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주일설교
조회 수 66 댓글 0

복음의 빛

 

본문: 3:1-4; 3:1-6

설교: 홍정호 목사 (2018.12.9. 대림절 제2)

 

[디베료 황제가 왕위에 오른 지 열 다섯째 해에, 곧 본디오 빌라도가 총독으로 유대를 통치하고, 헤롯이 분봉왕으로 갈릴리를 다스리고, 그의 동생 빌립이 분봉왕으로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을 다스리고, 루사니아가 분봉왕으로 아빌레네를 다스리고,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 요한은 요단 강 주변 온 지역을 찾아가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그것은 이사야의 예언서에 적혀 있는 대로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 길을 곧게 하여라. 모든 골짜기는 메우고, 모든 산과 언덕은 평평하게 하고, 굽은 것은 곧게 하고, 험한 길은 평탄하게 해야 할 것이니,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이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갑작스러운 한파로 겨울이 왔음을 실감케 하는 날에 대림절 둘째 주일을 맞이합니다.

 

1,

 

지난 한 주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요새 뉴스를 끊는이들이 늘었다고 합니다. 안 그래도 스트레스 받을 일들이 많은 세상인데, 뉴스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느니 차라리 안 보겠다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뉴스 대신 자신의 취향에 부합하는 유튜브 채널이나, 카톡방, 페이스북 등을 통해 보고 싶은 뉴스를 보고, 듣고 싶은 소식을 듣겠다는 이들이 점점 늘어납니다. 영화 보헤미안 렙소디가 한국에서 뜻밖의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데, 어떤 이는 이 영화가 현실에서 좌절된, 자유를 갈망하고 위로가 필요한 이들의 욕구를 대리만족시켜주기 때문일 거라는 평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교계도 잡음 많은 한 주를 보냈습니다. 지난주에는 이단으로 규정된 신천지가 서울지역 9개 지역 교회를 비롯해 부산, 인천, 청주, 천안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 한기총 탈퇴 촉구권기대회를 개최해 교회들을 긴장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신천지는 세계여성인권위원회라는 위장단체 이름으로 교회의 예배 시간에 맞춰 교회 앞 도로에 집회 신고를 내고 여성인권 유린하는 한기총에서 탈퇴하세요’, ‘돈봉투 수혈 그대로 멈춰라’, ‘돈벌이 수단목사 아웃’, ‘성추행 목사 아웃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시위를 벌였습니다(기독교타임즈, “신천지, 교회 앞 집회 소동’, 2018.12.2.). 문제는 이런 사이비집단의 구호가 부인하기 어려운 교회의 현실, 특히 사회로부터 지탄받는 교회의 부끄러움을 겨냥한다는 점입니다. 교회의 약점을 이용해 교회 흔들기에 나서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교회 1층에서 사람들이 모여 시위를 하며 성추행 목사 아웃이라는 구호를 외친다면 어떤 생각이 드시겠습니까?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 교회 목사가 성추행을 했나보다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들도 혹시 목사님도?’ 이런 생각을 하시지 않겠습니까? 이런 시위의 목적은 여성 인권의 향상이 아닙니다. 내분을 일으켜 교회를 분열시키고, 사람들을 미혹하여 잘못된 길로 빠지게 만드는 것이 주 목적이라고 봅니다.

 

나라가 망하려면 내분이 일어나다 결국은 오랑케에게 망한다고 합니다. 우리 감리교회를 포함해서 교단마다 내분이 없는 교단이 없다고 말해야 할 정도로 주님의 일 하자고 모인 이들 사이의 분열과 대립은 이미 심각한 수준을 넘었습니다. 오랑케가 와서 기침 한 번 하면 교회가 중병에 걸릴 지경으로 정신의 체력이 약해졌습니다. 큰 교회마다 신천지 출입을 금지한다는 팻말을 문에 붙여두는데, 현실적인 필요 때문이기도 하겠습니다만, 그것은 교회의 기초체력이 말도 안 되는 사이비집단의 침입하나 막지 못할 정도로 약해졌다는 방증 외에 다름 아닐 것입니다. 이단의 문제는 이단을 막고, 이단의 잘못을 지적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스스로를 정통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제 역할을 못했을 때 이단이 창궐하여 민중을 호도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신앙은 사중표준이라고 불리는 네 개의 기둥 위에 서 있을 때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서, 전통, 이성, 경험의 네 기둥입니다. 성서적 신앙은 반드시 교회의 전통과 연계되어야 하고, 이성과 경험을 통해 확증되어야 합니다. 내가 성서적 관점이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성서적이 되는 게 아니라, 교회의 오랜 역사 속에서 그것이 참된 길임이 증명되어야 하고, 이성의 빛과 경험의 지혜 속에서 참된 길임이 증명되어야 그것이 신앙적으로 바람직하고 가치 있는 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단의 특징은 이 사중표준 가운데 어느 하나를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성서만 문자주의적으로 강조한다든지, 전통만 강조하며 의미도 모르는 형식에 집착한다든지, 이성중심주의에 빠져 하느님을 이성의 잣대로만 이해하려고 한다든지, 자기의 경험을 절대화해서 성서와 전통을 오직 그 기준으로 해석한다든지 하는 따위의 일이 모두 이단의 특징이고, 이단까지는 아니더라도 건강하지 않은 신앙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평소에 이단이라는 낱말을 잘 사용하는 편이 아닙니다, 오늘 시간을 할애해서 이단에 대한 경계를 말씀 드리는 이유는, 이단사이비집단에 의한 미혹이 도를 넘었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신앙인은 교회가 사회로부터 지탄 받을 때 그것을 곧 나의 부끄러움으로 여기며 함께 아파하고 함께 극복해 나가고자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이 손가락질 하는 일에 대해 그저 남의 일로 여겨 손가락질하고 마는 것은 책임 있는 신앙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이단사이비집단은, 사회로부터 지탄 받는 교회의 약점을 파고들어 마치 자신들은 의로운 양 사람들을 미혹해 더 큰 어둠 속으로 불러들입니다. 제게도 수시로 이메일이 오고, 교회로 편지가 오기도 하고, 간혹 교회로 찾아와 저를 전도하겠다는 이들도 있습니다만, 자기 확신에 가득 차 다른 이의 말이 들리지 않는 사람은 종교를 떠나서도 이미 영혼이 병든 사람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건강한 신앙은 자기의 이기적인 경계를 이웃과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넓힙니다. 배울수록 겸손해지고, 믿을수록 넓어지고 깊어지는 길이 건강한 신앙입니다. 자기 경계를 강화해서 다른 이들의 말에는 눈과 귀를 닫는 아집은 절대로 바람직한 신앙이 아닙니다. 이단이든 아니든지 간에 자기에게 함몰된 종교는 죽은 종교요, 차라리 멀리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종교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2,

 

오늘 본문은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입니다. 요한에 관한 말씀은 대림절에 늘 만나게 되는 본문입니다. 요한에 관한 말씀 이전에 읽은 본문은 말라기입니다. 말라기는 구약시대 맨 마지막에 활동한 예언자이고, 구약성서의 맨 마지막에 배치된 책입니다. 따라서 말라기는 구약과 신약의 언약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중요한 책입니다. 말라기 메시지의 핵심은 메시아가 오시기에 앞서 그 길을 준비하게 될 말라키, 나의 사자를 보내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메시아에 앞서 나의 사자를 보내겠다는 말라기의 예언은 세례자 요한의 등장으로 성취됩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 물이 아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1:8)의 길을 예비합니다.

 

요한의 외침은 진리에 눈멀고 귀 막은 교회에 경종을 울렸습니다. 누가는 디베료 황제가 왕위에 오른 지 열다섯째 해에 요한이 활동했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때는 주후 27~29년경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활동에 이어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이 펼쳐지고, 십자가 부활 사건이 일어난 바로 디베료 황제 때, 즉 티베리우스 황제 때의 일입니다. 그는 로마의 초대 황제인 옥타비아누스 아우구스투수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인물입니다. 옥타비아누스의 양자였던 그는 옥타비아누스와 원로원, 그리고 귀족의 지지를 바탕으로 로마의 2대 황제로 등극했으나 황제가 된 이후에는 이런 저런 사건들로 인해 처음의 지지세를 잃어가며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 황제로 기억 됩니다. 이 복음서의 무대는 이 티베리우스 황제가 다스리던 때입니다.

 

티베리우스는 이전 황제에 비해 업적이 적었지만, 그가 통치하던 때는 로마가 여전히 강한 위세를 떨치던 때였습니다. 본디오 빌라도가 총독으로 유대를 통치했고, 식민지 분할 점령 정책에 따른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가 지역의 권력자로서 갈릴리를 다스렸습니다. 또 이 체제와 보조를 맞춘 유대교가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를 중심으로 식민통치의 굳건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던 시절입니다. 말하자면, 그들 통치자들의 시각으로 보기에는 큰 문제없이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던 시절입니다. 그런데 갈릴리 사람들의 상황은 통치자들의 시각과 달랐습니다. 생활 속에서 그들이 느끼는 팍팍함은 황제가 누구인지, 대제사장이 누구인지와 관계없이 고된 노동과 과도한 세금으로 인해 가난을 벗어나기 힘든 일상이 지속되었습니다.

 

얼마 전 학생들과 모두를 위한 불평등’(inequality for all)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봤습니다. 클린턴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 교수의 강의를 중심으로 한 다큐멘터리인데, 미국 사회에서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중산층이 무너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소득 수준은 어느 시기에 이르러 제자리걸음을 하는 반면 물가는 계속 상승하고, 상위 1%에 속한 이들의 부는 금융소득을 중심으로 급증하면서 미국 사회에서 중산층이 점차 사라지고 소수의 부자와 다수의 가난한 이들이 남게 된 상황에 대한 라이시 교수의 비판적 문제의식이 다큐멘터리에 잘 드러납니다. 라이시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가난할 삶을 살아갈 확률이 저개발국가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사회가 미국사회라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심지어 워런 버핏 마저도 현재의 미국의 경제제도와 세금체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마당에 그 경제체제를 중심에서 움직인다고 자처하는 이들은 대다수 사람들의 비판을 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의 목소리로 치부해 버리고 마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도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라이시 교수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오늘날 세계경제의 상황이 티베리우스 황제 치하의 로마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식민체제의 중심부에 속한 소수의 사람들이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고, 오히려 지금이 살 만한 세상이라고 생각하던 그 순간에 갈릴리 사람들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지는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갈릴리의 가난한 이들은 일할수록 빚이 늘고, 일할수록 몸과 마음의 병이 깊어지는 반면 소수의 사람들은 태평성대를 누린다고 칭송하던 그때에 예수님은 오셨습니다. 그래서 복음의 빛은 모두에게 빛은 아니었습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아침이 오면 새들은 눈을 뜨지만 올빼미는 시력을 잃습니다. 복음의 빛이 비추면 99%에 속한 이들은 구원의 광명을 보지만, 스스로를 1%에 속한다고 생각하던 이들은 어둠을 잃어버린 채 시력을 잃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이 모든 이들을 위한 구원을 위한 기쁜 소식이 되면서도 어떤 이들에게는 박해와 배척의 대상이 되는 이유입니다.

 

3.

 

교회 안팎으로 혼란스러운 일이 많은 이때에 대림절 둘째 주일을 맞이합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복음의 본질을 더욱 굳게 붙잡으십시오. 복음의 빛으로, 복음으로 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눈 먼 이들의 미혹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성서와 전통과 이성과 경험에 근거해 복음의 한 길을 가는 우리 각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 주간도 복음의 빛 가운데 날마다 진리의 새날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23 즐거운 인생 (2019.1.27.) 이계준 2019.02.02 37
822 주님의 때 (2019.1.20.) 홍목사 2019.01.20 59
821 성령을 따라 (2018.1.13.) 홍목사 2019.01.13 48
820 은총의 새날 (2018.1.6.) 홍목사 2019.01.06 52
819 주님의 평화 (2018.12.25. 성탄절) 홍목사 2018.12.25 59
818 주님이 계신 곳 (2018.12.23.) 홍목사 2018.12.23 51
817 우리의 사가랴 예언 (2018.12.16.) 이계준 2018.12.16 49
» 복음의 빛 (2018.12.9.) 홍목사 2018.12.09 66
815 늘 깨어 있어라 (2018.12.2.) 홍목사 2018.12.02 55
814 주님께 영광 (2018.11.25. 왕국주일) 홍목사 2018.11.25 44
813 한나의 기도 (2018.11.18.) 홍목사 2018.11.18 56
812 주님을 찬양하는 사람 (2018.11.11.) 홍목사 2018.11.11 65
811 하느님께 감사 (2018.11.4. 추수감사주일) 이계준 2018.11.05 64
810 눈뜬 신앙인 (2018.10.28. 종교개혁주일) 홍목사 2018.10.28 57
809 제자의 자리 (2018.10.21.) 홍목사 2018.10.21 62
808 삼잘신앙 (2018.10.14. 가을철 야외예배) 홍목사 2018.10.15 86
807 화해의 주님 (2018.10.7.) 홍목사 2018.10.07 78
806 쏠티 크리스천 (2018.10.7. 림학춘 목사님 설교) 신반포 2018.10.02 66
805 인생을 산다는 것 (2018.9.23.) 이원로 2018.09.26 93
804 말과 성사(聖事) (2018.9.16.) 홍목사 2018.09.16 7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43 Next
/ 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