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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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어와 방언

 

본문: 사도행전 2:1-13; 요한복음 14:15-18,25-27

설교: 홍정호 목사 (2019.6.9. 성령강림절)

 

[오순절이 되어서, 그들은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었다. 그 때에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불길이 솟아오를 때 혓바닥처럼 갈라지는 것 같은 혀들이 그들에게 나타나더니,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각각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예루살렘에는 경건한 유대 사람이 세계 각국에서 와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말소리가 나니, 많은 사람이 모여와서, 각각 자기네 지방 말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서, 어리둥절하였다. 그들은 놀라, 신기하게 여기면서 말하였다. “보시오, 말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모두 갈릴리 사람이 아니오? 그런데 우리 모두가 저마다 태어난 지방의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이오? 우리는 바대 사람과 메대 사람과 엘람 사람이고, 메소포타미아와 유대와 갑바도기아와 본도와 아시아와 브루기아와 밤빌리아와 이집트와 구레네 근처 리비아의 여러 지역에 사는 사람이고, 또 나그네로 머물고 있는 로마 사람과 유대 사람과 유대교에 개종한 사람과 크레타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인데, 우리는 저들이 하나님의 큰 일들을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듣고 있소.” 사람들은 모두 놀라 어쩔 줄 몰라서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오?” 하면서 서로 말하였다. 그런데 더러는 조롱하면서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1.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절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갈망하는 대림절에서 시작한 신앙의 순례는 성탄절과 주현절, 사순절과 부활절, 그리고 승천주일을 지나 오늘 성령강림절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오늘부터 다시 대림절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성령강림절기가 이어집니다.

 

성령강림절은 교회력의 절반 가까운 기간을 차지합니다. 여기에는 성령과 동행하는 삶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전부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이 호흡을 통해,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반복을 통해 생명을 지속해 가듯이, 하나님의 숨결이신 성령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일상의 반복이야말로 신자로서의 생명을 유지하고, 더불어 풍성한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모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삶이란, 그러므로, 하나님의 숨결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그분의 숨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생명을 받아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한순간도 끊임없이 들숨과 날숨이 반복되며 우리의 생명을 이어가듯,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다시 태어난 그 순간부터 한순간도 끊임없이 하나님의 숨결을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 이것이 성령 충만한 삶을 교회가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2.

 

성령강림절의 본문인 사도행전 2장의 성령 강림 이야기는, 하나님의 숨결로 호흡하는 삶이 어떤 삶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유대인의 해방절인 유월절 후 50일째가 되는 오순절에 사도들은 모두 한곳에 모여 있었습니다. 오순절 예루살렘은 사도들만이 아닌 각지에서 온 여러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유대인들의 보리 수확기와 겹치는 오순절은, 햇곡식을 하나님께 봉헌하는 감사절인 동시에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계약을 기념하는 축일이기도 하기에, 사춘기가 지난 이스라엘 남자들은 오순절에 예루살렘 성전 순례의 의무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성령 강림 사건의 무대인 예루살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장소이며, 이제 성령을 보내시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당신의 증인이 되게 하실 능력을 주시는 장소입니다. 그리고 그 예루살렘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경건한 유대 사람, 즉 각 지방에서 온 그리스도 안에서 회심한 유대인들이 함께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 온 집안을 가득 채웠고, 불길이 갈라지는 것 같은 혀들이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습니다. 사도행전이 전하는 이 사건은 사건 그 자체보다는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을 증언하기 위한 일종의 문학적 장치와 같은 것입니다.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은 무엇인가요? 그들이 방언으로, 즉 각 지방의 말로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불같이 갈라지는 혀가 내린 이들은, 그들이 평소에 사용하던 언어가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모인 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그들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성령 강림 사건이 전하는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바대 사람, 메대 사람, 엘람 사람, 메소포타미아와 갑바도기아와 본도와 아시아와 그밖에 다양한 지역에서 모인 이들은, 지금 사도들이 그들의 표준어가 아닌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듣고, 놀랐고, 이를 신기하게 여겼습니다.

 

언어는 세계관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에 외국어 잘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외국어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하나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대로 생각하고 말하는 습관을 익혀야 한다고 합니다. 모든 언어는 오랫동안 축적된 문화적 관습의 표현 양식이기 때문에 언어를 이해하려면 단순히 기계적으로 문법을 익히거나 단어를 외우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의 사고방식과 체계를 감각적으로 이해하고, 그들의 시각에서 세계를 바라보려는 훈련이 되어야 외국어를 외국어답게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한 사건은, 말하자면, 사도들로서는 외국어라고 할 수 있는 각 지방의 말로 그들이 말하며, 언어의 장벽이 소통하는 데 문제가 생기지 않은 그런 사건이라고 하겠습니다.

 

, , 바람과 같은 낱말들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 곧 서로 다른 언어의 장벽을 허물어 더 크신 하나님 안에서 참된 사귐과 화해와 일치를 이루어 가시는 성령의 일을 아주 강력한 상징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도행전의 방언은, 스스로를 표준어 체계에 속한다고 생각했던 이들이 표준어가 아닌 방언, 즉 각 지방의 말을 그들처럼 하고, 그들의 타자적 언어를 이해하는 데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않게 되었다는 복음의 사건을 증언하는 데 초점이 있는 것입니다.

 

성령 강림절에 일어난 이 사건은 영어나 중국어 같은 우리가 다 잘 하길 바라는 외국어를 노력 하나 들이지 않고 성령의 힘으로 구사하게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령의 받아 방언을 하게 되었다는 것은, 외국어로 말하는 이들, 그리고 마치 외국어나 다름없는 이질적 언어로 말하는 이들의 삶을 사랑으로 용납하고 긍정하면서, 나도 그들의 언어로 말하며 소통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오순절에 일어난 이 사건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외국어를 사용하는 이들보다 더 먼 세계에 살고 있는 이들, 정치적 입장에 따라 갈라지고, 세대에 따라 갈라지고, 지역에 따라 갈라지고, 빈부의 격차에 의해 갈라지고, 성적 지향에 따라 갈라지고, 그밖에 무수한 차이들에 의해 갈라지고 상처 입은 우리 시대를 신자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사모해야 할 체험입니다.

 

신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불의 혀가 임해야 합니다. 물로 세례 받는 데 그치지 말고, 성령의 불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존 웨슬리가 힘주어 말한 것처럼 명목상 크리스찬에 머물지 말고, 성령으로 거듭난 마음의 신앙으로 돌아서야 합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한 사도들이 각 지방의 말로 그들과 소통한 것처럼 타자인 그들의 언어로 그들과 소통하며 주님의 일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내 말이 표준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면 미개하고 문명화되지 못한 존재라는 표준어의 자기중심성을 넘어 각 지역의 말로 복음을 증언하고, 그들과 화해와 일치를 이루어 나가야 할 사명이 주님의 일 하라고 성령을 받은 교회와 신자들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3.

 

사도행전 1장에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이 그분께 여쭈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되찾아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때나 시기는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권한으로 정하신 것이니, 너희가 알 바가 아니다.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1:7-8)

 

이 말씀을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되찾아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 하고 질문하는 제자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그들은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의지로 충만합니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에 가득 차 있습니다. 그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어떠셨습니까? 예수님께서, “그래, 바로 지금이 그때다. 가서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아라.” 하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난리가 났을 겁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한 그들보다 확실한 체험을 한 이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기에 이 상태로 나간다면 그들은 자기 경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고, 확실한경험에 눈이 어두워져 그 바깥을 보지 못하는 외눈박이가 되고 말았을지 모릅니다. 그들은 어쩌면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는다는 명분으로 온갖 혐오와 폭력을 정당화하면서도 그것을 마치 주님을 위한 일로, 의를 위한 외로운 싸움으로 오해하는 일종의 메시아 콤플렉스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마음을 읽으셨을까요? 주님은 때나 시기는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권한으로 정하신 것이니, 너희가 알 바가 아니다.” 하셨습니다. 당장 뛰쳐나갈 의지로 충만한 제자들에게 찬물을 확 끼얹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그들의 열정에 기름을 붓는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일러 주셨습니다. 그 일은 다름 아닌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는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모인 각 지역에서 온 사람들의 수많은 차이를 넘어, 그리고 타민족보다 더 오랜 적대관계를 지속해 온 유대와 사마리아 사이에 놓인 장벽을 넘어 마침내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께서 하신 일의 증인이 되는 것, 그것이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마지막 남기신 말씀이었습니다.

 

4.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은 믿지 않는 이들이 아닌 이미 믿는 이들, 주님의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에게 내렸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성령을 사모해야 할 이들은 비신자들이 아닙니다. 이미 믿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이미 복음을 받아들이고, 신자로 살아가고 있는 저와 여러분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할 이들입니다. 우리는 믿는다하면서도 여전히 높은 자기 인식의 장벽 안에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신자가 되기로 마음먹고, 세례를 받고, 교회의 직분을 맡아 봉사하는 일을 감당하면서도 자기 경험과 인식의 한계 안에 갇혀 타인을 용납하고 그들과 화해와 일치를 이루는 삶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저는 신자들에게 성령의 충만함과 주님의 평화와 일치의 기쁨을 전해야 할 교회가 정치적 분열과 혐오를 조장하고, 이를 신앙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일들을 경험할 때 참으로 마음이 아픕니다. 예루살렘을 보시며 눈물을 흘리시던 주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성령강림절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숨결로 호흡하며 살아가는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여 제자들이 각 지역의 언어로 말하고 소통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나의 표준어를 가지고 상대를 만나지 말고, 그들이 하는 방언으로 소통하며 화해와 일치를 이루는 삶을 향해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화해할 수 없었던 것처럼 보였던 이들이 화해하고, 용납할 수 없었던 것처럼 보였던 이들이 친구가 되고, 미움과 적대로 일관하던 그들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우리 인생의 귀한 선물임을 깨달아 더불어 화평을 이루는 저와 여러분의 성령강림절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은총 안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이웃과 화평을 이루는 저와 여러분의 한 주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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