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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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의 기도

 

본문: 사무엘상 2:1-10; 마가복음 13:1-8

설교: 홍정호 목사 (2018.11.18. 성령강림 후 제26)

 

[한나가 기도로 아뢰었다. “주님께서 나의 마음에 기쁨을 가득 채워 주셨습니다. 이제 나는 주님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있습니다. 원수들 앞에서도 자랑스럽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구하셨으므로, 내 기쁨이 큽니다. 주님과 같으신 분은 없습니다. 주님처럼 거룩하신 분은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같은 반석은 없습니다. 너희는 교만한 말을 늘어 놓지 말아라. 오만한 말을 입 밖에 내지 말아라. 참으로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시며, 사람이 하는 일을 저울에 달아 보시는 분이시다. 용사들의 활은 꺾으나, 약한 사람들은 강해진다. 한때 넉넉하게 살던 자들은 먹고 살려고 품을 팔지만, 굶주리던 자들은 다시 굶주리지 않는다. 자식을 못 낳던 여인은 일곱이나 낳지만, 아들을 많이 둔 여인은 홀로 남는다. 주님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로 내려가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다시 돌아오게도 하신다. 주님은 사람을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유하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신다. 가난한 사람을 티끌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사람을 거름더미에 들어올리셔서, 귀한 이들과 한자리에 앉게 하시며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게 하신다. 이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기초는 모두 주님의 것이다. 그분이 땅덩어리를 기초 위에 올려 놓으셨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성령강림 후 스물여섯 번 째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 다음 주일을 마지막으로, 2018년 교회력이 끝나고 12월부터 새로운 교회력이 시작됩니다. 올 한 해 신앙 여정을 돌아보고, 새날을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지나온 시간에 대한 성찰은, 앞으로 살아갈 시간을 위해 필요합니다. 그러나 과거에 사로잡힌 개인이나 공동체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가나안을 향해 길 떠난 이들이 애굽의 고깃가마를 떠올리며 시간을 허비하듯 과거에 사로잡힌 삶은 인생의 새날을 가로막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새날을 삽니다. 일 년 중 새날이 아닌 날은 단 하루도 없습니다. 오늘도 새날입니다. 2018년의 교회력을 한 주 남겨둔 오늘, 지나온 시간은 떠나보내고, 새 마음으로 새날을 맞이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오늘의 본문은 한나의 기도입니다. 사무엘기는 한나의 노래로 시작해서 다윗의 노래, 주님께 제단을 쌓아,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는 다윗의 경배로 끝납니다. 사무엘기는 제사장이 통치하는 신정(神政)과 왕이 통치하는 왕정(王政) 사이의 갈등을 배경으로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만물 위에 군림하시는 최고의 주권자로서 자비와 사랑으로 세상을 통치하시는 분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최고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분의 뜻을 받드는 제사장들의 세속 통치를 통해 전개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무엘기가 기록된 기원전 1000년경에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제사장을 통한 통치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인 한나의 기도에 이어 나오는 제사장 엘리의 타락한 아들들 이야기에서 정점에 이릅니다.

 

엘리는 실로의 제사장이었습니다. 제사장으로 살아온 그에게는 행실이 나쁜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사무엘기의 기록자는 이를 두고 그들은 주님을 무시하였다.” 했습니다. 누군가 제사를 드리려고 고기를 삶고 있으면 살이 세 개나 달린 갈고리를 들고 와서 가마솥에 갈고리를 찔러 고리를 건져간다거나, 제물로 바치려고 잡은 고기를 태우기도 전에 날고기를 가로챈다거나 하는 등의 행동을 서슴없이 하면서, 주님께 바치는 제물을 함부로 대했습니다(삼상 2:12-17). 제사장 엘리로서는 자신의 잘못이 아닌 아들들의 비행으로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곤혹스러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에 대한 자식들의 농간도 바로잡지 못하는 엘리의 무능은, 백성들로 하여금 신정통치에 대한 반감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자기 자식의 잘못도 교정하지 못하는 제사장이, 어떻게 잘못된 길로 가는 백성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겠는가 하는 당연한 의심이겠습니다. 사무엘기는 이렇듯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통치한다던 당대 제사장들의 타락과 무능을 고발하고, 사무엘과 사울, 그리고 다윗과 솔로몬이라는 새로운 인물들을 통해 펼쳐 가시는 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의 새로운 역사를 여는 주인공이 바로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한나입니다.

 

2.

 

한나는 에브라임 지파에 속한 엘가나라는 사람의 아내였습니다. 남편 엘가나에게는 한나 말고도 다른 아내가 한 명 더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브닌나였습니다. 자녀가 없었던 한나와 달리 브닌나에게는 최소 4명의 자녀(아들딸, sons and daughters)가 있었습니다. 일부다처제사회이고, 극심한 가부장제 하에서 자녀가 없는 부인이 네 명 이상의 자녀를 둔 남편의 다른 부인과 한집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버거운 힘든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브닌나는 한나를 괴롭히고 업신여기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더 최악의 상황은 뭔지 아십니까? “이런 일이 매년 거듭되었다.”(삼상 1:7)입니다.

 

끝이 있으면 힘든 일도 그럭저럭 참을 만합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제일 버거운 일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입니다. 의사에게 3개월 남았습니다, 6개월 남았습니다, 선고를 받은 후 남은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가는 분들을 봅니다.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이들에게는 그동안 살면서 억울했던 일, 미워했던 일, 또는 더 잘 하고자 했던 숱한 일들이 다 의미 없어지고, 오늘을 어떻게 감사한 마음으로 의미 있게 보낼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만 남습니다. 그런데 1년 시한부 인생이나, 10년이나, 100년이나, 우리는 모두 시한부 선고를 받고 태어난 삶이고, 시간의 끝이 있다는 건 우리가 다 아는 바입니다. 다만 그 끝이 지금 눈앞에 보이느냐 아니면 아직 안 보이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끝이 안 보이기 때문에, 영원히 살 것처럼 미워하고, 억울해하고,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하는 게 삶이 아닌가, 또 그래서 죽음을 향해 가는 줄 잊고 현재에 취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가 인간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저는 이런 일이 매년 거듭되었다.”는 구절 속에는 한나의 깊은 슬픔과 절망을 봅니다.

 

3.

 

언제 끝날지 모르는 설움이 가슴에 차오를 때마가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주님의 집에 올라가 기도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가족 안에서 입은 상처가 얼마나 깊었던지 기도하러 올라가서도 한나를 끊임없이 눈물을 흘릴 뿐 아무 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그런 아내를 보며 남편 엘가나는 여보, 왜 울기만 하오? 당신이 열 아들을 두었다고 해도, 내가 당신에게 하는 만큼 하겠소?”하고 위로의 말을 건넸습니다. 그러나 엘가나의 말은 한나에게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한나의 마음의 병은 깊어만 갔습니다. 그녀는 아마 우울증에 알코올중독에도 빠져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나가 흐느껴 울면서 기도하는 모습을 본 제사장 엘리는 한나를 꾸짖으며 말했습니다. “언제까지 술에 취해 있을 것이오? 포도주를 끊으시오.” 하루 이틀 술 마셔서는 기도하러 와서 제사장에게 이런 소리를 듣지는 않습니다.

 

엘리의 꾸짖음에 한나는 대답했습니다. “제사장님, 저는 술에 취한 것이 아닙니다. 다만 슬픈 마음을 가눌 길이 없어서, 제 마음을 주님 앞에 쏟아 놓았을 뿐입니다. 너무나도 원통하고 괴로워서, 이처럼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러자 엘리가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평안한 마음으로 돌아가시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대가 간구한 것을 이루어 주실 것이오.” 엘리의 축복을 받은 한나는 돌아와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얼굴에 슬픈 기색을 띠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를 통해 상처 입은 한나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치유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한나는 기적처럼 아들을 잉태하게 되었고, 그가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이스라엘의 새 역사를 연 인물이자, 사울과 다윗을 왕으로 세운 위대한 제사장 사무엘이 되었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한나의 기도는, 주님께서 비통한 한 여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통해 이루신 큰일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신약성서에 마리아의 기도가 있다면, 구약에는 이 한나의 기도가 있습니다. 두 여인의 기도는 모두 주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일, 비천한 자를 높이시고, 약한 자를 들어 강하게 하시고, 굶주린 이들로 풍요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권능을 찬양합니다.

 

4.

 

한나의 기도는 오늘 우리의 기도이기도 합니다. 한나의 이야기는 단지 불임이었던 여인이 자식을 잉태하고 자식을 통해 영광을 본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효율과 결과가 중시되는 세상에서 보람의 결실을 맺지 못하는 이들의 비통함을 이야기합니다. 우리시대의 한나들은, 자신과 남을 끊임없이 비교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 몰린 이들입니다. 브닌나의 아들딸을 바라보며 슬픔에 빠진 한나처럼, 남들은 곱절이나 되는 보람의 결실을 안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에, 아쉬울 것 없는 이들의 괴롭힘과 업신여김을 감당하며 살아야 하는 비통한 이들이 바로 우리시대의 한나입니다.

 

우리말 중에 외국어로 번역하기 남감해서 그냥 영어표기로 쓰는 낱말 가운데 하나가, ‘갑질’(Gapjil)입니다.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이 갑질입니다. () 직원을 무차별 폭행하고 모욕한 웹하드업체 사장이나, 한 페스트푸드점 여직원에서 음식물을 집어던진 어느 40대 남성 이야기에 다수의 시민들이 공분하는 것은, 그러한 폭력으로부터 나와 우리가족이 예외일 수 없다는 생각을 갖기 때문입니다. 우리시대의 한나들은, 자기의 불임상태, 곧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할 수 없는 무능력 때문에 울고, 또 그런 자신을 업신여기는 다른 이들의 시선으로 인해 더 큰 비통함에 빠집니다. 우리시대의 브닌나, 자신이 누리는 영광을 자랑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시선을 보내는 이들은 어디에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한나의 구원은 어디에서 오는가?입니다. 적대자 브닌나에 대한 원통함과 복수심에 이를 갈며, 언젠가 그녀에게 되갚아 줄 날만을 기다리며 슬픔에 빠져있었을 때 그녀는 자신을 더욱 더 깊은 절망으로 몰아넣었고, 남편 엘가나의 위로도 듣지 못했으며, 제사장 엘리로부터도 신임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자신의 보람의 열매, 첫 자식을 주님께 드리기로 결단했을 때, 다시 말해서, 나의 보람의 열매인 자식을 나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바치겠다고 서원했을 때 그녀는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서 자식은 내 몸으로 낳은 자녀를 의미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내 삶의 의미, 내 삶의 목적, 이것을 통해 내 명성을 떨치고, 이것을 통해 비통한 삶을 벗어나겠다고 꼭 붙잡아 왔던 것, 이것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것! 한나는, 자신의 보람의 결실이자 의미의 총체인 자식을, 자기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리겠다고 서원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지금껏 자기의 슬픔, 자기의 억울함, 자기의 보람이 중심이 되는 삶으로부터 돌이켜,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보람이 되는 삶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입니다. 이것이 한나를 구원하였습니다. 자신의 비통한 상황에 빠져 슬픔의 나날을 보내며 눈물과 기도와 포도주로 세월을 보내던 한나가, 이제 하나님을 삶의 중심으로 삼아 우뚝 서게 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같은 반석은 없습니다!” 모래 위에 인생을 쌓고 살았던 한나는, 이제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5.

 

너희는 교만한 말을 늘어 놓지 말아라. 오만한 말을 입 밖에 내지 말아라. 참으로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시며, 사람이 하는 일을 저울에 달아 보시는 분이시다. (중략) 주님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로 내려가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다시 돌아오게도 하신다. (중략) 이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기초는 모두 주님의 것이다. 그분이 땅덩어리를 기초 위에 올려 놓으셨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한나의 비통함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삶에서 어찌할 수 없는 일로 인해 괴로움 가득한 나날을 보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게다가 이런 일이 한두 해도 아니고 매년 거듭되면서 우리의 몸과 마음이 온통 지쳐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눈물의 자기연민과 슬픔으로 시절을 잊고 지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한나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땅 덩어리를 기초 위에 올려 놓으신 분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토대이며 근본이라고 여기는 땅,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토대라고 여기는 바로 그것, 그 땅 마저도, 그분이 세우신 기초 위에 있다는 믿음 위에 굳게 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우리 인생을 긍휼히 여기셔서, 저와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날마다 은총의 새날을 열어가시리라 믿습니다. 한 주간도 우리 주님의 크신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가정 가운데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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