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주일설교
조회 수 28 댓글 0

제자의 자리

 

본문: 시편 104:1-9; 마가복음 10:35-45

설교: 홍정호 목사 (2018.10.21. 성령강림 후 제22)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 다가와서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주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선생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선생님의 왼쪽에 앉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그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시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내 왼쪽에 앉는 그 일은, 내가 허락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해 놓으신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런데 열 제자가 이것을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게 분개하였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을 곁에 불러 놓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아는 대로, 이방 사람들을 다스린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백성들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백성들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성령강림 후 스물두 번째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야고보와 요한의 요구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1.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와 마찬가지로 어부였습니다. 그들은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다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마가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야고보와 요한이 곧 배와 자기들의 아버지를 놓아두고, 예수를 따라갔다”(4:22)고 전합니다. 예수님은 이 형제에게 천둥의 아들’(3:17)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에 들러 머무시고자 했는데, 그들이 모시기를 거부하자, 이를 두고 주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 버리라고 우리가 명령하면 어떻겠습니까?”(9:54)하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마찬가지로 이들 형제도 거칠고 급한 성격 탓에 예수님께 꾸중을 듣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베드로와 함께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신 제자들이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러 가실 때에도(5:37), 변화산에 오르실 때에도(9:2),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 생사의 갈림길 앞에서 기도하실 때에도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데리고 가셨습니다.(14:33) 또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을 때 주님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친히 그 집을 찾아가셨습니다.(1:29) 이쯤 되면 야고보와 요한은 누가 봐도 예수님의 핵심 측근이었다고 할 만한 자리에 있는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에게 청합니다. “선생님,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주시기 바랍니다.”(10:35)

 

문화가 달라서 그럴까요. 익숙한 본문입니다만, 다시 읽어도 어색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이 말은 그야말로, 요즘 학생들 쓰는 말로 하면, ‘훅 들어오는요청입니다. “선생님,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 모르겠습니다만, 어떤 자리와 역할은 제자를 잘 아는 선생님이 그의 역량과 품성을 고려해 맡겨 주시는 것이지, 이렇게 제자가 먼저 나서서 요청하는 게 아니다, 하는 게 제 고정관념입니다. 선생님이 안 맡겨주시거나, 다른 제자에게 맡기시면 당장은 좀 섭섭해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시겠지하고 생각하고 넘기는 게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좋게 말해, 훨씬 더 적극성을 띠고 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요청에 예수님은, “너희는 내가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물으셨습니다. 그들의 요청은 선생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선생님의 왼쪽에 앉게 하여 주십시오.” 하는 것이었습니다. 배도, 그물도, 그리고 아버지도 버리고 예수를 쫓아 온 그들의 절박함 때문이었을까요.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에게 영광의 자리를 요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가 올 때에 두 형제가 나란히 오른편과 왼편에 앉아 권세를 누리게 해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그래야만 생업도, 아버지도 버리고 따라나선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 말씀하시고는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물으셨습니다. ‘천둥의 아들답게 그들은 주저 없이 대답합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시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내 왼쪽에 앉는 그 일은, 내가 허락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해 놓으신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다.”(10:39-40)

 

저는 주님의 이 응답을 하나님과는 거래할 수 없다는 말씀으로 읽습니다. 하나님은 이것 드리고 저것 받고하는 식의 거래가 필요 없는 분입니다. 그런 하나님과 하나이신 분, 예수님의 제자의 자리란 헌신과 충성을 놓고 그분과 거래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일상은 대체로 주고받는 관계로 이루어집니다. 주기만 하는 사람도 없고 받기만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물질 대 물질의 교환이 아니라도, 주면 받고, 받으면 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스승과 제자의 관계와도 같습니다. 나보다도 나를 더 잘 아시고, 내게 가장 좋은 길을 열어주실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믿는다면, 그분이 보내시는 곳, 그분이 맡기시는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다 좋은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면에서도 인생에서 이런 스승을 만난다는 건 참으로 큰 복입니다. 선생님을 신뢰하면서, 저분이 좀 섭섭하게 말씀하시고 행동할 때에도, 신뢰를 거두지 않는 제자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인생의 이정표라 될 만한 스승을 만난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기를 믿고 따르는 제자를 둔 선생님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인간적인 관계에서 부침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에 인간적인 연약함과 오류를 벗어버리지 못하신 채 잘못 가르쳐 주실 수도 있고, 그러면서도 당신이 참되다는 편견을 끝내 벗어버리지 못하실 수도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를 포함해서, 인간은 누구나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제자의 자리에 있는 이들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그분의 말씀이 아니라, 그 말씀이 가리키는 방향, 곧 그 뜻을 보는 게 아니겠습니까? 말씀의 내용이 아니라, 말씀이 가리키는 방향을 볼 눈과 들을 귀가 있어야 합니다. 이렇듯 신뢰와 사랑을 바탕으로 한 선생님과 제자의 관계는 세상적인 거래 관계에 기반 하지 않기 때문에 입장(立場)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세상은 자기와 입장이 같은 이들끼리 무리 짓는 일에 익숙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일을 하는 우리는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이,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듣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2.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에게 영광의 자리를 요구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머지 열 제자가 야고보와 요한에게 화를 냈습니다. 이 소식을 들으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곁에 불러 놓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10:43-44) 여러분은 이 말씀 속에 담긴 예수님의 마음이 느껴지십니까? 세상 사람들은 자리를 두고, 혹은 자리에 따라 서로를 헐뜯고 다투고 미워하는 데 급급할 수 있다, 그것이 사람 사는 세상이다,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게 아닙니까?

 

한국사회는 근현대사에서 많은 아픔과 갈등을 상흔으로 간직한 사회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심지어 안수 받은 목사이고 직분을 맡은 평신도 지도자이면서도 정치적인 입장에 따라 갈라지고 무리 짓는 일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이런 분열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평화를 말하면 한편에서는 가짜 평화라고 아우성이고, 다른 한편에는 화해를 위한 진전이라고 소리칩니다. 원수사랑을 말해도 한편에서는 퍼주기라는 비난이 일고, 다른 한편에서는 당위성을 앞세운 주장이 힘을 얻습니다. 한국교회 안에는 평화와 화해에 대해 성서의 가르침을 고운 마음으로 받고, 평화와 화해의 씨앗을 일상에서 가꿔나가려 마음먹는 이들도 있지만, 거칠어질 대로 거칠어진 마음으로 그 말씀을 받아쳐 버리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교회 안팎에서 그런 모습과 마주칠 때 저는 낙심합니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말이 있습니다만, 평화와 화해를 말하는 설교가 한국교회 안에서 참으로 공허한 울림에 지나지 않는 것이구나 하는 자괴감에 기운이 쭉 빠져버릴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만나 위로를 얻습니다.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주님도 제자들이 저마다의 영광을 두고 다른 꿈을 꾸며, 이리저리 갈라지고 다투는 모습을 보시면서, 참으로 답답함을 느끼셨던 것 같습니다. 그분은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러 오셨고,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치를 몸값으로 오셨음에도 누구 하나 주님의 마음을 아는 이 없었습니다. 주님이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신 야고보와 요한이 하는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그들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외로움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제자의 자리는 권세를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섬김의 자리, 낮아지는 자리입니다. 그리스도의 길은, 세력을 규합해서 상대방을 무너뜨리는 십자군의 길이 아닙니다. 상대방이 먼저 쳤으니 한 대라도 돌려줘야겠다고 마음먹는 사람의 길이 그리스도인의 길이 아닙니다.

 

3.

 

어려운 말씀입니다만, 우리의 원칙은 분명합니다. “누가 네 오른쪽 뺌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5:39) 하는 가르침을 꼭 붙드는 것입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여라하고 말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만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5:43-35)

 

예수님은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미 나의 이웃이 된 이들, 우리가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것은 이방인과 세리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웃이 아니라,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제자로 나선 이들의 가야 할 길입니다. 사람들은 묻습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의 뜻을 이룰 것인가? 그런데 이 물음은, 어떻게 원수를 사랑할 것인가? 하는 물음과 같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주님의 마음과는 동떨어진 것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구하고, 그 길을 쫓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요청과 달리,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그러니까 그분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그분의 좌우에 있었던 이들은 이름 모를 강도들이었습니다. 그중 한 강도는 십자가에서 예수님에게 말했습니다. “예수님, 주님이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23:42) 그리고 주님은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23:43)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 그 옆자리는 베드로의 자리도, 야고보와 요한의 자리도 아니었습니다. 그 자리는, 주님께서 말씀하셨던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사람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주님과 함께 영광을 받는 것, 그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우리가 바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할 일은 날마다 주님 뜻 이루기에 힘쓰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 데 있어 실패하고, 낙담하게 될 때가 있지만, 곧 털고 일어나 다시 제 갈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믿고, 그분의 제자로 부름 받은 이들의 자리라고 믿습니다.

 

4.

 

너무 무거운 말씀을 드렸나요? 제가 좋아하는 LG트윈스의 심장 박용택 선수 인터뷰 내용을 전해드릴까 합니다. 박용택 선수는, 야구경기에서 좋은 결과를 만들려고 해도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자,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고 마음먹었답니다. 그것은 좋은 과정을 거치는 것이었습니다. 야구에서 마음먹은 대로 좋은 결과를 만들 수는 없지만, 좋은 과정은 거칠 수는 있다, 그러니 좋은 과정 거치는 데 주력하자, 이렇게 마음먹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런 시간의 축적이 트윈스의 심장(!) 박용택 선수의 오늘을 만들었습니다.

 

원수사랑은 어떻습니까? 원수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지 마음을 먹지만,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원수 사랑은커녕 온갖 인간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원수사랑이라는 가르침을 버려야 할까요? 아닙니다. 좋은 과정을 거치는 데 주력하면 됩니다. 우리가 단번에 예수님처럼 될 수는 없겠지만, 원수도 사랑하려는 마음을 먹고 또 먹고, 실패해도 또 하고, 자꾸 하다 보면 주님의 모습에 좀 더 가깝게 가리라고 믿습니다. 너무 멀게 느껴서 관심을 놓아버리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가 안팎의 혼란과 시련을 겪는 시절입니다. 교인으로 산다는 것에 더 큰 무게감이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이런 때에도 낙심하지 않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영광은 주님이 받으시고, 우리는 주님의 뜻 이루는 일에 집중하면 그만입니다. 좋은 결과 만들 수 없다면, 오늘 하루 좋은 과정을 거치기 위해 힘쓰십시오.  그럴 때에 우리를 잘 아시는 주님께서 우리 인생을 아름답고 선한 길로, 풍성한 열매 맺는 축복의 삶으로 인도하시리라 믿습니다. 한 주간도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13 한나의 기도 (2018.11.18.) 홍목사 2018.11.18 7
812 주님을 찬양하는 사람 (2018.11.11.) 홍목사 2018.11.11 17
811 하느님께 감사 (2018.11.4. 추수감사주일) 이계준 2018.11.05 27
810 눈뜬 신앙인 (2018.10.28. 종교개혁주일) 홍목사 2018.10.28 22
» 제자의 자리 (2018.10.21.) 홍목사 2018.10.21 28
808 삼잘신앙 (2018.10.14. 가을철 야외예배) 홍목사 2018.10.15 26
807 화해의 주님 (2018.10.7.) 홍목사 2018.10.07 40
806 쏠티 크리스천 (2018.10.7. 림학춘 목사님 설교) 신반포 2018.10.02 30
805 인생을 산다는 것 (2018.9.23.) 이원로 2018.09.26 60
804 말과 성사(聖事) (2018.9.16.) 홍목사 2018.09.16 52
803 한 여인의 믿음 (2018.9.9.) 홍목사 2018.09.09 44
802 참된 공경 (2018.9.2.) 홍목사 2018.09.02 37
801 한 줌의 희망 (2018.8.26.) 홍목사 2018.08.26 48
800 솔로몬의 간청 (2018.8.19.) 홍목사 2018.08.19 63
799 이끄시는 하나님 (2018.8.12.) 홍목사 2018.08.12 54
798 생명의 빵 (2018.8.5.) 홍목사 2018.08.05 50
797 하나님을 찾는 사람 (2018.7.29.) 홍목사 2018.07.29 51
796 양과 목자 (2018.7.22.) 홍목사 2018.07.22 55
795 그리스도 안에서 (2018.7.15.) 홍목사 2018.07.15 40
794 반석 위에 지은 집 (2018.7.8.) 이원로 2018.07.09 58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41 Next
/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