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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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공동체

 

본문: 롬 6:1-14, 5:16-26

설교: 이계준 목사 (2019.4.21. 부활절 및 신반포교회 창립 37주년 기념주일)

 

오늘은 참으로 기쁜 날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교회가 탄생한지 37주년이 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시간 주님의 부활과 우리 그리스도인 및 우리 교회의 상관관계를 성경본문의 말씀을 따라 함께 음미하면서 은혜의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그리스도인 또는 신앙공동체의 특징을 두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기독교 신앙의 소극적 측면으로써 인간의 자기중심주의란 죄로부터의 해방이고 다른 하나는 적극적인 것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부활의 삶을 향유한다는 것입니다.

 

첫째로 바울은 우리 그리스도인은 죄에는 죽은 사람인데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가 될 때 그와 함께 죽었고 또한 함께 묻혔다.’(6:3-4a)고 합니다. 그는 또한 같은 말을 달리 표현하기를 우리의 옛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서 우리가 다시는 죄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고 죽은 사람은 이미 죄의 세력에서 해방되었다.”(6:6-7)고 합니다.

 

바울의 말씀을 종합적으로 풀이한다면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세례라는 상징적 성례를 통해 우리의 죄 곧 자기중심적 사고와 행태를 말끔히 씻어버리고 우리의 낡은 인간성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죄의 종살이에서 풀려났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세례와 십자가는 서로 연계된 것이고 같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세례에 씻기고 십자가에 죽은 낡은 인간이 어떤 존재입니까? 바울은 갈라디아서 5:19-21에서 육체의 행실이라는 제하에 자세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음행과 방탕, 우상숭배와 마술, 원수맺음과 다툼, 시기와 분노, 분쟁과 분열, 파당과 무례함등 인간의 정신적-도덕적 타락상인데 여기서 가장 본질적인 죄는 자기 우상화, 자기 절대화입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사실은 사도 바울이 말한 2000년 전 원시시대의 죄악이 오늘 우리가 사는 21세기란 문화시대에 꼭 같이 재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온갖 뉴스와 사회적 실상은 낡은 죄악의 본질인 자기 우상화, 자기 절대화가 금력과 권력과 이념의 가면을 쓰고 나타나서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고 역사를 후퇴시키고 있습니다.

 

철학자 K. 야스파스가 차축시대라고 한 B. C. 5세기부터 인간의 이성과 영성의 산물인 철학과 종교를 주도하는 선각자들이 무수히 탄생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2000년 동안 철학과 종교는 그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에 의해 지성의 아름다운 꽃을 피웠고 풍성한 정신적 열매를 맺으면서 인생의 길을 밝혀왔다고 자처했습니다.

 

그러나 인간 지능의 진화와 과학의 발달은 이제 제4차 산업혁명을 낳는 놀라운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나 인간의 죄와 그 파괴력은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해 지금의 호머 싸피엔스가 호머 데우스 곧 신적 인간으로 진화하는 미래가 온다는데 그 인공적 절대자의 파괴력이 어떻게 나타날지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우리 기독교의 역사적 실상을 보면 정신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역사에 기여한 바도 많지만 교권주의와 독선주의로 인해 피해를 입힌 죄악상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몇 가지 예만 간추리면 중세기의 십자군, 근세의 제국주의적 식민지정책을 이용한 기독교의 확산, 오늘의 교회중심주의와 부정부패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신앙으로 죄의 노예에서 해방되었다고 하는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이 죄악의 산실이 되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선포에 방해가 된 것은 큰 수치임에 틀림없습니다.

 

작가 김 훈은 <연필로 쓰기>란 수필집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늙은이의 슬픔이 여러 가지이겠지만 자기가 저지른 못난 짓과 비루한 삶에 대한 기억들로써 어리석은 짓, 해서는 안 될 짓, 무모한 싸움, 지겨운 밥벌이, 야근과 중노동 등 한과 자책이 자기를 괴롭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이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여생을 온전히 살려고 궁리해 보았다고 합니다. 다행히 늙으니까 자기를 옥죄던 자의식이 사라지면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쁨을 느끼는 동시에 세상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처음 보는 것이 아니라 예전에 보던 것들이 새롭게 보인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의식의 변화, 의식의 혁명이 일어났다는 말인데 작가처럼 노령화에 따른 의식혁명도 좋은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그리스도 신앙에 의한 혁명 곧 자기 우상적 낡은 인간성을 세례와 십자가의 능력으로 파기하고 전적으로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의 말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날마다 죽음으로써 새로운 존재 곧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아계신 것입니다.(2:20) 내가 세웠던 나의 우상이 있던 자리에 그리스도 상()이 세워졌다는 말입니다. 교회란 이렇듯 자기 우상을 그리스도 상으로 바꾼 혁명적 변화를 단행한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지난 주 44세인 타이거 우주가 14년 만에 마스터스 우승컵을 다시 안았습니다. 지난 10년은 불륜, 이혼, 약물 등의 스캔들로 점철된 시간이었으나 우주는 개과천선하고 초인적인 훈련과 인내로 다시 태어나 떠났던 팬들의 환호와 존경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우리 크리스천의 위대성은 영적 궤도수정을 통해 지난날의 자기중심적 우상을 버리고 그리스도처럼 성숙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거듭나는 영적 진화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낡은 인간성이 비록 죽었다고는 할지라도 우리의 육신의 생명이 부지하는 한 그 잠재력은 그대로 남아서 새 사람의 길을 가로막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영적으로 깨여서 악의 세력을 경계하고 극복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휴식이나 방학과 졸업이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더욱이 우리 신반포교회의 존재이유는 또 하나의 교회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우리교회 헌장에 명시된 바와 같이 이 시대를 위해 차원 높은 영적 공동체를 실현하는데 있음을 재확인하시고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바울은 우리가 세례를 통해 예수와 함께 죽은 것은 하느님의 영광으로 다시 사신 그리스도와 같이 새 생명으로 살아가기 위한 것이므로 그의 죽음에 동참한 우리는 부활에 있어서도 그와 하나입니다.(6:4-5) 따라서 죄에 대해 죽은 우리는 하느님을 위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임을 깨달아야 한다.’(6:11)고 하였습니다.

 

가톨릭교회의 저명한 신학자 한스 큉은 교회가 부활의 공동체라는 사실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회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다음 부활신앙을 통해 생긴 것이다. 사람들이 십자가에 죽으신 나사렛 예수의 부활을 믿으면서 한데 모여 하느님 나라의 완성과 부활한 그리스도께서 영광중에 나타날 것을 기리면서부터 교회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새롭게 거듭난 사람들 곧 그리스도인과 그 공동체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어떤 신학자는 그리스도인이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으므로 죽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부활의 영원한 삶을 누리는 사람이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22-23에서 성령의 열매란 제하에서 영원한 삶의 내용에 관하여 사랑과 기쁨, 화평과 인내, 친절과 신실, 온유와 절제라고 했습니다. 부활의 새 생명이란 일상에서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아름답고 거룩하며 무르익은 영적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란 자기부정과 부활생명이란 초월적 에너지가 융합되어 빚어진 영적 삶의 일상적 모습이라고 하겠습니다.

 

비유를 들어 말하자면 우리의 부활한 삶이란 부화하지 않은 계란 같은 것이 아니라 새 생명으로 태어난 병아리처럼 생동적이고 아름다운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부활절에는 생명 없는 삶은 계란을 먹는 것보다는 날렵한 병아리를 먹던지 병아리 뭘 하면 약병아리나 삼계탕을 먹는 게 정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생여정에서 생동적이고 거듭난 삶을 산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우므로 좌절할 때가 많습니다. 일상이 순조로울 때는 일거수일투족이 곧 거듭난 삶이고 성령의 열매가 여기저기에 주렁주렁 매달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갈등과 고민이 생기고 경쟁과 대립이 치열해지면 생존의 본능에 사로잡혀서 눈앞의 이익에 전력투구하게 됩니다. 결국 육체의 행실에 종속되는 노예로 전락하거 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인간적 딜레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유한한 인간으로 비록 힘겹지만 부활의 순례를 일삼는다는 것은 얼마나 큰 의미와 가치가 있는지 모릅니다. 미국의 철학자 W. 제임스는 종교적 경험이란 개인이 하느님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든 인간이 신과의 관계가운데 있다는 인식인데 비록 입증할 수 없다고 해도 그 경험은 중요하다. 따라서 영적 경험은 다른 모든 존재와 연결시키며 사람들로 하여금 보다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신앙생활이 인생에 긴요한 모든 정신적 연대의 원천이라는 것입니다.

 

저명한 베트남 스님이고 평화실천가인 틱낫한은 이런 경험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그가 월남 전쟁 중에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사회봉사를 위한 청년학교를 세우고 베트남의 남부와 북부를 갈라놓은 비무장지대인 트라 로크 마을 복구를 지원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곳에 베트콩이 있다는 정보가 있었는지 복구한 마을을 미군이 세 차례나 폭격하여 쓱 밭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육신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친 스님과 동역자들은 4차 복구를 할 것인가를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고 합니다. 이 때 그들은 영적 수련을 통해 꺼져가는 희망의 불씨를 되살리고 4차 복구를 단행하므로 봉사자들과 마을 사람 모두에게 삶의 보람과 역동성을 다시 회복하였다면서 영적 각성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주님과 함께 죽고 부활한 그리스도인은 마치 오뚝이와 같이 실패를 모르는 존재입니다. 어떤 시련과 고난이 닥쳐와도 절망하지 않고 영적 훈련을 통해 희망의 불씨를 되살리고 실천함으로써 자기 자신은 물론 이웃의 기쁨과 용기를 안겨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부활한 자의 창조적이고 신바람 나는 삶이고 고난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삶 곧 하느님 나라의 잔치가 기금 여기에 펼쳐지는 것입니다. 부활한 자가 누리는 삶의 극치인 영원한 삶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러나 친애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이 기쁜 부활절에 우리가 하느님께 영광찬송을 드리면서도 온전한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까닭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의 삶의 터전이 과거 지향적 이념의 허위와 위선의 불랠홀을 향해 광속도로 빨려 들어가므로 우리의 존재와 소유 전체를 잃어버릴 일대위기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은 자기도취와 기만에 빠져 앞을 보지 못하고 권세자들은 자기 우상화와 자기 절대화란 오만에 빠져서 지금까지 사귄 가깝고 먼 친구들을 스스로 배시했기 때문에 누구도 우리를 구원해 줄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듯 위급하고 처절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리스도 신앙 안에서 각기 제 십자가를 지고 거듭난 새 생명을 살아내며 희망의 불씨를 살릴 용기만 있다면 그리고 이것을 위해 생명까지 바칠 결단만 선다면 지금 이 땅 위에 하느님나라를 이룩하려는 우리 앞에 어떤 난공불락의 도성도 존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부활신앙을 다시 확인하고 부활공동체에 맡겨진 역사적 사명을 실현하기 위해 헌신하므로 하느님께 영광 돌리고 부활생명을 완성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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