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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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는 인생

             

본문: 창 2:7-9, 5:13-15

설교: 이계준 목사 (2019.11.3. 추수감사주일)

 

오늘 우리는 감사절로 지킵니다. 사람들은 보통 어떤 조건에 대해 감사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특히 유교의 전통을 이어받은 우리는 5복인 수(), (),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등으로 육신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만족할 때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감사의 조건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현 정부의 실책으로 세계무역 10대국의 자리가 흔들리고 경제가 악화일로에 있으며 한미동맹의 약화와 북한의 위협으로 우리의 안보와 생존이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입니다. 여당은 무책임하고 야당은 무능하여 대안이 보이지 않으니 6.25동란 이후 최대의 위기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가 지키는 감사절의 시작은 행복하고 풍족한 환경에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1700년대에 자유를 찾아 신대륙에 온 영국 청교도들이 척박한 땅에서 수확한 옥수수와 감자와 야생 칠면조를 제단에 올리고 감사예배를 드리는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인간의 행복지수나 사회적 조건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저는 이 시간 우리가 감사할 수 없는 여건에도 불구하고 제 인생을 돌아보며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것은 여러분도 감사의 사람이 되는데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은 어떤 형평에서나 하느님께 감사를 잊지 않을 때 완숙되는 것입니다.

 

첫째로 저는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를 적대시하는 지도층에게 자기도 그들처럼 히브리 사람이고 이스라엘 사람이며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자부한다.’(고후 11:22)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젊었을 때 그런 자부심을 느낀 적이 없고 헬 조선은 아니지만 선진국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아쉬워했습니다. 그러나 철이 들면서 자부심은 아니지만 보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물론 제가 살아온 환경은 한 생명이 살아남기에는 매우 열악한 것이었습니다. 일제시대에 태어나 제2차 세계대전을 겪고 김일성 독재와 6.25동란에서 구사일생하고 피난민으로 남하하였으나 부친의 별세로 고학의 길을 걸었으며 4.19 때는 수도육군병원의 군목으로써 이기붕 씨 일가의 입관예배를 집례하면서 권력의 비극을 보았고 단돈 200불을 갖고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귀국하여 소위 명문 대학에 취직했으나 생활비를 보충하려고 동분서주해야 했고 운동하다 다쳐 뇌수술을 하며 죽을 고비도 넘겼으며 군사정권에 의해 5년간 해직의 쓴 맛도 보았습니다.

이러한 인생여정에서 불안과 공포, 가난과 역경, 고통과 소외 등 삶의 쓴 맛은 골고루 맛보았으니 제 인생은 흙수저가 맞습니다. 그러면서도 오늘날까지 부족하지만 주어진 일에 헌신하며 부끄럼 없이 살아온 것은 실로 기적과 같은 것이어서 하느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가 당하는 고통과 고난에는 아프고 힘겨운 부정적 요소가 많아서 회피하고 잊어버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일단 그 어려움을 통과하고 나면 거기서 경험과 지혜가 생기고 인내와 관용이란 덕목이 싸여서 인간이 성숙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은 주시지 않는다.”는 바울의 말씀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더욱 감사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비록 가난과 무지, 부정과 부패가 만연하여도 내가 설 수 있고 참여할 수 있는 터전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1961년 미국에 갔는데 M. 루터 킹 목사의 주도로 흑인들의 인권투쟁이 극에 달했을 때 저들은 돌아갈 고향이 없지만 나는 비록 보잘 것 없지만 돌아갈 모국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했습니다.

인간이 선진국에 태어나 조상들이 이룩한 양지에서 사는 것은 큰 특권입니다. 그러나 열약한 사회를 발전시키는데 참여하는 것 역시 특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미국교회를 목회하면서 미국인교회는 미국 목사에게 맡기고 나는 한국사회와 교회를 위해 일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할 때 스승이신 박대선 총장께서 부르시기에 무조건 귀국했습니다. 스승님이 어려워 직급이 무엇이고 봉급이 얼만지 묻지도 못하고 말입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큰 위기에 직면한 것은 현 사회주의 정권이 우리 국민과 지도자들이 세계 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 내에 이룩한 경제발전과 자유민주주의의 상아탑을 파괴하는데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서 보수 세력은 이기주의로 사분오열되고 대안이 없으니 암담할 뿐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의 위기는 희망의 기회가 된다고 믿습니다. 역사상 한 번도 자주적으로 국권을 쟁취해 본 적이 없는 우리에게 일치단결과 나라사랑에 헌신하므로 하느님 나라를 이룩하라는 거룩한 뜻을 감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103일과 9일과 25일 그리고 어제 광화문에 나아갔습니다. ‘민족의 고난에 참여하지 않으면 승리의 축제에 동참할 자격이 없다.’는 본회퍼 목사의 말을 기억하면서 말입니다.

 

둘째로 저는 목사가 된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므로 변화되었고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의 길은 선친의 별세로 인해 인생의 무상함과 앞으로 가야할 길에 대해 고민하는 가운데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선친의 종착역이 곧 저의 시발점이 되도록 인도하셨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제 선친은 장로교 목사이자 사회사업가이셨습니다. 그분은 평양신학교를 갓 졸업한 전도사 때 신학교 교장의 추천으로 평양 중심가에 있는 남문밖교회의 담임자가 되셨고 최초의 사립재단인 평양광명맹아학교를 설립하셨습니다. 그러나 부친께서는 저더러 목사가 되라는 말씀이나 암시를 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북한에서 감리교 성화신학교에 입학한 것은 고등학교의 공산주의 교육에 대한 거부반응 때문이었고 월남하여 감리교신학교에 간 것도 대학 영문과를 나와 영어교사가 되려는 징검다리였습니다. 그러나 선친의 급서로 나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나 신학생 시절에 목회자들의 무능과 부도덕을 보고 실망했기에 목사의 길을 꿈꾼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선친과 함께 박대선 박사, 한승호 목사, 홍현설 박사와 같은 인격적으로나 신앙적으로 명망이 높으신 스승님들을 만나면서 저의 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 대해 후회한 적은 없고 오로지 감사할 뿐입니다.

특히 저는 목사로써 남다른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감사합니다. 대학에서 무수한 미래 인재들에게 기독교 정신을 고취하였을 뿐만 아니라 군목으로, 화양교회 청년목회자로, 연세대학교회 담임목사로 주로 의심과 질문이 많은 지식인들에게 자유의 복음과 신앙의 자유를 전하는 특권을 누렸습니다. 이에 더하여 지난 37년 동안 신반포교회가 바람직한 공동체로 진화하면서 교우 여러분들과 함께 유무상통하는 성숙한 삶을 누릴 때 오는 기쁨과 감사는 저 자신만의 환상이 아닐 것입니다.

셋째로 저는 한 평생 자유인으로 살 수 있도록 도우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창세기에는 인간 창조의 신화 두 가지가 기록되어 있는데 하나는 하느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1:27)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형상이나 생명의 기운이란 말은 곧 영성 혹은 인격의 본질인 자유를 뜻한다고 해서 좋습니다.

물론 창조된 인간은 누구나 시간과 공간, 생각과 활동이 제한되어 있으므로 부자유합니다. 그러나 참 자유란 어떤 속박이나 노예에서 풀려난 것과 함께 주어진 잠재력을 창조적으로 극대화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자유 지향적이고 자유의 완성을 위해 투신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인류역사의 전개과정은 결국 자유를 지향하고 성취하려는 부단한 몸부림의 열매라고 해서 좋을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저는 자유에 관한 한 금수저라고 자부합니다. 자라면서 제 멋대로 행동해도 심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부모님에게 제지당하거나 벌 받은 적이 별로 없습니다. 이렇듯 자유스런 환경이 철이 들면서 자유는 사랑의 섬김을 위한 도구임을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따라서 저는 의식적으로 가족이나 동료, 학생이나 교인 어느 누구의 자유도 억제한 적은 없었다고 자부하는데 그래도 가족들은 저를 독재자라고 합니다.

신학생 시절에는 활동분야를 공부, 알바, 교회 등 셋으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누구의 요청이나 장학금도 없는데 스스로 교회 일을 위해 주일 하루 종일과 수요 예배까지 교사로, 반주자로, 청년회장으로 헌신하였습니다. 이렇듯 섬김의 자유는 교우들의 사랑과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하였고 나의 신앙과 주체성 형성에 큰 보탬이 되었음을 감사드립니다.

아마도 제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자유인의 기량을 유감없이 드러낸 것은 연세대학에 온 이후가 아닌가 합니다. 대학의 채플이 전통적 예배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때 소위 창조적 예배라는 명목으로 영화, 대화, 안무, 드라마, 음악 등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바꿨습니다. 그 때 학생들은 환영하였지만 대학의 일부 교수들과 특히 신학자와 목사들은 이것을 마치 이단처럼 여기고 총장에게 중단을 권고한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총장은 교목실장에게 책임을 맡겼다는 말로 그들의 권고를 묵살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그분의 선견지명과 저에 대한 신뢰에 감사했습니다. 그 후 창조예배는 전국 기독교대학에 보급되고 시행되었습니다.

저의 자유는 연세대학교회와 신반표교회의 구조를 평신도 중심으로 바꾸는데 보탬이 되었습니다. 목회자 중심의 교회구조는 중세기적이고 교권주의적인 것으로 루터의 사상이나 민주주의 사회에 부적합하므로 교회구조를 종적인 차원에서 횡적인 차원으로 변경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배순서도 평신도들이 많이 참여하도록 시정하였습니다.

또한 저는 해직 당시 감리교총회신학교를 설립하면서 감리교 전통, 교회갱신 및 사회혁신이란 주제 하에 당시 신학교 커리큘럼의 약 30%를 새로운 과목으로 대치하였습니다. 따라서 타 신학교에는 없는 웨슬리 신학, 선교신학, 아시아신학, 민중신학, 여성신학 및 기독교와 역사, 종교와 과학 등 교양과목을 신설하므로 신학교육의 지평을 넓힌 것입니다. 감리교 신학의 근거인 존 웨슬리 목사의 저서가 수백 권에 이르지만 우리말로 된 도서가 없을 때 <존 웨슬리 총서> 10권을 편집, 번역, 출판한 것은 감리교 신학발전에 보탬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감리교 갱신운동을 전개하면서 구상했던 교회구조가 1970년대 교단의 분리가 통합될 때 채택된 것입니다. 본래 한국감리교회의 구조는 감독 중심제로서 그 막강한 힘이 교회보다는 당파를 위해 악용되므로 분쟁분열이 계속된 것입니다. 따라서 감독의 교역자 파송 권을 개체 교회의 초청으로 대치함으로 교권주의의 불식과 개 교회가 독자성을 지니게 되었고 우리 교회가 유능한 교역자를 초빙하게 된 것도 제 덕인 줄 아시기 바랍니다. 이렇듯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의 잠재력은 무한대이므로 사회 및 교회 발전에 일조한 것에 감사의 마음을 금할 수 없고 이런 일들을 가능케 하신 하느님의 은총과 섭리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감사절에 저 개인적인 감사를 간증삼아 말씀드리면서 저의 자랑이 끼어들었다면 양해 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 드리는 것은 여러분도 각기 자기의 인생여정을 성찰하면서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람찬 삶을 이어가시기 바라는 뜻에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 어떤 경우에 처하던지 하느님께 감사드린다는 것은 인간의 마땅한 도리인 동시에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격상시키시고 영원한 삶을 지금 여기서 향유하도록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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