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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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문

 

본문: 시편 118:14-29

설교: 홍정호 목사 (2019.4.28. 부활절 제2, 봄철 야외예배)

 

[주님은 나의 능력, 나의 노래, 나를 구원하여 주시는 분이시다. 의인의 장막에서 환호하는 소리, 승리의 함성이 들린다. “주님의 오른손이 힘차시다. 주님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다. 주님의 오른손이 힘차시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주님께서 하신 일을 선포하겠다. 주님께서는 엄히 징계하셔도, 나를 죽게 버려 두지는 않으신다. 구원의 문들을 열어라. 내가 그 문들로 들어가서 주님께 감사를 드리겠다. 이것이 주님의 문이다.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갈 것이다. 주님께서 나에게 응답하시고, 나에게 구원을 베푸셨으니, 내가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집 짓는 사람들이 내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이것이 주님께서 하신 일이니, 우리의 눈에는 기이한 일이 아니랴? 이 날은 주님이 구별해 주신 날, 우리 모두 이 날에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주님, 간구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주님, 간구합니다. 우리를 형통하게 해주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오는 이에게는 복이 있다. 주님의 집에서 우리가 너희를 축복하였다. 주님은 하나님이시니,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주셨다. 나뭇가지로 축제의 단을 장식하고, 제단의 뿔도 꾸며라.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내 하나님, 내가 주님을 높이 기리겠습니다.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부활절 두 번째 주일이고, 봄철 야외예배일입니다. 박 권사님 덕분에 우리가 올해로 벌써 여섯 번째 이곳 식물원에 오게 되었습니다. 꽃들이 여전하네요. 감사합니다.

 

1.

 

매해 경험하지만, 야외예배를 간다고 하니 아이들이 참 좋아합니다. 제 딸이, ‘내일 비가와도 야외예배 가는 거지?’ 물어 그래답했더니, 좋아하면서 들뜬 마음으로 잠이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돌이켜서 어린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하시면서 누구든지 이 어린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큰 사람이다”(18:3-4) 하셨는데, 야외예배 간다고 좋아하는 딸을 보면서 그 말씀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감동합니다. ‘우와!’ ‘이야!’ ‘진짜?’ ‘!’ 하는 감탄사들이 자주 들립니다. 일상이 놀람과 감동의 연속입니다.

 

창세기 2장에는 창조된 아담이 에덴동산에 있는 다른 피조물들의 이름을 짓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감벤Giorgio Agamben이라는 철학자는 <언어의 성사>라는 책에서 창세기의 이 내용을 언급하면서, 아담이 지은 이름은 명사가 아니라 감탄사였다고 말합니다. 이름에 담겨 있는 의미가 처음부터 고정된 뜻을 지닌 게 아니라, 감탄사를 채워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다시 말하면 감탄사의 의미화 과정에서 언어가 출현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꽃 이름 많이 아시는지요? 부끄럽게도 저는 꽃 이름에 무지한데, 무슨 꽃인지는 몰라도 감탄은 잘 하는 편입니다. 지나가면서 어떤 꽃을 보고 하고, 다른 꽃을 보고 이야합니다. 그래서 저 꽃은 와꽃이고, 저 꽃은 이야꽃이다, 이렇게 부른다면 아담과 다를 바 없겠네요. 그런데 애들이 낱말을 배워가는 과정을 보면 이와 비슷합니다. 말의 시작은 개념이 아니라, 사물이나 사건에 대한 놀람과 감동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감탄이 사라진 언어가 우리 신앙생활을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감격과 기쁨이 사라진 자리를, 한 마디로 감탄사로 채워져야 할 우리의 생활을 건조하고 딱딱한 명사들이 대신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새삼 합니다. 신앙은 기쁨입니다.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고, 지금 여기에서 시작된 하나님나라 잔치에 자격 없는 우리를 초대해 주신 것에 대한 감사와 감격, 그리고 기쁨이 바로 신앙생활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감격이 사라지면 그 자리를 대신 채우는 것은 개념이고, 형식이고, 관습입니다. 한 마디로 죽은 신학의 언어들입니다. 감탄이 사라지고 명사만 남은 자리에서 다시금 감탄을 회복하는 것이 오늘 우리 신앙인의 과제입니다.

 

2.

 

시편은 감탄의 연속입니다. 시편을 채우는 많은 시들은 탄식과 탄원의 형식을 취하지만, 감탄과 찬양이 언제나 짝을 이룹니다. 탄식을 하다가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찬양하고, 고난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눈을 뜨고 그분의 이름을 높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인은, “이것이 주님의 문이다.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갈 것이다하고 노래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누구이신지 비유를 들어 말씀하시면서 나는 양의 문이다”(10:7) 하셨습니다. 양들이 드나들며 양식을 얻고, 또 이리떼로부터 자기 목숨을 지킬 수 있는 양의 문이 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시인이 말하는 구원의 문이란 우리에게는 양의 문이신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혹은 예수님을 통하여기도하는데, 이렇듯 양의 문이신 예수님의 통하여하나님께 이를 수 있다고 믿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입니다.

 

그러면 양의 문이시고 구원의 문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이른 구원이란 무엇인가요? 구원받은 삶이란 어떤 삶인가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신학적 숙고의 대상이기에 한두 마디로 축약해서 답하기 어렵겠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말해본다면 저는 오늘 시인의 고백에서 그 대답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이 날은 주님이 구별해 주신 날, 우리 모두 이 날에 기뻐하고 즐거워하자”(118:24) 저는 이것이 구원의 문을 지난 사람, 양의 문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에 이른 자의 고백이라고 믿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면 무엇이 달라집니까? 일상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비로소 깨닫고, 그동안 잃어버리고 살았던 감사와 감격을 회복하는 삶에 이르게 됩니다. 감탄을 회복하는 삶, 그것이 예수님이라는 구원의 문을 지난 이의 삶입니다.

 

시인은 집 짓는 사람들이 내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가 정말 머릿돌이 되었을까요? 글쎄요, 아마 아닐 겁니다. 이 시인은 남들이 볼 때는 어제나 오늘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일상을 살아갔습니다.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미움을 받고, 쫓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쫓기며 어제와 다름없는 일상을 살아갔겠지요. 그런데 그는 달라졌습니다.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이 날은 주님이 구별해 주신 날, 우리 모두 이 날에 기뻐하고 즐거워하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양의 문이신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에 이른 이의 고백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오늘은 주님이 구별해 주신 날, 구원의 날이다!’ 하는 믿음으로 매일아침을 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3.

 

사랑하는 여러분, 부활절 둘째 주일에 오늘 우리는 이렇게 밖에 나와 함께 예배드립니다. 오늘 하루를 선물로 허락하신 하나님 앞에서 이 날은 주님이 구별해 주신 날, 우리 모두 이 날에 기뻐하고 즐거워하자하고 고백하며, 꽃들과 더불어 감탄하는 주일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매 주일 결단기도를 드리는 것처럼 양의 문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날마다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 구원의 감격을 누리며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 주간도 자비로우신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가정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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