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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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깨어 있어라

 

본문: 예레미야 33:14-16; 누가복음 21:29-36

설교: 홍정호 목사 (2018.12.2. 대림절 제1)

 

[예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아라. 잎이 돋으면, 너희는 스스로 보고서, 여름이 벌써 가까이 온 줄을 안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로 알아라.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끝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다 일어날 것이다. 하늘과 땅은 없어질지라도, 내 말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해서, 방탕과 술취함과 세상살이의 걱정으로 너희의 마음이 짓눌리지 않게 하고, 또한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닥치지 않게 하여라. 그 날은 온 땅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닥칠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또 인자 앞에 설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늘 깨어 있어라.”]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교회력의 첫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지난 시간은 말 그대로 지나갔고, 새로운 시간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졌습니다. 교회력의 시작과 끝은 우리 삶의 시작과 끝이 있음을,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저마다 알맞은 때가 있음을(3:1)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 시작은 예수님의 강림(降臨), 즉 성탄을 기다리는 대림절로 시작합니다.

 

그리스도교는 가장 높으신 분께서 가장 낮은 곳, 낮은 이들 가운데 오시어 세상을 구원한 메시아 되심을 선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구약성서가 약속한 메시아로 오시는 분이시고, 다시 오실 분이십니다. ‘구원약속기다림은 구약과 신약성서를 관통하는 주제입니다. 구약성서가 세상의 공의와 구원을 이루기 위해 오실 메시아를 대망(待望)한다면, 신약성서는 이미 오셔서 십자가 고난을 당하시고 부활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날을 기다리고 바랍니다. 대림절은 구원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이들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구원의 약속이 이미 실현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절기입니다.

 

1.

 

새롭게 시작하는 한 해를 맞아 주일예배 파송의 말씀을 두고 기도하는 가운데, 고린도후서 517절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 하는 바울의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고후 5:18).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화(感化)된 이들, 그의 표현대로라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휘어잡은이들은 육신의 잣대가 아닌 화해케 하시는 주님을 본받아 살아감이 마땅하다고 전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화해를 추구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과 나, 나와 이웃, 그리고 자기와의 화해를 위해, 나아가 이웃과 이웃의 화해를 위해 화해의 직분을 맡아 파송된 이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화해를 이루려면 새 마음이 필요합니다. 저는 오래 전 서점 종교서적 코너에서 스님과 신부님이 저자인 책의 저자 소개를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자 소개에 있을 법한 이런저런 이력이 하나도 없고, 그냥 법명 하나, 세례명 하나 달랑 씌어있는 것을 보고 참 좋다생각했습니다. 학술서 단행본을 낼 정도의 실력이면 공부를 꽤 하셨을 텐데 아무 소개도 없습니다. 그저 이름 하나, 그것도 본명이 아닌 이름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요새는 스님이나 신부님들 중에도 개신교 목사님들 이상으로 자기 홍보가 대단한 분들이 계십니다만, 꽤 오래 전에 우연히 경험한 이 일은, 종교적 삶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가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입니다.

 

육신을 입고 살지만 육신의 법을 따라 살지는 않고, 매일의 은총을 힘입어 사는 삶이란 어떤 삶일까요. 어제까지는 어제의 은혜로 산 것이니 그저 하느님과 이웃과 자기에게 감사하면 족한 것이요, 자랑할 것도 후회할 것도 아쉬워할 것도 없다는 사실을 긍정하는 삶이 아닐까요.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합니다. 매일이 새로운 존재라는 선언입니다. 비록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조건은 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로 이날을 맞이하고 있음을 잊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저는 올 한 해 예배를 통해 우리가 날마다 은총의 새날을 열어가는 존재로 거듭나기를 기도합니다.

 

2.

 

오늘 새로운 교회력 첫 번째 주일의 복음은 종말을 주제로 합니다. 신앙생활은 늘 이렇듯 전복적인 면이 있습니다. 시작하는 날에 끝날 날을 말하고, 끝나는 날에는 새로운 시작의 소망을 전합니다. 주님은, 무화과나무에 잎이 돋는 것을 보고 때를 알라고 하셨습니다. 잎이 돋으면 여름이 가까이 온 줄 압니다. 인자의 오심도 그러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복음서에서 본다는 건 깨닫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우리말에도 본다는 낱말의 의미가 중의적입니다. ‘본다는 것은 시각적인 응시만을 의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사태를 이해한다는 뜻이요, 통찰과 전망, 그리고 판단의 뜻이 담긴 낱말로 활용됩니다. 무화과나무에 잎이 돋는 것을 보고 때를 알라는 비유의 말씀은, 삶의 때를 식별하며 그때를 준비하며 살라는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너희는 스스로 조심해서, 방탕과 술취함과 세상살이의 걱정으로 너희의 마음이 짓눌리지 않게 하고, 또한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닥치지 않게 하여라.”(21:34) 하셨습니다. 제가 다소 불경한 상상을 해 본다면, 예수님이 어찌나 우리 마음을 그리 잘 아시는지, 당신이 겪어보지 않으셨으면 알 수 없는 디테일을 다 알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소박한 잔치의 기쁨을 누리셨던 주님께서는 술 취한 이들도 자주 만나셨을 테고, 세상살이의 걱정으로 마음이 짓눌린 이들과도 많이 만나셨을 겁니다. 어쩌면 나사렛의 목수이셨던 주님께서도 그런 인간적인 도전들과 끊임없이 씨름하며 당신의 길을 가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살이 걱정으로 마음이 짓눌리는 경험, 그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체험과 별개로 하신 말씀이 아니라, 때로 당신이 둘러싸여 씨름하셔야만 했던 삶의 어려움이기도 했다는 생각을 해 보는 것입니다. 아마 그러시지 않았을까요?

 

주님은,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닥치지 않게 하여라하셨습니다만, 곧이어 그 날은 온 땅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닥칠 것이다”(21:35) 하셨습니다. 세상의 종말이라고 할 수도 있고, 나의 삶의 종말이라고 할 수도 있고, 어떤 사태의 갑작스러운 중단이라고 할 수도 있는 그런 일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닥치지 않게 조심하라하시면서 그 때가 모든 사람에게 닥칠 것이라는 말씀을 이어서 하신 것입니다. 죽음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인간은 죽음을 향한 존재라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지만, 그것은 언제나 나중의 일로, 나의 오늘과는 상관없는 미래의 일로 받아들입니다.

 

육신의 죽음뿐만이 아닙니다. 사회적 죽음이라고 할 수 있는 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맡겨주신 일을 소명으로 알고 한다고 해서 그 일을 영원히 지속할 수 있는 이는 없습니다. 모든 일에는 시작한 때가 있는 것처럼 마칠 때가 있습니다. 무화과나무를 보고 때를 알라고 하신 것은, 지금이 밭에서 돌을 골라내야 할 때인지, 씨앗을 뿌릴 때인지, 심고 기다릴 때인지, 열매를 거둘 때인지, 아니면 앙상한 가지를 보며 봄을 기다리며 소망을 품어야 할 때인지를 분별하라 하신 것입니다. 때에 알맞지 않은 일에 열심을 낸다 한들 보람의 결실을 거둘 수 있는 없습니다. 밭에서 돌을 골라내야 할 때 씨 뿌릴 염려 하지 말고 돌을 골라내면 되고, 씨 뿌릴 때는 열매가 맺힐까 염려하지 말고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러나 때에 알맞지 않은 열심은 낙심의 열매를 맺을 뿐입니다.

 

주님은, 모든 일의 종말이 다가올 때에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설 수 있도록, 기도하면서 늘 깨어 있어라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때를 분별할 지혜도, 때를 기다리며 인내할 힘도 생기지 않습니다. 그저 눈앞에 다가온 문제의 크기에 짓눌려 우왕좌왕할 뿐입니다. 그러나 잠시 흔들린다 하더라도 이내 중심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도 흔들립니다. 기도하는 사람도 문제에 직면합니다. 기도하는 사람도 절망합니다. 기도하는 사람도 모든 사람에게 덫과 같이 닥칠미래를 맞이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이내 중심을 바로 잡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어제의 염려와 불안을 어제에 남겨두고 오늘의 은총으로 새날을 맞이할 힘을 얻습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입니다.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상황을 맞이하는 내가 변하면, 매일이 새날이요, 상황도 머지않아 바뀌기 마련입니다. 이것이 기도하는 사람이 체험하는 은혜요, 기도의 능력입니다.

 

3.

 

세상의 어둠이 깊었을 때 주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분을 먼저 맞이한 이들은 추위와 외로움과 노동의 힘겨움 속에서 소망을 품은 목동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가난한 마음에 오셨습니다. 어둠이 깊다는 건 동이 크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그림자가 짙다는 것은 밝은 빛이 등 뒤에서 비추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어떤 일에 대한 절망과 두려움이 절정에 이르렀다는 것은, 그것이 끝나가고 있는 시간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표입니다. 주님께서 기도하며 늘 깨어 있어라말씀하신 까닭은, 기도하며 깨어 있지 않으면, 동터오는 아침보다는 짙은 새벽의 절망이, 등 뒤에서 내리비치는 환한 빛보다는 눈앞에 드리운 그림자가 더 크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눈을 뜨게 하고, 고개를 들어 하나님의 크신 은총을 보게 합니다. 주님의 은혜가 오늘 우리에게 족함을 알고, 고난의 자리에서도 감사와 찬송의 고백을 주님께 올려드리게 만듭니다. 이것이 깨어 기도하는 이들이 체험하는 일상의 기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주님의 오심이 구원의 기쁜 소식이라고 해서 모든 이들이 주님의 오심을 복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둠이 가고 아침이 되었을 때 독수리는 눈을 뜨지만 올빼미는 시력을 잃습니다. 아침은 누구에게나 오지만, 그 아침이 누구에게나 희망인 것은 아닙니다. 빛을 향하여 선 이들은 빛의 광명을 보겠지만, 빛을 등지고 선 이들은 그림자를 보게 될 것입니다(기독교대한감리회, <강단과목회>, 2018, 1112월호, 69). 빛이 세상에 오셨으나 그를 맞아들이지 않은 이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존재합니다. 그러나 빛이신 그분을 맞아들인 사람들, 아침이 되어 눈 뜬 이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1:12)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새로운 한 해의 신앙 순례가 시작되었습니다. 올 한 해는 매일 은총의 새날을 맞이하는 기쁨이 여러분과 가정, 그리고 우리 교회 가운데 충만하길 기도합니다. 기도하며 깨어 있을 때 우리 앞에 놓인 그림자가 아닌 빛을 보게 될 것이요, 새 아침을 맞이하는 기쁨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한 주간도 주님의 크신 은총 가운데, 새로운 피조물로, 새날을 맞이하는 기쁨이 충만한 한 주가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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