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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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는 주님

 

본문: 이사야 2:1-5; 마태복음 24:36-44

설교: 홍정호 목사 (2019.12.1. 대림절 제1)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각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이 아신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이 인자가 올 때에도 그러할 것이다. 홍수 이전 시대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며 지냈다. 홍수가 나서 그들을 모두 휩쓸어 가기까지, 그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였다. 인자가 올 때에도 그러할 것이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을 터이나,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두 여자가 맷돌을 갈고 있을 터이나,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그러므로 깨어 있어라. 너희는 너희 주님께서 어느 날에 오실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명심하여라. 집주인이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알고 있으면, 그는 깨어 있어서, 도둑이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는 시각에 인자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2020년 교회력의 시작, 대림절 첫 번째 주일입니다. 교회는,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절로 한 해를 열어갑니다. 빛으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는 마음으로 대림절 첫 번째 초에 불을 밝혔습니다.

 

우리 예배당이 환하기 때문에 촛불의 밝기가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촛불의 밝기를 온전히 느끼려면 우선 이곳의 불을 꺼야겠습니다. 진짜로 불을 끄자는 말씀은 아닙니다. 빛이신 예수님을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에 관한 얘기입니다. 한시도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는 우리 안의 불이 먼저 꺼져야 합니다. 욕망의 불, 근심의 불, 미움의 불, 불안과 원망의 불이 꺼져야 한다. 그 불들이 모두 꺼진 고요한 자리에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참빛이신 그분과 만날 수 있습니다. 대림절 초를 밝히는 동안 우리를 밝히던 자기의 불은 꺼지고, 진리의 참빛이신 그분의 임재로 충만한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1.

 

한 해의 첫 주일을 열어가는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종말을 주제로 한 이야기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역설의 종교라는 말씀을 지난 주 드렸습니다. 시작하는 자리에서 끝을 말하고, 끝나는 자리에서 새로운 시작을 말합니다. 오시는 주님에 대한 기대로 충만한 대림절 첫 주일에, 교회력 본문은 마태복음 24장의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아직 태어나시지도 않은 분의 재림 이야기를 통해 교회는,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분, 처음과 끝이 하나이신 분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하시면서, “인자가 올 때에도 그러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은 마지막 구절에 나옵니다.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인자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24:44)

 

2.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그 기술이 생활에 영향을 끼쳐 삶의 양식(문화)이 변할 때마다 사람들은 종교가 곧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을 하곤 했습니다. 이전에 사실이라고 믿었던 많은 일들이 한낱 서사에 불과하다는, 구성된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새로운 지식을 처음 접한 이들은, 종교의 기만성과 위해성을 고발하며 종교가 사라지는 것이 인류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지금도 일각에서는 종교 무용론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만, 종교는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과학기술의 발전이 날로 정점을 갱신해가고 있는 오늘날 근본주의적 종교의 위협은 제도종교의 안팎을 넘나들며 더 커지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과학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불안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과학기술 발전은 생활의 편리성을 더하고 있지만, 생활의 불안요소 또한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새로운 불안요소들이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물을 사서 먹는다는 것은, 봉이 김선달이나 하는 터무니없는 일로 간주되었습니다만, 오늘날에는 물을 믿을 수 없습니다. 공기도 마찬가지죠. 하루가 멀다고 발생하는 미세먼지의 위협은 아이들의 놀이문화마저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렇듯 생활의 편리성이 증대하는 한편, 이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불안요소들도 덩달아 증가하는 시대에, 인간은 새로운 불안요소들 앞에서 오래된 해결책(종교)로 회귀하곤 합니다. 종교만큼 오래 인류의 불안과 공존하며, 불안을 다루는 기술들을 발전시켜 온 의식체계가 아마 없기 때문일 겁니다.

 

여러분, 요새 유튜브 많이 보시나요? 다양한 분야의 기초지식을 쌓는 데 도움이 되어 저도 즐겨 활용하는 편인데, 얼마 전 (구글 알고리즘의 안내로) 재미있는 영상 하나를 봤습니다. 어느 점집을 찾아가 앞일을 물어보는 사람이 나오는 영상인데, 무당과 대화하는 중에 말하길 자신은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인지과학인가를 전공하는 사람이고, 또 목사 딸이라고 스스로를 밝히더군요. 다른 전공도 아니고 인지과학 박사과정 전공에, 목회자의 딸인데, 앞날의 불안을 해결하지 못해 무당을 찾아가는구나, 한편으로 아주 흥미롭고, 다른 한편으로 씁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불안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때와 장소의 불확실성에 따른 불안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대략 예측이 가능해도, 그 일이 정확히 언제, 어디에서 일어날지 알 수 없을 때 인간은 불안을 느낍니다. 티브이 예능에서 가끔 나오는 폭탄 돌리기 게임이 있습니다. 저게 언젠가는 터진다는 걸 알지만, 언제 터질지, 누구 순번에서 터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참여자나 시청자 모두 조마조마합니다. 폭탄 돌리기 게임을 예로 들었습니다만, 삶이 이와 다를까요? 숱한 우연들, 그것을 섭리라고 하든 인연이라고 하든지 간에, 수많은 우연들이 얽혀 사건을 만들어가는 삶에서 언제, 어디에서, 어떤 불안요소가 우리를 엄습할지 완벽히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삶의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하는 한, 그리고 그 불확실성에 붙들려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인간의 삶이 지속되는 한 이러한 부정적 감정들을 매개로 한 (거짓) 종교의 역할 또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3.

 

다시 본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주님은, “그 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른다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밭에 나가 일하다가도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두는 때가 올 것이고, 두 사람이 맷돌을 갈고 있다가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때가 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렇듯 인생의 결정적 순간, 그때가 죽음의 순간일 수도 있고, 기회의 순간일 수도 있는 그때는 언제 다가올지 알 수 없습니다. 그때를 알려고 여러 노력을 해 보지만 결국 주님께서 어느 날에 오실지 알지 못하는것이 삶입니다.

 

이러한 불확실성과 불안을 대하는 예수님의 방식이 있습니다. 바로 깨어 있는것입니다. 누가복음의 다른 곳에서 주님은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21:36)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깨어 있어라. 너희는 너희 주님께서 어느 날에 오실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24:42) 깨어 있다는 것은, 무지와 어둠 가운데 머물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계몽을 뜻하는 영어 낱말이 enlightenment인데, (light)을 받아(en-) 밝힌다(-ten-)는 뜻입니다. 깨어 있다는 것, 그것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빛을 안고 밝아진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니 밝아지려면, 깨어 있으려면, 먼저 빛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진리의 빛이신 그분으로 우리의 존재가 새로워져야 하고, 하나님의 은총의 세계를 향해 눈 떠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의 불이 여전히 너무 밝은 사람들, 자기의 경험과 확신, 자기의 의지가 여전히 너무 밝은 사람들은, 빛이신 그분을 받아 모시지 못합니다.

 

예수님 때에도 그러했습니다. 이미 자기의 불을 밝힌 사람들, 제 나름의 이름값을 하고 살던 그들은, 빛이신 예수님 앞에서도 그분의 영광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에게서 진리의 밝은 빛을 본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가난하든, 마음이 가난하든, 가난한 이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모두 불 꺼진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자기 안에 활활 타오르던 불이 꺼진 사람들, 어떠한 상실의 체험을 통해 삶을 근본적인 차원에서 되돌아보아야 했던 사람들, 예수님은 그런 이들을 두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5;3)

 

하나님 나라는 자기 안에 활활 타오르던 불이 꺼져야 비로소 보이는 때와 장소입니다. 가난한 마음이 아니고서는, 불 꺼진 마음이 아니고서는 하늘 나라를 볼 수 없고, 그 나라에 참여하는 기쁨을 누릴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주님께서 산상수훈의 첫 말씀으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하신 것입니다.

 

4.

 

오늘은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맞이하는 첫 번째 주일입니다. 올 해는 더 가난한 마음, 나를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는 하심(下心)으로 빛 되신 주님을 맞이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특별히 주님의 뜻 가운데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않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언제 오실지, 언제 어느 때의 보람의 결실을 거둘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때 우리는 낙심합니다. 그러나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일이라면, 주님을 닮은 일이라면, 그 일은 반드시 결실을 거둘 때가 옵니다. 바울 사도는 말합니다. “선한 일을 행하다 낙심하지 맙시다. 지쳐서 넘어지지 아니하면,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입니다.”(6:9) 우리의 할 일은 기회가 있는 동안, 모든 사람에게 주님께서 하신 선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선한 일을 하다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악으로 악을 갚는 대신 사랑으로 이겨야 합니다. 원망과 복수가 질서로 자리매김한 세상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용서와 자비의 사람으로 날마다 거듭나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선을 행하지 않는다면 낙심할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삶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낙심할 지라도 용기를 잃지 않으며 선을 행하는 삶,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길로 올곧게 나가는 삶, 이 일을 위해 우리가 부름 받았음을 잊지 않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선한 일에 힘쓰는 동안 하나님께서 더 귀한을 맡겨 주시고, 선한 일에 힘쓰는 동안 낙원에 이르게 하시며, 선한 일을 힘쓰는 동안 주님과 더불어 영광에 이르는 삶이 되게 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대림절 첫 주일을 보내며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한 주간도 교우 여러분과 가정 가운데 충만하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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