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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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반의 역사인식

 

본문: 마태복음 7:21-23; 사도행전 7:1-8, 51-53

설교: 이계준 목사 (2019.8.11. 광복기념주일)

 

1.

 

오늘 8.15해방 74주년 기념 주일을 맞이하여 국가의 존망이란 일대 위기를 극복하고 내일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스데반의 역사인식의 맥락에서 우리의 역사인식을 새롭게 하는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사도행전 7장에는 초대교회의 첫 순교자인 스데반의 설교문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곧 그의 이스라엘 역사를 요약한 것입니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고향을 떠나게 하시며 야곱의 가정에서 요셉이 태어나게 합니다. 그러나 형제의 질투로 이집트로 팔려간 요셉은 그 나라의 총리가 되어 이집트와 자기 족속을 구원하는 하느님의 도구가 됩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이 학대당할 때 모세를 통해 해방하지만 그들은 그 섭리를 망각하고 우상을 섬기며 노예의식을 버리지 못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조상들에게 약속하신대로 여호수아를 통해 가나안에 정착하게 하시고 다윗의 범죄를 용서하시며 솔로몬을 통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셨습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하느님은 사람이 지운 집에 거하지 않으신다고 하면서 자기를 거짓으로 고발한 자들에게 예언자들을 박해한 조상들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배반하고 죽였다고 규탄합니다. 이에 격분은 무리들은 스데반을 돌로 쳐 죽였습니다.

 

스데반의 역사인식은 하느님의 역사적 섭리와 인간의 반역, 하느님의 심판과 구원이 반복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서 시작하신 이스라엘의 역사를 예수 그리스도에 연결시킴으로 한 민족의 역사를 마감하고 인류의 보편적 역사라는 새 장을 열었습니다. 스데반은 기독교가 유대교의 전통을 이어받았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시발점으로 하느님의 새로운 인류구원의 역사를 선언한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시작하는 새 역사란 무었습니까? 그것은 곧 복음서 기자들이 예수의 선교주제라고 밝힌 하느님 나라입니다. 세속의 나라는 권력자의 무력과 억압에 의해 지배되지만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의 통치로써 자유와 정의, 사랑과 평화로 다스리는 세상을 말합니다. 이 역사인식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로 하여금 무수한 과오에도 불구하고 제일 먼저 선진국에 진입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은 역사를 볼 때 하느님 나라라는 렌즈를 통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 나라는 정신적 및 영적 세계인 동시에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세계입니다. 우리 크리스천의 궁극적 존재이유는 권력과 무력이 지배하는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변혁하고 완성하는데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가 익히 아는 현대에 일어난 역사적 사례 몇 가지를 하느님 나라의 시각에서 성찰하므로 우리의 역사인식을 새롭게 하고 심화하는 계기를 삼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 민족이 하느님 나라의 시각으로 역사를 처음 인식한 것은 3.1운동일 것입니다. 이 운동의 특징은 독립선언문에 나타난 바와 같이 다원종교사회에서 천도교, 불교, 기독교 대표들이 역사상 처음으로 하나 되어 하느님 신앙과 보편적 인권 및 인류의 평화를 그 정신적 근거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이 운동의 전개과정에서 기독교인들을 비롯한 무수한 종교인들과 시민들이 참여하고 희생된 것은 종교를 초월한 하느님 나라에 대한 역사인식의 발로(發露)라고 해서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1930년을 전후로 하여 3.1운동의 역사인식인 하느님 나라와는 이질적인 유물사관에 기초한 사회주의 및 공산주의 사상이 일본 유학파와 구소련으로 망명한 인사들에게 침식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상해임시정부를 비롯해 세계 도처에 산재하는 민족운동집단들과 지도자들 사이에 권력과 함께 이념의 갈등에 매몰되어 정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자주독립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지 못하였습니다.

 

둘째로 우리가 1945815일 일본의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것은 하느님의 구원의 섭리로 보는 것이 마땅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기미년 3.1운동 전후 애국인사들이 독립운동을 한다면서 권력과 이념의 갈등으로 사분오열되어 해방을 쟁취할 능력이 전무할 때 하느님의 구원의 도구인 연합군의 승리로 우리에게 해방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해방 후의 정국은 하느님의 구원역사에 대한 몰이해와 함께 외국에서 버리던 고질적 파쟁의 연속으로 무질서와 혼란이 계속되었습니다. 독립운동가 서재필 박사가 우리에게 독립할 기회가 와도 서로 다투고 분열되면 뜻을 이룰 수가 없다.’고 한 예견이 적중한 것입니다.

 

셋째로 1948년 대한민국의 정부수립은 하느님의 각별하신 구원의 선물임에 틀림없습니다. 북한에 조선 인민공화국이 먼저 수립된 다음 유엔의 승인 하에 대한민국이 창건되면서 상해입시정부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법통까지 그대로 계승한 것은 실로 다행입니다. 당시 스탈린이 제시한 남북합작을 미국도 찬성하려는 찰나에 기독교적 역사인식과 민주주의 이념으로 무장된 이승만 박사가 미국 지도자들을 설득하여 자유민주주의 정부를 수립한 것은 기적에 다름 아닙니다.

 

정부 수립이후 우리사회는 하느님 나라에 반역하는 세력의 조작으로 환난이 지속되었습니다. 소련의 대남공작과 남노당의 활동 및 제주 4.3 사태를 비롯하여 6.25동란까지 무수한 파괴행위가 발발하였습니다. 그러나 북한군이 낙동강까지 진격했을 때 미국 투르만 대통령과 UN참전국들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하느님의 구원의 손길이 작동한 것입니다. 이 때 우리 교회는 하느님 나라의 기치를 높이 들고 반공에 앞장섰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정전 후 하늘의 지혜와 탁월한 지도력으로 한미동맹과 경제 원조를 체결하므로 나라의 복구와 존립기반을 닦았습니다. 이승만 박사는 그의 정치적 여정에서 범한 과오가 아무리 많아도 그의 민주정부수립과 한미동맹 및 경제적 기반을 위한 헌신과 공헌과는 결코 상쇄(相殺)할 수 없습니다. 그는 한국의 모세라고 감히 말씀드립니다.

 

넷째는 1960년대 이후의 경제발전은 실로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하느님의 섭리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아닐 수 없습니다. 저와 동 연배들은 우리 사회가 지난 70년 동안이란 짧은 기간 동안에 제1차 산업혁명에서 오늘의 제4차 사업혁명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그 유례가 없었던 변화무상한 파노라마의 세상에서 적응하고 일하며 오늘의 번영을 이루는데 일조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현대사의 산 증인이라고 자부합니다.

 

이 기간에 우리는 정치-경제적으로, 문화-국제적으로 초고속 발전을 이루므로 1960년대 GDP 60불에서 2017년에는 50-30 곧 인구 5천만에 GDP 3만 불로 선진국에 진입하였습니다. 한 미국 학자는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및 서구의 문화와 기독교를 정착시킨 동양의 유일한 나라이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렇듯 하느님 나라에 들어선 것은 지혜와 신념을 갖춘 우리 지도자들, 똑똑하고 근면한 우리 국민, 지원을 아끼지 않은 우방국들 등 하느님의 도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 사회주의 정권은 이렇듯 독보적인 나라, 자손만대에 유산으로 물려줘야 할 하느님 나라를 무참히 파괴하며 나치의 홀로코스트 보다 더 극악한 북한정권과 손잡고 이 나라를 멸망의 나락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학자는 현 정권의 최종 목표는 월남 식 적화통일이라고 했습니다. 하느님의 뜻과 국가 민족에 대한 반역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3

 

위에서 몇 가지 사례를 보았습니다만 스데반이 이스라엘 역사를 본 것처럼 우리 역사에서도 하느님의 구원의 섭리와 인간의 반역이 계속 반복되고 있습니다. 토인비는 역사를 도전과 응전으로 보았는데 하느님의 구원의 섭리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긍정적이냐 혹은 부정적이냐에 따라 우리의 운명은 결정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나라를 중심으로 오늘의 역사적 위기를 다시 한 번 성찰하고 이 나라의 구원과 함께 세계와 우주 속에 하느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해 주어진 문제를 타개하는데 우리의 생명과 삶 전체를 바쳐야 할 것입니다.

 

첫째로 현 정부와 이에 동조하는 세력들은 하느님 나라는 고사하고 역사 망각증과 과거 집착증이란 이률 배반에 붙잡혀 있습니다. 과거에 중국, 소련, 북한에게 당한 고난을 잊고 빌붙거나 미국의 은혜를 잊는 망강증과 이와 반대로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일본과 친근해야 하는데도 과거 집착증에서 헤어나지 못하므로 위기를 가증시키고 있습니다.

 

근자에 한 정치학자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하지만 역사에게만 매달리는 민족에게도 미래는 없다.”고 했습니다. 세종로 광장에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동상만 있는 것은 그분들의 공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과거에만 집착된 것이고 이승만 및 박정희 대통령의 동상이 없는 것은 비록 독재자라고 할지라도 그분들의 국가건설과 경제발전에 대한 공적을 망각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 역사인식의 실현을 통해 우리 사회가 역사 망각증과 집착증이란 정신분열증을 불식시켜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잘못과 아픔을 기억하면서 하느님 나라 완성이란 희망을 향해 오늘의 삶을 불태워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현 정부와 이에 동조하는 세력들은 역사를 미시적이고 부분적이며 개별적으로 보는 경향이 짙습니다. 그러기에 정치과 경제, 외교와 안보 등 모든 분야에서 실패의 실패를 거듭할 뿐만 아니라 비 인륜적인 3대 세습독재를 추앙하고 추종하니 극히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리고도 자기 시각이 마치 전체적이고 완전한 것처럼 고집과 독선, 거짓과 위선을 주저하지 않고 수치도 모르니 무뢰한이 따로 없습니다. 이것은 하느님 나라 역사인식 곧 근시적인 동시에 원시적으로, 개체적인 동시에 전체적으로, 국가적인 동시에 국제적으로, 세계적인 동시에 우주적으로 역사를 보는 통전적 시각의 결핍이 낳은 폐기물임에 틀림없습니다.

 

오늘의 세계는 한 개인, 한 집단, 한 민족, 한 국가만이 특권을 누리고 생존할 수 없는 상관관계의 틀로 변하고 있습니다. 대국들이 제아무리 패권주의를 강요해도 결국에는 모든 국가와 온 인류가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공동체를 지향하지 않고는 바라는 평화를 성취할 수 없습니다. 어느 나라도 지구 온난화문제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음이 이를 반증합니다. 이것이 우주와 인류를 창조하신 하느님의 섭리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동서남북의 모든 나라와 민족들이 평화를 추구하는데 필요불가결한 가교역할을 다하는데 관심과 헌신을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기독교 복음이 우리의 역사적 암흑기에 전파되어 역사적으로 각성하고 3.1운동을 전개하였으며 하느님 나라가 싹트고 열매 맺어 오늘의 번영을 이룩한 것은 실로 하느님의 각별하신 구원의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오늘의 도전 앞에서 회피하거나 무관심하지 말고 참신한 역사인식과 철저한 사명의식으로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고 하느님 나라 발전에 적극 매진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더러 주님, 주님,’ 이라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어야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하시기 바라며 말씀을 맺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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