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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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때

 

본문: 이사야 62:1-5; 요한복음 2:1-11

설교: 홍정호 목사 (2019.1.20. 주현 후 제2)

 

[사흘째 되는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 잔치가 있었다. 예수의 어머니가 거기에 계셨고, 예수와 그의 제자들도 그 잔치에 초대를 받았다.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지니,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말하기를 포도주가 떨어졌다하였다. 예수께서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자여, 그것이 나와 당신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직도 내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 어머니가 일꾼들에게 이르기를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하였다. 그런데 유대 사람의 정결 예법을 따라, 거기에는 돌로 만든 물항아리 여섯이 놓여 있었는데, 그것은 물 두세 동이들이 항아리였다. 예수께서 일꾼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항아리에 물을 채워라.” 그래서 그들은 항아리마다 물을 가득 채웠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는 떠서, 잔치를 맡은 이에게 가져다 주어라하시니, 그들이 그대로 하였다. 잔치를 맡은 이는, 포도주로 변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으나, 물을 떠온 일꾼들은 알았다. 그래서 잔치를 맡은 이는 신랑을 불러서 그에게 말하기를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한 뒤에 덜 좋은 것을 내놓는데, 그대는 이렇게 좋은 포도주를 지금까지 남겨두었구려!” 하였다. 예수께서 이 첫 번 표징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시니, 그의 제자들이 그를 믿게 되었다.]

 

1.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주현절 두 번째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가 되게 하신 이야기입니다. 어느 분들에게는 복음서가 전하는 예수님의 그 어떤 이적 이야기보다 더 눈이 번쩍 뜨이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른 복음서들은 이 이야기를 전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직 요한복음에만 가나의 혼인잔치 이야기가 나오는데, 요한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이야기를 예수께서 행하신 첫 번째 표징’(semeion)으로 소개합니다. 여기에서 표징이란 헬라어 세메이온’(σημεον)의 번역어입니다. 표징’, 세미이온은 영어로는 미라클’(miracle)이 아니라, ‘사인’(sign)으로 번역됩니다. 우리말 이적으로 번역되는 미라클이 기이한 행적과 기적적인 일 그 자체를 의미한다면, ‘표징으로 번역되는 사인’, 세메이온은 상징으로서의 기적을 뜻합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기적 이야기를 통해 그분이 누구이신지를 드러내고, 사람들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믿게 하려고 목적에서 표징에 관한 이야기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모두 일곱 개의 표징이 등장합니다. 첫째는 오늘 본문인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이야기(2:1-11), 둘째는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신 이야기(4:46-54), 셋째는 베데스다 연못에서 서른여덟 해 병자로 살던 이를 고치신 이야기(5:2-9), 넷째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이야기(6:4-13), 다섯째는 물 위를 걸으신 이야기(6:16-21), 여섯째는 실로암에서 눈 먼 사람을 고치신 이야기(9:1-7), 그리고 마지막 일곱째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이야기(11:1-44)입니다. 오늘 가나의 혼인잔치 이야기는 요한이 전하는 일곱 가지 표징 중 첫 번째 이야기인데, 요한은 예수님께서 이 첫 번 표징을 행하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그분을 믿게 되었다고 전합니다.

 

2.

 

갈릴리 가나에서 혼인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거기에 계셨고, 예수님과 제자들도 잔치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이야기는 그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말로 시작됩니다. 어떤 이들은 이 잔칫집이 예수님 어머니 마리아의 친척집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기도 합니다. 마리아가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알고 예수님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거나, 일꾼들에게 예수님의 지시에 따르라고 당부하는 등의 모습을 볼 때 이 잔치의 단순한 손님은 아닐 것이라는 추측입니다. 아무튼 신랑신부의 새 출발을 알리고 축하하는 이 잔치 자리에서 잔치의 흥을 떨어뜨리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술 떨어진 잔칫집이라는 이야기의 배경은, 꼭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진 자리, 곧 신앙의 기쁨과 감사라는 알맹이가 빠진 채 의무와 관습으로 굳어져버린 옛 유대교의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요한은 포도주가 떨어진 혼인잔치라는 설정을 통해 함께 기뻐하고, 서로를 인정하며, 아낌없이 서로를 축복해 주어야 하는 신앙 공동체가, 의무감과 관습에 매여 자리만 지키고 있는 한낱 의례로 변했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일면 이해가 됩니다. 얼굴도 잘 모르는 이의 결혼식에 참석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누구누구 아들딸이 결혼하는데 외면하기 힘들어서 참석을 하지만, 대체로 시계만 보다가 얼른 인사하고 나오곤 하지 않습니까? ‘포도주가 떨어진 혼인잔치는 이렇듯 기쁨과 나눔이라는 축제의 본질이 사라진 채 형식적 의례로 굳어버린 신앙생활에 대한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자칫 망칠 뻔한 혼인잔치가 예수님으로 인해 다시금 축제의 자리라는 본질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하늘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야 할 축제로서의 신앙이, 율법과 관습에 매인 의례로 굳어질 위기로부터 예수님이 잔치에 마련한 이들과 참여한 이들 모두를 구원하신 겁니다.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신 이야기에 담긴 메시지는, 이렇듯 본질을 잃어버린 채 의례와 관습으로 전락한 신앙생활에 믿음의 참 기쁨과 함께 나누는 삶의 기쁨을 회복하여 믿는 우리의 삶이 잔치다운 잔치가 되게 하는 데 있다고 하겠습니다.

 

또 한 가지, 요한이 전하는 이야기는 구약의 모세와 얽힌 이야기를 듣는 이들에게 상기시킵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히브리인들을 탈출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 모세에 얽힌 이야기에도 많은 기적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출애굽기에는 히브리민족을 보내라는 명령에 불순종하는 바로를 굴복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열 가지 재앙을 보내시는데, 그 첫 번째 재앙이 바로 나일강의 물을 피로 물들여 그 물을 먹은 이들이 죽는 사건이었습니다(7:14-25). 위대한 지도자 모세도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물을 붉게 변화시켰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기적은 생명을 죽이고 파괴하는 비극을 만들어낸 반면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기적은 생명을 풍성하게 하고 더불어 기쁨을 누리를 축제로 끝맺음을 합니다. 요한복음은 구약의 첫 번째 재앙을, 첫 번째 생명 이야기로 소개합니다. 열 가지 재앙 중 첫 번째 재앙인 피 재앙과 대비되는 첫 번째 기적 이야기로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신 이야기를 소개함으로써 복음을 듣는 이들에게 예수님이 모세보다 크신 분, 참 생명의 주인이심을 드러내고자 한 것입니다.

 

3.

 

그런데 마리아와 예수님에 비해 본문이 덜 주목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혼인잔치의 일꾼들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마리아의 염려 섞인 언급에 예수님은 어머니와 저에게 그 일이 무슨 상관이 있으며, 아직 때가 오지 않았다며 냉정하게 대답하셨습니다. 이렇게 대답하심으로써, 포도주가 떨어진 잔치로 혼인식이 마무리되려나보다 생각하던 차에 예수님은 일꾼들에게 다소 황당하게 들리는 요청을 하셨습니다. “이 항아리에 물을 채워라.” 빈 술통에 물을 채우라니, 일꾼들은 어리둥절했을 겁니다. 그래도 잔치의 주최 측인 마리아께서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하고 요청하신 바도 있고, 일꾼으로서의 본분에도 충실해야 했기에 군말 없이 그대로 행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일꾼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이제는 떠서, 잔치를 맡은 이에게 가져다 주어라하셨습니다.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명령입니다. 항아리에 든 것은 분명 술이 아니라 물입니다. 일꾼들이 예수님의 말을 듣고 잔치 맡은 이에게 이 물을 떠다 준다면, 그야말로 물을 먹이는꼴이 되지 않겠습니까? 포도주가 떨어져 당황한 이들의 화를 돋울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이번에도 일꾼들이 그대로 하였다고 전합니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일꾼들이 떠온 물을 맛본 잔치 맡은 이는, 그 맛에 감탄하며 신랑을 불러 말합니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한 뒤에 덜 좋은 것을 내놓는데, 그대는 이렇게 좋은 포도주를 지금까지 남겨 두었구려!”

 

요한은 이 이야기 중간에 술로 변한 물의 비밀을 아는 이는, 잔치를 맡은 이가 아니라 바로 일꾼들이라고 말합니다. 그 자리에 있는 그 어느 누구도, 신랑신부도,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도, 잔치를 맡은 이도, 참여한 하객들도 그 누구도 이 포도주가 본래 물이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곁에서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분의 일을 함께 행한 일꾼들은 이 포도주의 비밀을 알았습니다. 술이 떨어져 흥이 사라진 잔칫집을 다시금 축제의 장소로 바꾸는 일, 하나님을 경배하는 삶의 기쁨을 잃어버린 채 관습과 의례로 전락한 예배를 다시금 기쁨과 나눔의 축제의 자리고 바꾸는 일은, 예수님 혼자 행하신 기적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곁에서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한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당장에 의미를 알 수 없는 행동이었다 할지라도, 그분의 때가 임할 때에 일꾼들은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기쁨, 그래서 다른 이들이 알지 못하는 신비를 체험한 이들이 된 것입니다.

 

4.

 

주님의 때가 언제인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런 일들을 경험하게 하시는지, 왜 우리를 이런 상황 가운데로 인도하시는지 그 의미를 다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은, 그분의 말씀이 아니라, 말씀을 하시는 그분을 믿는 것입니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말씀, 나아가 물을 떠서 잔치 맡은 이에게 가져다 주라는 말씀은, 그 의미를 헤아리기 힘든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말씀하시는 분의 명령에 따라 그대로 하였을 때 그들은 주님과 더불어 기쁨이 사라진 그곳을 다시금 기쁨과 감사와 나눔이 충만한 자리로 변화시키는 숨은 주역들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의 기쁨은, 자기 생각에 앞서 말씀을 따라 행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기쁨이요, 그들에게 드러나는 신비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지 않으면서 술 떨어진 잔칫집이 다시금 흥이 넘치는 축제의 자리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일이 될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축제의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면, 그래서 주님의 때에 주님의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주님의 일을 행하는 데 있어 지체함이 없어야 할 줄 믿습니다. 이 믿음의 결단 가지고, 빛 되신 주님과 더불어 한 주를 살아가시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