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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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본문: 시편 30:1-12; 사도행전 10:34-43

설교: 홍정호 목사 (2020.1.12. 주현 후 제1)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나는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가리지 아니하시는 분이시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가 어느 민족에 속하여 있든지, 다 받아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을 보내셨는데,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평화를 전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민의 주님이십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이 일은 요한의 세례 사역이 끝난 뒤에, 갈릴리에서 시작하여서, 온 유대 지방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부어 주셨습니다. 이 예수는 두루 다니시면서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억눌린 사람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모든 일의 증인입니다. 사람들이 그를 나무에 달아 죽였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사흗날에 살리시고, 나타나 보이게 해주셨습니다. 그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택하여 주신 증인인 우리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그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와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이 예수께서 우리에게 명하시기를, 하나님께서 자기를 살아 있는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의 심판자로 정하신 것을 사람들에게 선포하고 증언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예수를 두고 모든 예언자가 증언하기를,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1.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교우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빕니다. 오늘은 주현 후 첫 번째 주일입니다. 주현절(主顯節, Epiphany)은 매년 16일입니다. 이날은 주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만인 앞에 당신의 존재를 환히 드러내 보이신 날입니다. 동방교회 전통에 따르면, 주현절은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하나님의 아들로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회력은 주현절 후 첫 번째 주일을 세례주일로 정해 두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와 더불어 빛이신 당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신 것처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음으로 우리도 새로운 존재로 세상에 드러날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주현 후 첫 번째 주일인 오늘, 빛 되신 주님의 은총이 교우 여러분 각 사람과 가정 가운데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베드로와 고넬료입니다. 고넬료는 로마의 군인으로서 이탈리아 부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로마인들에게 군 복무는 명예로운 일로 간주되었습니다. 고넬료는 그 가운데에서도 백부장, 즉 고급 장교였습니다. 사도행전은 이 사람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경건한 사람으로 온 가족과 더불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유대 백성에게 자선을 많이 베풀며,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다.”(10:2)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라고 하면,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점령군의 장교입니다. 좋은 평가를 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사도행전은 고넬료의 행실을 높이 평가합니다. 비록 점령군의 장교였으나, 강압적인 태도로 주민들을 대하지 않고, 그들의 처지를 헤아리며 많은 자선을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아마도 그가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경건했고, 온 가족이 하나님을 두려워했으며, 많은 자선을 베풀며 늘 기도하던 이 고넬료는 어느 날 천사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고넬료야! 네 기도와 자선 행위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서, 하나님께서 기억하고 계신다. 이제 욥바로 사람을 보내어,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이라는 사람을 데려오너라.”(10:4c-5) 천사의 음성을 듣고 고넬료는 하인 두 사람과 자기 부하 가운데 경건한 병사 하나를 불러 천사가 일러준 장소로 그들을 보냈습니다. 그 무렵 베드로는 기도하는 중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하늘에서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퉁이가 끈에 달린 채 땅으로 내려왔는데, 그 안에는 온갖 네 발 짐승들과 땅에 기어다니는 것들과 공중의 새들이 고루 들어 있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일어나서 잡아먹어라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은 속되고 부정한 것은 한 번도 먹은 일이 없다고 말하면서 그 명령을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두 번째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아라.” 이런 일이 세 번 반복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자신이 본 환상의 의미를 생각하고 있을 때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문 앞에 도착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자신이 본 환상의 의미를 깨닫고,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을 따라 그의 집이 있는 가이사랴로 갔습니다. 베드로가 자신의 초청에 응할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고넬료는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을 불러놓고 베드로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베드로가 오자 그는 마중을 나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려 절을 했습니다. 로마 군대의 고급 장교가 갈릴리의 어부 베드로에게 나가 절을 하는 낯선 풍경이 펼쳐진 것입니다.

 

자신이 살아온 경건한 유대인의 삶의 방식을 돌이켜 이방인의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 베드로는 훌륭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자기의 경험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며 행동에 옮기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유대 사람으로서 이방 사람과 사귀거나 가까이 하는 일이 불법이라는 것”(10:28)을 알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율법에 충실한 삶을 살아온 경건한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아라.” 하는 음성을 듣고, 자신이 살아온 길을 돌이켜 고넬료의 집으로 행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지금껏 자신이 옳다고 확신해 온 가치와 행동 양식들이 있었으나, 더 크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의 편견들을 극복하는 길에 나선 것입니다.

 

백부장 고넬료 역시 훌륭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처음 만난 사도에게 나아가 인사를 하며 그를 주님의 종으로 맞이했습니다. 고넬로는 시몬에게서 갈릴리의 거친 뱃사람의 모습을 보는 대신 그를 교회의 반석 베드로로 세우신 주님의 권능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와 주시니, 고맙습니다. 지금 우리는 주님께서 당신에게 지시하신 모든 말씀을 들으려고, 다같이 하나님 앞에 모여 있습니다.” 이것이 사도 베드로를 환대하는 백부장 고넬료의 감사의 인사입니다.

 

3.

 

고넬료의 환대에 감동한 베드로는 그 자리에서 자신이 깨달은바 두 가지 메시지를 전합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가리지 아니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가리지 아니하신다는 말씀은, 하나님은 편애(偏愛)하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의인으로 보인다고 해서 햇빛을 더 내리고, ‘죄인으로 보인다고 해서 햇빛을 가리는 분이 아니시고, 어떻게 보이는 사람이든 그 중심을 헤아리시어 모두를 편견없이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뜻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경건한 유대인이었던 베드로에게는 자라면서 교육받은 선민의식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 받은 사도로서의 자부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하나님께서는 편애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깨달음을 얻고 난 후 자부심을 내려놓았습니다. 유대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갖는 대신 모든 민족을 향한 구원의 기쁜 소식이 출발하는 자리가 바로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가 어느 민족에 속하여 있든지, 다 받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는 문화를 통해 구원받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는다는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문화를 통하여 구원받는다는 것은, 특정한 관습, 특정한 관념, 특정한 삶의 양식이 구원을 담보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은연 중 자신이 속한 문화를 정당화하곤 합니다. 저도 그렇지 않으려고 조심은 합니다만, 예외는 아닙니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자신이 속한 문화를 정당화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타자를 적대하는 근거로 삼기도 합니다. 베드로에게 부정한 짐승들을 먹지 않는 경건한 유대인의 문화야말로 올바른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와 그가 속한 공동체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문화적 관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문화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구원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 구원을 위해 유대인이 될 필요가 없고, 유대인의 문화적 관습인 할례를 따를 필요도 없으며, 유대인의 공동체로 귀속될 필요도 없습니다. 복음은 특정한 문화나 제도에 얽매일 수 없고, 얽매여서도 안 됩니다. 모든 이들을 공평하게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그분을 두려워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가 어느 민족, 즉 어떤 문화 공동체(imagined community)에 속하여 있든 그를 용납하시고 공평한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이것이 베드로가 전한 복음입니다. 이 말씀이 전해지자 그곳에 성령이 임했고, 그들은 세례를 받았습니다.

 

4.

 

교회는 장벽을 허물어 세상에 주님의 화해와 평화의 복음을 전하는 전초기지입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크고 작은 장벽들을 경험합니다. 그러한 장벽은 아이러니하게도, 경건한 사람일수록, 공동체에 더 많은 헌신을 한 사람일수록, 그리고 경험과 지혜를 갖춘 지도자 그룹에 속한 사람일수록 더 높고 견고합니다. 베드로가 그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말아라.” 하는 말씀 앞에서 자신의 삶을 돌이켜, 더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율법은 그들을 여전히 부정한 이방인으로 규정하고 있었으나, 베드로는 편애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유대인들이 부정하다 여기는) 그들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앞서 가신 길에 비로소 동참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는 주님의 빛이 임하는 장소입니다. 세상을 가르는 가치와 편견의 벽은 여전히 높고 견고합니다. 이러한 세상 가운데에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화해와 평화, 사랑을 향해 줄기차게 나아가야 합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을 나누고, 올바름과 그릇됨을 나누는 잣대들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편애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사실,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을 두려워하며 선을 행하는 이들을 용납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태도를 배우고 익히기 위해 우리는 매주일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듣고 복음의 말씀을 듣습니다. 빛 되신 주님 안에서, 다시금 나를 넘어 하나님께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한 주간도 여러분과 가정 가운데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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