

마지막은, 잘 빼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부자청년은 율법을 잘 먹고, 안식일에 잘 쉬는 일에는 성공적이었지만, 잘 빼는 데는 실패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길을 떠나시는데, 한 사람이 달려와서, 그냥 온 것도 아니고 (마가는) ‘달려와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여쭙습니다. 열심히 보통이 아닌 청년입니다. 예수님이 잘 지키라고 말씀하신 계명들을 두고 이 청년은 말합니다. “선생님, 나는 이 모든 것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 말씀을 듣고 배우는 먹는 일에 있어서도, 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쉬는 일에 있어서도 이 청년은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사람을 눈여겨보시고, 사랑스럽게 여기신 게 아닐까요? 그런데 곧이어 나온 예수님의 말씀은 이 나무랄 데 없는 청년을 근심하여 돌아가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오늘의 주제로 말하자면, “잘 빼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잘 먹고, 잘 쉬는 것은 나무랄 데 없지만, 잘 빼는 게 부족하니 앞으로는 잘 빼는 데 집중하도록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 때문에, 예수님께로 달려 온 그는 그만 울상을 짓고, 근심하면서 떠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청년은 어쩌면 잘 먹고, 잘 쉬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게 아니었을까요? 먹어야 할 것 잘 먹고, 먹지 말아야 할 것 안 먹고, 쉬어야 할 때 편히 잘 쉬면, 빼는 것도 자연스럽게 잘 되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이 청년이 예수님 말씀에 울상을 짓고 근심하며 떠나버렸다는 건, 이 사람이 정말 제대로 먹고, 제대로 쉴 줄 아는 사람이었는지 의심하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정말로 율법의 본뜻을 잘 배웠다면, 그리고 안식일의 의미를 잘 알고 실천했다면, 예수님의 나눔의 요청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것은 잘 먹고, 잘 쉰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올바로 먹지 않고, 잘 쉬지 못하니까, 잘 빼지도 못하게 된 것이 아닙니까?

 

4.

 

말씀을 잘 먹는 것이 첫 걸음입니다. 좋은 스승을 만나 잘 배우지 않고, 듣지 않으면 성장의 기회도 사라집니다. 잘 먹었으면 잘 쉬어야합니다. 일의 주인, 성과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일하게 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릴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하는 실천은 나눔으로 결실을 맺습니다. 더러운 얘기해서 죄송합니다만, 이전에 어느 철학자가 한 말이 있습니다. “똥 잘 누면 다 된다.” 똥은 더럽고 냄새나서 좋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만, 좋은 똥 누기 위해 살다보면 인생은 향기롭고 아름다워진다는 말입니다. ‘삼잘신앙은 그래서 빼는 것, 덜어내는 것, 나눔을 통해 결실을 맺는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일을 위해 우리를 부르실 때에 아멘으로 응답하며 나설 수 있도록 삼잘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한 주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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