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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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사는 사람

 

본문: 시편 14:1-7; 누가복음 14:25-33

설교: 홍정호 목사 (2019.9.15. 성령강림 후 제14)

 

[어리석은 사람은 마음 속으로 하나님이 없다하는구나. 그들은 한결같이 썩어서 더러우니, 바른 일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구나. 주님께서는 하늘에서 사람을 굽어보시면서,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는지를, 살펴보신다. 너희 모두는 다른 길로 빗나가서 하나같이 썩었으니,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구나. 죄악을 행하는 자는 다 무지한 자냐? 그들이 밥 먹듯이 내 백성을 먹으면서, 나 주를 부르지 않는구나. 하나님이 의인의 편이시니, 행악자가 크게 두려워한다. 행악자는 가난한 사람의 계획을 늘 좌절시키지만, 주님은 가난한 사람을 보호하신다. 하나님, 시온에서 나오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그들의 땅으로 되돌려 보내실 때에, 야곱은 기뻐하고, 이스라엘은 즐거워할 것이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성령강림 후 열 네 번째 주일을 맞이합니다. 오늘은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이기도 합니다. 가족 친지 분들과의 지난 만남이 오늘 우리 삶의 자리를 돌아보며 더 큰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시간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시편을 말씀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1.

 

시인은 하나님이 없다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없다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시인은 고백합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면 첫 시간에 양해를 구하고 묻는 게 있습니다. ‘혹시 기독교 신자가 있습니까?’ 하는 질문입니다. 정확한 통계를 내보지는 않았습니다만, 보통 한 10% 내외로 손을 드는 것 같습니다. 손 안 든 학생들이 신은 없다고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다수의 학생들이 성서와 기독교신앙이 증언하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그 학생들을 모두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시인이 말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마치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사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마음에 든든하고도 굳건한 중심을 바로세우는 것과 같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어떤 과정을 두고 숙고하든지, 그 중심에는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뜻이 굳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도 실수하고 실패할 수 있습니다. 잠시 길을 잃어버리고 방황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삼은 사람, 마음 한가운데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바로세운 사람은,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로 곧 돌아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삶의 힘은, 어려움을 피하는 데 있지 않고, 어려움을 넉넉히 이기는 내면의 힘을 기르는 데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일상의 거의 모든 시간이 과학적사고, 그러니까 합리적판단의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의 일상은 신성(神聖)과 초월(超越)에 대한 경험, 즉 거룩하고 성스러운 것, 저 너머의 것에 대해 생각할 조건을 좀처럼 마련하지 않습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손에 들려 쥔 핸드폰은 일상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우리가 신성과 초월에 대한 갈망을 품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꺼지지 않은 채 우리 의식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로그아웃할 수 없는 삶, 그것은 마치 꺼지지 않는 불꽃을 품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조금 과장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그것은 신 없는 시대 현대인이 경험하는 신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로그아웃되지 않는 핸드폰 액정 화면의 불꽃은, 꺼지지 않는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에서 모세를 부르셨던 하나님의 음성이 되어(3:4), 신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신성과 초월의 경험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신성과 대면하기 위해 전통종교가 강조해 온 고요와 여백을 삶에서 삭제해 버린 것입니다. 성찰의 간극이 사라진 신앙은 맹목적이 될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2.

 

시인이 말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하나님이 없다하는 사람이라면,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을 찾는 사람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무슨 일을 하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어떤 과정을 두고 숙고하든지, 그 중심에는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뜻이 굳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사람이, 시인이 말하는 하나님을 찾는 사람’,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때로 어리석게 보이기도 합니다. 어떤 일에 있어 기꺼이 손해 보는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판단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당장에 이익이 되는지, 혹은 먼 훗날 이익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가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될 것인지가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목사들의 목사라는 별명을 갖고 계신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목사라는 직책이 좋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을 고백하신 적이 있습니다. 무슨 말씀인가요? 목사면 당연히 더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꼭 그렇지는 않더라는 겁니다. 신자들에게 믿으라고 설교하는 것이 목사의 직무임에도 불구하고, 믿지 못하는 목사들이 많고, 당신도 젊은 시절에 하나님에 대한 굳건한 믿음 없이도 목회를 꽤 성공적으로 이끌어왔다고 말씀하셔서 많이 이들이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무도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는 의 이야기였기 때문이죠. 그러나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좋은 목사가 되기보다는 좋은 크리스천이 되는 길을 택했다고 고백합니다. 좋은 목사가 되려고 했을 때 그분은 좋은 크리스천이 되지 못해 갈등했지만, 좋은 크리스천이 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그분은 목사들의 목사, 정말로 좋은 목사님으로 그분이 섬기는 교회와 세계 여러 나라 기독교인들의 영적이 멘토가 되실 수 있었습니다.

 

목회를 예로 들어 말씀드렸습니다만, 믿음으로 사는 삶에 있어서는 목회와 세상의 다른 직업들이 다르지 않습니다. 좋은 전문가가 되기 위해 힘쓰느냐, 좋은 크리스천이 되기 위해 힘쓰느냐, 하는 문제는 우리 모든 신앙인들이 마주해야 할 질문이기도 합니다. 많은 신자들이 훌륭한 전문가, 자기 일에서 더 나은 효율성을 발휘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노력을 통해 발전시키려는 노력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로서 우리가 더 힘써야 할 것은 좋은 크리스천이 되기 위한 노력에 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사는 삶이란, 좋은 신앙인의 삶에 좋은 열매가 맺힌다는 것을 믿고 살아가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어떤 어른과 말씀을 나누다 그분으로부터 노자의 한 구절을 받아 새기게 되었습니다. 오늘 시인의 고백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겠다 싶어 소개드립니다. 이현주 목사님과 무위당 장일순 선생님께서 풀이하신 노자의 한 구절입니다. 이렇습니다.

 

大成若缺이나 其用不弊하고,

(크게 이룬 것은 모자라는 것 같으나 그 쓰임은 끝남이 없고)

大盈若沖이나 其用無窮이라.

(크게 찬 것은 비어 있는 것 같으나 그 쓰임은 다함이 없다)

大直若屈하고, 大巧若拙하고,

(크게 곧은 것은 굽은 것 같고, 크게 교묘한 것은 서툰 것 같고)

大辯若訥하느니라.

(크게 말 잘함은 말더듬이 같으니라)

 

대성(크게 이룬 것), 대영(크게 찬 것), 대직(크게 곧은 것), 대변(크게 말 잘 하는 것)은 모두 겉으로 보기에는 모자라는 것 같고, 비어있는 것 같고, 굽은 것 같고, 서툰 것 같으나, 실상은 허위의식을 걷어낸 채 궁극의 길()에 이른 사람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3.

 

신자의 길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사는 사람의 길도 노자가 말한 길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사도 바울은 일찍이 고린도전서 118절에서 말씀하길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했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자기의 길로 삼아 산다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어떤 이들에게는 어리석은 길로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구원의 길, 사도 바울이 증거하는 십자가의 길,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 노자의 대성대영’, ‘대직대교의 삶이 결국에는 통하는 말이 아닙니까? 한 마디로, 믿음을 택하는 삶이란 어리석은 것 같아 보이나, 실상은 크게 지혜롭고, 가득 차 있으며, 올곧은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시인은 이러한 삶의 역설을 마주하지 못하는 눈 감은 이들, 진리의 세계에 눈 뜨지 못한 채 눈에 보이는 하나님이 안 계신다는 이유로 하나님이 없다말하는 이들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자인 우리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신앙의 고백이 말에 그치는 것이 되지 않기 위해 하나님이 계신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말에나 일에나 그 어떤 판단에 앞서서도 하나님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실천하는 습관을 우리 몸과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찍이 감리교회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는 신자의 삶은 믿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부터 성화와 완전을 향해 나아가는 삶이라고 보았습니다. 이것이 우리 감리교회가 다른 프로테스탄트 교단과 다른 교리적 특징이라면 특징입니다. ‘믿습니다, 아멘하고 천국행 티켓을 보장받는 것이 신자의 특권이 아닙니다. 신자의 특권은 주님과 동행하는 삶에 있습니다. 언제나 어디에서나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우리 삶의 분명한 이정표가 되셔서, 우리와 동행하신다는 것, 그것이 신자인 우리가 누리는 축복이요, 특권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동행하며 걷는 길이, 당장에는 힘들어 보일지 모르나 종국에는 승리하는 길이요, 주님과 더불어 영광을 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이 사실을 굳게 믿으며 하나님을 찾는 사람, 그분께서 우리 삶의 주인이 되시기를 매 순간 갈망하는 사람입니다.

 

4.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살피시는 분, 우리는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복음의 빛이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밝히 빛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남들보다 똑똑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남들보다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우리가 있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굳게 믿는 그 믿음으로 주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흔들리는 기준을 분명히 세우십시오. 어떤 선택이 유익이 될지를 따져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기준은 어떤 선택이 믿음으로 사는 사람의 길인지를 숙고하며, 그 길을 용기 있게 선택하는 것임을 늘 기억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사는 삶이 승리하는 삶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삶이 주님과 더불어 영광을 누리는 삶입니다. 이 믿음 가지고, 한 주간도 주님과 동행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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