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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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이기는 믿음

 

본문: 신명기 26:1-11; 누가복음 4:1-13

설교: 홍정호 목사 (2019.3.10. 사순절 제1)

 

[예수께서 성령으로 가득하여 요단강에서 돌아오셨다. 그리고 그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사십 일 동안 악마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그 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서, 그 기간이 다하였을 때에는 시장하셨다. 악마가 예수께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말해 보아라.” 예수께서 악마에게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사람은 빵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다하였다.” 그랬더니 악마는 예수를 높은 데로 이끌고 가서, 순식간에 세계 모든 나라를 그에게 보여 주었다. 그리고 나서 악마는 그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너에게 주겠다. 이것은 나에게 넘어온 것이니, 내가 주고 싶은 사람에게 준다. 그러므로 네가 내 앞에 엎드려 절하면, 이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다.” 예수께서 악마에게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하였다.” 그래서 악마는 예수를 예루살렘으로 이끌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그에게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에서 뛰어내려 보아라. 성경에 기록하기를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자기 천사들에게 명해서, 너를 지키게 하실 것이다하였고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쳐서,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할 것이다하였다.” 예수께서 악마에게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라하였다.” 악마는 모든 시험을 끝마치고 물러가서, 어느 때가 되기까지 예수에게서 떠나 있었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사순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사순절은 주님께서 당하신 수난을 기억하고, 그 의미를 묵상하고 실천함으로써 우리의 삶과 신앙을 쇄신하는 절기입니다. 사순절은 주일을 뺀 부활절 이전의 40일 동안의 기간을 말합니다. 매해 부활절이 다른 이유는,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부활절을 밤낮의 길이가 같은 춘분이 지난 첫 만월 직후의 일요일로 정했기 때문이고, 그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 부활절은 421일이 됩니다.

 

전 세계 그리스도교인들에게 부활절 이전의 사순절은 특별한 신앙순례의 기간입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이 기간 동안 세 가지의 실천, 즉 기도와 금식과 자선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습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매일 시간을 정해 기도하고, 주중 하루를 택해 한 끼를 금식하며, 금식을 통해 절약된 물질을 모아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도왔습니다. 이러한 실천들이 지향하는 바는 결국 십자가 정신입니다. 나에게 집중된 시선을 이웃에게 돌리면서, 나는 낮추고 주님의 영광은 드높이는 길이 사순절 신앙순례의 길입니다.

 

1.

 

사순절 첫 번째 주일에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누가복음 41절로 13절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시고, 그 시험을 이기신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공관복음에 모두 기록이 되어 있는데, 마가복음은 간결하게, 마태와 누가복음은 상세히, 그 가운데 누가는 가장 길게 이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본문이 복음서를 기록하고 읽은 공동체의 상황에 따라 차이를 보입니다만, 이 시간에는 그런 차이들을 언급하는 대신 공통점에 주목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주현절을 지나왔습니다만, 예수님은 세례를 통해 세상에 드러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세례를 받으신 후 곧바로 공생애를 시작하신 것이 아니라,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악마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신 후에 성령으로 충만하여 요단강에서 돌아오셨고, 다시 성령에 이끌리시어 광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이 시험은 예수께서 메시아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완수하시기 위해 거쳐야만 했던 관문이었습니다.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님은 많은 이들을 만나고, 그들로 복음의 기쁨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병자를 치유하시고, 낙심한 이들을 일으키시고, 죄인들을 돌이켜 거듭난 삶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분은 복음을 전하는 삶에 있어 때로 모함을 당하거나 위협을 당할 때에도 위축되거나 뒷걸음질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그분에게 맡기신 사명에만 집중하여 끝까지 그 길을 가셨습니다. 복음서를 읽을 때마나 느끼는 바입니다만, 이것은 인간적인 다짐으로서는 참 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적당히 하다가 어느 선에서 타협하고, 저 만큼 가려고 하다가 이런저런 저항에 부딪히면 그 자리에 멈추고 마는 것이 보통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위협에 맞서 지혜롭게 피신하시기는 했습니다만, 결코 뜻을 굽히거나 당신께서 완수하셔야 할 사명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2.

 

복음서는 광야의 시험 이야기로부터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주님께서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복음전도의 사명을 완수하시고,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에 이르실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광야에서 금식하며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데에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합니다. 경험상 일리 있는 말이긴 하겠습니다만, 복음에 비추어 보면 틀린 말입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이 자리를 빛나게 합니다. 예수님에게는 자리가 없었습니다. “머리 둘 곳조차 없으신”(8:20) 자리 없는(placeless) 이의 삶이 예수님의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병사들은 그분을 조롱하여 말하기를 네가 유대인의 왕이라면, 너나 구원하여 보아라”(23:37) 했습니다. 구원이란, 메시아적 행위란, 압도적인 힘의 우위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이지, “머리 둘 곳조차 없는이로부터, 그리고 지금 십자가에 달려 괴로워하고 있는 이로부터 이루어지는 것일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습니다.

 

예수님은 당대의 종교정치지도자들처럼 그분을 빛나게 할 그 어떤 다른 이름도 갖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에게는 나 어디에 누구요혹은 나 왕년에 어디에 누구였소할 만한 자리가, 남들이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를 달리 보게 만들 만한 그런 사회적 지위와 역할이 주어진 적이 없습니다. 그분은 예루살렘도 아닌 변방 갈릴리의 가난한 목수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자리 없는 그분은 어디에서나 빛나는 삶, 자리를 빛내는 삶을 사셨습니다. 비록 그분에게 주어진 자리는 없었지만, 주님은 그분이 계신 곳이 어디든 그 자리를 하늘의 기쁨이 가득한 빛나는 장소로 만드셨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하실 수 있었던 힘은, 역설적이게도, 세상의 힘, 내 자리를 보장해 줄 것이라고 믿는 그 힘들을 거부하신 데 있습니다.

 

3.

 

악마는 하나님을 거스르는 세력입니다. 그러나 욥기에서도 그렇고, 오늘 광야의 시험이야기에서도 그렇습니다만, 주님은 악마의 시험을 통해 당신의 사명을 더욱 굳건히 세우셨고, 당신께서 걸어가셔야 할 길을 더욱 힘차게 걸어갈 믿음과 용기를 갖게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길은 세속적인 부와 권력, 그리고 영광을 추구하는 길이 아니라, 고난과 십자가를 택하는 길임을 굳게 새기신 것입니다.

 

악마의 세 가지 시험은, 첫째, 40일을 금식하신 분에게 돌로 떡을 만들어보라는 것, 둘째, 자신에게 절하면 천하만국의 권위와 영광을 다 주겠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성서학자들은 이 시험의 내용을 경제적인 메시아’, ‘정치적인 메시아’, 그리고 초인적인 메시아가 되라는 유혹으로 정리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이 아닌 자기의 힘을 더 의지하게 만드는 것이 악마의 시험의 의미라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면 사실상 일상생활의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까? 40일을 금식한 이에게, 다시 말해 경제적인 어려움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하루하루 허덕이며 사는 이에게 이 시험만큼 넘기 어려운 시험이 또 있을까요? 우리시대에 돌을 떡으로 만들라는 시험만큼 강렬한 유혹은 없습니다. 그러나 돌이 떡으로 만들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는 더 이상 생명의 떡이신 주님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물질을 더 의지하는 사람이 되어 믿음에서 멀어집니다. 정치적인 메시아가 되라는 요청도 마찬가지입니다. 마귀는 천하만국을 보여주면서 이것이 자기에게 넘어 온 것이니 너에게 주겠다고 말합니다. 다만, 그에게 절하며 타협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권세로 통치하는 정치적 메시아의 길을 택하지 않으시고, 겸손과 섬김의 종이 되는 길을 택하심으로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마지막은, 초인적 메시아가 되라는 유혹입니다. 비범한 인간이 되라는 유혹입니다. 평범한 삶, 남들이 주목하지 않는 삶은 가치 없는 것이니, 초인이 되어 세상의 이목이 집중되는 삶을 살라는 유혹입니다. 주님은 이 시험도 이기시고, 초인이 되시는 대신 갈릴리의 평범한 사람들과 더불어 지극히 소박하고 인간적인 삶을 사셨습니다.

 

4.

 

악마의 시험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의 증언에 주목해야 합니다. 13절에 기록하기를, “악마는 모든 시험을 끝마치고 물러가서, 어느 때가 되기까지 예수에게서 떠나 있었다했습니다. 개역개정판은, 이 구절을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했습니다. 마귀가 물러났는데, 아주 물러난 게 아니라, ‘얼마 동안물러갔다는 것입니다. 전투에서 한 번 이겼다고 전쟁이서 이긴 게 아닙니다. 크고 작은 전투에서의 승리가 반복되어 승리하는 법을 체득해야 전쟁에서도 이깁니다. 악마와의 영적인 전투에서 한 번 승리한 경험으로 영적인 교만에 빠지면, 결국 영적인 전쟁에서는 패배하고 마는 것입니다.

 

악마는 얼마 동안물러나 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6:12) 했습니다. 그렇기에 광야의 시험을 이기신 주님은, 때때로 산에 올라 기도하심으로 또다시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광야의 시험 이후에도 영적인 전투는 끊이지 않았고, 예수님은 그때마다 기도로 이기신 것입니다. 투철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젊은 시절 한때 기도와 눈물과 헌신으로 교회를 일으킨 훌륭한 목회자들이 때때로 온갖 부정을 저지르고, 타락하고 넘어지는 까닭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악마는 예수님에게서도 얼마 동안만 물러나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저라고 예외이겠습니까? 여러분이라고 예외입니까? 이전에 승리한 자라도 누구나 실패할 수 있고, 이전에 영적으로 순결함을 추구한 이라 할지라도 오늘은 죄로 인해 절망할 수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훌륭한 장수라 해도 전투에서 늘 이기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기는 전투도 있고, 지는 전투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질 때 어떻게 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실패에 어떻게 대처하느냐, 실패 앞에서 자신의 인간적인 부족함을 겸손히 인정하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는 길을 택하느냐, 아니면 내가 누군데!’ 하는 자존심을 앞세워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결국 패망의 길로 가느냐 하는 것은, 기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시험을 당하셨고, 예수님도 때로 낙심하셨으며, 예수님도 당신이 어찌하실 수 없는 일 앞에서 우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때마다 골방으로, 그때마다 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그분은 광야에서 악마의 시험을 이기신 장수이셨으나, 공생애의 크고 작은 시험들을 그냥 넘기지 않으시고, 더 많이 기도하시고, 더 많이 하느님을 의지하는 길을 가셨습니다. “왜 우리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하는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이런 부류는 기도로 쫓아내지 않고는, 어떤 수로도 쫓아낼 수 없다."(9:28-29)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끊임없이 깨어 기도하시는 분이셨기에,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도무지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시험들도 이기시고, 원수마저도 사랑으로 품으시는 참 하나님의 모습을 지닌 분이 되신 것입니다.

 

5.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사순절 순례의 첫 주일입니다. 기도와 금식과 자선에 힘쓰는 사순절을 보내시되, 기도에 더욱 힘쓰는 사순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금식과 자선도 귀합니다. 금욕과 절제, 그리고 이웃을 위한 나눔은 참신앙의 열매입니다. 기도는, 그 열매에 이르는 길이요 방법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전투에서 많은 승리의 경험을 지닌 장수라 할지라도 결국 전쟁에서 지고 맙니다. 악마의 시험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요 얼마 동안만 멀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기에 승리의 기억, 성공의 경험에 붙잡히지 말고, 하나님을 더 많이 의지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시험을 이기신 방법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길을 따를 때 실패해도 낙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 졌다고 끝이 아닙니다. 오늘 실패했다고 영원히 패배한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능을 힘입어 우리는 다시 일어날 힘을 얻습니다. 비록 지금은 곤고한 날들이라 할지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때가 이르러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시험을 이기신 주님을 따라 늘 기도에 힘쓰며, 사순절을 우리 신앙과 생활의 또 한 번의 전환점으로 삼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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