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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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 영광

 

본문: 시편 132:1-12; 요한복음 18:33-37

설교: 홍정호 목사 (2018.11.25. 성령강림 후 마지막 주, 왕국주일)

 

[주님, 다윗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그가 겪은 그 모든 역경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다윗이 주님께 맹세하고, 야곱의 전능하신 분께 서약하기를 내가 내 집 장막에 들어가지 아니하며, 내 침상에도 오르지 아니하며 눈을 붙이고, 깊은 잠에 빠지지도 아니할 것이며, 눈꺼풀에 얕은 잠도 들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계실 장막을 마련할 때까지, 야곱의 전능하신 분이 계실 곳을 찾아낼 때까지 그렇게 하겠습니다하였습니다. 법궤가 있다는 말을 에브라다에서 듣고, 야알의 들에서 그것을 찾았다. “그분 계신 곳으로 가자. 그 발 아래에 엎드려 경배하자.” 주님, 일어나셔서 주님께서 쉬실 그 곳으로 드십시오. 주님의 권능 깃들인 법궤와 함께 그 곳으로 드십시오. 주님의 제사장들이 의로운 일을 하게 해주시고, 주님의 성도들도 기쁨의 함성을 높이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종 다윗을 보시고, 주님께서 기름 부어서 세우신 그 종을 물리치지 말아 주십시오. 주님께서 다윗에게 맹세하셨으니, 그 맹세는 진실하여 변하지 않을 것이다. “네 몸에서 난 자손 가운데서, 한 사람을 왕으로 삼을 것이니, 그가 보좌에 앉아 네 뒤를 이을 것이다. 만일 네 자손이 나와 더불어 맺은 언약을 지키고, 내가 가르친 그 법도를 지키면, 그들의 자손이 대대로 네 뒤를 이어서 네 보좌에 앉을 것이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성령강림 후 마지막 주, 왕국주일입니다. 교회력은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로 시작합니다. 복음은, 세상을 구원하시는 분이 권세와 능력을 덧입고 오시지 않고, 가장 낮은 이들 가운데, 가장 연약한 모습으로 오셨다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오늘 한 해 신앙의 순례를 마치는 왕국주일은, 그분의 왕 되심을 선포하는 날입니다. 주님은 가장 낮고 연약한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오신 분이지만, 그분은 세상 그 어떤 왕보다 높고 귀한 분이시라는 선언으로 한 해의 교회력은 끝맺음합니다. 교회력은 이 과정을 매년 반복하고, 신자인 우리는 교회 생활을 통해 주님이 왕 되시는 삶,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우리의 몸과 마음에 새깁니다.

 

1.

 

어려울 때일수록 근본(根本)을 돌아보라고 말합니다. 흔들리더라도 다시 일어나 제 갈 길을 갈 수 있는 힘은 근본을 돌아보는 데서 옵니다. 정신과전문의인 윤대현 선생은, 노력하는 사람이 쉽게 지치는 이유를, 목표를 낮추는 것이 쉽지 않아서라고 말합니다. 일을 열심히 하고, 열심히 할 뿐만 아니라 잘 하는 이들이 쉽게 소진되고 마는 이유는, 그들의 목표치가 너무 높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남들이 볼 때는 행복한 삶을 살아갈 조건이 충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하고 불행한 개인들이 참 많다는 것입니다. 윤대현 선생에 따르면, 현대인들이 성취를 통해서만 스트레스를 관리하려고하기 때문이랍니다. 요새 사람들이 스트레스 푼다고 게임을 많이 합니다. 게임이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이유는, 성취와 보상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게임에서는 실패하기도 하지만, 노력하면 곧바로 더 나은 결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취를 추구하는 데서 오는 좌절감을 게임 속 작은 성취들을 통해 푸는 방식을 택하는 것인데, 이것은 미봉책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보다는 인생에서 성취해야 할 목표를 낮춰야 여유도 생기고 자존감과 행복감도 높아진다는 겁니다.

 

목표를 성취하는 데 따른 보람은, 우리 자신에게 스스로가 가치 있고 쓸모 있는 존재라는 심리적 보상을 안겨줍니다. 세상적인 의미에서 성공한 삶이란, 남들이 부러워하는 목표를 성취하고, 이를 지속하고 확장해 나가는 삶입니다. 성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저마다의 삶의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데 있어서 모든 생명은 제몫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성서는 우리에게 만족감을 안겨 주는 이런 일상의 성취 너머에 있는, 근본적인 삶의 목표와 방향을 향해 살아갈 것을 우리에게 요청합니다. 한 마디로,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입니다.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우리의 일과 삶의 궁극적 목표로 삼으라는 명령입니다.

 

2.

 

구약성서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왕이 없는 나라, 열 두 지파의 수장들도 하나님의 통치를 받들어 살도록 되어 있는 계약 백성이 이스라엘의 근본 정체성입니다. 그러나 광야를 지나 가나안에 정착하면서부터는 그 정체성이 흔들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우상을 만들었고, 그것들이 자신을 인도해 줄 것이라는 안도감으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대체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정제도 역시 하나님의 통치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 데 따른 불신앙과 불안감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야훼 하나님이라는 왕이 계셨지만, 그들은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며 자신들의 경험과 지혜를 따라서, 마치 왕이 없는 백성인 것처럼 살아갔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사무엘에게 왕정제도를 강력하게 요구하였고, 사무엘은 사울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사울은, 능력이 출중했을 뿐만 아니라, 잘생기고 겸손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왕으로 세우려는 이들을 피해 짐짝 사이에 숨어 있었습니다(삼상 10:22). 이스라엘의 지파 가운데 가장 작은 베냐민 지파인데다, 그 가운데에서도 보잘 것 없는 집안 출신인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그 자신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삼상 9:21). 그러나 하나님은 사무엘을 통해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고, 사무엘은 온 백성 앞에서 그를 추켜세우며 온 백성 가운데 이만한 인물이 없다”(삼상 10:24)고 말했습니다. 백성들은 환호했고, 사울은 백성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며 나서는 전쟁마다 승리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승리의 기쁨을 안겨 주었습니다. 젊은 사울을, 왕이 된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위해 일했습니다. 처음부터 자신의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는 승리하는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정신과전문의 윤대현 선생의 책에서 본 내용인데, 그가 어느 프로 골프선수의 멘탈 트레이너를 맡았다고 합니다. 승부에 집착하지 않고 멘탈을 잘 관리해 오면서 좋은 성적을 내던 그 선수에게, 이 선생님이 그랬답니다. ‘, 이제부터 우리 우승을 노려볼까요?’ 그랬더니 잘 하던 그 선수가 그때부터 추락하기 시작해서 곤욕을 치룬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골프 치시는 분들 공감이 되십니까? 골프만이 아닙니다. 매사가 그렇습니다. 저는 정신과전문의와 상담하지는 않지만, 제 신앙 멘탈을 관리해 주시는(?) 좋은 선배 목사님들을 몇 분 알고 있습니다. 그분들과 가끔 대화를 나눌 때면 비슷한 말씀을 듣습니다. ‘홍 목사 너무 잘 하려고 해서 그래, 홍 목사 꺾여야 돼, 하나님 앞에서 더 겸손하고 더 낮아져야 해, 그거 다 교만이야.’ 하는 쓴소리들입니다. 자신의 문제가 너무 커 보일 때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마음으로 지지하고 진심으로 응원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이들의 조언은, 비록 쓴소리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립니다. 들을 귀를 열어주시고, 만날 만한 때에 만나게 해 주시는 은혜가 있습니다.

 

사울은, 준수하고 능력이 많은 젊은 왕이었지만, 승리에 취해서, 그리고 사람들의 인정과 환호에 취해 그것을 잃어버릴까 두려웠습니다. 성취를 쫓아, 승리만을 위해 살아 온 그는 마침내 미치고 맙니다. 사무엘기상은 사울에게서는 주님의 영이 떠났고, 그 대신에 주님께서 보내신 악한 영이 사울을 괴롭혔다”(삼상 16:14)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의 겸손은 사라지고 권력과 승리가 주는 짜릿함에 취한 사울은, 자신에게 쓴 소리를 하는 놉의 제사장들을 모두 학살해 버립니다(삼상 22:18). 그의 영혼은 추락할 대로 추락했고, 궁지에 몰린 사울은 자신의 자식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목도하면서 길보아 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맙니다(삼상 31:1-13). “온 백성 가운데 이만한 인물이 없다던 사울도, 하나님을 떠나 자기의 성취에 취한 삶을 살아갔을 때, 그리고 돌이킬 수 있는 여러 기회들을 스스로 박차버렸을 때 그에게는 비참한 최후만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3.

 

다윗은 어떻습니까? 사울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는 양치기 목동이자 부랑자 무리의 우두머리였습니다. 또 제가 주목하는 다윗의 모습이 있는데, 그것은 다윗이 악한 영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는 사울을 음악으로 위로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무엘기는 하나님이 보내신 악한 영이 사울에게 내리면,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탔고, 그 때마다 사울에게 내린 악한 영이 떠났고, 사울은 제정신이 들었다.”(삼상 16:23)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힌 늙은 왕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사랑을 전하는 음악치료사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은 다윗을 매우 사랑했으며, 마침내 그를 자기의 무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으로 삼았다”(삼상 16:21)고 합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여러분들이 아시는 대로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여러 차례 죽이려고 했고, 다윗은 사울을 죽일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복수하지 않고, 정신 나간 왕을 긍휼이 여기며 그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랬던 다윗이 왕이 된 후에는 어떻습니까? 그도 정신이 나갑니다. 다윗은 자신의 실책을 은폐하기 위해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전장에 나가 죽게 만듭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자리를 자기의 욕망을 위해 남용하고, 실책을 가리기 위해 더 큰 죄악을 범하는 사람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선지자 나단이 있었습니다. 나단은 다윗을 찾아와 어느 가난한 자의 하나밖에 없는 양을 빼앗아 죽인 부자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다윗이 그러한 사람은 죽어야 마땅하다고 말하며 분노했을 때 나단은, ‘당신이 그 사람이다’(삼하 12:17)라고 말합니다. 사울이었다면 어떠했을까요? 그가 놋의 제사장들을 학살했듯이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 모멸감을 안겨준 나단을 죽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단의 고발을 받아들이고, 회개했습니다. 실패한 자리에서 근본으로 돌아오고자 방향을 돌이킨 것입니다.

 

사울과 다윗은 모두 인간적으로는 나무랄 데 없는 준수한 왕입니다. 그런데 그 둘의 차이가 있습니다. 사울은 왕이신 주님께로 돌아오기를 거부했고, 다윗은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이 주인 되시는 삶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윗도 죄 많고, 허물 많은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일평생 지속했고, 주님 앞에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반복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다윗의 혈통에서 예수께서 나셨습니다. 다윗은,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야말로 자신의 삶의 분명한 목표와 지향이 되어야 함을 알았습니다. 양치기였을 때도 사울을 음악으로 위로하는 치료자였을 때도, 그리고 왕이 되고, 왕으로서 많은 성취를 이루었을 때에도, 그는 하나님께로 돌아와 근본에 바로 서기를 그치지 않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런 다윗을 하나님은 기억하시고, 그가 겪은 인생의 모든 풍파 가운데에서도 다윗을 버리지 않으시고 귀한 왕으로 쓰신 것입니다.

 

4.

 

한 해 신앙의 순례의 마지막 주, 왕국주일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왕으로 모시고 사는지 돌아보는 오늘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쌓아 온 인생의 이력을 여기에서 무너뜨릴 수 없다는, 바로 그 마음과 씨름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사울과 다윗의 같지만 다른 인생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돌이켜 회개할 수 있을 때가 은혜입니다. 이제 2018년 한 해를 보내고, 새날을 맞이하는 때에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으로, 하나님 한 분만을 우리 삶의 주인으로 모시며 살아가는 삶의 근본에 더욱 굳게 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크신 은총으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어 삶의 보람과 더 큰 기쁨을 허락하시리라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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