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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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화룡점정

 

본문: 시편 80:8-19; 히브리서 11:29-12:2

설교: 홍정호 목사 (2019.8.18. 성령강림 후 제10)

 

[믿음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홍해를 마른 땅을 지나가듯이 건넜습니다. 그러나 이집트 사람들은 그렇게 해보다가 빠져 죽었습니다. 믿음으로 이레 동안 여리고 성을 돌았더니, 성벽이 무너졌습니다. 믿음으로 창녀 라합은 정탐꾼들을 호의로 영접해 주어서, 순종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망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겠습니까?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그리고 예언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시간이 모자랄 것입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를 정복하고, 정의를 실천하고, 약속된 것을 받고, 사자의 입을 막고, 불의 위력을 꺾고, 칼날을 피하고, 약한 데서 강해지고, 전쟁에서 용맹을 떨치고, 외국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믿음으로 여자들은 죽었다가 부활한 가족을 다시 맞이하였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더 좋은 부활의 삶을 얻고자 하여, 구태여 놓여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조롱을 받기도 하고, 채찍으로 맞기도 하고, 심지어는 결박을 당하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면서 시련을 겪었습니다. 또 그들은 돌로 맞기도 하고, 톱질을 당하기도 하고, 칼에 맞아 죽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궁핍을 당하며, 고난을 겪으며, 학대를 받으면서,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떠돌았습니다.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받아들일 만한 곳이 못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헤매며 다녔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으로 말미암아 훌륭한 사람이라는 평판은 받았지만,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계획을 미리 세워두셔서, 우리가 없이는 그들이 완성에 이르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구름 떼와 같이 수많은 증인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도 갖가지 무거운 짐과 얽매는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 앞에 놓인 달음질을 참으면서 달려갑시다.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기쁨을 내다보고서, 부끄러움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보좌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성령강림 후 열 번째 주일입니다. 오늘은 히브리서의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화룡점정(畵龍點睛)’이라는 한자성어의 뜻을 알고 계실 겁니다. 용을 그린 다음 마지막으로 눈동자를 그린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해 오던 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끝냄으로써 그 일을 완성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무슨 일이든 마무리가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잘 하던 일이 끝에 가서 어그러지거나, 지금껏 괜찮은 관계를 유지해오던 사람과 끝에 가서 관계가 틀어지는 일들을 종종 경험하면서, 혹은 반대로, 끝에 가서 일과 관계가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것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화룡점정이라는 말의 의미를 새삼 새기곤 합니다. 인생이 도화지에 용을 그리는 것이라면, 누구나 눈동자에 점 하나를 찍음으로써 그 그림을 완성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인생은 도화지에 용을 그리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어디가 끝인지, 언제가 끝인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끝을 알 수 있을 때 우리는 그 시간을 의미로 채우려고 노력합니다. 휴가지에서의 경험을 떠올려 보십시오. 오늘이 긴 휴가의 마지막 날이라면 오늘을 어떻게 보낼까, 사람마다 그날을 보내는 방식은 다르겠지만, 그날을 저마다 의미 있는 방식으로 보내려고 할 겁니다. 어떤 이는 언제 여길 또 오랴하면서 마지막 남은 다 쓰고 돌아다니며 하나라도 더 보고, 하나라도 더 먹으면서 그곳을 떠날 것이고, 어떤 이는 지금껏 즐거웠다생각하면서 특별한 일정 만들지 않고 조용하고 차분하게 여행을 마무리 지을 수도 있을 겁니다. 또 어떤 이는 내일이면 돌아간다는 아쉬움이 너무 큰 나머지 마지막 날을 침울한 마음으로 보내는 이도 있을 겁니다. 반대로, ‘드디어 집에 간다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삶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긴 휴가와 같은 선물이고, 우리가 그 일정의 끝을 알 수 있다면, 이렇듯 어떻게든 의미 있게 그 여정을 마무리하고 싶어 할 겁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저나 여러분이나, 언제가 이 선물과도 같은 삶의 끝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2.

 

감리교신학대학의 상담학 교수이셨던 안석모 교수님이 떠오릅니다. 여러 교수님들 가운데에서도 도서관에 책을 가장 많이 주문하시고, 또 많이 기증하시기도 한 연구자이자 교육자로서 많은 학생들이 존경하던 분이었습니다. 신학교 교정에서 저를 만날 때면 항상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 주시고, 안부를 물어주시곤 했는데, 졸업 후 암투병 하신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어 모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투병 중 병상일기를 남기셨습니다. 거기에는 그분의 표현대로 돌봄과 상담을 가르치는 교수가 돌봄과 상담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빠졌을 때의 당혹감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안석모, <욥을 위한 변명>, 두란노, 2014, 30). 일평생 목사이자 상담학 교수로서 낙심한 이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을 불어넣는 일에 헌신해 오신 분이, 이제는 관찰자가 위로자가 아닌 고통의 당사자가 되어 씨름하시는 모습은 남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남기신 병상 일기의 한 구절입니다.

 

"성경과 말씀, 찬송과 기도, 위로가 암 투병을 하는 내게 참으로 큰 힘이 되고 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만 믿고 신앙으로 이겨라' 하는 충고는 참으로 엉뚱한 것이다. '하나님이 더 크게 쓰시려고 이런 고통을 주시는 것'이라는 위로와 설명은 별로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믿고 기도하면 치유된다'는 언명은 내가 믿음이 없어서 이런 질병에 걸린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신앙과 종교가 내게 힘이 되고 의미가 있는 것은 오히려 이 질병을 통하여 삶을 보다 깊이 있게 보고, 생각하고, 고통의 의미를 찾아보려고 노력하는 가장 좋은 길을 제시한다는 데에 있다. 아니, 그런 길 자체가 신앙이고 종교이다. 그것은 삶을 '방어'하는 진지(陣地)가 아니라 삶을 '탐색'하게 하는 문()이다."(안석모, 앞의 책, 99)

 

신앙은 고통으로부터 삶을 방어하는 진지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지평으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그분의 고백이 허투(虛套)로 들리지 않습니다. 삶의 시작이 있는 것처럼 누구에나 끝이 있지만, 그 끝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문제 못지않게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안석모 교수님은 목회자이자 신학교수이기에 앞서 한 사람의 진실한 신앙인으로서 삶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뜻밖의 큰 고통에 직면한 이의 당혹감과 좌절을 그대로 경험하면서도,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인생의 마지막 점 하나를 찍고 하나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그분이 질병의 큰 고통 속에서도 아픔을 이기고 믿음 가운데 굳건히 서실 수 있었던 이유는, 오늘 히브리서의 말씀처럼,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12:2) 보며 살아오셨고, 그리고 마지막까지도 그분을 바라보며 하나님께로 나아가셨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3.

 

오늘 히브리서 본문에는 이스라엘 역사의 위대한 인물들과 사건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자 모세의 이야기,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여호수아의 이야기, 라합의 이야기, 그리고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등 이스라엘 역사 속 영웅적인 이들이 이야기가 열거되어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록자의 표현대로 예언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시간이 모자랄정도로 많은 이들의 영웅적인 행적이 히브리서 11, 흔히 믿음 장이라고 말하는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듯 선조들의 영웅적인 믿음을 전하는 믿음 장에는 대반전이 있습니다. 바로 39절의 말씀입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믿음으로 말미암아 훌륭한 사람이라는 평판은 받았지만,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습니다.”(11:39) 이게 무슨 말인가요? 지금까지 히브리서 기자는 이 글을 읽는 이들이 기억해야 할 선조들의 믿음을 길고 장황하게 열거했습니다. 그런데 그 긴 이야기 끝에 그는, 앞선 믿음의 영웅들이 훌륭한 사람이라는 평판은 받았을지언정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계획을 미리 세워두셔서, 우리가 없이는 그들이 완성에 이르지 못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지금까지 이어져 온 역사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이스라엘의 위대한 믿음의 역사의 완성자라고 선언입니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는 모세의 율법이라는 같은 토양을 공유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다른 종교로 나뉩니다. 유대교적인 배경을 가지고 오늘의 본문을 읽는다면, 히브리서 기자의 선언은 설득력이 없을뿐더러, 종교적으로 무례한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유대교의 숱한 믿음의 영웅들이 훌륭한 사람이라는 평판은 얻었지만, ‘약속한 것을 받지는 못했다는 히브리서의 신앙고백이 유대교를 미완의 종교로, 그리스도교를 완성의 종교로 구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나아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성서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구약의 언약의 완성이시요, 아브라함과 모세와 야곱을 통해 전해주신 율법의 완성이 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도덕적으로 흠결 없는 삶을 살고, 율법에 충실한 삶을 산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라는 점 하나가 찍히지 않은 인생, 예수님으로 인생의 마지막 점을 찍고 마치지 않은 인생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관점으로 볼 때 구원받은 삶이 아니라, 그저 훌륭한 삶에 머물고 만다는 것입니다.

 

4.

 

히브리서의 선언은 우리 인생의 화룡점정이 예수 그리스도가 되셔야 한다는 소리로 들립니다. 인생에서 존경할 만한 분을 만나 그 뜻을 배우고 익혀 자기 삶에 체화시키고, 후대로까지 전해주는 것은 참으로 값진 일입니다. 그런 스승을 만난 이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신자의 삶은 그러한 훌륭한 삶에 머물지 말아야 합니다. 존경할 만한 스승도 있고, 본받을 위인도 있겠지만, 그 모든 훌륭한 삶의 끝에는 언제나 예수님이 계셔야 합니다. 사람만 보고 따라가다가는 낙심하고, 길을 잃어버릴 때가 옵니다.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의 이정표로 삼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인생의 마지막을 꿈꾸십니까? 여러분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십니까? ‘나는 남들의 기억에는 관심 없다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습니다만, 그런 분들도 남들의 기억에는 관심 없는 사람으로는 기억될 것입니다. 모든 삶은 발자취를 남깁니다. 어떤 발자취를 남길 것이냐의 문제만이 남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어떤 신앙의 발자취, 이력(履歷)을 남기며 오늘을 살아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까? 인생이 도화지에 용을 그리는 일이라면 마지막 점 찍는 일을 내가 원하는 때까지 미뤄둘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끝은 우리가 원하는 때가 아니라, 그분의 때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로 인생의 점 하나를 찍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비록 오늘까지의 우리 인생이 미완의 그림이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로 마지막 점 하나를 찍음으로써 하나님 보시기에 완성되고 아름다운 인생의 그림을 만들어 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인생을 혐오에 낭비하지 마십시오. 미움과 원망, 근심과 불안, 두려움에 귀한 여러분의 삶을 내어주지 마십시오. 그 대신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날마다 예수로 화룡점정하며, 주님의 자비와 사랑, 용서와 화해, 평화와 나눔을 더 많이 실천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언제나 그분만을 바라보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 주간도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과 가정 가운데 함께 하시길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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