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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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 감사

 

본문: 시편 100:1-5, 빌립보 1:3-11

설교: 신반포교회 이계준 목사 (2018.11.4. 추수감사주일)

 

오늘 감사절을 맞이하여 여러분과 가정에 감사의 풍성한 열매가 차고 넘치기를 빌면서 이 시간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에 기록된 감사의 조건을 가지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서학자에 따르면 바울 당시의 사람들은 편지를 쓸 때 특별한 습관에 따라 모두를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편지 쓰는 사람의 이름과 편지 받는 사람의 이름을 쓰고 인사말이나 축복의 말을 한 다음 뒤이어 감사의 말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 습관을 따랐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쓴 편지가운데 갈라디아서를 제외하고는 모두 감사의 말을 쓰고 있습니다. 감사의 상대는 물론 우주와 역사의 창조자이고 섭리자이며 구원자이신 하느님께 대한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의 본문처럼 감사의 말 다음 편지 받는 교회를 위한 기도를 계속합니다. 감사와 기도는 분리할 수 없지만 오늘은 감사에 관해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바울의 일행이 유럽 땅인 빌립보에 머문 것은 불과 몇 주간인데 감사의 내용은 매우 정겨운 말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여러분을 생각할 때마다 하느님께 감사한다.’ ‘기도할 때마다 여러분을 위해 늘 기쁜 마음으로 간구한다.’ ‘내가 여러분을 얼마나 그리워하는지는 하느님께서 증명하신다.’는 등. 짧은 기간의 교제가 이렇게 농도 짙은 것은 바울의 사도라는 확신과 교인들의 바울에 대한 신뢰의 결과일 것입니다.

모두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감사의 글을 쓸 때 인간적인 사안에 관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또는 선교와 관련해서 말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빌립보에 들렸을 때 교인들이 환대하고 대접했겠으니 바울에게 인간적인 감사가 왜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인간적인 것을 넘어서 사도직의 맥락에서 감사를 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 시간 바울의 모델을 따라 지난 30 여 년 동안 교우 여러분들과 그리스도의 교제를 통해 받은 은혜를 하느님께 감사하는 기회로 삼고자 합니다. 물론 저와 여러분의 관계에 있어서도 인간적인 감사를 나열하라면 한이 없을 것이고 인정과 그리스도의 사랑은 분리할 수도 없으나 오늘은 신앙적인 측면에 역점을 두고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이 첫째로 감사하는 것은 여러분이 첫 날부터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이다.”(1:4)는 것입니다. 바울이 빌립보에 간 것이 최초의 유럽 선교여행이라고 하는데 그 때부터 지금까지 복음 전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린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이 예나 지금이나 어렵기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합니다. 사람들은 각기 신념과 종교가 다를 뿐만 아니라 자기와 같지 않거나 이질적인 것은 백안시하거나 배타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바울 당시에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로마제국의 황제승배에 대한 반역죄에 해당하므로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빌립보 교우들은 복음 전하는 일에 헌신하고 있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린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바울 시대의 선교적 상황은 제가 살아온 일제시대나 북한의 현실과 같다고 해서 좋을 것입니다. 일본은 천왕을 신격화하였고 북한은 3대째 독재자를 우상시하며 기독교 말살정책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에 비하면 우리 신반포교회가 개척되던 1982년은 정치적으로는 아직 군사정권을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었으나 종교적으로는 비교적 자유로운 시대였습니다. 반정부적 입장을 취하지 않는 한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가 오늘에 이르기까지는 보이지 않는 어려움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헌장에 기록된 대로 새 시대에 걸 맞는 새 교회 곧 선교 지향적이고 평신도 중심적인 교회를 실현하다보니 교단이나 주변 교회들의 전통적 형식이나 풍조와 다르기 때문에 비방하거나 이단시하였고 이런 시각은 아직도 여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교회를 찾았던 많은 교우들이 새로운 형태의 교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떠나간 것은 우리에게 아픈 마음과 상처를 남겼습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교우 여러분은 초지일관 우리교회의 예배와 그리스도의 교제에 적극 참여하면서 복음의 성서적 및 신학적 이해에 관심을 두고 신앙의 생활화에 투신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교회는 유명하지도 않고 대형교회도 아니어서 자랑할 만 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21세기란 다원적이고 예측을 불허하는 시대를 위해 선택된 복음의 사도라는 주체의식을 지니고 개인적으로나 또한 교회적으로 또한 주어진 역할에 헌신한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도 바울이 둘째로 감사하는 것은 여러분 가운데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시리라고 나는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기를 통해 전달된 복음이 빌립보 교우들의 열성적이고 지속적인 활동을 통해 예수의 날 곧 종말에는 온 세계에 전달되어 드디어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교회는 바울의 복음에 대한 이런 확신을 바탕으로 새 시대를 위한 새 교회라는 개척자의 선교정신으로 시작되었습니다. 1982년 김수경 장로님과 제가 교회 개척을 위해 처음 만났을 때 새로운 교회를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저도 기성교회에 식상했고 선교신학을 가르쳤기 때문에 당시 풍마하던 하느님의 선교란 개념으로 21세기를 위한 모델을 실험하려고 모험한 것을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새 모델을 창조하려면 전통의 본질을 계승하면서 시대에 맞는 형식을 도입해야 하므로 예배, 성서연구, 평신도강좌, 성도의 교제는 물론 선교활동 등에 새로운 발상을 실험하였습니다. 한 예로 우리의 예배순서는 감리교 전통, 에큐메니컬 형식, 한국 정서 등이 융합된 것으로 우리가 개발한 의식으로 예배드릴 수 있으니 실로 감사한 일입니다.

또한 우리는 지금까지 많은 선교활동을 펴 왔지만 맺은 결실을 말하자면 단비교회와 장애인을 위한 한벗회, 모스크바 감리교신학원, 문화신학회, 예술목회원 등입니다. 특히 모스크바 감리교신학원은 단기간에 수많은 교역자를 양성하여 러시아에 감리교연회를 탄생시키는 모체가 된 것과 문화신학회가 한국신학을 영문지로 발간하여 세계 신학계에 살포한 것 그리고 우리교회가 지도자 양성에 주력하여 탁월한 신학자와 목회자를 육성한 것은 선교의 백미라고 하겠습니다.

스위스 신학자 E. 부르너의 말처럼 교회의 존재이유와 목적은 선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시대마다 교회에게 새로운 과제를 주시고 선교를 통해 교회를 새롭게 하시는데 우리교회가 3년 전 계간지 <성서와 문화>를 간행하므로 문서선교의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게 되었습니다. 20세기에는 세계적으로 평신도를 위한 잡지가 많았으나 지금은 제가 아는 한 <성서와 문화>와 일본의 <복음과 세계> 둘 뿐인데 필자들, 후원자들 그리고 우리 교우들이 삼위일체가 되어 하느님의 선교에 참여하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 선교를 통해 교회를 새롭게 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시 두 가지 새로운 선교분야를 주셨다고 생각되는데 하나는 3만 명을 넘어선 탈북민에 대한 선교입니다. 우리의 선교는 그들의 행복한 사회정착에 도움은 물론 앞으로 북한 땅에 교회재건과 통일 및 민족 화합을 위한 일꾼을 육성하는데 긴요한 것임을 기억하고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하나는 다문화가정을 위한 선교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안정된 삶은 물론 앞으로 우리의 폐쇄적인 단일문화 사회를 다문화사회로 발전시키고 선진국으로 진입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교회는 새 선교과제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고 적극 참여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세 번째로 감사하는 것은 여러분은 내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나 복음을 입증하거나 변호할 때 받은 은혜에 동참하였기 때문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복음을 위해 변론할 때나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어떤 물질적 도움을 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실한 기도와 선교활동에 참여하므로 받은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기가 받은 은혜란 내용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복음을 증거할 때나 옥중에 갇혀 있을 때 자기는 사도의 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한 것과 빌립보 교인들 역시 중단 없는 선교활동과 중보의 기도로 그의 고난에 동참하므로 하느님의 현존가운데 체험한 은혜에 대해 감사하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목회자들이 은퇴할 때 가장 곤혹스러운 문제는 은퇴 후에 어느 교회에 속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은퇴 후 담임했던 교회에 머무는 목사가 거의 없는 것을 보면 교회도 하나의 인간집단이므로 복합적인 원인 때문인 것으로 짐작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여러분의 사랑과 관용으로 행복한 교회생활을 하고 있으니 이 은혜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우리가 지금까지 목회자와 평신도 사이를 가로막는 높은 장벽을 허물고 주님의 사랑가운데 수평적 차원의 교제를 이어온 때문이 아닐까 스스로 자위하며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몇 주 전 우리 집에 경찰 네 명이 찾아왔습니다. 제 이름을 확인한 다음 체포영장도 없이 죄명과 신고자도 말할 수 없다면서 저를 체포하겠다고 협박한 다음 잠시 있다가 상황이 끝났다며 그냥 가 버렸습니다. 추측컨대 제가 sns로 오는 반정부 비판들을 가까운 친구들에게 전하고 애국집회에 후원금을 보낸 것이 단속망에 걸린 것 같습니다.

어느 반정부 인사에게 제가 당한 일을 말했더니 지금 그런 식의 언론통제와 협박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평생 동안 현 정권을 포함하여 다섯 번째 독재 권력을 경험하는데 어쩌면 군사정권 때도 가지 않았던 감옥신세를 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3.1운동 당시 옥고를 치르신 선친의 뒤를 따르게 되므로 가문의 영광이 빛날 것입니다. 바라기는 그 때 여러분과 저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가운데 하늘의 은혜를 나누며 하느님께 감사할 수 있기 바랍니다.

그러나 더 바라는 것은 먼저 저와 여러분이 하느님 앞과 이 세상 한 가운데서 참 크리스천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하며 이 땅에서 무책임한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독재를 추방하고 불완전하나마 하느님 나라의 형상인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정착시켜 후손들에게 물려주면서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날이 속히 임하기를 기원합니다.

독일 신학자 D. 본회퍼는 1939년 제2차 대전 전운이 감돌 때 미국 뉴욕 유니온신학대학원의 교수로 임용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많은 동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미쳐 날뛰는 히틀러를 제거하기 위해 안전한 미국을 떠나 독일로 돌아갔습니다. ‘민족의 고통에 동참하지 않으면 민족의 기쁨에 동참할 수 없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겪는 위기와 고난은 우리 국민, 특히 정치 지도자들의 역사의식 부재와 무책임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본회퍼처럼 철저한 책임의식을 지닌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은혜와 감사의 날이 꼭 올 것입니다.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이 시간 저는 하느님께 세 가지로 감사드렸습니다. 첫째로 여러분이 시종여일 새 시대를 위한 새 교회를 지향하는데 동참해주신 것에 감사드렸습니다. 둘째로 우리에게 선교적 사명과 실천할 능력을 주시고 새 시대의 과제를 통해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셋째는 오늘과 내일의 고난가운데서도 은혜를 나누게 하시고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이룩한 다음에 주실 은혜를 믿으며 하느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여러분도 바울처럼 각기 하느님께 드릴 감사를 찾고 묵상하며 일상에 실현하는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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