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주일설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본문: 예레미야 23:1-8; 누가복음 23:33-43

설교: 홍정호 목사 (2019.11.24. 성령강림 후 마지막 주, 왕국주일)

 

[그들은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서,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달고, 그 죄수들도 그렇게 하였는데, 한 사람은 그의 오른쪽에, 한 사람은 그의 왼쪽에 달았다. 그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제비를 뽑아서, 예수의 옷을 나누어 가졌다. 백성은 서서 바라보고 있었고, 지도자들은 비웃으며 말하였다. “이 자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그가 택하심을 받은 분이라면, 자기나 구원하라지.” 병정들도 예수를 조롱하였는데, 그들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신 포도주를 들이대면서, 말하였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라면, 너나 구원하여 보아라.” 예수의 머리 위에는 이는 유대인의 왕이다이렇게 쓴 죄패가 붙어 있었다. 예수와 함께 달려 있는 죄수 가운데 하나도 그를 모독하며 말하였다. “너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여라.”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똑같은 처형을 받고 있는 주제에, 너는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우리야 우리가 저지른 일 때문에 그에 마땅한 벌을 받고 있으니 당연하지만, 이분은 아무것도 잘못한 일이 없다.” 그리고 나서 그는 예수께 말하였다. “예수님, 주님이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1.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성령강림 후 마지막 주이며, 왕국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신자로서 보낸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며 시작한 2019년의 신앙순례가 오늘로 끝납니다. 올 한 해 어떤 발자국을 남기며 왔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부끄러운 일들이 떠오릅니다. 아쉬움이 남는 일도 있습니다. 이제 와서 돌이켜 새 마음을 갖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만난 누가복음 강도의 이야기는, ‘그분에게 너무 늦은 때는 없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만듭니다. 올 한 해, 날마다 은총의 새날을 살기로 결단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여기까지 온 것처럼, 오늘 한 해의 마지막 주일에도 주님께서 주시는 새날의 은총을 기대합니다.

 

그리스도교는 역설의 종교입니다. 역설은, 논리상 모순되지만 진리를 전달하는 말의 형식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하는 기독교의 가르침이 대표적입니다. 원수는 사랑할 수 없으니까 원수가 된 존재입니다. 사랑하려는 노력이 번번이 실패해 결국 원수로까지 여기게 된 존재인데, 그런 존재를 사랑하라는 요청은 논리상 모순됩니다. 원수는 대적해야지 사랑해야 할 존재가 아닙니다. 그러나 역설의 종교인 그리스도교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사랑할 수 없는 존재와 대면하여 그 존재의 무게와 씨름하는 동안, 결국 구원을 얻는 것은 그가 아닌 나이기 때문입니다. 또 십자가를 부활과 영광의 상징으로 여기는 것 또한 역설적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십자가는 처형 틀입니다. 실패한 인생의 상징이요, 반역의 상징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이 죽음의 십자가를 부활의 상징으로, 굴욕의 십자가를 영광의 상징으로 여기는 종교입니다. 삶은 때로 십자가를 짊어진 것처럼 어렵고 힘들지만, 주님은 우리의 곤고한 삶을, 있는 그대로, 은총의 선물로 바꾸시는 분입니다. 신자인 우리는 이 믿음을 가지고, 실패를 딛고, 낙심을 이기는 승리의 삶을 살아가길 결단합니다.

 

2.

 

오늘의 복음은 사순절에 주로 만나는 본문입니다만, 왕국주일인 오늘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죄수 두 사람과 함께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는 원래 바라바가 달려야 하나, 빌라도는 성난 민심을 거스르는 부담을 떠안고 싶지 않아, 죄 없으신 예수님을 두 명의 죄수들과 함께 십자가에 처형하기로 했습니다.

 

예수님의 왼편과 오른편에 달린 죄수들이 어떤 죄를 지어 십자가라는 극형을 당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십자가형이라는 처형 방식을 고려할 때 로마가 용인할 수 없는 범죄였을 것이고, 관용의 테두리를 넘어 제국의 체제와 질서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할 만한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을 것이라는 점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 좌우의 죄인들도 어쩌면 예수님처럼 제국의 체제 하에서 죄인으로 내몰린 억울한 이들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형을 당하는 이 두 명의 죄인들은, 제국의 지배질서와는 다른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죄인으로 낙인찍혀 최후를 맞이하는, 또 다른 숨겨진 비극의 주인공들은 아니었을까요?

 

십자가에 달린 죄인 중 하나가 예수님을 모독하며 말합니다. “너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여라.” 그는 처형자들이 예수님을 욕보이기 위해 십자가 위에 달아놓은 명패를 보고, 처형당하는 순간에 마치 처형자와 같은 태도로 예수님을 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편에 달린 죄인은 그를 꾸짖으며 말합니다. “우리야 저지른 일 때문에 마땅한 벌을 받고 있지만, 이분은 아무 잘못이 없다.” 이들 죄수에 대한 정보다 복음서에 담겨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사실을 알 수 없습니다만, 미루어 짐작컨대 이 죄인들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어 그분을 이미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분의 명성이 이미 자자했던 데다, 얼마 전 성전에서 상을 뒤엎고 상인들을 내쫓으신 사건으로 유월절 축제에서 큰 주목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이 죄인들은 어쩌면 소문으로만 듣던 그분을 나도 한 번 뵐 날이 오면 좋겠다, 생각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죄인들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뵙기를 바라던 그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비록 바라던 장소에서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두 사람의 태도가 확연히 다릅니다. 한 사람은,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예수님을 만나서도 그분에게 아무런 기대를 걸지 않습니다. 그는 기대감을 갖지 않을뿐더러, 그분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동참하여 그분에게 너나 구원하여 보라비아냥댑니다. 저분이 구원자라 한들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편에 있는 죄인의 모습은 대조적입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도 구원을 향한 열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생의 마지막에 이르는 순간에, 모든 것이 끝났고, 미래에 대한 아무런 희망도 말할 수 없는 그 자리에서, 그는 예수님에게 놀라운 요구를 합니다. “예수님, 주님이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죄인의 요청에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하는 응답을 주셨습니다. 그는 지상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대화 상대가 되었습니다. 그의 간절한 기대와 예수님의 자비가 만나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구원이 성취되었습니다.

 

3.

 

우리는 때를 구분하며 삽니다. 때를 구분할 줄 아는 것은 분명 인생의 지혜입니다. 구약성서 전도서 3장은,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세상을 사는 이들에게는 때에 걸맞은 행동이 요구됩니다. 아무리 좋은 나무라도 때와 장소를 잘못 만나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반면, 약한 나무라도 시냇가에 심기면 철을 따라 열매를 맺습니다. 그렇기에 전도자는 태어날 때와 죽을 때’, ‘심을 때와 뽑을 때’, ‘허물 때와 살릴 때’, 그리고 간직할 때와 포기할 때를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함을 역설합니다. 그러나 전도서는 때를 구분하는 지혜에 관한 말끝에 아주 중요한 말을 덧붙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제때에 알맞게 일어나도록 만드셨다”(3:11a) 하는 말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깨닫지는 못하게 하셨다”(3:11c) 하는 말도 덧붙입니다. 때를 구분하는 지혜는 필요하지만, 자신이 구분한 때를 확신하는 우를 범하지는 말라는 조언입니다. 시간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인생에서 나아가고 물러설 때를 분별하여 아는 것이 지혜 있는 자의 모습이나, 나아갈 때나 물러설 때나 그 모든 순간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전도서의 메시지입니다.

 

예수님 양옆의 죄인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지금 나아가야 할 때입니까, 물러서야 할 때입니까? 간직할 때입니까 포기할 때입니까? 인생의 종착지인 십자가에서 나아간다면 어디로 나아가며, 간직한다면 무엇을 간직하겠습니까? 그들은 누가 봐도 물러서야 할 자리에 있는 이들이고, 포기하기 하는 것이 마땅한 자리에 있는 이들입니다. 그래서 한 편의 죄인은 그때에 걸맞게 행동합니다. 그는 아무 데도 나아갈 데 없고, 아무 것도 간직할 것 없는 사람처럼 예수님을 대하며, 그분에게 아무런 기대도 걸지 않으며, 오히려 그분을 비난합니다. 그에게는 인생의 남은 희망도, 기대할 바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편의 죄인은, 용감하게도, 자신의 때를 거슬러 행동합니다. 물러서야 할 때이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고 나아갑니다. 희망을 포기함이 마땅한 자리이나 그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희망을 간직하는 선택을 합니다. “예수님, 주님이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이것이 그의 마지막 희망이었고, 나아가야 할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과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4.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주님에게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십자가 위에서도 주님은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하는 요청에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들숨과 날숨이 반복되고, 오름과 내림이 교차하는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누구나, 나는 이제 틀렸어, 다 끝났어, 내 역할은 여기까지야, 하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수고하며 살아왔으나 아무도 나를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이 없고,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것 같은 외로움이 몰려올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한 죄인은 그런 외로움에 절망하고, 모든 희망을 포기한 존재로 생을 마쳤습니다. 그러나 다른 죄인은, 비록 세상에 손가락질을 받는 자리에 있었으나, 예수님에게 기억되기를 바랐습니다. 그곳은 더 이상 내몰릴 곳 없는 세상의 끝이었으나, 그는 거기에서 낙원에 이르는 길을 찾았습니다.

 

예수님, 주님이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이 죄인의 간절한 바람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비록 남들의 인정과 존경을 받는 삶은 아니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인정받고, 주님께 기억되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인정받고, 주님께 기억되는 삶은, 이 세상에서도 제몫의 축복을 누리는 삶이 되리라 믿습니다. 한 해의 신앙순례를 마무리하는 오늘,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바라보며, 주님께 기억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오늘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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