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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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기도하며 낙심하지 맙시다

 

본문: 시편 119:98-104; 누가복음 18:1-8

설교: 홍정호 목사 (2019.10.20. 성령강림 후 제19)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늘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비유를 하나 말씀하셨다. “어느 고을에,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는, 한 재판관이 있었다. 그 고을에 과부가 한 사람 있었는데, 그는 그 재판관에게 줄곧 찾아가서, ‘내 적대자에게서 내 권리를 찾아 주십시오하고 졸랐다. 그 재판관은 한동안 들어주려고 하지 않다가, 얼마 뒤에 이렇게 혼자 말하였다. ‘내가 정말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지만, 이 과부가 나를 이렇게 귀찮게 하니, 그의 권리를 찾아 주어야 하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가 자꾸만 찾아와서 나를 못 견디게 할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들어라.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밤낮으로 부르짖는, 택하신 백성의 권리를 찾아주지 않으시고, 모른 체하고 오래 그들을 내버려 두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얼른 그들의 권리를 찾아 주실 것이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성령강림 후 열 아홉 번째 주일을 맞이합니다.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어가는 가을철입니다. 쌀쌀해지는 날씨와 짧아지는 햇살 가운데에서도 곡식과 과일은 제 빛깔과 맛을 더해가는 때입니다.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우리 각 사람에게 허락하신 삶의 맛이 깊어지고, 그 색도 아름답게 빛나고 계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오늘의 복음은 과부와 재판관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그대로 가져와 설교의 제목으로 정했습니다. ‘늘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비유를 통해 당부하신 말씀입니다. 주님은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낙심할 상황에 있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누가복음을 기록한 초대교회의 상황이 낙심할 만한 상황이었다는 추측입니다. 역사적으로 이 두 가지 추측 모두 근거가 있습니다. 복음으로 새로워진 세상, 즉 하나님나라를 꿈꾸며 복음전도의 길에 나선 예수님 일행은 유대교의 지도자들과 로마제국의 하수인들 양측으로부터 공분을 샀고, 박해에 시달리다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형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한편 그렇게 돌아가신 예수님의 부활을 선포한 초대교회는 부활신앙을 바탕으로 황제숭배를 거부하고, 예수님만을 주님’(퀴리오스)이라고 고백함으로써 황제를 주님으로 숭배할 것을 강요하는 로마제국으로부터 약 3세기에 걸친 극심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초대교회 구성원들은 누가가 전하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으며, 박해의 암흑기를 견뎌냈고, 복음의 최후 승리를 믿는 믿음을 다잡으며 전진했습니다.

 

2.

 

이 말씀은 앞선 1720절에 나오는 바리새파 사람의 물음에 대한 예수님의 응답이기도 합니다. 17장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묻는 바리새파 사람들의 질문에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고 답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의 나라는“‘여기에 있다또는 저기에 있다하고 말할 수도 없다고 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특정한 종교체제 혹은 정치사회 체제와 동일시 할 수 있다고 믿는 바리새파 사람들을 향해 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눈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이 만들어 놓은 하나님나라, 혹은 만들어가고 있다고 믿는 하나님나라를 지키기 위해 예수님을 박해하고, 그분이 하시는 일을 와해시키려 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파 사람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신 후에, 인자가 재림하실 심판과 구원에 대해 길게 설명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 18장의 과부와 재판관의 비유는, 예수님의 앞선 설명에 덧붙여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 가운데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로부터 인자가 다시 오심으로 종말을 맞이할 때까지 긴 시간적 간극이 있는데, 그 시간이 언제 끝날지 모르기 때문에 믿는 이들이 낙심하기 쉽다는 것을 주님은 아셨습니다.

 

낙심(落心)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마음이 떨어진다는 뜻입니다. 어디에서 떨어집니까? 마음이 있어야 할 그 자리에서 떨어진다는 뜻입니다. 신자의 마음이 있어야 할 자리는 믿음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낙심을 이기는 희망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서 마음이 떨어지는 경험을 할 때 한 마디로 우리는 낙심을 경험합니다. 시험에 드는 것이죠. 우리말로 낙심하지 말라’(μὴ ἐνκακεν)로 번역해 놓은 낱말의 헬라어 원문을 보니 엑카케오’(ekkakeo)라는 동사를 사용합니다. 영어성경의 번역들을 살펴보면 낙심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담긴 뜻이 좀 더 다채로워집니다. NIV성경은 이 낙심하지 말라는 말을 구절을 ‘not give up’ 이라고 해 놓았습니다. 낙심하지 않는다는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GNT성경은 ‘never become discouraged’라고 했습니다. 낙심하지 않는다는 것은, 절대로 용기를 잃지 않는 것, 절대로 주눅 들지 않는 것입니다. KJB성경은 ‘not lose heart’라고 했습니다. 직역하면,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을 뺏겨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낙심은, 내 마음을 빼앗아가려는 그 어떤 상황에 휩쓸려 제 마음을 온통 잃어버린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말로 얼빠진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이렇듯 낙심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황에 휩쓸려 마음을 잃어버린 채 얼빠진상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4:23) 하신 잠언의 말씀을 기억하고 마음을 다잡는 것, 그것이 낙심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냥 낙심하지 말아라하시지 않으시고, 그 앞에 중요한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늘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하셨습니다. ‘늘 기도하고하는 말씀이 중요합니다. 낙심은 거저 극복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걱정하기 시작하면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지는 경험을 다 하셨을 겁니다. 걱정을 하다 보면 그 걱정들이 다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걱정이 그 크기를 계속 키워갑니다. 남들이 볼 때는 터무니없는 걱정 같기도 한데, 내가 생각할 때는 도 있고 무늬도 있는 걱정이라 걱정이 끝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가 바로 기도할 때입니다. 내 걱정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라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찰 때, 걱정을 하면 할수록 정말로 일어날 일이라는 확신이 점점 더 커질 때, 걱정이 꼬리를 물로 커지면서 내 생각을 빼앗고, 내 마음을 빼앗고, 나를 움츠러들게 만들 때, 바로 그때가 우리가 기도함으로 낙심을 이겨야 할 때인 것입니다.

 

모든 참된 종교는 초월자에 대해 말하면서 인간의 마음에 주목합니다. 대표적으로 불교와 기독교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맥락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불교는 이를 ’()이라는 개념으로, 기독교는 케노시스’(자기비움)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그런데 제가 불교공부가 깊지 못해 이야기하기 조심스럽습니다만, 불교와 기독교가 똑같이 비움을 말하더라도 그 방식이 사뭇 다릅니다. 불교는 자기를 비우는 과정에서 단지 마음을 비우는 것만이 아니라, ‘마음을 비우고 있는 자기마저도 사라지는 해탈의 경지를 추구합니다. 해탈이라는 그렇게 궁극의 깨달음, 자기를 비우는 데 그치지 않고, 자기를 비우고자 하는 자아의 의식마저 사라진 상태를 일컫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다릅니다. 자기를 비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채우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비우는 것도 자기의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고, 성령이 임하여 우리의 옛사람을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실 때에만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나는 죽고, 그리스도가 살아야, 우리가 진정한 자기 비움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불교는 자아를 완전히 없애는 방향을 추구하지만, 기독교는 하나님 안에서 이전의 내가 없어진 더 큰 자아로의 통합을 추구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면서 늘 기도하고하는 말씀을 잊지 않으신 것은 그 때문입니다. 신자들이 낙심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낙심하지 않으려는 의지만으로는 안 됩니다. 스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서 낙심의 근원을 없애고자 하려는 결연한 의지로도 안 됩니다. 그러면 곧 다른 문제가 그를 낙심케 하기 때문이니다. 낙심의 근원을 없애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되, ‘늘 기도해야 우리가 시시때때로 우리를 덮치고, 우리의 발목을 붙잡는 낙심의 위기를 극복하며 최후 승리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은 낙심하지 않는 믿음의 예시로 이스라엘의 약자의 대명사인 과부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어느 마을에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존중하지 않는불의한 재판관이 살았는데, 이 과부는 그를 찾아가 자기의 잃어버린 권리를 찾아달라고 애청합니다. 재판관을 찾아갔는데, 한 번 찾아가서 안 된다고 하니 포기한 것이 아니고, 그가 귀찮다고 여길 만큼 자꾸 찾아가 그를 못살게 굴었습니다. 결국 이 재판관은, 하나님 때문도 아니고, 이 과부를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 때문도 아닌, 자신의 귀찮음을 해소하기 위해서 이 과부의 청원을 들어주었습니다. 이 이야기 끝에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들어라.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밤낮으로 부르짖는, 택하신 백성의 권리를 찾아 주시지 않으시고, 모른 체하고 오래 그들을 내버려 두시겠느냐? (중략) 하나님께서 얼른 그들의 권리를 찾아 주실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에 아멘으로 응답했을 겁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 가운데에는 약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재판관의 입장에서가 아닌 과부의 입장에서 이 이야기를 듣고, 자신들의 처지를 헤아려주시는 분의 이야기로 들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의 정신을 흔들어 깨웁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18:8)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을 위로하시는 한편 그들의 잠든 정신을 흔들어 깨웁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너희는 하나님께서 이 불의한 재판관보다도 못한 존재라고 생각하느냐? 자기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이 사람조차도 자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부의 청원을 들어주었거늘, 자비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너희의 구하는 바를 못 듣고 계신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그렇지 않다면 왜 낙심하느냐? 왜 이 과부처럼 믿음으로 구하지 않고, 한두 번의 실패에 좌절하고 믿음을 떠난 채 낙심하느냐? 너희는 늘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었던 이유는, 그분이야말로 숱한 낙심 거리들과 씨름하시며 기도로 승리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라고 앞날에 대한 염려가 없으셨을까요? 예수님이라고 당신이 가시는 길에 대한 의심과 후회의 순간이 없었을까요? 예수님이라고 매번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는 순간만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분의 삶에는 수많은 낙심의 계기들이 있었고, 실제로 예수님은 그러한 시험들 앞에서 흔들리시기도 했습니다. 복음의 길을 당당히 걸어가시는 가운데에서도 그분은 여우도 굴 있고, 하늘을 나는 새도 보금자리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탄식하셨습니다. 저는 이 예수님의 탄식 속에 담긴 그분의 말할 수 없는 속내가 읽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이라고 해서 먹고사는 생활의 문제로부터, 앞날에 대한 염려와 불안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실 수 없었을 겁니다. 당신을 음해하려는 이들로부터 끊임없이 공격을 당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늘 기도하셨습니다. 늘 기도하심으로 하나님의 영으로 당신의 삶을 가득 채우셨습니다. 대적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본 것입니다. 원수를 바라보지 않고, 원수 뒤에 계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신 것입니다. 기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묻는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말씀하실 수 있었습니다.

 

4.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 그 나라가 언제 임할 줄 알고, 믿음으로 마냥 기다리라는 것이냐?’ 말하는 바리새인들의 속내는 아마도 그런 나라는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을 겁니다. 그들은 어쩌면 예수님을 한심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들은 사자와 어린양이 함께 뒹구는 평화의 땅을 꿈꾸는 예수님의 꿈을 향해 그런 나라는 오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칼끝을 맞대던 원수가 친구가 되어 한 상에서 먹고 마시는 하늘나라 잔치를 꿈꾸는 예수님을 향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물으면 그런 나라는 오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낙심하지 말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 나라의 꿈을 믿음으로 간직한 이들 가운데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할 일은, 인자가 다시 오실 때까지, 혹은 우리가 인자 앞으로 갈 때까지 그 믿음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깨어 늘 기도하며 낙심하지 않고 믿음의 한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과부와 재판관의 비유를 통해 늘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고 당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갈등이 사람들을 낙심케 하는 때입니다. 정치적 신념이 달라서 가족이 싸우고, 오랜 친구가 싸우고, 심지어 하나님 신앙이 중심이 되어야 할 교회에서마저도 성도 간 앙금이 생기는 곤고한 시절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보다는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묻는 바리새인의 물음이 갈등과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질문이 되었습니다. 믿음의 길은 이러한 혼돈의 시대 가운데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복음의 길을 굳게 가는 것입니다. 복음의 길은 십자가의 화해의 길이요, 평화의 길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힌 담을 허무신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나와 너를 가르는 담이 무너지고 더 큰 한 몸을 이루는 화해의 길, 평화의 길입니다. 이것이 신자인 우리가 늘 기도하는 가운데 낙심을 이기며 가야 할 믿음의 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한 주간도 믿음 가운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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