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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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

 

본문: 시편 71:1-6; 고린도전서 13:1-13

설교: 홍정호 목사 (2019.2.3. 주현 후 제4)

 

[내가 사람의 모든 말과 천사의 말을 할 수 있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을 지라도, 또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을 가지고 있을 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내 모든 소유를 나누어줄지라도, 내가 자랑삼아 내 몸을 넘겨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는 아무런 이로움이 없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으며,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으며,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사랑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언도 사라지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사라집니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합니다. 그러나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인 것은 사라집니다. 내가 어릴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거울로 영상을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마는,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부분밖에 알지 못하지마는,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 것과 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입니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주현절 네 번째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주현절은 예수님의 본성이 세상에 환히 드러난 것을 기억하며 보내는 절기입니다. 빛 되신 주님을 모신 우리의 마음이 밝아지고, 사랑이신 그분과 만난 우리 삶에도 사랑의 열매가 맺히기를 희망하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사순절 전까지 오늘을 포함해 다섯 번의 주현절기를 보내게 되는데, 이 절기를 보내는 동안 여러분과 저의 삶에 주님의 환한 빛이 임하는 은총의 시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또 오늘 예배 중에는 손영수 권사님의 명예장로 추대식이 있는데, 오늘 명예장로님으로 추대되시는 손영수 권사님과 가정 가운데에 주님의 크신 은총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1.

 

오늘의 본문은, 우리에게 익숙한 고린도전서 13장의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보내 다른 어떤 능력보다 사랑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케도니아의 항구도시인 고린도는 유대인과 헬라인, 로마인 등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들이 왕래하는 일종의 다문화 도시였습니다. 여러 지역으로부터 온 이들이 같은 장소에서 공동체를 이루게 되면 문화적으로 풍부해진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서로 다른 가치관과 관습으로 인해 갈등이 불가피해진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마케도니아의 항구도시에 자리 잡은 고린도교회는, 그래서 크고 작은 문제로 끊임없이 갈등을 겪었습니다.

 

교회 안에 분파도 생겨났습니다. 바울의 가르침을 따르는 바울파, 아볼로를 추종하는 아볼로파, 베드로에게 세례를 받은 팔레스타인 출신 유대 그리스도인인 게바파, 그리고 아예 그리스도를 들먹이며 정통성을 주장한 그리스도파 등 서로 다른 분파들이 고린도교회 내에서 보이지 않는 알력다툼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런 갈등의 와중에 교인들끼리 분쟁이 일어나 세상 법정에 송사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여 교회와 신자들 전체를 부끄럽게 만드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울의 목회의 중요한 과제는, 이들을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한 형제자매로 화해시키고 통합하는 일이었습니다. 오늘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에 관한 바울사도의 말씀은, 이런 교회의 갈등 상황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2.

 

교회가 갈등을 겪는 가운데에서도 고린도교회의 신자들은 성령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어떤 이는 지혜와 지식의 말씀을, 어떤 이는 병 고치는 은사를, 또 어떤 이는 영을 분별하는 은사를, 어떤 이는 방언을 하고, 방언을 통역하는 은사를 받았습니다. 바울사도는 이 모든 일은 한 분이신 같은 성령이 하시며, 그는 원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은사를 나누어주신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서로 사랑하며 주님의 교회를 세워나가기에 힘쓰기보다 분파를 만들어 주도권 경쟁을 벌이는 상황 속에서, 고린도교회 신도들은 성령으로부터 받은 은사마저도 비교와 경쟁의 도구로 여기는 어리석음을 범했습니다. 얼마 전 종영한 스카이캐슬 여러분들 보셨습니까? 저는 못 봤는데, 설 연휴에 몰아보기를 해볼까 생각 중입니다. 이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대사가 우리 애는 레벨이 다르다라면서요? 교육을 인간다운 삶에 이르는 배움의 길이 아닌, 부와 권력을 대물림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등장인물들이 자주 내뱉는 말이 이 말이랍니다. 배움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고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우는 대신, 비교의식과 우월경쟁체제를 내면화하면서 타인에 대해 더 적대적이 되고 삼의 만족과 행복도 잃어버리게 된다면, 그런 배움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많은 이들이 드라마를 보며 질문하게 된 것 같습니다.

 

고린도교회의 은사는 어떤가요? 그들은 이런 저런 은사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은사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는 폭이 더 넓어지고, 타인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깊어지고, 그래서 자기와 다른 이들과 더불어 화평한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내가 받지 못한 남의 은사를 부러워하며 시샘하거나, 어느 은사가 더 좋은 것인지를 비교하며 보내는 데 주님의 일을 하며 살아야 할 세월을 허비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연민의 마음으로 고린도교인들에게 말했습니다. “몸의 지체 가운데서 비교적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들이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덜 명예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지체들에게 더욱 풍성한 명예를 덧입히고, 볼품없는 지체들을 더욱더 아름답게 꾸며 줍니다.”(고전 12:22-23) 어떤 게 더 반짝반짝 빛나고, 값이 나갈 것인지를 두고 경쟁하듯 살아가는 이들에게 바울은, 그와는 반대되는 가치관을 전합니다. 그것은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들이 오히려 더 요긴하다는 것입니다. 남들이 다 귀하다고 여기는 것만 귀한 게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보면, 약하고 볼품없어 보이는 것이라 할지라도 저마다의 쓸모가 있고, 그 자체로 귀하다는 것이 바울이 전한 복음입니다.

 

3.

 

만약 빛나는 것들만 귀하고 쓸모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죄인 된 인간이 구원받을 길은 없습니다. 값없이 주시는 은총으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께 귀하다 인정받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사가 무엇이든,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허락하신 축복의 내용이 무엇이든, 우리는 자랑할 것 없이 겸손히 주님의 일을 행하는 데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바울은, 어느 은사가 더 큰 것인지를 두고 비교하는 이들에게 어느 은사가 가장 크다고 말하는 대신, 여러분들이 구해야 할 더 큰 은사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내가 사람의 모든 말과 천사의 말을 할 수 있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 “예언하는 능력을 가졌다 할지라도, 모든 비밀과 지식을 가졌다 할지라도, 또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내 모든 소유를 나누어줄지라도, 내 몸을 넘겨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런 이로움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하자면, 행위의 동기에서 사랑이 빠지면 이 모든 의로움과 거룩함이 한낱 헛수고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바울사도는 믿음, 희망, 사랑 가운데 으뜸은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믿음과 희망과 사랑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희망을 품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을 믿지 않으면서 그와 함께 변화의 꿈을 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희망의 근거입니다. 또한 희망이 없으면 사랑할 수 없습니다. 희망이 없다는 것은, 변화의 가능성이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변화의 가능성이 사라진 상태가 바로 죽음입니다. 모든 살아있는 생명은 변화하고, 변화의 가능성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죽음이 절망인 까닭은, 죽음에 이른 존재로부터는 아무런 변화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변화의 희망이 있는 한 우리는 사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랑이 없으면, 믿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상대방을 믿을 힘을 얻습니다. 사랑이 크면, 상대의 반응에 일희일비 하지 않으며 그에 대한 믿음도 깊어집니다. 이처럼, 믿음과 희망과 사랑은, 그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사도가 사랑을 으뜸으로 꼽은 것은, 믿음과 희망이 사랑 안에 다 담길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믿어주고, 덮어주고, 기다려주는 이 모든 일들이 결국은 사랑이라는 한 낱말에 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가 믿는 것은, 사랑하자고 믿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들이 사라진 이후에 남는 한 가지,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4.

 

교회는 사랑을 배우고 익히는 학교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믿어주신 것처럼 다른 이를 믿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희망을 품으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이를 향해 희망을 품으며, 주님께서 우리를 값없이 사랑해주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이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익히기 위해 우리는 교회에 모입니다. 타인을 존중할 뿐만 아니라 사랑하며 그와 함께 축복을 누리는 법을 배우고 익혀서 우리의 삶을 보다 풍성한 길로 인도하는 참 배움의 길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리고 그 배움의 핵심은, 사랑하는 법, 사랑을 나누는 법을 배우고 실천하는 데 있습니다. 매주일 예배를 통해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삶을 배우고 익혀 주님 닮은 사람으로 날마다 익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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