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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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기쁨

 

본문: 시편 43:16-21; 빌립보서 3:1-11

설교: 홍정호 목사 (2019.4.7. 사순절 제5)

 

[끝으로,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주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내가 같은 말을 되풀이해서 쓰는 것이 나에게는 번거롭지도 않고, 여러분에게는 안전합니다. 개들을 조심하십시오. 악한 일꾼들을 조심하십시오. 살을 잘라내는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을 조심하십시오. 하나님의 영으로 예배하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랑하며, 육신을 의지하지 않는 우리들이야말로, 참으로 할례 받은 사람입니다. 하기야, 나는 육신에도 신뢰를 둘 만합니다. 다른 어떤 사람이 육신에 신뢰를 둘 만한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합니다. 나는 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도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 사람 가운데서도 히브리 사람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파 사람이요, 열성으로는 교회를 박해한 사람이요, 율법의 의로는 흠 잡힐 데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 때문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 모든 것을 오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려고 합니다. 나는 율법에서 생기는 나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에게서 오는 의를 얻으려고 합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가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하시길 빕니다.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사순절 중반을 보내고 있는 이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자 십자가 고난을 마다하지 않으신 주님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순절을 보내며 자기에게 고정된 시선을 하나님과 이웃에게 돌리고, 다른 이의 처지를 살피지 않고 스스로 세상의 주인인 양 살아가는 교만하고 병든 마음이 주님을 만나 위로받고 온전히 치유되는 은총의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빌립보서 3장의 말씀입니다.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자신의 선교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헌금을 보내 준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감사의 편지입니다. 감사의 편지라고 해서 칭찬과 감사의 말 일색은 아닙니다. 바울은 때로 엄격한 스승으로, 때로 애정 넘치는 친구이자 조언자로 교회에 자신을 드러냅니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삶을 변화시킨 것처럼 빌립보 교인들의 삶에도 그러한 변화가 나타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바울은 유럽선교를 위해 실라와 디모데를 데리고 AD50년 경 소아시아를 떠나 네아폴리스 항구에 이르렀습니다. 네아폴리스는 오늘날 로마와 밀라노에 이은 이테리의 3대 도시 가운데 하나인 나폴리의 옛 이름입니다. 영어로는 네이플스’(naples)이라고 하죠. 네아폴리스, 나폴리, 네이플스, 그리고 개역성경에 표기된 네압볼리다 같은 지명입니다. 아무튼 네아폴리스는 바울의 유럽선교의 첫 관문이었습니다. 네아폴리스에 도착한 바울 일행은, 로마가 닦아놓은 육로 비아 에그나티아를 통해 빌립보 지방으로 들어가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때 빌립보에서 만나 바울 일행의 선교에 도움을 준 이가 바로 자색 옷감 장수 루디아였습니다.

 

자색 옷감은 자연적으로 얻어지는 옷감이 아니기에 주로 귀족과 고위층이 소비자였습니다. 복음서의 예수님의 비유에서 나사로는 헐벗었지만,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등장합니다. 고대 근동지방에서 자색 염료는 뿔고둥’(murex snail)이라 불리는 달팽이 하부 기관지선에서 극소량만 채취가 가능했다고 합니다. 50cm2 천을 자색으로 물들이려면 1만 마리의 뿔고둥을 잡아야 했고, 그래서 자색 염료 1파운드의 가격이 무려 1,000데나리온, 오늘날의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대략 1억 원 가까운 돈이 필요한, 그야말로 부의 상징인 사치품이었습니다. 또 자색 옷은 단순히 돈이 많다고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었습니다. 세리장 삭개오는 돈이 많았지만, 자색 옷을 입을 수 있는 계층에 속하지는 않았습니다. 한 마디로 자색 옷은 고대 세계에서 지위와 권력을 상징하는 것이었고, 그러한 자색 옷을 구매하는 루디아의 고객들은 그 사회의 지도층이었다고 볼 수있습니다. 바울은, 사도행전 16장에서 그런 루디아를 언급하면서, 그녀가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었다고 소개합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루디아의 도움을 힘입어 바울 일행은 유럽 선교의 첫 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고, 그렇게 유럽 대륙에 세운 첫 번째 교회가 바로 빌립보 교회였습니다.

 

2.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자랑이요 그리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빌립보서에는 갈라디아서나 고린도서에 나오는, 적대자들에 대한 바울의 격렬한 분노와 논쟁의 어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 대신 빌립보서는 우정’, ‘친교’, ‘기쁨과 같은 낱말들로 가득합니다. 빌립보서 4장에만 기쁨이라는 표현이 16회 등장합니다. 41절에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향해서 사랑하고 사모하는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나의 기쁨이요 나의 면류관인 사랑하는 여러분, 이와 같이 주님 안에 굳건히 서 계십시오.” 하고 권면합니다. 바울이 유럽에 세운 첫 교회인 빌립보 교회가 바울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또 문헌학적으로 빌립보서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 바울의 삶에 관한 정보를 바울 자신의 증언을 통해 획득할 수 있는 중요한 문서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그가 사랑하고 그리워해 마지않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향해 그의 과거 개인사를 밝히면서까지 복음의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3.

 

빌립보 교회를 향한 애정이 남달랐기 때문인지, 바울은 격양된 감정을 숨기지 않는 낱말을 사용하여 적대자들을 경계하기도 합니다. 바로 개들을 조심하십시오. 악한 일꾼들을 조심하십시오.” 하는 권면입니다. 가 한편에서는 용맹과 충성의 상징이기도 합니다만, 곧이어 나오는 악한 일꾼이라는 낱말과의 일관성을 생각할 때 문맥상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다. 바울은 이 개와 같은 존재들, 곧 악한 일꾼들을 조심하라고 말합니다. 그 악한 일꾼들이 주장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곧 육체의 할례를 받은 이들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계급과 인종과 이데올로기를 초월해서 하나님의 보편적인 구원과 사랑을 말하는 복음의 정신을 훼손하여 다시금 육신을 기준으로 편 가르기를 일삼는 이들을 라고 말하면 경계한 것입니다.

 

바울은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총의 결과이지, 유대인들에게 한정된 것이 아니라고 줄곧 가르쳐 왔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 이방인들을 위한 사도입니다. 율법의 의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이 바울 신학의 핵심입니다. 그렇기에 누구도 자기를 자랑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값없이 주어진 은총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떠난 사이, 그가 사랑해 마지 않는 빌립보교회에도 다시 육신을 자랑하는 이들, 자신의 우월한 출신 성분과 지위 따위를 앞세워 공동체에 균열을 내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 이들을 향해 바울은, 개들을 조심하라, 악한 일꾼들을 조심하라고 격양된 감정 표현을 서슴지 않습니다. 그만큼 빌립보 교회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기 때문이겠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앞서 말씀드린 자신의 과거 이력을 스스로 밝힙니다. 그는 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은 유대인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 사람 가운데서도 히브리 사람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파 사람이요, 열성으로는 이단자 교회를 박해한 사람이요, 율법의 의로는 흠 잡을 데 없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더해 바울은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서 엘리트 교육을 받은 사람이고, 고대 도시들을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문화와 접한, 우리시대의 말로하면 코즈모폴리탄입니다.

 

이런 바울이 지금 빌립보교인들을 향해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긴다”(3:8)고 말합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 모든 것을 오물로 여긴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이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입장에서 일평생을 살았다면, 그는 유대 공동체 내에서 칭송받는 훌륭한 모범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그런 삶을 살 수 없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고생길을 자초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다는 바울의 말이 푸념이 아닌 까닭은 그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그는 이전의 모든 것을 오물로 여겼습니다. 여기에서 오물로 번역된 헬라어는 스퀴발라인데, ‘스퀴발라는 배설물이라는 뜻입니다.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지닌 육신의 장점을 한낱 배설물로 여길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4.

 

그러나,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울이 자신의 장점들을 모두 버린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육신의 장점들을 스퀴발라로 여겼으나, 복음의 확장을 위해 자신의 장점들을 여전히 활용했습니다. 육신의 장점들은 여전히 장점으로 남겨두었지만, 그 장점들에 붙잡히거나, 나는 이런 사람이야 하면서, 스스로를 거기에 가두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 대신 바울은 복음 안에서 늘 새로워지는 길을 걸었습니다. 이전의 나도 나이고, 지금의 나도 나이지만, 이전에 나의 정체성에 얽매이지 않고, 복음의 기쁨을 향해 날마다 나아가는 삶, 그것이 바울이 택한 삶의 길이었습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은바울은 말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려고 합니다.”(3:8) “나는 율법에서 생기는 나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에게서 오는 의를 얻으려고 합니다. (중략) 그리하여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고 싶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새로운 삶의 이정표입니다. 자신이 걸어온 삶의 길에 얽매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그 길을 부정하지도 않으면서 바울은 날마다 새롭게, 부활하신 주님을 따라 날마다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삶을 살아갑니다. 저는 이것이 신앙의 신비요, 신앙인의 힘이라고 믿습니다.

 

믿는 자들은 세상의 그 어떤 이름에 붙잡히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이런저런 지위에 오를 수도 있고, 또 잠시 어떤 역할을 맡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얽매이면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르러서야 끝이 나야 할 신앙의 여정은 거기에서 그만 추억이 되어버립니다. 과거의 내가 주인이 되는 자리에서 신앙의 여정은 끝이 나고 맙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버리고, 계속 떠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잠시 부여된 이름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존재의 길을 향해 나아가야 할 용기를 믿음 안에서 가져야 합니다. 과거의 이력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복음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존재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기쁨입니다. 복음을 통해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존재로 거듭납니다. “이전에 세상 낙 기뻤어도, 지금 내 기쁨은 오직 예수!” 이것이 거듭난 존재의 노래입니다. 지나온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지나온 삶을 부정하지도 않는 참 자유인의 노래,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바 된 사람의 노래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이러한 자유와 기쁨을 줍니다.

 

5.

 

사랑하는 여러분, 사순절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의 길을 우리의 길로 삼아 그분의 발걸음을 따라 걷는 신앙순례의 절기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당신의 뜻을 완전히 비우시고 아버지와 하나 되신 주님을 따라나서는 때입니다. “율법에서 생기는 나 스스로의 의”, 곧 세상에서 얻은 이런저런 이름들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하나님에게서 오는 의를 바라며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삶을 살아가는 사순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에서 지난 시간에 얽매이지도, 과거를 부정하지도 않는 참 자유인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한 주간도 교우 여러분과 가정 가운데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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